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1)
“염병할…… 여기가 어디야 대체?”
산길을 똑바로 걷는다는 생각부터가 말이 안 된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를 닥치는대로 베며 자처럼 곧게 나가지 않는 이상 결국 방향이 틀어지게 되고, 이런 어둠 속에서는 얼마나 방향이 틀어지는지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리고 애초에 그 꼬마가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었는지도 장담할 수가 없다.
“만약에 길을 알고 있었으면 그렇게 쉽게 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갑자기 확신이 사그라들었다.
어쩌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식량과 체력만 낭비하게 될 지도 모른다.
죽는 건 지긋지긋하다.
나는 넓적한 바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나무가 빽빽한 산은 아니니 아침이 되면 충분히 시야가 트일 것이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내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잠에서 막 깨어났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피곤하다.
*****
언데드가 나타났다. 그래서 세상이 멸망했다.
아마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적으로 좀비로 인한 세계 멸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어떤 과학적인 이유로도 좀비는 존재할 수 없다. 일단 죽어서 생기는 문제라면 사후 경직을 해결할 수 없고, 죽지 않고 성질만 변하는 거라 해도 생물은 다른 생물을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무엇보다 모든 걸 해결한 좀비라고 해도 결국 총과 장갑차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좀비 바이러스는 물리자마자 전염된다. 쉽게 말하면 잠복기가 짧아 구분하기 쉽고, 타액으로만 전염되기에 격리도 쉽다.
어쩌면 한 나라 정도는 멸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운이 정말 좋으면. 그리고 나면 폭격으로 좀비를 쓸어버리고 인간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과학적인 상식으로 좀비가 나타났다면.
하지만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수천 수만 개의 구멍이 하늘에서 열렸고, 엄청난 수의 언데드들이 땅을 휩쓸었다.
데스 나이트는 흉악한 무기와 두 주먹으로 전차를 뒤집었다.
구울은 좀비들을 조종했으며, 그들의 마법은 사람들의 피부를 녹이고 썩게 만들었다.
귀신은 파일럿에 빙의해 서로를 폭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외형을 찾을 수 없는 키메라는 기괴한 방식으로 파괴를 일삼았다.
그리고 죽은 인간들은 좀비가 되었다.
그들을 감염시킨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마법이다.
추측할 여지가 많은 사건이지만,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이것이다.
엘프와 드워프와 같은 이종족이 존재하는 중세풍 판타지의 이세계는 실존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방역 시스템이 충분히 좋지 못했다. 결국 멸망한 이세계의 존재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이곳으로 넘어왔다.
조금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떠올리자면, 그쪽 세계의 뛰어난 마법사가 언데드들을 다른 차원으로 쫓아내 세상을 구했다는 식의 서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법이 모든 희망을 가져가 버리는 것은 비현실적이기에 치사하지만, 역사적이기에 현실적이다. 아마 공룡들도 자신들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어느 날 하늘의 별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 모든 것을 치사하다고 생각하며 멸종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보통 재해는 치사하게 일어나니까. 치사하지 않은 재해는 견딜 수 있고, 대비하고 견딜 수 있는 재해는 재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리고 난 그 치사하게 멸망한 세상의 세상에서 어딘지도 모를 산길을 헤메고 있다.
잠에서 깨어날 때 까지 미라손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라손이 반응할 수 있을 정도의 언데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덤으로 내가 살아있는 걸 보면 미라손이 반응할 수 없는 언데드도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다.
날이 밝으니 시야가 확 트였다. 가방에서 건빵을 꺼내자 휑한 공간에 햇빛이 스며들었다.
“한 시간만 더 걸어보고, 안 보이면 떠나는 걸로 하자.”
식량이 다 떨어지는 건 언데드에게 물려 죽는 것 보다 곤란하다. 언데드는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지만, 식량은 입에 넣을 거 콧구멍에 넣는다고 연비가 올라가지는 않으니까.
10여분 정도 걷고 나자 나는 아이의 방향 감각을 의심한 것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속이 빈 밤송이가 밤나무 근처에 널브러져 있었다.
밤송이를 까는 것은 다람쥐도 가능하다. 하지만, 밤송이에는 인간적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밤송이에 눌린 신발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신발 모양은 두 종류. 하지만 하나는 왼발, 다른 하나는 오른발만 찍혀 있으니 그저 신발이 짝짝이일 가능성이 높겠군.’
흔한 일이다. 세상이 망하고 신발 공장도 망했으니까.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발 크기보다는 보폭이 더 정확하다.
한 사람. 키는 170대. 갓 떨어져 바삭바삭한 낙엽 위에 생긴 자국.
“물리지 않았던 건가? 아니면 전혀 다른 인물인가?”
언데드라면 키메라가 아닌 이상 밤을 먹지 않을 테니 밤송이를 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가 물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의 주인은 제 3자다.
나는 고민 끝에 발자국을 따라가기로 했다.
식량이 부족하다. 넉넉한 식량을 들고 다니는 약한 인간은 먹는 부위가 다른 집돼지와 다를 것이 없다. 몸뚱이를 먹거나, 몸뚱이가 이고 있는 것을 먹거나.
발자국이 위를 향하고 있었기에, 나도 원치 않는 등산을 해야 했다. 발자국의 주인은 체력이 좋은지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멈춘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 간혹 속이 빈 밤 껍질을 흘리며 자신이 언데드가 아님을 증명할 뿐이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붉은 단풍을 지나치자 오두막이 나타났다.
멸망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정갈하고, 방어 장치가 부실했다. 아마 멸망 이전에 펜션으로 썼던 것을 보수해가며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가까이서 보니 나무 일부가 세월을 먹어 썩어가고 있었다.
발자국은 오두막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미라손을 꺼냈다.
“총으로.”
미라손은 사람 말을 듣지 못하는 시체의 손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망할 놈은 언데드가 주위에 없다면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지.
그렇다면 멸망 이전의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야겠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
“계십니까.”
문 안쪽에서 당황한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요?”
나이 든 남성. 아저씨다. 아이의 아빠일까? 어쩌면 먹혔다는 이야기는 충격에 빠진 아이가 잘못 본 것 일수도 있겠다.
“산을 헤매다가 여기를 발견했습니다. 혹시 잠깐이라도 좋으니 묵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안전하게 마을로 돌아갈 길이라도 알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요? 잠시만……”
짧지 않은 망설임 끝에 문이 열렸다.
40대 중반 정도의, 꽤나 건장한 몸을 가진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가 허탈한 웃음으로 말했다.
“안전한 마을이 있을 리가 있나. 그런 게 있었으면 여기서 혼자 살 리도 없지요. 일단 들어오시죠.”
남자는 정중한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나와 반 세대 정도 차이가 날 것 같음에도 그는 존칭을 사용했다. 나는 미라손을 보이지 않게 가방 깊숙이 욱여넣고 오두막에 들어갔다.
남자는 나무를 어설프게 깎아 만든 컵에 이것저것 먹을 걸 넣고 끓인 잡탕죽 같은 것을 내밀었다. 묽어서 음료처럼 마시는 것이 편하겠다 싶어 나는 숟가락은 거절하고 컵만을 받았다.
“마침 점심을 먹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좋을 때 오셨군요.”
나는 죽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두막은 과거 펜션으로 썼던 것 같다. 꽤 넓었지만,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여 있어 실제보다는 좁게 보였다. 집주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망설임 없었던 발자국을 떠올리면 아마 이 남자가 집주인이 맞을 것이다.
나는 빈 잔을 내밀고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간소했지만, 간만에 먹는 따뜻하면서 독이 없는 식사였다.
“여기서는 얼마나 지내신 겁니까?”
“한 3년 조금 넘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언데드들이 밀려와 다 죽어버렸죠.”
남자는 그 때를 회상하듯 잠깐 말을 멈추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도망친 뒤로 지금은 여기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혼자?
나는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을 훑으며 말했다.
“아들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들이요?”
남자가 의구심 담긴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차, 아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들이든, 딸이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걸 보면요.”
나는 남자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남자는 자신의 왼손 약지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식은 없습니다. 이 세상이 자식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만 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아내는 있지 않습니까.”
자식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만한 세상은 없어졌다. 그리고 그 세상에는 콘돔 회사도 없다. 철저한 금욕주의자가 아닌 이상 반려가 있으면 자식 계획은 통제할 수 없다.
남자는 간단하게 말했다.
“계획대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하죠. 뭐, 지금은 혼자가 되었으니 의미도 없지만요.”
말은 되지만 납득은 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아이는 누구였지? 다른 집이 또 있는 건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아이는 이 집을 알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확신할 수 있는 가설은 없었다.
“그렇군요.”
“편하신 대로 지내셔도 좋습니다. 혼자 사는 건 외롭고 답답해 미칠 것 같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왔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그게 뭐죠?”
나는 남자가 내민 밤을 한 입에 털어넣으며 말했다.
“식량. 있는대로 다 부탁드립니다.”
“허어……”
남자는 혀를 찼다. 상대가 정중했기에 나도 정중하게 말했지만, 부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무기 한 자루 들지 않고 아무런 전투태세도 갖추지 않은 상태로 하는 위협인지라 남자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배고프니 밥을 달라는 거요, 아니면 ‘가진 거 다 내놔라 으하하!’ 같은 거요?”
“웃음기 빼고, 식량만 넣은 후자요.”
“내가 싫다고 하면 손에서 장풍이라도 쏩니까?”
“손바닥으로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기는 하겠네요.”
남자는 두려움보다는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을에서도 당신 같은 인물이 있었죠. 언데드와 함께 나타난 이상한 초능력자 같은 것들. 언제나 가장 많은 식량을 축내고, 가장 편안한 곳을 보장받았다가 언데드가 나타나자 그 능력으로 가장 먼저 도망쳤습니다.”
남자가 두 손을 들었다.
“가져가시오.”
뭐야, 이렇게 쉽게?
내가 의심의 눈빛을 보내자 남자가 한숨을 쉬며 부연했다.
“어차피 비축해둔 식량도 많고 혼자서 가져갈 수 있는 식량도 한정되어 있으니 그거 뺏긴다고 굶어 죽지도 않을 테고, 당신이 허세나 부리는 인간이고, 내가 무능한 겁쟁이라 한들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찾아올 인간이 내 평생 한 손으로 꼽고도 손가락에 남을 테니.”
“현명하군요.”
현명하다는 말은 비꼬는 의미는 아니었다.
여기가 작은 마을이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약한 모습을 감춰야 재산을 지킬 수 있겠지만, 어차피 여기에는 우리 둘 밖에 없다. 식량으로 목숨을 산다고 생각하면 비쌀 것 없다.
물론 내가 여기 눌러앉기를 결정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난 그럴 생각도 없다.
남자는 내 말이 썩 유쾌하지 않은 듯 눈을 찌푸렸다.
물론 난 남자의 기분 따위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따라오시오.”
구석에 선 남자는 몸을 웅크려 바닥을 더듬었다. 손잡이를 발견해 당기자 바닥이 열렸다.
꽤 선선한 지하통로였다.
나는 남자를 따라 내려갔다. 퀴퀴하고 비린 냄새가 얼굴을 찌푸리게 했지만, 어제 잡은 좀비 보다는 나았다.
지붕을 닿자 순식간에 깜깜해졌다. 남자는 손전등을 꺼냈다. 손잡이에 붙은 레버를 돌리면 충전되는, 이 시대에서는 상당히 쓸 만한 물건이었다.
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여기서는 내가 앞장서야 하니 내가 들고 있는 게 낫지 않소? 여기서 나온 뒤에 드리리다.”
“그게 좋겠군요.”
남자가 앞장서서 통로를 걸었다. 꽤나 길고 잘 다져진 길이었다.
“유사시에 쓸 지하 통로인가 보군요.”
“네, 뭐 그렇죠. 식량도 보관하기 좋고요. 그리고……”
남자가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손에는 총열을 짧게 잘라낸 샷건이 들려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대처가 늦었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짧게 놀라는 찰나 남자의 옷깃이 벌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남자는 총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저 피냄새가 펜션 밖으로 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기로 유인했을 뿐.
“시체 처리에도 쉽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가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