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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죽지못해 사는 사람들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20.8.7

언데드로 인해 멸망한 세상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세상을 걷고 있었다.

 
0화
작성일 : 20-08-07 16:57     조회 : 522     추천 : 1     분량 : 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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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자 한 꼬마가 발치에 대충 던져둔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땅을 짚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어린이는 위험하다. 덩치가 작아서 칼이 잘 맞지 않는다.

 

 지금처럼 어두운 때는 자칫 헛손질을 해 손을 물릴 수도 있다.

 

 죽는 건 흔하고, 뻔하지만, 지긋지긋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꼬마를 덮치려던 순간,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다.

 

 놀란 꼬마의 표정을 보고 난 뒤에야 나는 내 착각을 깨달았다.

 

 “아.”

 

 꼬마가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좀비는 고기 외에는 관심이 없다. 내 가방에는 관심을 끌 것이 없으니 좀비가 맞았다면 가방이 아니라 나를 노렸을 것이다.

 

 그리고 언데드가 그렇게 가까이 왔으면 알람이 울렸을 테고……

 

 하지만 의문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의문이 사라졌다고 해도 꼬마는 도둑이다.

 

 아이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발목을 움켜쥐었다.

 

 몸을 일으키자 거꾸로 매달린 아이가 팔을 휘적이며 나를 물려 들었다.

 

 어설프게 좀비 시늉을 내려는 모양이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꼬마야. 부모님은?”

 

 내 물음에 꼬마는 어설픈 연기를 포기하고 팔을 죽 늘어뜨렸다.

 

 “꺄아아아아......”

 

 아니, 아직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듯, 이번에는 귀신 들린 흉내를 냈다.

 

 어린아이의 가성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혹시라도 소리를 듣고 진짜 좀비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꽤나 위축된 비명이었다.

 

 “후......”

 

 나는 발목을 쥔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꺄아아’ 하는 긴 하나의 음이 ‘아! 아! 아!’ 하는 끊어지는 비명으로 바뀐 뒤에 나는 흔들기를 멈추고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더 이상 연기를 할 기운도 남지 않은 듯 헤롱거리며 기묘한 신음을 냈다.

 나는 팔을 들어 뒤집어진 아이와 눈이 마주치게 한 뒤 다시 물었다.

 

 “부모님은? 어디에 있지?”

 

 아이가 훌쩍이며 말했다.

 

 “엄마가 아빠를 잡아먹었어요. 아빠가 먹히면서 엄마 머리를 깼어요.”

 

 이야기가 얼마나 비극적인지 생각하기 전에 아이의 설명이 간결해서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이런 걸로 자기혐오를 느낄 만큼 말랑말랑한 세상은 사라졌기에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엄마가 좀비가 되었고, 아빠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죽였다.

 아이 아빠는 어떻게 됐을까? 고작 일곱 살 남짓의 어린이가 감염된 성인 남성을 퇴치하거나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완전히 감염되기 전에 스스로를 어떻게든 무력화시켰겠지.

 자살했거나, 다리를 묶었거나.

 

 멸망한 세상에서는 별로 놀라울 일도 아니다.

 

 “......우리는 셋이서 사람들 없이 살았어요......아빠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요약은 과묵함과 궁합이 좋고, 과묵은 아이와 궁합이 나쁘다.

 아이는 어느새 자신의 기구한 이야기에 취한 것처럼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약간의 소음 정도는 생각을 크게 방해하지 않기에 나는 아이의 수다를 방치했다.

 

 아이의 옷은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험한 길을 걸어 더러워진 것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세월을 맞아 부스러지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아마 아이의 집에 가 봐야 쓸 만한 물건은 없을 것이다.

 총기류를 얻는 건 불가능하고, 운이 좋아야 말린 곡식이나 조금 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식량은 무게가 허용하는 한 다다익선이다.

 

 나는 아버지의 비명이 어땠는지를 말하는 아이를 가볍게 흔들어 입을 막고 물었다.

 

 “너희 집. 어디에 있지?”

 

 아이가 무심코 산 위를 바라보았다. 나도 아이를 따라 시선을 옮겼지만, 산의 어둠은 깊었다.

 나는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말했다.

 

 “가자.”

 

 아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간단히 부연했다.

 

 “네 집에는 먹을 게 있겠지.”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알아요. 그거 가지면 나도 데려가요?”

 

 “네가 말을 잘 들으면.”

 

 이전에도 이런 떠돌이들을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인간들은 무기를 겨누고 가진 것 다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거나, 친절한 미소로 독을 담은 통조림을 선물했다.

 그런 사람들은 쉬웠다. 총과 칼은 맞고, 통조림은 먹은 뒤, 다 죽여버리면 된다.

 

 귀찮은 것은 이런 아이 같은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들이다.

 데려간다면 살려달라고 외치기밖에 하지 못하는 녀석. 두고 간다면 세상의 모든 저주를 내게 퍼붓는 녀석.

 그리고 죽이기에는 꺼림칙한 녀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런 꼬마의 보폭으로는 반나절이면 낙오되어 남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동료가 된 것처럼 신이 나서 업어달라고 칭얼대다가 조용해질 때 쯤 뒤를 돌아보면 이미 수평선 끄트머리에 걸쳐 있곤 했다.

 그것도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식량을 구할 수 있다면 감수 할 만 하다.

 

 “좋아. 네가 잘 따라 올 수만 있다면.”

 

 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에요. 별로 안 멀어요.”

 

 나는 아이를 앞세워 산을 올랐다.

 

 밤 행군은 위험하다. 좀비가 시각에 크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 때문이 아니래도 밤 행군은 위험하다.

 밤길의 산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돌부리에 걸려 구르다가도 죽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사람을 충분히 접하지 않아서인지 나는 그 사소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말핬다.

 어쩌면 꼬마가 서슴없이 산을 오르는 모습이 근방 지리에 익숙한 베테랑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꼬마는 자신 있게 산을 오르다 푹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비명

 

 “아아악! 아아아아아!”

 

 나무뿌리에 다리가 걸린 아이는 내가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산을 굴렀다.

 

 그리고 구르는 소리.

 그리고 침묵.

 

 간신히 아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등걸에 목이 찔려 죽어가고 있었다.

 

 “젠장. 재수가 없었으려니……”

 

 죽을 아이가 죽었다. 하지만 내가 얻었어야 할 식량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피거품이 낀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알아들을 만 한 정보는 없었다.

 알아들어 봐야 쓸 만한 정보도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살려달라는 내용이었겠지.

 

 나는 산길로 고개를 돌렸다.

 아껴 먹어도 나흘 정도면 식량이 다 떨어질 것이다. 식량을 구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 아이가 과연 길을 제대로 알고 걸었던 건지 모르겠다.

 자신 있게 내딛은 걸음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가 가리킨 방향은 얼마나 정확할까?

 

 그때 내 가방이 반짝였다.

 나는 한숨을 쉬고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엎친 데에 좆같은 놈들이 덮치러 오는군.”

 

 가방에 손을 넣자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어 미라처럼 바짝 마른 팔이 고약한 냄새와 함께 발광했다.

 그리고 더 고약한 것들이 아이의 비명을 듣고 숲을 헤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을 것이다.

 

 “방향은?”

 

 미라손을 들어 질문하자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손가락이 부러질 듯한 소리를 내며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그 방향으로 미라손을 뻗었다. 소리는 멀리서 얼핏 들리는가 싶어지더니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인간형이 아닌가? 산에서 이렇게 빠르다면……’

 

 빙의는 동물을 가리지 않지만, 감염은 인간에게만 일어난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좀비도 존재한다.

 

 오른 어깨 위로 사선으로 깊게 베여 팔이 어깨채로 너덜거리는 좀비가 나무 꼭대기에서 괴성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나는 두 손으로 미라손을 쥐고 말했다.

 

 “검으로.”

 

 미라손이 손날 모양을 만들 듯 손가락을 바짝 붙이고 꼿꼿하게 폈다.

 

 좀비는 공중에서 허리를 비틀며 너덜거리는 팔을 채찍처럼 길게 휘둘렀다. 어깨가 벌어진 만큼 늘어난 팔이 긴 사정거리를 자랑하며 내 얼굴을 난도질하려 들었다.

 

 물론 어깨가 조금 벌어진 것 정도로 맨손이 검을 든 손보다 길어질 수는 없다.

 

 몸을 뒤로 피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크게 휘둘렀다.

 미라손의 손날이 명검처럼 깔끔하게 좀비를 세로로 갈랐다.

 꽤나 멋진 도약에 비해 형편없는 몰골로 바닥에 처박힌 좀비는 흐르는 자신의 뇌를 바라보며 발버둥쳤다.

 

 좀비가 인간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감염자라고 정의한다면 이것은 좀비가 아니다.

 어딘가 과하게 어색한 가죽옷은 어디까지나 보기 힘들 뿐, 아마도 입고 다닐 수 있겠지만, 머리 뒤로 삐죽 올라온 뾰족한 귀는 인간적이지 못하다.

 

 나는 미라손을 끌며 엘프 좀비에게 다가갔다.

 영화와 다르게 좀비는 머리를 파괴해도 죽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아니니까.

 나는 미라손을 들어 좀비를 찔렀다.

 

 “키에에엑……”

 

 좀비는 죽는 순간까지 공포 대신 광기로 몸을 움직였고, 천천히 둔해지다 결국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미라손의 손날 부분을 살폈다. 좀비를 움직이게 만드는 모든 에너지를 흡수한 미라손은 아무런 눈에 띄는 변화 없이 그저 미라가 되어버린 손의 모습으로 가만히 내 시선을 받았다.

 

 “이게 맞나? 이렇게 하는 게 맞아?”

 

 미라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소통하려 하는 꽉 막힌 녀석.

 

 나는 좀비와 아이를 뒤로 한 채 소년이 향하던 길로 계속 걷기로 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ATRS03 20-08-11 20:47
 
꽤 괜찮게 읽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제가 연재하는 헤비 메탈 포 버서크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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