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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죽지못해 사는 사람들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20.8.7

언데드로 인해 멸망한 세상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세상을 걷고 있었다.

 
ep.3 삶의 이유(2)
작성일 : 20-08-07 17:10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5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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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이유(2)

 

 일단 기절한 여자의 머리에 한 발 쏜 뒤 다시 미라손을 바라보았다.

 미라손은 변함없이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예쁘게 끼우고 있었다.

 정상이 아니다. 원래 일반적인 상태에서의 미라손은 손에 자연스럽게 힘을 뺐을 때처럼 손가락을 살짝 구부린 상태였다.

 왜 이러지? 이건 어떻게 봐도……

 

 “야, 빡쳤니?”

 

 나는 미라손에 대고 말했다.

 멍청한 짓이지. 언데드와 싸울 때를 빼면 어떤 반응도 하지 않던 것이 이제와서?

 

 미라손이 엄지손가락을 빼고 평범하게 주먹 쥔 자세로 돌아갔다.

 그리고 중지를 쭉 뻗었다.

 

 뭐야? 지금 나랑 의사소통을 하는 거야?

 

 “음…… 좋아.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거지?”

 

 미라손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아니, 알아듣는 건 이전에도 알아들었지. 그거 말고. 나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 어차피 이것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은 아니지.”

 

 당황스럽다. 혼자 남은 세상에서 갑자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니, 그런 기분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지.

 

 “네 감정을 나한테 표현할 수 있어?”

 

 동그라미.

 

 “이전에는 왜 아무런 반응도 안 했지? 일부러?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어?”

 

 이번에는 검지와 중지로 X표시를.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인가?

 

 “네가 도둑맞았을 때 가방이 움직이지 않은 건 네가 한 거지?”

 

 동그라미.

 

 “그런데 이번에는 왜 안 했지? 시간제한이 있나?”

 

 X

 

 “……그냥 남한테 냉큼 넘긴 게 좆같아서?”

 

 동그라미

 

 “환장하겠네.”

 

 나는 눈을 감고 미라손의 동그라미를 더듬었다. 미라손의 손 모양대로 따라가는 촉각에 안심했다. 적어도 미쳐서 환각을 보는 건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지? 반갑다고? 뭐 하고 지냈냐고? 아니면, 구하지 못해서……

 

 “아니 시벌 이게 뭐야.”

 

 사람이다.

 13명의 남녀 무리가 나와 죽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료? 아니다. 동료였다면 분노했겠지. 저들은 당황과 약간의 공포만을 보이고 있다.

 

 “귀찮게 됐나. 총으로.”

 

 미라손은 동그라미를 그린 모양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쏠 생각은 없다 이건가? 네가 협조하지 않아도 내가 죽일 거야.”

 

 미라손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됐다. 그걸 원한다면.”

 

 나는 미라손을 몽둥이처럼 잡았다.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 더 안전하겠지만, 괜한 심술이었다. 네놈이 협조하지 않아도 너로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저들은 무기 한 자루 들고 있지 않다.

 

 “어어?”

 

 무리는 터무니없이 부실했다. 시체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라비틀어진 손을 들고 다가오는데도 그들은 내가 달리기 시작하고서야 간신히 방어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는 저들이 팔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달려들어 가장 앞에서 놀라고 있는 남자의 머리통을

 

 *****

 

 우왕좌왕하는 무리 사이로 한 여자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팔을 들어올렸다. 소용없다. 미라손은 강철보다 단단하니까.

 

 -깡!

 

 당연히 여자의 팔과 머리가 동시에 부러질 거라 생각했는데, 쇳소리와 함께 미라손이 튕겨졌다.

 

 “어?”

 

 머리는 당황했지만, 몸은 본능대로 움직였다. 나는 손에 힘을 빼 미라손이 허공을 날게 두고, 여자의 시선이 위로 향한 사이에 권총을 꺼내 여자의 머리를

 

 *****

 

 여자는 미라손에도 전혀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내게 몸을 던졌다. 여자는 권총을 든 내 오른손에 매달렸다. 여자가 외쳤다.

 

 “덮쳐!”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젠장, 이대로 무기를 빼앗기면 곤란한데.

 

 “비켜!”

 

 나는 여자의 팔을 물어뜯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뒤틀어 내 팔을 잘못된 방향으로 접었다.

 

 -우득

 

 “미친 놈!”

 “미친 놈!”

 

 여자가 팔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떨어져 나갔다. 나는 내 오른팔을 붙잡았다. 젠장.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팔을 맞출 여유가 없다.

 

 “다시 붙자 개새끼들아.”

 “아, 잠깐!”

 

 나는 내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

 

 10여명의 남녀 무리. 여기까지는 기억하는 것과 똑같다. 무리의 중간에 내 팔을 부러뜨렸던 여자가 있었다. 저 여자가 대장인가? 나는 곧바로 권총을 들어 여자의 머리를

 

 *****

 

 “방어막!”

 

 여자의 외침에 선두의 남자가 합장하듯 손을 모았다가 피자, 반투명한 방어막이 나와 무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뻔히 방어막이라고 외치는 것에 굳이 총알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 총을 집어넣고 다시 미라손을 들었다.

 잠깐의 침묵.

 

 나는 미라손을 들어 여자를 가리켰다.

 

 “거기 너. 네가 대장이지?”

 

 내 지목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여자를 향했다. 여자는 양 팔을 부딪쳐 쇳소리를 냈다. 경화 계열 능력자인가? 아니면, 그냥 보호대?

 

 “‘네’는 내 질문에 대답할 때 쓰는 거다 꼬마야.”

 “남을 꼬마라고 부를 얼굴은 아닌데?”

 “젊어 보인다고 말해주니 고맙지만, 내가 떡국을 보기보다 많이 먹어서 말이야.”

 

 떡국이라. 오랜만에 듣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런 걸 먹은 지 얼마나 됐지? 떠돌다 마주치는 마을이라 불리기도 민망한 공동체에 머무르게 된다면 음식다운 음식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 떡국을 먹은 기억은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나와.”

 “내가 왜? 우리는 열넷이고, 너희는…… 하나 하고 6분의 1? 아니, 7분의 1인가?”

 

 여자가 미라손을 보며 조소했다.

 

 “어차피 저놈들은 동료가 아니라 짐 덩어리니깐. 안 그래?”

 

 여자의 입장에서는 마주치자마자 내가 총을 꺼내고, 남자가 방어막을 친 것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저 사람들 중에서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자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자신의 동료들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무협지 흉내를 내고 싶은 건가? 눈으로만 봐도 전투력이 보이게?”

 

 저렇게 말은 하지만, 상대 역시 방어막의 범위 밖으로 나오기는 부담스러울 테니 내게 크게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 그저 무의미한 소강상태가 길어질 뿐.

 편한 방법은 다시 빠르게 자살한 뒤, 이번에는 무리를 뒤에서 덮치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그냥 무리를 피하는 것도 좋고. 다들 허리춤에 작은 주머니 하나씩만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들이 전부일 가능성은 없다. 아마 본진이 따로 있고, 저들은 최소한의 식량만 가지고 있는 정찰대인 모양이지.

 죽여서 털어봐야 가성비가 떨어진다.

 

 생각에 빠져 있던 차에 여자가 말했다.

 

 “뭐, 나는 자비로우니까. 원하는 대로 해주지. 1대1. 대신에 내가 이기면 따라와.”

 “내가 이기면 널 죽이고 저놈들도 다 죽이지.”

 “오, 과격하네. 괜찮아.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까. 그렇지?”

 

 여자가 장난스럽게 웃자 무리가 술렁이며 가볍게 웃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진짜 강자를 만나지 못해서인가? 한 번 아슬아슬했지만, 기본적인 성별 차이로 인한 근력 차는 내가 우세하다. 아니, 애초에 저 여자는 센스가 뛰어날 뿐 특별하게 강하지도 않았다. 저 정도면 데스나이트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여자는 팔과 목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빙긋 웃었다. 나는 미라손을 들었다.

 

 “무기 없나?”

 “무기를 들면 널 죽일지도 모르는데?”

 “……그럼 나도 무기를 내려놓았으면 좋겠나?”

 

 그렇다고 말하면 엿이나 먹으라고 하려 했는데, 의외로 여자는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넌 날 죽이는 게 목적이니 무기를 드는 게 맞지.”

 

 호오?

 무리가 보내는 환호에 여자가 두 손을 들어 화답했다. 재밌겠네. 자신감을 깨서 뇌를 끄집어내면 저놈들 표정이 어떨까.

 나는 여자가 무리를 돌아보고 있는 틈에 곧바로 그 머리통을

 

 *****

 

 -깡!

 

 “어딘가 특별한 물건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신기하네? 생김새는 비틀어진 팔인데 단단하기는 이렇게 단단하다고?”

 

 여자는 먼저 팔을 들어 내 공격을 막은 뒤 나를 돌아보았다. 역시 이 정도는 막아야 자신감을 보일 수 있다는 건가?

 

 여자가 주먹을 휘둘렀고, 나는 몸을 뒤로 뺀 뒤에 권총을 들었다.

 

 *****

 

 주먹을 휘두른 여자는 그 속도 그대로 내 팔을 덮쳤다. 내가 총을 꺼내기는커녕, 꺼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일어난 움직임이었기에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여자의 무게에 밀려 나자빠졌고, 여자는 내 권총을 낚아챈 뒤 내 위에 올라타 가슴을 짚고 이마에 권총을 들이밀었다.

 여자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웃었다.

 

 “자, 이제 내가 이긴 거지?”

 

 나는 여자의 손을 붙잡았다.

 

 “좆까.”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

 

 여자는 먼저 팔을 들어 내 공격을 막은 뒤 나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특별한 물건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신기하네? 생김새는 비틀어진 팔인데 단단하기는…… 어? 어어?”

 

 이번에는 권총을 꺼내는 대신에 단순하게 여자의 팔을 계속 후려쳤다. 일격이 쌓일 때마다 깡깡한 쇳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더니, 나중에는 타격감으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팔이 구깃구깃해져 있었다.

 

 “에이씨.”

 

 뒤로 물러난 여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상의를 벗자, 잔뜩 구부러지고 찢어진 철판 토시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끼던 건데. 하태네가 속상해하겠네.”

 “속상해하는 모습, 안 봐도 되도록 해 주지.”

 

 나는 곧바로 권총을 들었다.

 

 “그건 내려놓고!”

 

 여자가 철판 조각을 던졌다.

 손을 당겨 피했다고 생각한 철판이 바람을 타고 마법처럼 권총을 든 손바닥에 박혔다. 그리고 떨어지는 권총과 바닥 사이에는 이미 여자의 손이 놓여 있었다. 마치 그 예술적인 바람의 기적이 자신의 의도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자가 다시 권총을 내 이마에 들이밀고 빙긋 웃었다.

 

 “자, 이제 내가 이긴 거지?”

 

 이상하다.

 

 싸움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직접 주먹을 맞대본 여자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약하지도 않았지만, 제대로 싸운다면 회귀가 없더라도 50% 이상으로 이길 자신은 있었다. 심지어 나는 작동은 안 되지만 그대로 뛰어난 몽둥이인 미라손과, 권총까지 들고 있으니 회귀와 별개로 지는 것이 웃음거리가 될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전략과 싸움법을 선택해도, 싸움의 끝에서 여자는 반드시 나를 제압했다.

 

 대체 어떤 능력이지? 압도적인 행운? 아니면 내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그것도 아니면 ‘싸우는 상대와 반드시 이긴다’ 같은 터무니없는 종류의 것인가? 아니, 그딴 게 있을 리 없지.

 

 “자, 이제 내가 이긴 거지?”

 

 

 어떻게 진 거지? 어떻게 이기는 거지? 벌써 서른 번째 회귀다.

 

 “시끄러!”

 

 나는 고함을 지르고 내 머리를 쐈다.

 

 죽고 나면 반드시 반나절 전으로 돌아간다. 나는 총에 맞아 죽은 여자를 내려다보며 지난 싸움을 복기했다.

 

 끝까지 가면 반드시 이기는 사람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반드시라는 전제가 붙었으면 방법이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반드시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잖아?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지?

 

 “어차피 저놈들은 동료가 아니라 짐 덩어리니깐. 안 그래?”

 “무협지 흉내를 내고 싶은 건가? 눈으로만 봐도 전투력이 보이게? 뭐, 나는 자비로우니까. 원하는 대로 해주지. 1대1. 대신에 내가 이기면 따라와.”

 “내가 이기면 널 죽이고 저놈들도 다 죽이지.”

 “오, 과격하네. 괜찮아.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까. 그렇지?”

 

 어느새 나는 모든 것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1대1이고 자시고 다 때려치우고 뒤에서 저격하거나 그저 상대를 포기하고 떠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많은 상황에서 그렇게 해 왔다. 달려드는 좀비가 너무 많으면 미라손으로 멀리서 저격해 안전하게 잡았고, 데스나이트 무리가 이동할 때는 싸움을 포기하고 떠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저놈은 이길 수 없는 적이 아니다. 겨우 한 대. 겨우 한 번의 빈틈만 있으면 쓰러뜨릴 수 있는 그냥 그런 인간이다.

 

 “자, 이제 내가 이긴 거지?”

 

 하지만 가장 이상한 점은 그게 아니다. 내가 싸울수록 지쳐가는 것 이상으로, 상대도 지쳐 보였다. 회귀를 거듭하니 당연히 신체적인 컨디션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도 심각하게 지친 듯 자신 만만하던 동공이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너 설마……”

 “잠깐, 잠깐.”

 

 70번째 회귀에서 여자가 내 말을 끊고 머리를 싸맸다.

 

 “왜 네가 이기지? 그건 말도 안 되잖아. 말이 돼? 안 될 텐데.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위화감이 들지? 네가 나보다 강하니까 이기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데.”

 “무슨 소리냐? 계속 이기고 있는 건……”

 

 너라고 말하려는 순간 의심이 확신이 되어 입을 틀어막았다.

 여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깨달았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숨겨진 내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너, 회귀자지. 나와 똑같은?”

 

 ……마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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