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연습실 정말 좋다. 텔레비전으로 보던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사이버 세계를 만들면서 연습실 시설은 더 업그레이드한 것 같네.”
“아! 맞다. 여기 사이버 세계였지? 가끔은 너무 현실 같아서 혼동이 올 때가 있다니까. 하하.”
B반의 일본인 연습생들은 빙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감탄을 했다. 그리고 자동번역기 덕분에 이것을 생생하게 듣는 한국인 연습생들은 약간의 격세지감을 느꼈다. 시즌3와 시즌4만 해도 B반에 일본인 연습생은 두셋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언어도 통하지 않았기에 초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한국인 연습생들이 먼저 마스터를 한 후 도와주는 훈훈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지금 B반에는 일본인 연습생이 더 많았고 언어의 문제도 사라졌기에 다들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것에 한수진은 경쟁심을 느끼면서 주변의 한국인 연습생들에게 말하였다.
“자! 이제 시작이니까 열심히 해보자. A반 한번 가봐야지.”
“네에~”
한수진의 말에 신민경 등은 호응을 해주며 곳곳에 비치된 커다란 아이패드를 켜서 ‘다 가질 거야’의 영상을 보았다. 춤은 시즌3의 그것에 비해 좀 더 복잡했다. 아무래도 시즌3 때는 기량이 낮은 편인 일본인 연습생을 배려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사무네의 강한 자신감 때문에 난이도를 높인 듯 했다.
이것을 눈으로 보며 익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신민경의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와~ 정말 어렵네요.”
“응?”
한수진이 아닌 다른 이가 자신을 찾자 신민경은 의아한 얼굴을 하며 돌아보았고 꽤 낯이 익은 얼굴에 흠칫 놀랐다. 그녀는 NED48의 리더인 와타나베 주리였다. 한국인 연습생들을 향해 활달하게 인사를 건네었던 것을 떠올리며 신민경은 밝게 웃으며 답했다.
“네. 이게 사람이 출 수 있는 안무인 건지 모르겠네요. 헤헤.”
“호호. 맞아요. 제가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은 전혀 모르겠군요.”
주리는 신민경에게 도입부분에 대한 안무를 쳐준 후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귀여움에 신민경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그 뒷부분의 안무를 춰봤다.
“이야~ 앞 부분을 빨리 익히셨네요. 저는 거기는 포기했고 이 부분을 해봤어요.”
“오! 그거 괜찮은데요? 맞는 것 같아요. 역시 한국 연습생은 훌륭해요. 대단.”
“아니에요. 등급평가 때 더 잘한 것은 일본 연습생이었는데요. 뭘.”
“전혀~. 우리는 일본 내 예선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등급평가 무대만을 준비할 수 있었죠. 한국 연습생들은 12월 내내 3번의 예선 준비만 했다고 들었어요. 그 덕이 있었죠.
저는 조금 불합리하다고 봐요. 이번 프로듀스 시즌5를 준비한 일본 연습생과 한국 연습생의 수의 차이가 몇 배인데 자리가 똑같이 50석인 것이 말이죠. 2:8 정도가 적합하지 않았나 싶어요.“
주리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임에도 불합리한 것은 직설적으로 지적하며 말하였다. 그런 모습에 신민경은 왜 그녀가 한 그룹의 리더를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신민경은 주리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일본 연습생에 대한 경계심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 순간 신민경의 뇌리에 원이 해주었던 조언이 하나 떠올랐다.
“프로듀스는 한국과 일본 연습생이 합동으로 진행을 한다. 이럴 때는 한국 연습생끼리 친하고 일본 연습생끼리 친한 것은 너무 진부해서 인기를 끌 수 없어. 반드시 일본 연습생과의 캐미를 만들어야 해. 일본 연습생과 마치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야 카메라에도 더 잡힐 것이고 흥미도 끌 수 있을 것이다. 앞선 시즌에서 이런 합격 사례는 꽤 많았어. 그들을 참고해봐.”
신민경은 이 말을 생각하면서 주리와 함께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런 둘을 마치 구심점으로 한 것처럼 B반의 한국인과 일본인 연습생들은 잘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이에 연습생들은 지금이 댄스 트레이닝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느 트레이너가 들어올지를 생각해봤다.
‘제발 메이플 님 아니면 함영진 님...’
‘주소라 님은 너무 무서워요.’
‘주소라 님은 제발 다음 기회에...’
그녀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 쪽을 보았고 들어온 이는 그녀들이 가장 많이 떠올렸던 주소라였다.
“호오~ 이 반은 분위기가 꽤 밝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봐?”
주소라의 등장에 연습생들의 표정은 바로 공포로 굳어졌다. 문 밖에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느꼈던 주소라는 그런 급변화가 재미있는 듯 웃으면서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럼 어디 분위기도 좋은데 가르쳐 보기 전에 한번 해볼까?”
“네. 알겠습니다.”
주소라의 말에 연습생들은 마치 군인이라도 된 것처럼 경직된 자세로 대답을 하고 라인을 맞추었다. 그렇게 음악이 흘러 나왔고 17명의 B반 연습생들의 댄스가 시작되었다.
이에 주소라와 그녀가 데리고 온 회사 댄서 두 명은 눈에 불을 키며 17명을 살폈고 노래가 끝나자 서로 상의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주소라는 매서운 눈빛으로 17명의 연습생을 바라보았다. 이에 연습생들은 자기들이 너무 못해서 한 소리 들을 것을 걱정했다.
그 순간 주소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야~ 너희가 A반보다 훨씬 낫다 야.”
“와아~”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트레이너에게서 나오자 B반 연습생들은 긴장이 풀린 듯 자동적으로 환호를 하며 서로를 껴안고 좋아했다. 그 모습에 주소라는 감탄을 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몇 시간 만에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는 리더가 일을 잘 하고 있나 보지? 아! 벌써 리더를 정했나?”
“네. 한국 연습생은 한수진 언니가, 일본 연습생은 주리 언니가 잘 이끌어줬습니다.”
“호오~ 공동 리더라... 서로 합이 잘 맞는다면 최고의 결과를 낳을 수 있겠지. 그래. 그럼 이제 트레이닝에 들어가 볼까.”
신민경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리자 주소라는 한수진과 주리, 신민경을 모두 번갈아보면서 미소를 지어주었다. 워낙 강하고 살벌한 인상을 한 그녀가 미소를 짓자 연습생들은 왠지 더 인정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수업은 매우 좋은 분위기 속에 진행이 되었다. 주소라는 누구 하나를 지적해서 화를 내는 일이 없이 잘 알려주었고 신민경 등은 열심히 배웠다. 그런 신민경의 열의에 찬 인상을 주소라는 눈여겨 보았다.
수업은 2시간 후 끝이 났고 연습생들은 다시 서로를 봐주면서 연습에 들어갔다. 한수진과 주리는 리더답게 안무를 빨리 익히면서 모두를 이끌었고 다들 빠르게 실력이 늘 수 있었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B반은 여전히 활발하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자주 쉬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의외로 신민경이었다. 모두가 쉬지 않고 연속으로 연습을 하며 땀을 흘리는 것과 달리 신민경은 잠시 쪽잠을 자는 경우가 잦았다.
이를 느낀 한수진은 의아한 얼굴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기가 보기에 신민경은 절대 게으른 타입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민경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프면 숙소로 가서 쉬다 와.”
“네? 헤헤. 그건 아니고요...”
한수진의 물음에 신민경은 무언가를 말해야 되나를 두고 잠시 고민하였다. 그것은 이곳에 오기 전에 미카에게 들었던 조언이었다.
“저는 힘을 배분하고 있어요. 지금 적당히 쉬면서 하고 새벽에 열심히 하려고요.”
“엥? 그게 좋은 거야? 그냥 지금 확실히 하고 새벽에 자는 것이 낫지. 연습실이 좁은 것도 아니고.”
한수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신민경은 주변을 두리번 거린 후 한수진의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앞선 시즌들을 분석해보니 트레이너 분들이 새벽에 연습실을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새벽까지 연습하는 애들을 특별히 칭찬하면서 가르쳐주시는데 그렇게 카메라에 잡히는 것도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아...!”
신민경의 치밀한 분석에서 나온 말에 한수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냥 순둥순둥하고 열심히 하기만 하는 줄 알았던 신민경에게 이런 전략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을 자신에게 그대로 알려주는 모습에서 한수진은 고마움도 느꼈다.
“오~ 그런 게 있었구나. 그럼 나도 민경이랑 같이 해볼까나. 사실 이제 애들 모두 안무 다 익혀서 리더가 할 것도 없고 말이지.”
그렇게 두 사람은 꼭 붙어서 같이 연습하고 같이 쉬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자정이 넘었고 B반의 연습생 다수는 자기의 침실로 돌아갔다. 이에 한수진과 신민경은 자신들의 타임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휴게실을 나와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계속 연습하고 있는 주리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헉! 주리 언니. 지금까지 하시는 거예요? 오늘 내내 연습을 하셨는데...”
“응? 하하. 민경 씨.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그래서 더 연습해야 해요.”
“많이 힘들 것 같은데...”
“뭐 등급 재평가 후에 쉬면 되죠. 앞으로 이틀만 남았는데 그것을 못 참겠나요. 두 분도 새벽 내내 하시려는 건가요? 너무 좋네요. 혼자 연습하면 좀 무서웠는데...”
주리는 해맑게 웃으면서 두 사람을 반겨 주었다. 이에 한수진과 신민경은 주리가 정말 열정이 넘친다고 생각하며 합동으로 연습을 하고 교정을 해주었다.
그렇게 새벽 3시가 되었을 때 연습실 문이 벌컥 열렸고 신민경과 한수진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함영진 트레이너가 나타났다.
“와우~ 지금까지 연습을 하는 거야?”
“헉! 안녕하세요. 네.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하고 있습니다.”
“대단하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내가 안 도와줄 수 없지. 어디 애매한 거 있으면 말해봐.”
함영진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을 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줬고 주리와 한수진은 차례대로 물어보면서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신민경 차례가 되었고 그녀는 ‘다 가질 거야’ 노래의 풀 안무를 춰봤다.
이를 본 함영진은 침착한 어조로 말하였다.
“음... 일단 민경이는 보컬과 댄스가 모두 준수해. 특히 댄스는 느낌도 있고 좋아. 그런데 기본기 면에서 약간의 부족함이 있어. 한번 내 자세를 봐 볼래?”
“넵.”
함영진이 신민경이 춘 안무의 포즈를 취하자 신민경은 그것을 자신과 비교해서 주의깊게 보았고 발끝 각도의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각도가 조금 다르네요.”
“맞아. 그게 아주 작지만 중요한 차이야. 그것만 제대로 해도 더 안무가 살아나거든. 그런 세심함이 민경이에게는 조금 부족해. 그러니까 오늘 제대로 배워 봐.”
“네. 감사합니다.”
함영진은 신민경에게 상당히 신경을 쓰며 트레이닝을 해주었고 신민경은 열심히 따라갔다.
그렇게 새벽의 특별 강의는 끝이 났고 한수진과 신민경, 주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침실로 향하였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단짝처럼 친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결전의 날이 되었다. 등급 재평가를 위한 개인 영상을 찍어야 할 밤 8시가 되었고 B반의 학생들은 다들 초긴장한 얼굴로 앉아서 자기의 차례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