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의 방]
2. 프로듀스 (2)
그리고 팬들이 우려했던 일본 측의 문제도 다행스럽게 생기지 않았다. 일본 기획사의 수장인 마사무네는 합격한 3명의 일본 멤버들에게 활동 기간 동안 일본 아이돌 자리를 면직시켜주었고 그런 결단 덕분에 3명의 멤버는 뮤직 바이블의 아이돌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국에서 터졌다. 활동을 하자마자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중국의 원 소속사에서 무단으로 2명의 합격 멤버를 데려가 버린 것이었다. 이런 행태는 사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간 대형 기획사에서 중국 연습생이 포함된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성공시킬 때마다 중국의 기획사에서는 그들을 꼬드겨서 무단으로 데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해당 중국 멤버로서는 자기의 나라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계약금 등의 급여도 그 쪽이 더 나았기에 이런 유혹을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 점을 인지한 뮤직 바이블은 처음에 중국 기획사와 협상할 때 확실하게 이를 언질하였으나 그들은 아이돌 그룹이 성공하자 완전히 달라진 태도를 보였고 타국의 기획사를 소송 등으로 해결할 방법도 없었기에 결국 시즌 3의 아이돌 그룹은 10인조로 활동을 해야 했다.
이것을 반성 삼아 프로듀스 시즌4에서는 중국 기획사를 배제한 채 한국과 일본의 연습생을 50:50으로 배정하여 진행하였다. 이미 시즌이 4번이나 진행이 된 탓에 신선함이 사라지고 관심도가 이전보다 떨어졌지만 그래도 시청률 1위는 무난하게 해내었고 최종 합격된 멤버들도 지난 6개월 동안 차트 1위를 2번이나 만들어내면서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시즌 5를 앞두고 뮤직바이블에서는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기로 하였다. 먼저 6월에 시작하던 것을 1월로 앞당겼다. 이는 뮤직바이블의 다른 프로그램들이 부진했던 탓이 있었다. 그간 댄스, 힙합, 노래 경연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에서 성과를 냈었던 뮤직바이블은 2018년 해당 프로그램들이 모두 부진하였고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여 대표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시즌5를 앞당겼고 기존 10회 차로 진행되었던 방송을 15회 차로 늘렸다. 그러면서 뮤직바이블 측은 모두를 놀라게 할 신개념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이렇게 다시 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프로듀스 시즌5는 1달 뒤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안하무인 조직의 보스인 민호와 간부인 미카는 일전에 함께 걸었던 바닷가 앞의 동동다리를 다시 걷고 있었다.
“안 추워?”
민호는 자신의 옆을 걷고 있는 미카의 옷차림을 신경 쓰며 물었다. 그녀는 12월이 된 지금도 그 때 입었던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무래도 민호가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었던 것 때문인 듯 하였다. 남자인 자신도 춥다고 생각되는 날씨에 미카가 너무 얇게 입은 것이 미안한 민호는 걱정을 하며 물었고 미카는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답했다.
“응? 아니. 괜찮아. 나는 추위에는 단련이 되어 있어서...”
“그래? 하하. 나는 미카가 오늘 너무 조용해서 혹시 얼어있나 했지.”
미카의 대답에 민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억지웃음을 냈다. 이에 미카는 뭔가를 깨달은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미안해. 내가 너무 말이 없었지?”
“응? 아, 아냐. 그것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었어. 그냥 추우면 따뜻하게 해주려고 했지. 이렇게?”
민호는 미카의 사과에 당황하였다가 곧 피식 웃으면서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아 주었다. 이에 미카는 순간 움찔하였다가 그 느낌이 싫지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사실 누군가와 스킨십을 한 지가 10년이 넘었기에 이것은 미카에게 매우 어색한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미카는 민호의 따스함을 느끼고 싶었다.
“민호가 원래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나?”
“음? 몰랐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내가 많이 챙겨줬었는데.”
“내가 말한 다정함은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징그러운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모습을 말해.”
“하하. 원래는 절대 안 하지. 그런데 미카에게는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하게 되네.”
민호 역시 누군가를 안아본 경험이 10년도 더 되었기에 배시시 웃으면서 답하였다. 그렇게 두 연인은 다리의 난간에 걸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곧 미카는 무언가를 고민한 후 민호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저기... 내가 인산 시를 몇 달 간 떠나야 할 것 같아.”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미카가 몇 달이나 이곳을 떠난다는 말에 민호는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물었다. 그런 표정에 미안한 얼굴을 하며 미카는 답하였다.
“일전에 홀리 피스트 때문에 얻은 휴가로 서울 JW 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민경이를 만났었어. 그리고 알아보니 프로듀스 시즌5가 다음 달 중순에 시작한다고 하네? 아무래도 내가 가서 도와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아... 프로듀스... 이번에도 그렇구나. 시즌3 때 했던 것으로는 아직 마음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지?”
“뭐... 나도 그 때 모든 아쉬움이 다 승화된 것 같았는데... 민경이를 보니까 또 그렇지가 않더라고. 그 애는 나를 너무 닮았거든. 왕따를 당했던 것도 그렇고, 왜 왕따를 당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비슷하고... 그런 애가 내가 꿈꾸었던 길을 똑같이 걷는다고 하니까 더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미카가 어떤 아픔을 겪었고 어떠한 마음의 그늘이 있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녀에게 프로듀스 프로그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민호는 이를 듣고 말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으음... 물론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미카와 몇 달이나 떨어져 사는 것은 내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은데...”
“정말 미안해. 그래도 나는 가야 할 것 같아. 민경이가 만약 합격을 못한다면 계속 마음에 걸릴 것 같거든. 대신 연락은 매일 할게. 호호.”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어떻게 할까. 뭐... 미카가 정 가야 한다면 나도 같이 가지 뭐.”
“뭐? 그게 무슨...”
안하무인의 보스가 미카를 따라서 몇 달이나 인산 시를 비운다는 말에 미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이에 민호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무언가를 고심했고 곧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래. 그 민경이란 아이를 최종 멤버로 합격시키려면 JW엔터테인먼트 같은 작은 회사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을 거야. 우리 안하무인이 나설 필요가 있겠군. 아예 원도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자, 잠깐. 민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랑 원까지 이곳을 비우면 여기는 누가 책임지라고.”
“광철이가 있잖아. 하하.”
“하... 정광철은 머리가 나쁘잖아. 걔 하나 믿고 몇 달을 비웠다가는 이 조직 자체를 말아먹을 수 있다고.”
“훗. 그 말을 광철이가 듣는다면 매우 슬퍼할 것 같은데? 그리고 걱정하지 마. 이건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야. 지금 인산 시는 매우 안정되었어. 시민들도 홀리 피스트 이후 우리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바뀌었고 문제는 전혀 생기지 않고 있지.
근처의 대도시에 소속된 큰 조직들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고 말이야. 이런 상태라면 몇 달 정도 자리를 비우는 것은 문제없을 거야. 그리고 원은 원격으로 이 도시의 시스템을 관장하고 조율할 수도 있고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너랑 이제 1주일도 떨어져서 살 수 없게 되었으니까.”
“아...”
민호는 나름의 설명을 한 후 빙긋 웃으면서 마지막 멘트를 하였다. 이에 미카는 순간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으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렇게 안하무인 조직의 핵심 간부 셋은 다음날 바로 서울로 떠나게 되었다.
“헉... 보스... 이곳에는 어인 일이신지...”
오기로 약속을 했었던 미카 외에 주요 간부인 원과 보스인 민호까지 JW 엔터테인먼트에 오자 대표인 이정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하였다. 이에 미카는 미소를 지으며 대신 말해주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저랑 같이 서울 구경이나 하려고 온 것이니까요. 그렇지. 민호?”
“어. 맞아.”
“아, 아무리 그래도 매우 바쁘실 텐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제대로 대접해드릴 수 있을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우리 같은 깡패들이야 동네 짜장면이나 치킨만 먹어도 충분하니까. 그냥 나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미카와 얘기하면 돼.”
민호는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답하였다. 그것에 이정원은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얼굴로 미카와 프로듀스에 대한 논의를 하여갔다.
그리고 복도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JW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넷이었다.
“와아~ 예쁜 언니가 또 왔네.”
“그래도 나이가 20대 후반이라는데 언니는 좀 그렇지 않냐? 이모라고 해야...”
“야. 저 얼굴에 이모는 좀 그렇잖아. 당장 우리랑 아이돌 그룹을 짜도 센터는 저 언니 몫일 걸?”
“그런데 같이 온 남자는 누구야? 남자 친구인가? 그런 것치고는 비주얼이 조금 밀려 보이는데?”
“왜~ 나는 저런 듬직해 보이는 남자가 좋더라. 그리고 아주 각진 얼굴도 아니야. 자세히 보면 매력 있는 얼굴이라고. 나는 남자 친구라는 것에 한 표.”
“야! 우리끼리 무슨 논의를 하고 있니. 민경이가 잘 알 텐데? 민경아. 저 남자 분은 뭐 하는 분이셔?”
셋이서 신나게 떠들던 연습생들은 민경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에 그녀는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음... 글쎄? 나도 저 분은 처음 봐. 그런데 의자에 앉지 않고 뒤에 서 있기만 한 것을 보면 경호원이 아닐까? 미카 언니가 꽤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니까.”
“오! 맞아. 저런 페이스가 딱 보디가드 스타일이지. 그런데 이상하네? 저번에 온 사람은 경호원이 아니었잖아. 왜 없던 경호원이 생긴 거지?”
“그것도 좀 이상하네.”
한창 수다를 떨기 좋아할 나이인 연습생들은 민호의 등장 만으로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뒤로 누군가가 슬그머니 다가서며 함께 고개를 쭈욱 내밀고 말을 걸었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음? 꺄악~!”
“으악!”
갑자기 뒤에서 기척도 없이 목이 쭈욱 나오면서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들은 기겁을 하며 주저앉았다. 그런 그녀들의 반응에 배를 잡고 웃으면서 원은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미카 님과 함께 일하고 있는 ‘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놀래켜 드린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원은 매너 있게 사과를 하며 그녀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었고 그 친절에 연습생들은 바로 마음을 풀고 일어서며 물었다.
“원? 본명이 원이신가요?”
“네? 아닙니다. 일종의... 예명? 필명? 뭐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오~! 예명이 원이라니... 뭔가 있어 보이시네요.”
“미카 언니와는 무슨 사이시죠? 설마 연인은 아니겠죠?”
“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미카 언니의 연인이 이렇게 평범한 얼굴일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네.”
그녀들은 당사자를 앞에 두고 팩트 폭격을 하고 있었다. 이것에 원은 심장이 아파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면서 그녀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원은 대번에 누가 신민경인지를 알 수 있었다.
‘사실 보스가 인산 시를 비우고 서울로 같이 가자고 하기에 이게 뭔 소린가 했는데 이제 알 것 같군. 이 민경이란 아이... 미카 님과 많이 닮았어. 우월한 비주얼에 침착한 스타일. 그리고 겉으로도 느껴지는 마음의 그늘.
미카 님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씻으려면 이 아이가 아이돌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로군. 뭐 그런 일이라면 내가 전문이긴 하지.’
원은 그리 생각하면서 그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고 그 타이밍에 미카와 이정원은 대화를 마치고 대표실에서 나왔다. 그렇게 만나게 된 그들은 서로 인사를 하며 안면을 익혔다.
민호는 4명의 연습생들을 보며 대뜸 충고를 해주었다.
“너희들. 인터넷 댓글은 많이 보니?”
“네? 그야... 볼 일이 없죠. 우리는 연습생이라서 그런 것도 하나 없는데요. 차라리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것이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죠.”
원과는 달리 바로 반말을 하는 민호에게 연습생들을 약간 거부감을 느끼며 답하였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앞으로 프로듀스에 나가서 인기가 생기더라도 인터넷 댓글은 보지 마라. 그것들을 읽어서 도움이 되는 것보다는 상처를 입는 것이 더 많아. 그리고 자기만의 주관으로 잘못된 충고를 하는 댓글도 많을 것이다.
그런 것들에 신경을 써서 자기를 맞추려고 하다가는 본래의 장점마저 잃게 될 것이다. 사실 진짜 유능한 사람은 인터넷으로 찌질대지 않는 법이거든.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현실에서는 개뿔도 없으면서 인터넷에서 전문가라도 된 양 으스대며 자아도취에 빠지는 자들이지.
그런 자들의 글들 중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백 개에 하나가 될까말까일 것이다. 그런 극소수의 도움이 되는 댓글을 읽기 위해서 나머지를 다 읽으며 상처를 받는 것은 시간 낭비, 감정 낭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