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의 방]
5. 프로듀스 (5)
‘착 착 착’
그녀들은 모두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였지만 다들 긴장하지 않으며 군무를 잘 맞추었다. 이에 동시에 신발이 연습실 바닥에 착착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 리듬에 기분이 좋아진 호수는 고개에 그루브를 주며 박자를 맞추었다.
그렇게 3분 정도의 무대가 끝이 나자 호수는 박수를 쳤고 카메라 감독 옆에 있는 PD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평가를 하면 되나요?”
“아니요. 개인 무대까지 다 끝난 후 하시면 됩니다.”
“아하하. 그랬죠? 이거 너무 좋은 무대라서 그만 빨리 평가를 하고 싶어졌네요. 그럼 개인 무대를 해보실까요?”
“네에~”
호수의 미소가 가득한 말에 연습생들은 더 힘을 얻으며 답하였다. 사실 아이돌 지망생에게 있어 HTS 그룹의 센터 출신인 호수는 그야말로 레전드 중의 레전드와도 같았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응원을 해주며 좋게 봐주는 것은 최고의 지원 사격이었다.
그렇게 김보미, 하윤정, 나소미가 차례대로 개인 무대를 펼쳤고 마지막에 나온 신민경은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푼 후 유명한 댄스 팝송인 ‘노스웨스트’에 맞춰 춤을 추었다. 비주얼적으로 뛰어난 편인 신민경이 실력도 좋아 보이자 호수는 그녀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합동 무대와 개인 무대는 모두 끝이 났고 네 연습생은 차례대로 서서 심사위원의 평가를 기다렸다. 호수는 가장 먼저 한 김보미를 바라보다가 곧 이정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하였다.
“JW엔터테인먼트. 사실 이 회사로 오면서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소형 기획사인데도 프로듀스 프로그램 첫 파생그룹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점 때문에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
흔히 이런 멘트를 던지고 나면 부정적인 말이 따라오는 편이기에 호수의 이 말을 들으며 이정원은 침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자기 연습생들이 정말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이 바닥이란 것이 노력만으로 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재능과 타고난 스타성을 겸비한 친구들이 득실거리는 이 판에서 자기 연습생들이 과연 그 정도에 견줄 만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호수의 이어진 멘트는 우려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확실히 다르군요. 여기 오기 전에 중소 기획사 두 곳을 먼저 심사하고 왔는데 거기와 여기 연습생의 가장 큰 차이는 긴장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이 프로듀스가 연습생들에게는 인생의 큰 기회이고 그런 탓에 너무 큰 부담감을 느껴서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연습생들은 여유까지 보이면서 가진 실력을 다 보여줬습니다. 그 비결을 알고 싶네요.”
“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타고난 그릇 아닐까요?”
“하하. 그렇군요. 그게 정답이었네요.”
이정원은 호수의 질문에 웃으면서 답하였다. 사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것이 있었다. 바로 전날 민호가 말하였던 충분한 수면과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그렇게 연습생들을 보낸 후 민호가 이정원에게 덧붙여서 말한 것은 이런 비결에 대해 언급하기보다는 연습생들의 타고난 능력을 부각시키는 것이 낫다는 점이었다. 이정원은 그런 민호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그대로 말했고 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김보미를 보았다.
“김보미 양. 댄스 담당이라고 했는데 확실히 힘이 좋습니다. 움직임이 큰 것이 확실하게 보이네요. 그런데 춤을 추면서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난이도가 높은 댄스를 추면서 노래까지 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은데 조금 아쉽더군요. 그래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Fail을 드리겠습니다.”
“아...”
시종일관 우호적이었던 호수가 탈락을 뜻하는 버튼을 누르자 이정원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하였다. 그렇게 차례는 김종한에게로 넘어갔고 그는 계속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간단히 말했다.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어. 나도 같은 결정을 해야겠군.”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그 역시 탈락을 주었고 그렇게 김보미는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런 김종한의 약간 무성의한 모습에 메이플은 그를 흘겨본 후 김보미를 바라보았다. 김보미는 애써 미소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보미 씨라고 했죠? 이미 탈락이 정해진 상황에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입니다. 몸에 힘은 좋은데 아직 정교함이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지 않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Fail을 드리겠지만 이것만 보완한다면 댄스에서 꽤 인정받는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의 3표를 모두 받지 못하며 떨어지자 김보미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90도로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신민경은 그녀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안아주며 위로를 했다.
그렇게 하윤정의 차례가 되었고 호수는 이번에도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하윤정 양은 팀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고 했죠? 확실히 고음도 잘 되고 음정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댄스는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보컬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좋은 수준입니다. 저는 패스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패스가 나오자 JW 측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밝아졌다. 이제 김종한과 메이플 중에 한 사람에게서만 패스가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정원은 하윤정이 나름 보컬 연습을 많이 했던 것을 떠올리며 김종한의 평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기준치가 매우 높은 듯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얼굴을 하며 하윤정을 보고 말하였다.
“자네가 이 팀에서 메인보컬인가?”
“아직 다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흐음... 나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군. 이 정도 실력이 메인보컬을 할 수 있다니 말이야. 보통 메인보컬의 목소리는 타고난다고 하지. 단순히 성량이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자네는 음색이 그리 좋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탈락을 주도록 하겠네.”
“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김보미와는 달리 길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은 역시 좋지 못했다. 이에 하윤정은 시무룩한 얼굴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메이플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얽힌 표정으로 하윤정을 본 후 입을 열었다.
“뭐랄까... 댄스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하윤정 씨는 그리 인상을 주지 못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개인 무대도 보컬적인 장점만을 살릴 수 있는 쪽으로 꾸렸는데 그것도 전략이 좋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보컬이라고 해도 아이돌인 이상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댄스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탈락 드리겠습니다.”
“아...”
연속으로 Fail이 나오자 이정원과 하윤정은 동시에 탄식을 터트린 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그녀는 기본을 잊지 않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동료 연습생 둘이 모두 탈락하자 나소미는 긴장을 하며 앞으로 나섰고 호수는 그녀의 스타일을 잠시 지켜본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소미 양. 보이쉬함을 맡고 있다고 했나요? 하하. 확실히 스타일이 독특하기는 하네요. 그런데 흔히 걸그룹에서 보이쉬, 걸크러쉬를 맡고 있는 분들도 어느 정도의 여성스러움은 간직한 채 겸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더 맞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나소미 양은 좀 투머치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댄스 담당이라고 하셨는데 확실히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스타일이 맞지 않았습니다. 단체 무대 제목이 ‘예쁜 애 옆의 예쁜 애’인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탈락 드리겠습니다.”
“나도 탈락이네.”
호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종한은 별 관심도 없다는 듯 탈락을 주었다. 그렇게 광속으로 탈락이 확정되자 나소미의 눈빛은 떨렸다. 이에 메이플은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스타일에 문제가 있었다는 호수 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안무가로서 댄스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소미 씨는 재능이 있다고 봅니다. 박자감도 특별하고 움직임도 크고 좋았어요. 그래서 저는 패스를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너무나 아깝게 떨어지자 나소미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자기에게 유일하게 패스를 준 메이플에게 고마워하며 인사를 한 후 물러났다.
그렇게 앞선 셋이 모두 탈락한 가운데 신민경의 차례가 되었다. 호수는 그녀를 주의 깊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 팀에서 민경 양이 리더인 모양이죠?”
“네? 아니요. 그런 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아까부터 주의 깊게 보았는데 확실히 민경 양에게서는 리더의 아우라가 느껴졌는데 말입니다.”
“아니요. 저는 여기 들어온 기간도 1년 밖에 되지 않고 가장 짧아서 오히려 제가 많이 도움 받고 배우고 있습니다.”
자신을 리더로 보자 신민경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말하였다. 이에 호수는 감탄을 하며 입을 열었다.
“1년 밖에 안 되었다고요? 호오~ 그것까지 감안한다면 상당한 수준이네요. 하하. 제가 민경 양을 리더라고 본 이유는 아까 단체 무대, 그리고 틈틈이 동료들을 챙기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단체 무대에서도 계속 주변 동료들을 보면서 안심할 수 있게 미소를 지어주며 리드를 했고 멤버들이 개인 무대를 하기 전과 후에 다가가서 격려를 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방금 평가를 받고 물러나는 동료들을 위로해주는 모습도 있었고 말이지요. 아마 오늘 JW 연습생들이 실수 없이 잘 해나간 것에는 민경 양의 공헌도 있었다고 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덕은 아니고 그냥 멤버들이 잘 해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겸손하기까지 하군요. 그럼 순수하게 민경 양의 무대에 대해 평가를 하겠습니다. 일단 연습 기간이 1년이었다는 것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민경 양의 무대는 훌륭했습니다. 중간중간에 미소를 짓고 윙크를 넣는 타이밍도 좋았고 댄스와 가창력도 문제 삼을 곳은 없었습니다. 즉, 스타성과 댄스, 가창력이라는 3요소를 모두 겸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심사한 연습생 중에 최고네요. 합격 드리겠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오늘 나왔던 최고의 호평에 신민경은 놀란 얼굴을 하며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했다. 그 다음은 김종한의 차례였다. 그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노래는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고음 부분에서 음정이 불안했네. 그리고 개인 무대도 댄스여서 노래 실력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지. 나는 탈락을 주겠네.”
“네. 감사합니다.”
역시 김종한은 탈락을 주었고 신민경은 이에 흔들리지 않고 씩씩하게 답하였다. 그렇게 추는 메이플에게 왔고 그녀는 애매한 얼굴을 하며 심사를 시작했다.
“노스웨스트는 꽤 어려운 댄스 음악입니다. 그것을 선택해서 저는 상당히 기대를 하고 봤는데 뭐랄까. 겨우 소화한 느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
그리 좋지 않은 평가에 이정원은 피가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신민경은 눈을 또렷이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에 메이플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연습 기간이 1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상당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저는 합격을 드리겠습니다. 축하합니다.”
“헛. 감사합니다~”
호수와 메이플이 함께 합격을 주면서 신민경은 1차 예선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일단 인사를 하긴 했으나 현 상황이 실감이 안 가는 듯 멍하니 서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연습생 동료들이 달려와서 축하를 해주었다.
“민경아. 축하해.”
“역시 너라면 잘 될 줄 알았어.”
“네가 우리의 희망이야. 가서 우리 몫까지 잘 해야 돼?”
그녀들은 신민경의 합격을 자기 일처럼 좋아하면서 눈물을 흘려주었다. 이에 신민경은 왠지 모를 미안함에 함께 울면서 그녀들을 껴안았다.
“나만 올라가서... 정말 미안해. 흑흑.”
“그게 뭐가 미안해. 네가 잘 해서 올라간 건데. 오히려 우리가 미안해. 함께 가서 네가 덜 외롭게 해줘야 했는데... 흑.”
“맞아 맞아. 네가 최고가 돼서 우리 JW의 이름을 빛내주면 돼.”
너무나 착한 신민경의 마음씨에 다른 연습생들은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그녀를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심사위원들은 회사를 떠났고 이정원은 혼이 다 나간 얼굴을 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옆으로 민호와 원, 미카가 들어섰고 이정원은 그들을 보며 말하였다.
“민호 님과 원 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김종한 님에게 합격을 받겠다고 거기에 맞췄다면 큰일날 뻔 했네요. 오늘의 저런 고압적인 자세를 볼 때 그 어떤 무대를 꾸렸다고 해도 패스를 받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하. 저도 저 자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서 확신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런 중견 가수들은 대부분이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다른 가수들을 평가할 때 그 요구하는 선이 매우 높지요. 물론 마음이 넓고 열린 중견 가수들도 많지만 그런 사람들의 비율은 아주 적은 편이었고 그것에 도박을 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좀 더 가능성이 확실한 쪽에 올인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덕분에 민경이라도 합격할 수 있었네요. 제가 좀 더 아이들에게 원 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하나는 더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