여름은 울 것 같았다. 이 난처한 상황에 할 수만 있다면 저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으아앙. 아빠 찾아조오.”
“그러니까. 네가 기억을 해서 말해줘야 찾지.”
자지러지게 울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가를 손으로 쓰는 아이와 어린 아이를 위한 배려는 단 한 방울도 몸속에 포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제연 때문에.
어릴 적 제연은 잘 울지 않았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또래 아이들이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시도 때도 없이 툭 하면 눈물을 흘리고 울며불며 떼를 쓸 때 제연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친구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거 때문에 머리채를 잡힌 적도 있었고, 3년 지기 친구와 관계가 쫑난 적도 있었고, 부모님이 초등학교에 불려 오신 적도 있었다. 죄명은 서럽게 우는 친구에게 물음표 살인마적 모먼트를 선사한 것이었다.
“왜 우는 거야?”
“아니이, 내가 먼저 여기 자리에 하려고 찜해놨는데 희재가 내꺼 떼어버렸어어.”
“희재는 네 걸 왜 뗐는데?”
“나도 몰라아.”
“모르는데 왜 희재한테 안 물어봐?”
“그걸 내가 왜 알아야하는데에.”
우느라 말꼬리가 잔뜩 늘어진 친구를 보며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는 제연은 계속 물었다. 결국엔 전부 왜? 라는 질문이었다. 왜인지 이유를 찾아야 다음에는 안 그럴 거 아니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왜 울고만 있지?
“야! 이제연! 너 연수 괴롭힐 거면 저리가!”
결국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애초에 가까운 친구가 아니라면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제연이었지만,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자 더더욱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제연의 키와 함께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자라났다.
그러면 여름은 어땠는가. 여름은 정확히 제연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꼬리 늘이며 엉엉 우는 반 친구 1의 역할에 적임자인 아이였다. 친구가 옆에서 울면, 연관된 일이 아님에도 같이 울었다. 또 친구가 화가 나있으면, 함께 화가 나서 따져주곤 했다.
감정이라는 수영장 풀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레일 정중앙에서 온몸이 흠뻑 젖어 헤엄치고 있는 게 여름이고, 물이 싫다는 이유로 입구와 최대한 가까이에 의자를 둔 채 뽀송뽀송한 몸으로 나갈 시간만을 기다리는 게 제연이라 할 수 있다.
에메랄드빛 호수로 유명한 하동의 삼성궁.
산길을 따라 걸어야 하기에 야무지게 보틀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은 여름과 제연은 열심히 걷는 중이었다. 둘에게 그렇게 힘든 길은 아니었다. 최근 며칠간 제연의 아침운동에 여름이 동행해서 그런 것도 있고, 지리산이 하동을 품고 있어 이곳저곳 다닐 때마다 산을 만나서 그런 것도 있다.
“여기 호수가 그렇게 장난 아니래요. 다들 막 해외 나가야만 볼 수 있을 거 같은 풍경이라 감탄하고 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
“에메랄드빛으로 투명하게 빛난다던데. 유토피아의 현실판이 여기 아니냐는 후기도 봤어요.”
“호수가 초록빛이면 신기하긴 하네.”
넉넉잡아 2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왔던 터라 입장권을 사고 출발했을 때부터 서두르지 않던 둘이었다. 여름은 하동에 오고 처음으로 꺼내든 필름카메라에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잠시 멈춰서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혹시 옆에서 기다리는 거 지루하면 천천히 먼저 걸어가고 있어요. 사진 찍고 얼른 쫓아갈게요!”
“됐어.”
제연은 그런 여름에게 투정 한 마디하지 않고 옆자리를 지켰다. 집중했을 때 살짝 찡그리는 미간과 평소보다 튀어나오는 입술이 신기해 구경하기도 했다.
“와, 너무 예뻐요! 진짜 거짓말. 이렇게까지 예쁘다고요?”
어림짐작으로 중간 지점까지 걸어왔을 때, 드디어 말로만 듣던 에메랄드빛 호수를 만났다.
“풍경만 찍기 아쉬운데 우리 여기서 서로 사진 찍어줘요.”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며 예쁘다는 말을 남발하던 여름이 여기 서보라는 듯 제연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래.”
제연이 여름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압빠.”
양 갈래 머리와 손에 든 조그마한 토끼 인형이 잘 어울리는 앙증맞은 아가가 제연의 옷자락을 잡았다. 여름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 어색한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애기야 잘못 본 거 같은데.”
작아도 한참은 작은 아이의 손에 차마 손을 떼어 놓지는 못한 제연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와아……, 진짜 대박….”
여름은 상상조차 못했던 그림을 빤히 보며 혼자 작게 감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도 그런 거라 치자. 아니라면, 누군가를 울리는 거에 악취미 중에 악취미를 지닌 꼴이었으니.
“애기 누구랑 같이 왔어요?”
“압빠요….”
“아빠? 아빠 핸드폰 번호 알아요?”
애기를 떼어놓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여름을 빤히 쳐다보는 제연에 얼른 달려가 아이 앞에 무릎을 구부려 눈높이를 맞춘 여름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번호를 모르면,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지.”
“아니! 아빠가 찾아다니실 수도 있으니까 일단 여기서 언니랑 같이 있자.”
하지만 무심하게 툭 던져진 제연의 멘트가 폭죽을 쏘아 올렸다. 정확히 이 시점을 기준으로 여름은 당황해 양팔을 휘적휘적 거리며 진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열심이었다.
“어디쯤까지 아빠랑 같이 있었어?”
하지만 그걸 제연이 알 리 없었고, 최대한 빠르게, 효율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다.
“어쩌다 아빠를 놓친 건데?”
또다시 아이에게 질문하는 걸 보던 여름은 머리를 짚었다. 큰일 났다.
“으아앙. 아빠 찾아조오.”
“그러니까. 네가 기억을 해서 말해줘야 찾지.”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숨까지 헐떡이며 울기 시작했다. 여름은 급한 대로 아이의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걱정 하지 마. 언니가 아빠 찾는 거 도와줄게.”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눈물범벅이 되어버린 아이의 눈가를 살살 쓸어줬다. 그 표정이 울상인 아이의 표정을 빼다 박아 방금 울었던 것 마냥 속상해 보였다.
“일단 뚝 하자. 물 한 모금 마실래?”
그게 참 신기해서 제연은 얌전히 멈춰 고개를 숙인 채 여름과 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니가 젤리 가지고 있는 거 있는데. 우리 이거 같이 먹을까? 무슨 색 좋아해?”
쪼그려 앉으니 다리가 아팠던 여름은 털썩 땅바닥에 앉았다. 물을 마시고 나니 조금은 진정된 건지 벅차게 숨을 들이키던 아이가 차분해졌다.
“노랑이.”
“노란색? 노란색 먹고 나서는 무슨 색 먹지?”
조곤조곤,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여름, 여름에게 받은 젤리를 오물오물 씹으며 여름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 아이에게 티셔츠 끝자락이 잡힌 채 그 둘을 바라보고 있는 제연. 고개를 돌리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호수와 바람에 흔들리며 시원한 소리를 내는 푸르른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 몽실몽실 어느 때보다 풍성한 구름이 가득한 하늘까지.
멀리서 보면, 이 모든 게 부족함 없이 반짝이는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컷-.
“하루가 길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집 쪽으로 함께 걸어 올라가던 도중 제연이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그러게요. 오늘 되게 특이한 일을 겪어서 그런가?”
별이 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던 여름도 괜히 조용히 답했다.
“너 되게 긍정적이다.”
“나쁜 일은 아니었잖아요?”
“그렇다고 좋은 일도 아니었지.”
“애기 나름 귀엽지 않았어요? 애기랑 조약돌 주워서 탑 쌓고 논 것도 재밌었고,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부모님도 되게 착한 분들이셔서 나쁘지 않았는데.”
“별로. 잘 모르겠는데.”
뭐가 그렇게 좋고, 뭐가 또 그렇게 즐거운지 여름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제연은 언제나 그렇듯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기분이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아닌 어중간하고 미지근한 표정.
“다른 건 다 몰라도 애기 귀엽다는 말에는 공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왜?”
활짝 핀 민들레 홀씨를 꺾던 여름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고, 그에 화답하듯 제연은 정말 왜 그래야하냐는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압빠니까?”
아이의 말투를 따라하며 귀엽게 아빠를 발음하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굳어있는 상대방을 본 여름은 도망가듯 뛰었다. 그 걸음에 맞춰 아직 불지 않은 민들레 홀씨가 퍼지듯 날렸다.
“그렇게 멀쩡히 부모님이랑 애 생이별 시키면 안 된다.”
“완전 별로. 여태까지 했던 유머 중에 제일 구려요.”
보폭이 큰 걸음으로 금세 가까이에 온 제연은 여름에 손에 들려있는 아주 조금 남은 상태의 민들레 홀씨를 힐끔 쳐다봤다.
“알아.”
그리고 몸을 숙여 남아있는 홀씨를 한 번에 후 불어 날려 보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 외엔 다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고요한 하동의 밤. 여름 공기가 둘 사이를 메꿨다. 먼 훗날 다시 떠올리고자할 때,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할 수 있도록 마음 한 구석에 이 순간을 새겨주었다.
“집 가기 전에 들러서 책 받아갈 거죠?”
“지금 가져가라고?”
“내일 아침에 주려면 책 들고 운동 다녀오거나 운동 끝나고 집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지금이 나을 거 같아서요.”
“그럼 그러지 뭐.”
“책 자주 읽어요?”
“먼저 찾진 않아.”
“그럼 언제 주로 읽는데요?”
“과제할 때.”
“아 그건 완전 공감. 저도 과제 있을 때 제일 열심히 읽어요.”
“원해서 읽는 건 아니라 그런 건지 별로더라.”
“빌려갈 책들은 꼭 좋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책들이거든요.”
“언제 읽었던 건데?”
“가장 최근은 한 달 전쯤? 그 전에도 몇 번 읽긴 했어요. 여러 번 읽어야 보이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가.”
“빨리 읽는 습관이 있어서 한 번 읽으면 저도 모르게 슥 보고 지나친 부분들이 생겨요. 그런 이유 아니어도 시간 지나면 내용 잘 기억 못하니까 다시 읽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구나.”
둘의 대화소리가 점점 옅어지고 멀어졌다.
“감상평 되게 궁금한데. 책 읽고 나서 어땠는지 말해주면 안돼요?”
“일단 책부터 읽고.”
“어? 해주는 거죠? 해준다고 했어요?”
“별로면 안 해.”
하지만 분명 어딘가 한편에는 진하게 또렷이 남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