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보항
“어? 역시 경계 상태가 엄청 살벌해졌네!”
언덕을 다 올라간 정훈이 깜짝 놀라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래요? 벌써 전시 태세로 돌입했나 보네요?”
뒤따르던 세희도 몸을 낮춰 숨기며 언덕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밤중인데 수십 미터 산기슭 아래의 커다란 항구에는 조명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다.
간간이 서치라이트가 돌아가며 이들이 있는 산등성이도 비추고 지나갔다.
여기는 일본열도의 남서부 끝에 위치한 규슈 나가사키현에 있는 사세보 군항이다.
사세보항에는 일본해상자위대 기지 중에 세 번째로 큰 사세보 지방대 기지가 있다.
또한 사세보항은 미국 제7함대의 제2 주둔 기지이기도 하다.
“이상하다.. 함정 숫자는 지난번에 왔을 때와 별로 변동이 없는데?”
불과 수백 미터 거리의 부두에 정박해있는 군함들을 바라보며 정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전쟁 발발 직전인데 미군의 함정이 늘어난 것 같지 않아서다. 전에도 이곳에 와봤던 모양이다.
“어머! 저건 미국 항공모함 아니에요? 성조기가 달려있네요.”
세희가 항공모함처럼 갑판이 편편한 큰 함정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아, 저건 상륙작전 할 때 쓰는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에섹스’호요. 배수량 4만 톤 급으로 준항공모함이지요.”
승무원 1천 명과 해병대원 2천 명이 탑승하는 ‘에섹스’ 내부에는 상륙정 4척, 수륙양용 장갑차 25대 등을 실을 수 있다.
“갑판에 이상하게 생긴 비행기도 보이는데요?”
길쭉한 양쪽 앞날개 끝에 커다란 원통형 프로펠러가 수직으로 달린 항공기 예닐곱 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오스프리 수송깁니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고 헬기보다 두 배나 빨라요. 저 옆에 있는 것들은 해리어 수직이착륙기하고 바이퍼 공격헬기에요.”
두어 달 전에 한번 와 본 정훈이 자세히 설명해줬다.
“아, 상륙지점 해안에 도착하면 저 수송기로 선발대 수백 명을 한꺼번에 실어 나르겠군요.”
감을 잡은 세희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스프리 수송기는 중무장 병력 32명과 화물 9톤을 동시에 수송할 수 있어요. 강습상륙함의 함재기 탑재 능력은 헬기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대 탑승 병력 37명인 스탤리온 수송 헬기는 42기나 탑재할 수 있답니다.”
군사용 무기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정훈은 특히 일본이 보유한 무기에 대해서는 술술 꿴다.
“어머, 그럼 저 강습상륙함 한 대만 있어도 거제도 같은 데로 상륙하면 순식간에 섬 전체가 점령당하겠는데요?”
세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정훈을 쳐다봤다.
30명씩 태운 스탤리온 수송 헬기 40기만 출격해도 동시에 무장한 전투병 1,200명 이상을 상륙시킬 수 있다는 말이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하고 붙게 되면, 제일 먼저 이 사세보항에 잠입해서 저 상륙함부터 깨부숴야 합니다. 저기, 이지스 구축함도 3척 보이죠?”
상륙함과 좀 떨어진 거리에 나란히 정박하고 있는 멋진 함정을 가리켰다.
“아, 예. 욱일기 펄럭이는 저 큰 함정 말씀이죠? 구축함도 엄청나게 크네요?”
말로만 들었지 구축함 실물을 처음 보는 세희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본자위대 깃발은 ‘욱일기’이다. ‘욱일승천기’는 근거 없는 잘못된 표현이다.
“저건 배수량 1만 톤의 ‘아타고’ 급인데, 저 이지스 구축함에는 방어용 미사일 SM-3가 탑재되어 있어요. 우리가 현무 미사일로 일본 본토를 공격하면 저것들이 대한해협에서 먼저 격추할 겁니다.”
저 구축함도 당연히 우리의 첫 번째 작전의 타깃이라고 강조했다.
“저 구축함은 SM-3 미사일을 몇 기나 장착하고 있을까요?”
공격하는 미사일보다 방어하는 미사일의 숫자가 많으면 곤란하다.
“수직발사기 VLS는 함수에 32개, 함미에 64개, 총 96셀을 장착하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 세종대왕급 128개보다는 32개 적지요. 하하.”
정훈이 설명하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어머, 우리 구축함 성능이 더 좋은가 보네요? 호호. 그래도 일본 구축함의 SM-3 미사일 숫자가 너무 많은데요?”
김세희가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 이즈스함 한 척당 SM-3 미사일이 96기 장착되어 있다면, 우리 현무 미사일 100기는 날려야 4기라도 무사통과 할 것 아닌가?
저 구축함 3척이 다 동원된다면, 현무 미사일 300기는 발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발사기 숫자는 그렇지만 SM-3가 워낙 비싸니까, 실제로 장착하고 다니는 미사일 수량은 몇십 발도 되지 않을 겁니다.”
정훈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미소를 지었다.
“일본 해군력이 막강하다더니 여기 사세보항에만 와서 봐도 역시 그런 것 같네요. 카메라로 얼른 찍고 철수해야죠?”
세희가 디지털 줌 카메라를 꺼내 촬영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럽시다. 동이 트기 전에 본부까지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하겠어요.”
정훈이 동의하며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로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가 다 돼간다.
이들 두 사람은 거제도에 본부가 있는 ‘구국대열’ 산하 ‘드론 전투단’ 단장 이정훈과 팀장 김세희이다.
이제 곧 벌어질 것으로 보이는 한국과 일본의 전쟁에 대비하여 사전에 정탐하러 온 것이다.
“줌을 최대한 당겨서 선박 아랫부분을 충실히 찍도록 해요. 뒤쪽에 있는 함정은 저쪽으로, 2백 미터쯤 더 다가가서 찍는 게 좋겠는데요?”
“네, 알겠어요. 우리 드론으로 공격할 취약한 부위를 찾기 쉬워야 하겠죠? 제대로 찍으려면 한 30분은 더 걸릴 것 같은데요.”
세희가 알겠다며 옮겨갈 숲속을 바라보는데, 8월 하순 한여름 밤이라 잡다한 풀벌레가 얼굴에 날아든다.
“저기, 김 팀장! 내가 귀대 길에 다른데 잠시 들렀다 갈 데가 있어요. 김 팀장은 촬영 끝나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도록 해요.”
정훈이 자기는 별도로 볼일이 있어 먼저 출발하겠다고 한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닷가 신사 앞에서 두 시간 뒤에 만나면 될까요?”
부하인 세희는 단장인 정훈의 행동에 대해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그들이 거제도 장목항에서 타고 온 드론 잠수정은 여기서 큰 산을 넘어 반대편 서쪽에 있는 해안가 바위틈에 숨겨뒀다.
여기서 그 해변에 있는 신사(神社)까지의 거리는 산길로 약 3km쯤 된다.
민가를 피해 한적한 숲속 길을 헤치고 오는 데 1시간 걸렸다. 30분 촬영 마치고 가려면 여유 있게 지금부터 2시간 후로 약속 잡는 게 알맞겠다.
“그래요. 최대한 빨리 마치고 두 시간 뒤에 도착할 거니까, 좀 늦더라도 거기서 기다려줘요. 그럼, 이따 봐요.”
“네, 조심해서 가세요. 이따 봬요~”
세희와 헤어진 정훈은 나뭇가지를 젖히며 왔던 길을 되돌아 수십 미터쯤 가다가 멈춰 섰다.
뒤를 흘깃 돌아보더니, 물결패턴 위장무늬 전투복 상의 왼쪽 주머니 지퍼를 열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도범아, 이제 나와.”
그러자 놀랍게도 주머니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머리를 디밀고 나왔다.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한 뼘이나 될까 싶은 작은 도마뱀이다.
“-아우, 갑갑해 죽는 줄 알았네. 세희 누나는 어디 갔어요? 칸!”
잽싸게 정훈의 왼쪽 어깨에 올라온 도마뱀이 사람 목소리를 내며 쫑알거렸다. 세희를 누나라고 부르는 걸 보니 수컷인 모양이다.
머리 뒤쪽에서 등줄기를 따라 뿔처럼 생긴 작은 갈기가 삐죽삐죽 돋아나서, 이구아나를 연상케 하는 제법 멋있게 생긴 도마뱀이다.
“응, 저 뒤에서 사진 찍고 있어. 많이 힘들었지?”
정훈이 도범을 내려다보며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쿨쿨 잠자고 있었어요. 힘든 건 없어요. 이제 세희 누나한테 도범이를 소개해주면 안 돼요?”
“응. 아직은 일러! 힘들어도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알았쩌요. 근데, 왜 불렀어요, 칸?”
도범이 뱀 눈을 찢어 올리며 시무룩하게 물었다.
정훈을 꼬박꼬박 칸이라고 부른다. 정훈이가 제 놈한테 섬기는 군주라도 된다는 뜻인가?
“응. 귀대 길에 사세보 동물원에 한 번 들러 보려고. 어때?”
“-아하, 코끼리 사냥하시게요? 그럴 거면 아예 대거 칼 꺼내 들고 나뭇가지 자르면서 가세요!”
코끼리 사냥?
무슨 소린지는 몰라도 두어 달 전에 왔을 때 여기서 2km쯤 거리에 있는 사세보 동물원에도 들렀던 모양이다.
“그래, 그게 좋겠지? 아예, 헬멧 야시경도 쓰고 갈까?”
정훈이 도범을 보고 싱긋 웃었다.
“-그러세요! 유비무환이니까. 끼륵 끼륵.”
도범이 뱀 대가리 주둥이를 실룩거리며 낄낄거렸다.
한문 사자성어도 아는 걸 보니 예사로운 도마뱀은 아님이 분명하다.
정훈이 왼쪽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처럼 생긴 팔찌를 들여다보고 작은 버튼을 세 번 눌렀다.
그러자 정훈의 전투복 상의 안쪽 내의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뒷덜미 부분이 스르르 올라와 후드로 변하며 정훈의 머리 위에 덮어 씌워졌다.
정훈이 입고 있는 이 신비로운 속옷은 외계의 조상님이 선물로 준 배틀 드레스이다.
그 조상님은 지구에서 14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별의 행성에서 왔다고 했다.
그 별은 8년 9개월 전인 2015년 12월 17일에 칠레에 있는 유럽 남반구관측소(ESO)에서 발견하여 ‘울프-1061’로 명명된 별이다.
우리의 태양처럼 항성인 울프-1061은 지구와 같은 위성을 a, b, c, d로 4개 가지고 있는데, 조상님은 세 번째 위성인 ‘울프-1061c’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정훈은 그 조상님을 3년 전에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뒷동산의 집채만 한 두꺼비 바위 위에서 만났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조상님은 실물이 아니고, 두꺼비 바위를 둘러싼 입석 바위 3개에 의한 홀로그래피 장치로 형상화된 화신(化身)이었다.
그러나 지구보다 200여 년 앞선 기술로 만들어진 홀로그래피라서 실물과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조상님의 설명으로는 그들이 타키온(tachyon)이라는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타키온은 그 질량이 허수인 물질이며 에너지를 얻을수록 속도가 느려진다는, 지구상에서는 상상 속의 가상의 아원자 입자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타키온은 에너지가 가장 클 때 빛의 속도가 되고, 에너지를 모두 잃으면 그 속도는 무한대가 된다.
만약 타키온이 존재한다면 이론적으로는 미래뿐 아니라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하다고 한다.
울프-1061c에는 타키온 기술이 실용화되어서 지구까지의 거리면 영상과 음성 같은 정보의 전송은 실시간 전송이 가능하다고 했다.
즉, 홀로그래피의 동영상은 시간 차이 없이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속의 수천 배에 달하는 속도의 비행체도 만들 수는 있지만, 거기에 탑승할 생명체의 무게를 허수의 질량으로 변환하는 기술의 한계 때문에, 현재 제작된 우주선을 탄 생명체가 14광년 거리의 지구까지 날아오는 데는 대략 60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정훈이 입고 있는 배틀 드레스는 아모르퍼스 메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아모르퍼스 메탈(amorphous metal)은 결정구성을 가지지 않고 원자 배열에 규칙성이 없는 금속 물질이다. 초강력 강철에 못지않은 강도를 가지며 내식성과 내마모성이 뛰어나다.
지구상에서도 테이프 리코드의 자기헤드, 디스크 메모리의 헤드와 그 밖에 에너지 손실을 감소시키는 변압기의 자심 등에 이용되고 있다.
이 아모르퍼스 메탈을 기억 형상된 머캐니컬 알로이(mechanical alloying) 상태로 만들면 상온에서도 메모리 된 형상대로 쉽게 변형된다.
손목에 찬 스마트 팔찌도 선물로 받은 것인데, 그 안에 울프-1061c 행성에 관련된 숱한 데이터베이스가 저장되어 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저장된 자료를 열어서 조상님이 사는 세상의 동영상을 감상한 정훈은 이제 어느 정도 그 행성의 실체를 이해하고 있다.
특히 조상님과의 첫 만남에서 오래전에 가져와 두꺼비 바위 옆 입석 바위에 숨겨두었던 스마트 팔찌를 선물로 받았던 정훈은 그 위력에 놀랐다.
이 스마트 팔찌를 차고 있으면 다리의 근력이 보통의 다섯 배 정도로 증가한다.
그래서, 제자리에 선 채로 서전트 점프를 해도 3m쯤은 거뜬히 뛰어오를 수 있다.
그런 초인적인 능력만으로도 웬만한 사내 십 수 명은 손쉽게 대적해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서 조상님은 도범이 편에 배틀 드레스를 보내왔다.
도범이는 이미 2년 반 전에 지구에 와서 북한을 넘나들며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을 은밀히 염탐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상에 큰 전쟁이 터질 거라며 미리 대비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울프-1061c에서는 타키온 기술에 의해 지구의 미래를 단편적이나마 미리 엿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