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학 한번 없이 대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라는 원대한 꿈을 꾸었지만, 1년을 백수로 지내다 겨우 직원이 채 스무 명이 안 되는 작은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회사 생활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힘들지 않았다. 죽을 것 같았다. 월요일은 사장에게 깨지고, 화요일은 부장에게 수요일은 차장에게 목요일, 대리에게까지 깨지고 나면 금요일은 고객에게 깨지는 일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돈이 뭔지, 관두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꾸역꾸역 회사를 다닌 지 2년째 되는 해. 내 몸이 이상하다.
신병.
처음에는 단순한 몸살로 시작됐다. 한여름에 으슬으슬 춥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감기인가 보지.
그러나 점점 밤에 깊게 잠들지 못해 하루에도 10번씩 깨고, 낮에는 비몽사몽에 뭘 먹어도 메스꺼워 도저히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매일 새벽마다 무슨 꿈을 꾸는지 숨을 헉하고 들이키며 일어났지만 뭘 보고 그렇게 놀랐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노란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없는 형형한 눈빛이 떠오를 뿐이었다.
증상이 심해져도 나는 단순히 직장 스트레스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이제는 힘겹게 버티던 회사를 관둬야 하나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렇게 반년을 더 견디다 쓰러졌다.
부모님은 이러다 사람 잡겠다며 당장 회사를 관두게 하셨고, 병원에 데려가셨지만 의사는 내가 아픈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좋게 말하면 통통하고 나쁘게 말하면 뚱뚱하던 몸에서 20킬로나 빠진 상태였다.
갈비뼈가 드러나고, 손가락은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서 부모님은 날 볼 때마다 울 것 같은 표정을 하셨다. 온갖 보약과 한약을 들이붓고, 내과, 정신과, 한의원……. 여러 병원을 전전해도 병은 낫질 않고, 점점 더 야위어 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기묘한 사고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길에서 넘어지거나 지갑을 잃어버리는 정도로, 재수 없다고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점점 재앙의 규모가 커져갔다. 아빠의 주식 투자가 실패해서 집을 팔게 되었고, 할머니는 앓아누우셨고, 가족들은 매일 싸웠다.
나는 점점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어졌다. 하루에 5번씩 기절하듯이 기억이 끊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주변의 물건들은 깨져있고, 가족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뭐, 모르는 게 낫겠지만.
교회, 성당, 절……. 병원이 아니라 온갖 종교시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건만 모든 게 더 나빠져 갔다. 그렇게 미쳐가는 딸을 돌보며 힘겹게 견디던 부모님도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바로 나를 어느 무당에게 데려갔다.
그 시절의 기억은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선명하지 않은데, 알 수 없는 그림이 잔뜩 걸려있는 화려한 신당 한가운데 피처럼 새빨간 무복을 입은 그녀의 첫마디만은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신을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나는 무당이 되었다.
이후에 벌어진 눈물 나는 스토리는 뭐… 친척들과 절연하고 친구들과 멀어지고 가족들과 소원해졌다는 진부한 이야기이다. 요새는 드라마 에피소드로도 써먹을 수 없을 만큼 매우 흔한.
그러나 누군가 내게 지금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 난 지금 내 평생 최고로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