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내가 뭐랬어요. 언니가 올라갈 거라고 했죠?”
“뭐야. 이거... 꿈은 아닌 거지? 접속에 오류가 생겨서 꿈나라로 간 거 아냐?”
“수진아. 네가 잘할 줄 알았어. 축하해.”
80위 권 밖이라는 처참한 위치에서 데뷔가 가시권인 20위까지 올라간 것에 한수진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면서 무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이미 올라가 있던 케이코, 하루카와도 포옹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호수는 그 다음 순위 발표를 이어갔고 신민경의 전 주차 순위인 17위의 발표를 하였다. 신민경은 자신이 과연 상승을 했을지 궁금해 하면서 귀를 쫑긋 기울였고 그런 신민경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호수는 발표를 하였다.
“17위를 한 연습생도 라라라 조이군요. 역시 순위 상승을 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슈마 엔터테인먼트의 백하나 양입니다.”
“......”
같은 순위 상승이었지만 한수진 때와는 조금 기류가 달랐다. 백하나와 주변의 연습생들은 축하를 해주었지만 다른 연습생들은 그다지 공감이 안 되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오른 거지? 무대에서도 음정 불안을 노출했고... 무대 자체도 그리 멋이 있지 않았는데...’
‘주상미는 엄청난 하락을 했는데 주상미보다 뭐 하나 앞서는 것이라고는 없는 백하나는 왜 오른 것일까. 아! 회사는 조금 앞서기는 하는군.’
‘역시 슈마구나. 손을 잘 쓰기로 유명한 회사인데 설마 했더니...’
그녀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좋지 않은 표정을 보냈고 백하나 역시 그런 분위기를 느끼며 조심스럽게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호수는 순위 발표를 이어가며 13위까지 불렀다. 이에 생방송으로 이를 보고 있던 민호는 안락의자에 기대앉으면서 씨익 웃었다.
“설마 신민경이 60위 밖일 리는 없을 테고... 아직까지 안 불렸다는 것은 데뷔조라는 것이로군. 잘 되었네.”
“후후. 아직 부족합니다. 라라라 1조 무대는 어벤저스 조보다도 조회 수가 높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민경 양은 그 동영상에서 가장 많은 댓글 찬사를 받았고 말이죠. 리더였으며 무대에서도 잘 했고 모든 멘트와 행동이 다 모범적이었죠. 시즌1에서 중소 기획사 출신으로 전체 2위에 올랐던 강세정의 재림이라는 평까지 있습니다. 이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면 최소 5위 안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말 5위 안에 든다면 데뷔까지의 길은 탄탄대로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간 합격자들은 모두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한 번 정도는 해낸 이들이었으니까요.”
이정원도 그간 스스로 한 것이 없다고 느꼈는지 많은 분석을 해서 나온 의견을 언급했다. 이에 미카도 동의하면서 양손을 모으고 신민경의 큰 순위 상승을 기대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12위가 누구인지의 정보를 받은 호수는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그는 내색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갸웃거리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20위부터 라라라 조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군요. 하하. 이번에도 라라라 무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남긴 연습생입니다. 역시 순위 상승을 이루었군요. 축하합니다. JW엔터테인먼트의 신민경 양입니다.”
“에엥?”
같은 순위 상승이었는데 이번에는 한수진 때와는, 그리고 백하나 때와도 다른 반응이 나왔다. 큰 순위 상승에 대한 축하도 아니었고, 왜 순위가 올랐는지에 대한 의문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너무 적게 올랐기 때문이었다.
‘신민경이 겨우 12위라고? 아닐 텐데... 그 무대를 하기 전에도 17위였는데 고작 5계단 오르는 데서 그치다니...’
‘회사의 힘이 이 정도로 중요한 건가? 그것은 아니었는데...’
다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고 정하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지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런 묘한 분위기 속에서 신민경은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찾은 사람은 같은 조였던 하정연이었다.
“언니. 정말 고마워. 언니가 메인보컬을 잘 해줘서 내가 덕을 봤어. 꼭 다시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응. 아니야. 내가 어떻게 되든 나의 은인은 민경이 너야. 너를 만나서 정말 인생에 길이 남을 무대를 만들 수 있었어. 그것만으로도 여기 프로듀스에 나온 보람을 느끼고 있어. 고마워. 그리고 축하해.”
사실 직전 주차 때 순위가 92위에 불과했던 하정연이 11위 이상에서 불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이제 그녀에게는 60위 자리만 남은 것이었는데 이 역시도 경쟁은 매우 치열할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하정연은 마지막을 직감하며 신민경에게 눈물로서 축하를 보내주었고 신민경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녀와의 포옹을 한 후 무대로 올라갔다. 이에 호수는 특별히 그녀를 위해 질문을 던져주었다.
“민경 양. 정말 엄청난 라라라 1조의 강세입니다. 다들 몇 십 계단씩의 상승을 이루었는데요. 그것을 감안할 때 그들을 이끈 리더인 민경 양은 오히려 적게 오른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전혀 아니에요. 저는 12위도 정말 과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훌륭한 조원들을 만나서 최고의 지원을 받은 것에 불과한 걸요.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무대를 꾸렸는데 이렇게 순위도 올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저를 뽑아주신 투표자 님들 모두 감사드리고 라라라 조 멤버들 모두 사랑해요~”
신민경은 호수가 예상했던 어른스러운 정답 멘트를 한 후 자리로 올라갔다. 그것을 호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후의 순위는 그리 큰 이변이 없이 진행되었다. 라라라 2조의 센터인 왕수원이 10위로 내려간 것만이 좀 달랐고 1위와 2위는 직전 주차와 마찬가지로 나지윤과 미나가 차지했다. 확실히 둘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순위 유지라고 해도 그 정도는 조금 달랐다. 미나는 이제는 3위인 혼다 레이와 별 차이가 없는 2위인 반면 나지윤은 압도적인 득표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원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이상한데요? 백하나가 순위 상승을 한 것도 그렇고... 민경 씨가 12위 밖에 안 된 것도 그렇고... 그런 허접한 무대를 만든 리더인 나지윤의 투표수가 저리 높은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안무 창작을 해냈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했었는데 그것 때문이 아닐까요?”
“안무 창작이란 것이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능력입니다. 어지간한 아이돌들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안무 창작입니다. 그리고 나지윤이 만든 안무는 매우 별로였지요. 트레이너들의 혹평 장면까지 방송에 나왔고 말입니다. 이건 뭔가가 있습니다.”
원은 이정원의 말을 가볍게 반박하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민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시즌이 다섯 번이나 계속되다보면 슬슬 장난질이 개입될 때도 되었지.”
“장난질이라면... 소속사 가수들의 팬덤을 활용하여 투표 지원을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것은 다른 회사들도 다 하고 있고 충분히 합법적인 방법의 장난질이지. 그런 것을 말하는 게 아냐. 원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조작질이다.”
민호는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뱉었다. 이에 이정원은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케이팝은 메이저나 다름이 없는 시장입니다. 프로듀스는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프로그램이고요. 조작질을 한 것이 들통 난다면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겁니다. 그리고 윤준영 피디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데 그런 짓에 동조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 프로듀스 프로그램이 조작에 동조했다는 뜻이 아니야. 저 국민들의 투표로 진행이 된다는 방식. 거기에 허점이 있는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이 나라가 고객의 개인정보 관리에 얼마나 허술한가. 유출된 주민번호가 어마어마하게 많지.
그렇기에 그것을 대량으로 입수한 자들이 조작질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꾸려서 대량의 아이디를 만들어 투표 수 조작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이미 스토리 산업계에서는 흔해 빠진 짓거리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조작질의 프로들이 다수 등장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음원 차트를 다루는 사이트에서도 그런 조작질이 성향하고 있습니다. 4억 정도를 받으면 바로 1위를 만들 수 있다고 할 정도이지요.
슈마 엔터테인먼트는 예전부터 그런 짓거리에 능통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번 나지윤과 백하나의 상승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을 겁니다.“
민호의 말에 원이 부연설명을 해주었고 이를 들으며 이정원은 이 세상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민호와 미카를 찾아와서 자신의 소망을 말할 때만 해도 순수함 그 자체였던 이정원은 그렇게 현실을 알아갔고 그런 이정원을 향해 안쓰러운 표정을 보낸 미카는 곧 고개를 돌려 원에게 물었다.
“그럼 이것에 대해 대책은 있는 거지?”
“훗. 물론입니다. 저 쪽에서 이 따위로 나오고 있는 이상... 우리도 대대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맞겠지요.”
“네? 설마... 우리도 똑같이 조작질을 하자는 것입니까?”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남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하는 것은 제 방식과는 맞지 않아서... 조금 다르게 갈 생각입니다. 카운터를 먹이는 식으로 말이지요. 후후.”
원은 그리 말하고는 노트북을 켜서 뮤직바이블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으로 들어갔다. 원은 분당 100개 이상의 글이 올라오는 그곳에서 어떤 의견이 주류를 이루는지를 살폈다.
“역시나... 대부분의 글이 나지윤에 대한 찬양이군요. 스타성도 있고 실력도 있다. 안무 창작까지 할 줄 아는 아티스트이다. 최고의 리더였다. 모두 다른 아이디이긴 한데 이렇게 의견이 일치될 수 있다니... 놀랍군요.”
“투표 조작 뿐만이 아니라 여론 조작을 위해서 댓글 조작을 하고 있다는 뜻이로군? 그런데 그냥 순수한 의견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럴 때는 이것을 던져보면 됩니다. 후후.”
원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여 얼른 키보드를 두들겼다. 소설가 출신인 그는 순식간에 글을 완성해서 업로드 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나지윤이 그렇게 무대를 잘 만든 것 같지 않은데...]
- 일단 안무를 짰다고 자랑하듯이 말하기는 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 안무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서로의 불균형이 너무 심했지요. 센터인 왕수원과 나지윤이 부각되는 부분이 6할이었고 나머지도 메인보컬인 백하나와 주상미가 거의 다 차지했고 미나의 비중은 1할도 안 되었습니다. 또 안무가 동선이 그리 매끄럽지 않아서 에너지 낭비가 심해 보였죠. 트레이너의 안무 수정 요구를 거부한 것도 문제를 삼을 만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서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네요. -
“후후. 제가 예상하건데 이 글은 아마 1분 내로 댓글이 20개는 달릴 겁니다.”
원은 글을 올린 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확신을 했다. 그리고 1분 후 원은 새로고침을 눌렀고 그의 말대로 37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들 대부분은 원색적인 욕과 비아냥이었다.
[이 개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얘 유명한 관심종자임.]
[미나 빠인 모양이네. 에라이. 나라 팔아먹을 놈.]
[안무 볼 줄도 모르면 좀 닥치고 있어라. 분란 유도하지 말고.]
원의 글에 논리적으로 충분한 설명을 붙여서 비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지어낸 말로 논리적인 척 비판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깨끗한 댓글이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원의 글은 다수의 신고를 받아서 삭제 처리 되었다.
그 모습에 이정원은 기가 찬 얼굴을 하며 말하였다.
“이게 말이 됩니까. 어째서 저런 쓰레기 같은 댓글들은 문제가 안 되고 원 님이 쓰신 정상적인 글이 삭제 처리 되는 겁니까.”
“제가 뮤직바이블 홈페이지를 알게 되고 나서 생각했던 문제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뮤직바이블은 홈페이지의 정화를 위해서 운영진이 글을 삭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글이 여러 차례 삭제된 아이디는 경고를 계속 먹게 되어 계정자체가 삭제처리 되지요.
얼핏 보면 좋은 제도 같지만 현실은 안 하느니만 못한 최악의 짓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글이 올라오기에 운영진이 그것들을 제대로 샅샅이 파악할 수 없고 결국 신고가 많이 들어온 글을 대충 본 후 분란 유도다 싶으면 삭제 처리를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그 어떠한 글이든 분란 유도의 요소가 전혀 없기란 어렵고 결국 지금처럼 소신 있는 글을 적었는데 그게 인기가 많은 자를 건드는 내용이면 이렇게 다수의 신고를 받아서 삭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즉, 바른 말을 계속 하면 계정까지 날아가 버리는 식이지요. 제가 보기에 슈마 엔터테인먼트는 그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이런 댓글 조작질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은 이런 것을 당한 적이 여러 번 있는 듯 전혀 화를 내지 않으며 여유로운 자세로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