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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죽지못해 사는 사람들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20.8.7

언데드로 인해 멸망한 세상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세상을 걷고 있었다.

 
ep.2 꼭두각시들(4)
작성일 : 20-08-07 17:02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6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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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두각시들(4)

 

 “징병이 아니라 자원인 이유가 있었네.”

 “그렇게 말하지 마시죠. 우리의 신뢰가 망가지는 느낌이니까.”

 

 나는 손을 들고 나서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전원. 교도소에서 도망쳐 나온 피난민 52명이 모두 손을 들었다. 그 중에는 최대 환갑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도 있었고, 가장 어리게는 내 허벅지에밖에 닿지 않을 꼬마도 있었다.

 나는 그 꼬마에게 말했다.

 

 “너는 들어가라. 너는 필요없다.”

 “내 목숨도 필요 없어요. 어차피 엄마도, 아빠도 다 죽으러 가고, 이번 일이 끝나면 아저씨도 떠날 텐데, 안 아프게 빠르게 죽는 대신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야생동물한테 물려 죽으라고요?”

 

 소녀의 말에 팔이 움찔 떨렸다.

 

 “아니면 다 끝나고 아저씨 손으로 죽여줄래요? 그럼 돌아갈게요.”

 

 잊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삶을 포기했기에 싸우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런 식의 말은……

 정신조작자가 소년의 입을 통해 말했다.

 

 “이 아이도 여기서 태어났어요. 이 아이에게 삶의 좋은 면을 말하면서 살라고 말하는 건 평생 부모에게 맞아 응급실에 들어온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며 가족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하는 꼴이죠.”

 

 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꼬마도 크게 차이가 나는 나이는 아니다. 소년이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프지 않게 죽게 선봉에 넣어줘요. 걸음이 느려서 힘들겠다 싶으면 알아서 하시고.”

 

 이게 얼마 만인가. 오랜만에 언데드가 아닌 것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런데 뭐가 혐오스러운거지?

 

 “좋아, 그렇게 하지.”

 

 귀신들은 붉게 물드는 상태, 일명 적화 상태에서는 빙의를 쓰지 않고도 사람을 물리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왕을 향한 충성심이 높은 만큼 왕이 명령한다면 망설임 없이 적화하여 들이받는다.

 하지만, 그런 귀신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적화하지 않고, 왕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당황하기만 한 것은 둘 중 하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래도 죽음은 귀신에게 공포스러운 것이기에 명령 이전에는 스스로 적화를 망설였기 때문에.

 두 번째는 적화는 왕의 허락 없이는 원칙적으로든, 원리적으로든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두 번째 이유에 무게를 싣기로 했다. 귀신이 군주제를 따를지는 모르지만, 하이브 마인드는 아니다. 누군가가 과잉 충성으로 적화하는 일도, 적화 명령에 망설이는 일도 없었다면 적화는 왕의 지시로만 발동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적화가 없다면 귀신은 미라손만으로 충분하다. 적화를 막으려면 왕을 쳐야 한다. 왕을 치려면 적화된 귀신을 상대해야 한다.

 잠입은 불가능하다. 귀신들은 시야 확보를 위해 교도소 안팎을 탁 트이게 개조했다. 공간이동으로 귀신의 왕과 바로 대면하더라도 들킬 수밖에 없다.

 

 “너와 그 여자 말고 능력자는 더 없나?”

 “없어요.”

 

 귀신의 왕과 대면하고 바로 미라손으로 퇴마문을 발동하면 타격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힘이 강한 만큼 다른 귀신 보다는 오래 버티겠지만, 결국 죽게 만들 수 있겠지. 문제는 그 전에 귀신의 왕이 도망을 결정하면 이를 막을 방법이 뭘까.

 퇴마문은 소리인 만큼 범위는 엄청나지만,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 맞으면 즉사하는 실탄보다는 도망치게 만드는 공포탄이나 고무탄에 가깝다. 가까이에서 맞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러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공포탄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실탄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똑같다. 유효 사거리로 들어가서, 맞으면 죽는 부위를 쏘면 된다.

 귀신의 왕이 퇴마문을 듣고 소멸할 때까지 붙잡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물리력으로 귀신을 통제할 수는 없다. 귀신의 움직임을 막는 벽이나 장치가 있다면 그걸로 후려쳐서 죽이면 되지.

 

 “순간이동 쓰는 여자. 능력과 제한은?”

 “자신이 아는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어요. 뭐,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당신의 생각을 읽고 전달하면 되니 당신의 기억 속 장소로도 이동이 가능하겠지만.”

 “네가 빙의된 귀신을 쫓아냈다고 들었어. 그걸 응용해서 귀신의 왕을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나?”

 “그건 불가능해요. 특정 위치에서 귀신을 밀어낼 수는 있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범위를 돔처럼 넓게 잡을 수는 없어요. 이건 벽이 아니라 일종의 밀어내는 힘이라 귀신이 보지 못하지만, 대신에 설치하듯 쓸 수도 없고요.”

 “하지만, 특정 지점에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겠지. 그렇지?”

 “네? 아!”

 

 정신조작자가 내 생각을 읽고 의도를 깨달은 듯 박수를 쳤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하지만 할 수 있겠어요?”

 “한 가지 조건만 채워진다면.”

 

 아마 놈이 내 생각을 읽고 있으니 답을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굳이 소리 내어 확실히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죽어도 너랑 나는 살아야 된다.”

 “당신이 죽으면 모든게 초기화되니까. 그리고 내가 죽으면 약속을 지킬 수 없으니까? 알겠어요.”

 

 *****

 

 총은 필요 없다. 그저 미라손 하나면 된다.

 몸은 최대한 가볍게 들어가야 한다. 나는 순간이동 여자에게 손을 뻗었다.

 

 “옮겨라.”

 

 여자는 또다시 예의범절에 대해 간단히 불평하고는 내 손을 붙잡았다. 정신 조작자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좌표를 읽고 순간이동 여자에게 전달했다. 순간이동 여자는 내가 생각한 정확한 그 지점으로 이동했다.

 사동의 정중앙. 귀신의 왕의 눈앞으로.

 인간의 생기를 즐기던 귀신의 왕은, 갑작스레 나타난 나와 순간이동 여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당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왕은 날카로운 눈을 뜨고 입맛을 다셨다. 귀신을 상대할 무기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그 탐욕은 10글자 이내로 지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녹음기. 볼륨 최대로. 재생.”

 

 <非非非非非非圭治緊銀非非圭>

 

 귀신의 왕은 나를 낚아채려던 손을 회수해 자신의 귀를 막고 비틀거렸다.

 

 [적이다!]

 

 귀신의 왕이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땅에 처박혔다.

 

 [악!]

 

 정확히는 땅에 ‘처박힌’ 것은 아니다. 귀신은 당연히 땅도 통과할 수 있으니. 하지만 귀신은 바닥에 가까운 지점에서 다시 처박히듯 정지했다.

 

 [뭐야! 누가 나를…… 대체 어떻게!]

 

 원리는 간단하다. 정신 조작자가 만들 수 있는 벽은 귀신 한 명을 간신히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범위만을 막아낸다.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자유롭게 비행하는 귀신을 그런 작은 벽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없었다면.

 귀신의 왕이 위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자살한다면 정신 조작자가 내 기억을 읽고 위를 막는다. 위가 막힌 귀신이 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고 자살한다면 정신 조작자가 그 기억도 읽고 다음은 바닥을 막는다.

 

 [누가 감히 왕을 붙잡냐!]

 

 귀신의 왕이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한기를 뿜으려 했지만, 한기는 퇴마문에 막혀 다시 스며들었다.

 위기를 느낀 귀신의 왕은 빠르게 움직여 퇴마문의 범위 밖으로 도망치려 발버둥쳤다.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오른쪽인 척 왼쪽으로, 그 뒤에는 오른쪽인 척 하다가 진짜로 오른쪽으로.

 소용없다. 나와 정신 조작자는 귀신의 왕의 속임수와 역 속임수와 모든 정수에 당했고, 그 뒤에 다시 시작해 그 자리에 벽을 쳤다.

 귀신들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왕을 지키려 했지만, 최대 볼륨의 퇴마문에 왕이 아닌 귀신들은 접근해 봐야 소멸만 앞당길 뿐이었다.

 마침내 귀신의 왕이 고통 속에서 외쳤다.

 

 [놈을 막아! 죽여! 태워! 전부를 불살라 너희들의 왕을 지켜라!]

 

 당황한 귀신들의 몸이 일제히 붉게 빛났다. 사방에서 석양이 비치는 것 같은 빛과 함께 귀신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이건 정신 조작자도 막지 못한다. 한 번에 세울 수 있는 벽도 한계가 있으니 동시에 달려들면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여기서 희생이 필요하다.

 

 -펑!

 

 적화한 귀신은 내게 접근하기도 전에 터져 바닥을 녹이다 사그라들었다. 일곱 정도 되는 귀신이 동시에 터져나가자 귀신의 왕이 비명을 질렀다.

 

 [뭐라고?]

 

 귀신의 왕이 도망을 시도하는 동안 순간이동 여자가 사동의 귀신 들린 사람들 사이에 자원자를 심어 놓았다. 그들은 멍하니 앉아 귀신 들린 사람을 연기하다가 적화한 귀신에게 달라붙었다.

 귀신은 사물을 통과할 수 있지만, 적화한다면 사물과 닿았을 때 폭발한다. 나와 부딪치면 터질 정도로 적화한다면 내가 아닌 누구와 부딪쳐도 터질 수밖에 없다.

 

 “잡았다!”

 

 그것은 환희의 외침이고, 동시에 유언이 되었다.

 

 -펑!

 

 이 부분은 내게도 어느 정도 도박이었다. 적화된 귀신은 닿자마자 바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다. 달아오른 귀신이 터지기 직전에 내게 달라붙으려 할 테니 돌을 던진다거나, 귀신 들린 사람들을 이용하는 편법 없이, 모두가 온전히 자살을 감행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한 인간이 진짜 죽기 위해 뛰어들 수 있을까?그들은 귀신이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을 짓게 만들 정도로 완벽하게 귀신에게 달라붙어 폭사했다.

 

 [꼭두각시 주제에!]

 

 나는 미라손을 들고 귀신의 왕에게 걸어갔다.

 

 “식사는 맛있었나? 자, 여기 영수증이다 폐하.”

 

 귀신의 왕은 자신이 도망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목에 난 송곳니 자국에서 생긴 균열이 벌어지며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오지 마라!]

 

 귀신의 왕은 자신의 손만을 적화해 내게 달려들었다. 신체 일부만을 적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고, 당연히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푹

 

 순간이동 여자가 내 앞을 가로막고 적화한 손을 붙잡았다.

 

 “끄으으윽……”

 

 가까이서 보니 여자의 상처는 심각했다. 관통당한 복부가 끓어오르며 흘러내렸다. 하지만 여자는 그 상태로 귀신의 왕의 손을 움켜쥐었다. 손도 배와 똑같은 꼴이 됐지만, 그는 손에 힘도 풀지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은 채 그저 작게 신음하며 귀신의 왕의 손이 터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폭발의 순간 그는 몸을 웅크려 온 몸으로 폭발을 받아냈다.

 

 -펑

 

 피보라가 튀고 살점이 흩날렸다. 그 틈새로 귀신의 왕만이 사라진 자신의 양 팔을 황망히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을 흡수하면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은 퇴마문을 재생하는 시체를 들고 있었다.

 

 [젠장!]

 

 마침내 귀신의 왕은 가장 원시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귀신의 왕의 목이 뱀처럼 늘어나 내게 이빨을 드러냈다.

 아마 처음부터 나를 공격했더라면 나는 더 자주, 많이 죽었어야 했을 것이다. 귀신의 왕과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며 퇴마문을 가동하다 자원자가 먼저 몰살하면 아예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귀신에게는 아주 약간의 퇴마문도 너무 자극적이었고, 순간의 판단에서 도망과 공격 중 도망을 선택했다. 일단 도망쳐서 안전을 확보한 후 이긴다.

 그래서 귀신의 왕은 졌다.

 나는 몸을 뒤로 빼고 귀신의 왕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귀신의 왕은 곧바로 공격하는 대신 긴 목으로 내 주위를 휘감았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을 위한 복선이고, 실제로 놈이 공격한다면 피할 수 없었겠지만,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까아아아악!]

 

 목의 균열이 마침내 벌어져 파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목이 잘린 영혼은 피를 흘리지 않지만, 치명상임은 똑같다. 귀신의 왕의 목이 순식간에 움츠러들며 나약한 부상자의 영혼으로 돌아왔다.

 나는 귀신의 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일 기운도 없는지 눈만을 부릅뜰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즐거웠나?”

 

 세상이 멸망했다. 그 멸망한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악인이 나타났다. 인류는 살인자의 자손이 되었다. 선한 자들은 죽어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악한 이들은 살아 씨를 뿌렸다.

 누군가는 그 악인이, 내가 동정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환경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변명일 뿐, 이런 세상에서도 선한 존재들이 있었다고 말하며 시체들을 가리키고 나를 정죄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에 가장 효율적인 길을 골랐을 뿐이다. 저놈이, 그리고 저들이 이 세상을 악할수록 효율적인 세상으로 개조했다.

 

 [살려…… 주세요.]

 

 귀신의 왕은 치킨을 먹은 다음날 분노한 닭에게 일가족을 잃고 그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인간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그냥 고기잖아! 망할 닭대가리들 내가 왜 무릎을 꿇어야 돼!’

 나는 귀신의 왕을 이해했다. 배가 고플 때 순순히 식량을 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뒤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나도 그랬다.

 그런데 원래 싸움은 내가 옳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다. 내 적을 다 쳐 죽여 반론할 사람을 없애는 것이다.

 그동안 귀신의 왕은 이겼고, 이제 졌다.

 

 [죽여버릴거다! 개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그러든지.”

 

 귀신의 왕은 마지막 유언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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