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저렇게 피지컬이 좋은데 가창력도 좋다고 하지? 대박이다.”
“근데 저 조에 들어간 나머지 하나도 불쌍하다. 너무 비교되잖아.”
“왜~ 좋지 뭐. 그냥 버스 타고 편하게 가는 건데.”
연습생들은 모두의 관심을 받는 24조에 대해 수다를 떨어갔다. 그 수다를 둘로 나누면 24조에 대한 감탄과 23조에 대한 애도였다. 그런 말에 신민경은 다들 자기들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하며 같은 조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신민경의 눈빛은 크게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전의를 불태우던 동료들이 정하윤과 김소영, 허윤정을 보고 완전히 위축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그냥 비주얼로만 봐도 우리가 이길 것 같지 않네요.”
“중대형 기획사의 후광만으로도 버거운데 사실 그것을 떼고 봐도 우리보다 월등하네요. 하아~”
“집에 가고 싶다...”
그녀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면서 절망에 빠졌다. 이에 신민경은 식은땀을 흘리며 다가가 그녀들을 격려했다.
“한나 씨, 민아 씨, 세하 씨?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를 숙이지는 마세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힘든 티를 내지 마라. 그 모습을 본 자들의 7할은 관심이 없을 것이고 3할은 몰래 미소를 흘릴 것이다.’ 즉, 힘들어도 언제나 여유 있는 척을 해야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들 힘을 냅시다.”
신민경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동료들의 힘을 북돋으려 했다. 이에 23조 멤버들은 조금은 기운을 차리고 배시시 웃었다.
“헤헤. 그 말도 맞네요. 그리고 이것으로 누가 우리 23조의 리더감인지도 정해진 것 같은데요?”
“네? 리더라면 가장 연장자이신 민아 씨가 하셔야...”
“에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그런 게 어디 있나요. 가장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해야죠. 민경 씨가 해주세요. 우리가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갈게요.”
방민아는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신민경을 적극 지지해주며 말하였다. 이에 신민경은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순간 민호의 조언이 떠올랐다.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방송에 많이 잡히는 것이 중요하고 리더나 메인 보컬, 센터 같은 중책을 자주 맡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민호는 거기에서 한 가지 첨언을 했는데 센터는 서로 원하는 자리이기에 너무 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으니 양보하는 모습도 좋다고 했다.
이에 신민경은 모두의 뜻에 따라 리더를 맡았고 23조 멤버들은 바로 배정된 연습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 등을 통해 이를 모니터로 보고 있던 HTS의 호수는 흥미로운 얼굴을 하며 신민경을 보고 있었다. 이에 그의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형님. 23조 담당 카메라를 계속 보시네요? 저기는 유명한 회사 출신이 없는데 착오가 있으신 것 아닌가요? 24조가 쟁쟁해서 쟤들은 금방 떨어질 걸요?”
“물론 그렇겠지. 그런데 길거리 공연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 시청자 투표라면 회사의 후광이나 인지도가 중요하겠지만 이건 길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투표를 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연 그 자체가 중요하단 말이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정하윤과 김소영, 허윤정이 있는데 상대가 되겠습니까. 정하윤이 고음 몇 번 안정적으로 질러주면 청중은 그냥 넘어가게 되어 있죠.”
“훗! 그간 경연 프로그램에서 고음이 강한 자들이 독주를 했던 것이 그런 이유이지. 경연에 온 관중이 보기에는 음색이나 짜임새보다 그냥 지르고 보는 것이 더 있어 보이니까. 그런데 그건 개인전일 때 얘기이고 팀을 짜서 합동 무대를 할 때는 전체적인 밸런스가 중요시 된다. 그런 면에서 24조는 약점이 하나 있어.”
호수는 그간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을 많이 해온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이에 매니저는 의아한 얼굴을 했고 호수는 24조 카메라에 비춘 한 명을 가리켰다.
“4명 중 3명은 올스타 급 멤버인데 나머지 하나가 너무 약해. 비주얼도 특별하지 않고 스타성도 별로 없어 보여. 이러면 균형이 맞지 않아서 관객의 눈에 계속 거슬릴 수밖에 없어.”
“네? 제 생각은 조금 다른데... 3명이 워낙 잘하기에 1명 정도 떨어지는 것은 그냥 묻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스타일이 아주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저런 수수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하하. 그래서 내가 너한테 HTS를 독립해서 기획사 차리는 걸 하지 말라는 거야. 이렇게 안목이 없어서야. 밸런스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야. 떨어지는 멤버가 하나라도 있으면 오히려 그것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게 된다. 그래서 그룹 전체의 질을 크게 다운시키지. 그간 우리 같은 대형 기획사들이 론칭한 아이돌들은 대부분이 성공하고 중대형 기획사들의 그것들이 절반 이상 실패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어. 대형 기획사는 엘리트 급 인재가 많아서 7인조, 9인조, 심지어 14인조 이런 식으로 데뷔를 시켜도 구멍이 없거든. 그래서 이런 대규모의 아이돌로도 항상 성공을 해왔지.
반면 중대형 기획사는 연습생은 많지만 엘리트라 할 만한 수준은 2~3명에 불과하지. 많이 쳐줘도 4~5명. 그렇다면 3~5인조 정도로 데뷔를 시켜야 하는데 대형 기획사를 따라하려고 똑같이 7인조 이상으로 데뷔를 하지. 즉, 엄청난 구멍을 여럿 가지고 무대를 꾸리는 셈이고 거기에서 전체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물론 마니아 수준의 팬이라면 엘리트가 아닌 멤버도 매력 있다면서 좋아하겠지만 라이트한 팬들은 그런 멤버의 파트가 되면 아쉬움을 느끼게 되거든. 라이트한 팬들은 엘리트 멤버를 더 많이 보고 싶어 할 테니까. 그래서 그들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고 망하는 거다.”
호수는 대형 기획사 세인트 엔터테인먼트의 이사다운 안목을 보이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이에 매니저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면서 감탄을 했다.
“이야~ 이거 형님은 이제 세인트 이사 자리 내놓고 새로 기획사를 차려도 되시겠는데요? 이렇게 보는 안목이 다르시니 말입니다.”
“아직은 배울 것이 더 많아서 안 돼. 회장님과 비교하면 아직 못 미치는 데가 많지.”
“하하. 겸손하시기까지. 그런데 형님. 아까 하나의 구멍 때문에 24조의 밸런스가 문제가 될 거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따지면 23조는 전체가 구멍 아닙니까. 이건 어떻게 보시는지...”
“전체는 아니야. 23조에는 신민경이라는 아이가 있어.”
“신민경? 아아. 형님이 심사하고 합격시켰다는 아이군요. 물론 꽤... 좋은 페이스를 가지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김소영에는 못 미치고... 보컬적으로도 정하윤을 이길 수 있을 리는 없는데요? 게다가 신민경 하나 잘 해봤자 나머지 셋이 떨어지는데 상대가 안 되지 않겠습니까.”
매니저는 나름 항변 거리를 생각하며 물었다. 이에 호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이런 말이 있지. 하나의 호랑이가 이끄는 100마리의 물소 무리와 100마리의 호랑이가 이끄는 1마리의 물소 무리가 싸운다면 전자가 이긴다는 말. 그 이유는 호랑이들끼리는 서로가 왕이기 때문에 제대로 단합이 되지 않고 내분이 생길 것이지만 물소들은 호랑이의 지시에 일치단결할 것이기에 단합된 힘이 나오기 때문이야.
24조는 엘리트 셋끼리 내분이 생길 우려가 있지만 23조는 달라. 신민경은 상당한 리더십과 마음가짐의 깊이가 있어. 분명 나머지 셋을 잘 융화시켜서 좋은 무대를 만들 거야. 그럼 현장에서 큰 격변이 일어날 수 있겠지.”
“호오~ 그럼 형님은 23조가 이길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가능성은 45대55 정도? 여러 변수를 생각해봐도 24조가 유리한 것은 맞아. 하지만 이변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
호수는 재미있는 대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타이밍에 맞춰 문이 열렸고 뮤직바이블 측 관계자가 와서 인사를 하고 말하였다.
“호수 님. 국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향후 본선 심사위원 선정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네. 미리 얘기 들었습니다. 가시지요.”
호수는 관계자에게 깍듯이 예를 표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그러면서 23조의 무대가 정확히 어느 곳에서 열리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 민호, 원 님의 말씀이 맞았네. 곳곳에 카메라가 있어. 예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본선은 이미 시작된 셈이야.’
연습실과 복도에 설치된 많은 수의 카메라를 보며 신민경은 이제부터 제대로 긴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23조의 나머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그녀들은 여전히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이에 신민경은 모두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음. 일단 원활한 연습을 위해서 한 가지 정해둘 것이 있어요. 다들 서로를 부를 때 말을 놓는 것이 어떨까요? 아무래도 자기 안무나 노래 등을 볼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이 더 정확한 법이니 지적을 해주어야 하는데 존댓말은 너무 기니까요.”
“아... 저희야 좋은데 민경 언니나 민아 언니는 괜찮으시겠어요?”
“음. 괜찮아.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가장 연장자인 당민아가 승낙을 하면서 신민경의 안은 바로 통과되었다. 이런 협조적인 모습에 신민경은 기분이 좋은 것을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고마워요. 그런데 서로 말을 놓더라도 선을 넘어서 직설적이거나 심한 말은 주의하도록 합시다. 만약 감정이라도 상한다면 그것처럼 큰 손해가 없으니까요.”
“네에~”
“그럼 이제 노래를 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풍으로 가면 좋을까요? 케이팝? 팝송?”
“팝송이 좋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외국의 좋은 노래가 더 분위기도 있고 말이죠. 아! 그것보다 민경 언니부터 말을 놓으셔야죠. 호호.”
“아! 그게 쉽지 않네... 헤헤. 팝송이라... 민아 언니 생각은 어때?”
“으음... 내가 보기에는 한국 팬들에게 익숙한 케이팝이 좋지 않을까? 우리도 아이돌을 할 사람들이고 케이팝이 우리 옷에 더 맞을 것 같은데...”
“그렇군요. 아니, 그렇네. 그럼 세하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헤헤.”
워낙 예의가 바르고 착한 탓에 반말이 쉽지 않은 신민경은 머리를 긁적이며 모두의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갈리는 느낌이 있자 생각을 좀 더 한 후 입을 열었다.
“제가 지난 시즌들을 분석하며 느낀 것이 있는데... 청중들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의 노래가 나와야 더 즐거워하고 좋은 평가를 주는 경향이 있었어. 알아듣지 못하면 그건 그냥 음이지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노래가 되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케이팝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음. 좋아.”
“나도 찬성.”
지난 시즌들을 다 보고 분석까지 했다는 신민경의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었다. 팝송을 주장했던 서한나까지 찬성을 하면서 23조는 빠르게 노래를 검색해갔다. 이런 순조로움을 느끼며 신민경은 충분히 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24조의 첫 만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언니. 정말 반가워. 언니랑 또 만나게 되었네?”
브레이커의 비주얼 에이스 김소영은 정하윤을 보자 방긋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 그녀에게 안겼다. 이에 정하윤은 차분한 얼굴로 그녀를 토닥여주었다. 이에 AD의 허윤정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두 분은 원래 아는 사이신가 봐요?”
“네. 아무래도 서로의 회사끼리 거리도 가깝고 교류가 있다 보니 연습생들끼리도 배틀 식으로 붙이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때 서로 만났었죠.”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우리 회사도 그런 것을 작년부터 하더라고요. 저는 당시 나가지 않았지만 꽤 재미있었다고 들었어요. 호호.”
“뭐 나중에는 재밌다고 추억이 되지만 할 때는 초긴장이죠. 만약 실수라도 하면 대표님 눈 밖에 나는 거니까. 연습 때도 잠도 못 자고 해야 하고 말이죠.”
“뭔 소리야. 언니는 그 때 완전 잘 했는데... 언니가 선봉으로 나와서 우리 쪽 보컬들 다들 기가 죽었단 말이야.”
중대형 기획사를 일컫는 4상 5중상 소속의 셋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친해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반면 혼자서 중형 이하의 기획사 소속인 선지혜는 소외감을 느끼며 머뭇거리기만 했다.
이를 느낀 정하윤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너무 눈치 없게 떠들기만 했네요. ‘마카메론’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선지혜 님이시죠? 만나서 반가워요.”
“네?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선지혜는 정하윤 정도 되는 사람이 자기의 이름과 회사를 모두 알고 말해주자 고마움까지 느끼면서 인사를 했다. 그렇게 선지혜를 대화에 들인 정하윤은 신민경이 했던 것처럼 모두의 서열을 생각하며 정리에 들어갔다.
“일단 나이를 보니 제가 2000년 생. 소영이가 2004년 생. 허윤정 씨가 2002년 생. 선지혜 씨가 2003년 생이네요. 모두 나이 차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모두 말을 놓는 것으로 말이죠. 그게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에 편할 것 같은데...”
“네? 정말... 그래도 되나요?”
선지혜는 정하윤에게서 나오는 아우라에 감히 반말을 해도 되는지 걱정이 들면서 물었다. 이에 김소영은 밝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우리 언니가 말하는 것은 애늙은이 같아도 마음은 정말 넓으시거든요. 편하게 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김소영은 깜찍한 느낌의 외모에 걸맞게 비글미를 보이면서 말하였고 선지혜는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서열 정리를 한 정하윤은 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우리 노래는 어떤 것으로 하는 게 좋을까?”
“으음... 그야 우리 팀에는 하윤 언니라는 막강한 메인 보컬 카드가 있으니까 지르는 부분이 있는 노래를 하는 게 어떨까?”
김소영은 기획사 간의 배틀 때 정하윤의 무대를 떠올리면서 의견을 말했다. 이에 선지혜와 허윤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음을 지르는 노래는 다른 부분도 대체로 음이 높고 댄스 적인 강점을 부각시킬 파트가 적기에 자신들에게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넓은 시야로 이를 감지하고 있던 정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