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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죽지못해 사는 사람들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20.8.7

언데드로 인해 멸망한 세상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세상을 걷고 있었다.

 
ep.1 악당(3)
작성일 : 20-08-07 16:59     조회 : 319     추천 : 0     분량 : 7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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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당(3)

 

 꼬마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이건 연기가 아닐 것이다. 저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집으로 안내하라고 시킨 남자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더니 이상한 질문을 하는 셈이니.

 꼬마에게는 내가 숲 저편에 숨은 귀신이라도 발견하고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고개를 저으며 내 뒤로 숨었다.

 

 “뭐가 보여요?”

 “아니, 됐다. 그 이야기가 아니야. 네 집에 누가 있냐고.”

 

 내 옷을 쥔 꼬마의 손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엄마가, 좀비가 돼서……”

 “저 집에는 남자 한 명뿐이다. 좀비에게 물리지도 않았지. 너는 네 엄마가 아빠를 물었다고 했는데, 그럼 그 남자는 뭐지?”

 

 꼬마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렸다. 어려서인지, 너무 놀라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어떻게 그걸 알게 되었는지는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사람은 네 아빠 같지도 않던데. 이런 세상일수록 나쁜 아빠는 보기 힘들지. 나쁜 아빠는 그냥 자식을 버리고 떠나버리면 그만이니. 아니, 가성비 좋고 순순한 노예가 필요했던 건가?”

 “아니에요!”

 

 꼬마가 와락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아빠가 있어서 여기서 지낼 수 있었다고요!”

 

 그럴 수 있다. 교육을 배울 수 없는 세상에서 가부장적인 부모에게 길러지게 된다면, 부모가, 그리고 부모가 가르치는 모든 것이 곧 진리가 될 테니까.

 이렇게 길러진 아이는 개와 다를 바 없다. 개는 자신을 학대하는 주인을 위해 그 주인을 나무라는 행인을 공격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완전히 개가 되지는 않았다.

 

 “넌 아빠를 피해 도망친 거 아니었니? 너도 아빠가 나쁜 사람인 것을 알아서 도망친 것 아니야?”

 

 문득 궁금해졌다. 멸망한 세상의 도덕이 알몸의 넥타이만큼 무의미하다면, 이 아이는 어떤 원칙을 어떻게 배우며 자랐을까?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들에게는 ‘바람직한 횟감의 품위있는 예절 교습’ 같은 것이 있을까?

 그런 게 없다면, 꼬마는 왜 도망쳤을까?

 

 우물쭈물하며 말을 아끼던 꼬마가 마침내 쪼그라든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도망치라고 했어요.”

 

 엄마? 아, 그럴 수 있겠다.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어요.”

 “왜 그렇지?”

 

 아이의 입에서 진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감정이 격해지면 가족에게 발길질을 하는 건달 같은 아빠와, 그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와 같은 클리셰적인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건 사회가 존재했던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는 내 멍청한 착각이었다.

 

 “아빠가 사람을 죽여서 좀비를 조종한대요.”

 “뭐?”

 “사람들을 만나면 아빠가 죽여요. 그리고 좀비를 조종해요.”

 “허.”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우선 나를 작게 비웃었고, 꼬마의 가족을 크게 비웃었다.

 멸망 이후 그런 식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이 단물을 마시면 좀비가 사람이 됩니다!’, ‘이 소금을 뿌리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 장사꾼은 돈 대신 현물만을 받았다. 세상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조금 뻣뻣한 엉덩이 닦개가 될 쪼가리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으니까. 스스로도 자신의 물건이 효과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죽여서 좀비를 조종한다니. 고기를 구하기 위한 자기합리화거나, 미친놈이었군.

 

 나를 유인했던 지하창고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곳에서 뭔가 하는 모양이지.

 

 꼬마는 내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을 알았는지 입을 삐죽이며 눈을 찌푸렸다.

 

 “진짜에요! 그걸로 우리 다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우리 다 좀비를 죽이기 이전으로 돌아가겠지.”

 

 비꼬는 말이었지만, 꼬마는 진심으로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 듯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다.

 아, 그래. 내가 물리적인 시선만을 맞추고 있었구나. 살아있는 어린이를 본지 너무 오래됐다. 나는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했다.

 

 “그런 건 불가능해.”

 “진짜 가능해요! 제가 봤어요!”

 

 어릴 때 본 영화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어느 어린 여자애가 우연히 음란물을 보게 된다. 그리고 두 기억이 혼동되어 자신이 선생님의 성기를 봤다고 착각하고, 사람들은 그 선생님을 아동성범죄자로 착각해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내용.

 기억은 불안정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특히 더 불안정하다. 그 아비가 꾸준히 사람을 죽여왔고, 좀비가 통제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 왔다면 자신이 그 모습을 봤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류의 착각은 눈앞에 증거를 들이밀어도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 그럼 너는 왜 도망갔지? 좀비를 조종할 수 있는 아빠라면 같이 사는 게 안전할 텐데.”

 

 꼬마는 그런 멍청한 질문은 처음 듣는다는 듯 반문했다.

 

 “사람을 죽였잖아요. 엄마가 그건 나쁜 거래요.”

 

 아. 그게 불법이던 시절도 있었지.

 

 미신에 빠져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 아빠, 아빠의 광기의 칼끝이 아들에게 닿을까 걱정한 엄마. 그 집에 남자 하나뿐이었던 이유도 짐작이 간다. 어쩌면 아빠가 자식을 실험용으로 분해하려다 엄마를 죽였을지도 모르겠다.

 

 미라손이 발광했다. 내가 미라손을 꺼내자 꼬마가 놀란 표정으로 비쩍 마른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 우선 잡아야 할 엘프가 하나 있지.

 

 “방향은?”

 

 나는 미라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뒤로 물러나라. 좀비가 온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며 좀비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진부하기도 하지. 이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올 때도 되지 않았나?

 

 “검으로.”

 

 나는 손날을 편 미라손을 들고 좀비를 단번에 벨 준비를 했다.

 그때 꼬마가 뛰쳐나와 나와 좀비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저씨 잘 봐요!”

 “이런 미친!”

 

 나는 검을 든 손을 내리고 발을 내딛었다. 꼬마를 구하기엔 시간이 모자라다. 검을 휘두르면 꼬마가 먼저 베일 것이다. 방법은 좀비가 꼬마를 덮쳐 죽이는 동안……

 나는 걸음을 멈췄다.

 공상이 치사한 멸망이 되어서 현실로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불가해한 경이에 몸이 가볍게 떨렸다.

 

 팔이 너덜너덜해진 엘프 좀비가 바닥에 착지해 꼬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봤죠?”

 

 꼬마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는 좀비에게 손을 뻗었다. 꼬마의 손이 닿을 때 마다 푸석한 머리가 우수수 떨어졌지만, 그 엘프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탈모를 유발하는 그 행동을 방치한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좀비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진짜 불가능한가?

 

 통제 불가능한 좀비 이론은 어떤 대단한 과학적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저 경험에 의한 이론이었다.

 지금까지 좀비를 통제할 수 있다고 한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고개를 숙인 좀비가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이 거짓일 가능성은 없나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다.

 저건 좀비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아집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통제는 영구적으로…… 아니, 네가 이 좀비를 계속 조종할 수 있는 거니?”

 “네!”

 

 꼬마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한 것이 기쁜지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라……

 

 “조종은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지?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게 할 수 있나?”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멈추거나 달리기밖에 못해요. 다른 말은 못 알아들어요.”

 하긴, 뇌까지 썩은 좀비들에게 섬세한 명령이 가능해진다면 그건 이미 좀비가 아니겠지.

 인류에게는 유감스럽지만,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릴 정도까지는 안 되는 모양이다.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나?

 처음에는 그저 가는 김에 무력한 가족 하나를 털어 식량주머니나 채울 생각이었지만, 좀비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작 이 정도로 세상을 다시 돌려놓기는 불가능하다. 좀비는 가장 약한 언데드에 불과하고, 마찬가지로 좀비의 행동지배권을 가진 구울의 조종을 벗어날 정도로 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좋은 기술은 좋은 재산이다. 멸망한 세상에서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검으로.”

 

 나는 좀비의 목을 베고 깜짝 놀란 꼬마를 어깨에 앉혔다.

 

 “가자.”

 

 *****

 

 처음에는 길을 몰라서 휘젓고 다니느라 늦었고, 그 뒤에도 처음의 행로를 그대로 복기하며 걸었기에 오래 걸렸지만 이번에는 꼬마가 최단 경로를 가리켜 안내했기에 더 빠르게 오두막에 도달할 수 있었다.

 좀비를 죽인 것에 대해 꼬마가 몇 차례 불평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꼬마는 오히려 미라손에 관심을 가졌고, 내가 무시하자 침울해져서 본래의 역할인 네비게이션에 충실했다.

 

 “저기예요.”

 

 지금까지는 오두막의 정문을 보고 들어왔는데, 이제는 오두막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두막 뒤편에 테이프로 얼기설기 막아놓은 창문을 보니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저 창문으로 도망쳤기에 길을 이쪽으로 안내한 것이다. 좀비에게 물릴 걱정이 없으니 창문이 보안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는 거겠지.

 

 오두막에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무렵 나가서 용무를 보고 아침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

 

 나는 꼬마를 바위 뒤에 숨기고 오두막에 접근했다. 그리고 미라손을 꺼냈다.

 

 “둔기로.”

 

 미라손은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었다. 미라손은 아무것도 아닐 때도 둔기처럼 묵직하니까.

 남자는 근처에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처럼 무방비하게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질질 끄는 소리를 냈다.

 나는 미라손을 하늘 높이 들고 기다리다가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문을 연 남자의 오른손을 후려쳤다.

 

 “으억!”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뺐고, 나는 문을 크게 열고 뛰어 들어갔다.

 남자는 임기응변이 빠른 사람이었다. 오른손이 부러지자마자 왼손에 샷건을 소환한 그는 들어오는 내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미라손을 뻗어 총구를 막자 산탄이 미라손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흩어졌다. 당황한 남자가 다음 장전을 준비했지만, 나는 남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차 쓰러뜨리고 미라손으로 머리를 때려 바닥에 눕혔다. 남자는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정신도 그리 온전치 않은 상태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몽롱한 신음을 흘렸다.

 임기응변에 당했더라면 한 번 더 같은 짓거리를 반복할 뻔 했지만, 다행히 가볍게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쉽게 끝났네. 그렇지?”

 

 나는 대답하지 않는 미라손에게 의미 없는 말을 하고 남자를 묶었다.

 따귀를 몇 번 때려 남자를 깨우고 나자 회귀자의 익숙한 우울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 누군데 갑자기 나를……”

 

 내게는 이미 몇 차례 봐 익숙해진 사람이지만, 그 사람에게 난 초면이다.

 나는 귀찮은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말했다.

 

 “좀비. 어떻게 조종하지?”

 

 남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빠져 이빨을 부딪쳤다. 나는 꼬마에게 들은 내용과, 남자에게 들은 내용을 조합해 적당한 대사를 떠올렸다.

 

 “네놈이 좀비를 통제하려고 저지른 멍청한 짓에 마을이 무너졌다. 그 때 넌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을 죽게 뒀어.”

 

 사실 그 마을이 어디에 붙은 마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가 듣기에는 내가 소중한 사람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찾아온 사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남자는 죄책감을 느끼는지 이를 악물고 신음했다.

 

 “좀비를 통제하겠다고? 어떻게? 네가 그 사람들을 죽여 가면서 저지른 망상짓거리가 효과가 있다고? 거짓말!”

 

 나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남자의 배를 걷어찼다. 남자가 괴성 섞인 토악질을 쏟아내며 바닥을 굴렀다.

 나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분노, 의심, 경멸.

 남자에게 내 감정이 전달이 되어야 한다.

 

 “아니! 난 진짜로 통제할 수 있어! 진짜 그것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그래야 남자가 입을 열 테니까.

 

 남자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신의 업적이 무시당한다는 분노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젠장! 그만 때려! 입이 주먹에 달렸나! 좀비는 통제 가능한 존재야! 내가 해냈다고! 재료가 조금 까다롭지만 아무튼!……”

 “재료가 뭔데. 인육? 고기 잘 먹여서 길들이는 건가?”

 

 어른은 말귀를 더 잘 알아들어서 편하다. 남자는 내가 빈정대는 것을 눈치 채고 똥 씹은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직접 보여주면 믿겠어?”

 “아, 그거 좋지. 그런데 잠깐만……”

 

 나는 남자의 손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부러진 남자의 오른손을 비틀었다.

 

 “뭐, 뭐야! 악!”

 “좋아, 재생력은 평범한 수준인 것 같네.”

 

 그리고 남자의 왼손도 마저 부러뜨렸다.

 남자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거품을 물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면 시간을 잡아먹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소환 능력자라면 단검을 소환해 밧줄을 끊는 선택지도 있을지 모르니까. 아예 양 손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볼일이 끝나면 바로 처리할 테니 앞으로도 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다.

 

 “자, 앞장서.”

 

 나는 남자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남자는 벽을 짚고 싶다며 후들거리는 다리와 꿈도 꾸지 말라며 발작하는 양 손 사이에서 갈등하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앞장서 바닥의 비밀문을 열자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허튼 생각은 하지 마. 속셈을 부리면 다 알 수 있으니까.”

 

 남자가 사다리를 탈 수 없었기에 나는 남자를 창고로 밀어버렸다. 본능적으로 손을 짚는 바람에 한 차례 더 비명이 울렸지만, 높이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리가 부러지는 변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마찬가지로 단번에 바닥에 떨어지고 다시 남자를 미라손으로 밀었다.

 

 “여기가 실험장이 맞았군. 어서 걸어. 어떻게 하는지 한 번 보자.”

 

 남자가 앞장섰다. 처음과는 달랐다. 남자의 밑천을 전부 드러냈기에 더 이상 숨겨진 샷건을 날려줄 수가 없었고, 나는 경계를 놓지 않으면서도 여유있게 남자를 따라갔다.

 

 통로를 걸을수록 기묘한 냄새가 났다. 지독한 피비린내였다. 한 차례 뿌려진 피가 다시 덧씌워지고, 또 다시 덧씌워져 마치 피 냄새의 시대적 박물관에 찾아온 기분이었다. 거기에 어딘가 불쾌한 신음 소리도 함께 섞여왔다.

 

 통로가 가까워지자 남자가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

 

 “좀비는 누가 통제할 수 있을까?”

 “널 두드려 패면 네 예의는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비가 바이러스라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의학에 있을 거야. 하지만, 좀비가 마법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마법에 있겠지. 자기 고집만 있는 것들이 엉뚱한 분야로 해결하려고 하는 멍청이들이 세상을 멈추게 만드는 거야.”

 

 아무래도 사회가 존재했던 시기라면 발상의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암환자에게 항암치료 대신 간장요법을 사용했을 법한 사람의 말투다.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는 저런 게 통할 가능성이…… 아, 그러네. 이제 통하겠네 그럼.

 나는 갈수록 가까워지는 불쾌한 소리와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마법이 문제잖아? 인간이 마법을 쓸 수는 없으니 이해할 수도 없고, 응용할 수도 없을 텐데.”

 “멍청하기는. 인간은 날 수 없었으니 비행을 이해도 응용도 못 했겠군. 비행기라는 건 허풍쟁이들의 망상 속 장난감이었나?”

 “아.”

 “그리고 이게 내 비행기다.”

 

 통로를 꺾어 지나가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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