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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Nerd의 단편소설
작가 : MrNerd
작품등록일 : 2016.8.31

그냥 예전에 뭔가 생각났을 때 썼던 단편들입니다.

 
산타할아버지의 밤
작성일 : 16-09-06 14:27     조회 : 418     추천 : 0     분량 : 1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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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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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슬그머니 기어들어오는 조명을 맞으며, 그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나이를 먹는다고는 해도 겨우 35살 밖에 되지 않건만, 오늘따라 묘하게 다리가 시렸다.

 

 나도 많이 참았어.

 

 여자 목소리. 언제 들었던 소리인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1시간? 어제? 1년 전? 시린 다리만큼이나 뇌도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 저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한…….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 애가 지금 어떻게 된지는 알아? 몇 군데서나 치료받는지는 아냐고?

 

 그저 현실성이 없었다. 지겹게 머릿속을 휘젓는 소리도, 밖에서 손잡고 웃어대는 젊은 놈들도, 추워 죽겠는데 따뜻하다고 지껄여대는 괴상한 노래들도, 며칠 있으면 의미도 없을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도. 모조리 현실성이 없었다. 그저…….

 

 엿 같군.

 

 주머니에서 현관문 열쇠를 뒤적거리며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견출지가 조잡하게 테이프로 붙여있는 열쇠가 군데군데 녹이 슨 문손잡이에 힘겹게 들어갔다. 낑낑거리며 열쇠를 끼워 넣고 나서 그는 다시 한 번 멀찍이서 자기 집 문을 바라보았다. 자장면 집에 이삿집 센터 등등 온갖 자잘한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쇠문. 새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았던 아파트의 번쩍거리는 현관문이 생각나서 현실은 한층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아빠, 잘못했어요.

 

 제발 닥치고 좀 열려라. 머릿속에서도 손에서도 신경 거스르는 소리가 시끄럽게 뇌를 휘저었다.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

 

 닥치고 열려!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오기 바로 직전, 여지껏 약 올려서 미안하다는 건지 갑작스레 열쇠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하지만 막상 느낀 건 쾌감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했다. 열쇠는 분명 맞는 방향으로 돌렸을 텐데 문 열리는 감각이 전혀 들질 않았던 것이다. 확실히 나가기 전에 문은 잠궈 뒀었고, 돌리는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단순히 추위로 느끼질 못한 걸까? 그게 아니면…….

 

 그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그러나 협조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이 정확히 그를 이등분하는 위치까지 오자, 녹슨 이음새에서 쇳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런 씨...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었다. 좀 전보다 더 크게 쇳소리가 났지만 이미 늦었다.

 

 “누구야?”

 

 쇳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자신도 모르게 떠는 탓에, 목소리는 조금 우습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누구냐니깐?”

 

 그러나 되돌아오는 건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끝나자 찾아온 건 그저 정적뿐이었다. 등 뒤의 희미한 조명에나마 의지해 방을 탐색하려 했지만 별달리 보이는 건 없는 듯했다. 그때 아래에서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주인이 또 온갖 욕설을 섞어가며 그 다 쉰 목소리로 꿱꿱거리고 있었다. 빼빼마른 목에 핏대를 징그럽게 세우고 있을 집주인을 비웃으며 그는 문을 닫았다.

 

 “내 악몽에 온 걸 환영한다.”

 

 문 닫히기 무섭게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누, 누구야?”

 

 “모르는 건가? 좋아, 그럼 다른 걸로…….”

 

 그는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빛 한 줄기 없는 방안에 보이는 거라곤 ‘안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누구냐고!”

 

 목소리도 몸도 떨면서 그는 다급히 스위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곳을 향해 벽을 더듬었다.

 

 “어떤 게 좋을까...”

 

 “이런 씨……. 뭐하는 새끼야!”

 

 “아 그래.”

 

 “누구냐고! 대답해!”

 

 “이제 양들은 비명을 멈췄나?”

 

 손에 뭔가 튀어나온 것이 느껴졌다.

 

 “대답이나 해!”

 

 “어? 이것도 몰라? 그럼 대체 아는 게…….”

 

 스위치의 모양을 제대로 손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는 있는 힘껏 스위치를 눌렀다. 망할 새끼. 그 낯짝을...

 

 “아악! 내 눈! 눈이!”

 

 전등불이 들어오자마자 외마디 비명이 방안에 퍼졌다. 비대하게 나온 배를 온통 흰 수염이 뒤엎고 있고, 벗겨진 머리에 살집 좋게 생긴 노인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눈을 가리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으, 얘기 안 끝났는데 뭐하는 거야?”

 

 “당신 뭐야?”

 

 “뭐냐니, 프레디랑 한니발도 몰…….”

 

 노인은 당황스러운 듯 말을 멈추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 누구슈?”

 

 노인이 가냘프고도 높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좀 전에 들렸던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누구냐니.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잠시 서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 정적을 지워낸 것은 노인이었다.

 

 “여기 502호 아닌가?”

 

 “501호입니다만.”

 

 상대가 실수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 챈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존댓말을 뱉었다.

 

 “아, 501호라…….”

 

 노인은 멋쩍은 듯 아무것도 없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이내 도로 다시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아, 잘됐네. 생각해보니 여기도 볼 일이 있었으니까.”

 

 “무슨 볼 일?”

 

 그가 내심 불쾌해 보이는 기색을 보이며 묻자, 노인은 빙그레 웃어보였다.

 

 “별 거 아닐세. 그냥... 아무튼 내 질문에 답해줄 수 있겠나?”

 

 “무슨 질문? 아니 그 전에 당신 방금 이유가 그냥이라고…….”

 

 “내가 누구인 것 같나?”

 

 노인이 재빠르게 남자의 말을 가로챘다. 노인의 질문에 그는 잠깐 눈을 감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내 말에 질문해주 실 수 있습니까?”

 

 “말해 보게.”

 

 “여긴 어떻게 들어왔죠?”

 

 “호호호!”

 

 질문이 끝나자마자 노인은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어떻게 들어오긴 당연 문 따고 들어왔지.”

 

 아 그러시군요.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참 자상도 하시지.

 

 “그럼 도둑이시네요.”

 

 “응? 왜? 잠깐만, 그렇게 사람을 나쁘게 몰아서 쓰는가?”

 

 “나쁘게 모는 게 아니라 나쁜 겁니다. 그거 무단투기잖아요?”

 

 “무단투기? 무단침입이 아니고?”

 

 “아, 아무튼 그거요.”

 

 그가 얼굴을 붉혔다.

 

 “그게 나쁜 건가?”

 

 이 노인네가.

 

 “나쁜 거에요. 무진장.”

 

 “굴뚝이 없어서 그랬다네. 게다가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수? 크리스마스 정신 모르오?”

 

 “뭐요? 다 같이 나눠 쓰는 거요?”

 

 “아니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 참으로 따뜻한 정신이지.”

 

 노인이 소시지처럼 통통한 손가락으로 자신과 그를 가리키며 그 흰 수염 속에서 미소를 드러냈다. 물론 그에게는 그렇게 인식하기 힘들었지만.

 

 “재밌는 농담이네요. 아무튼 중요한 게 있어요. ‘오늘은’ 아직 크리스마스 아니에요.”

 

 “무슨 소린가? 오늘은…….”

 

 노인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다시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어……. 크리스마스라네.”

 

 “아직 12시 안 됐잖아요.”

 

 “아니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마음이지.”

 

 그의 손이 가벼운 분노로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꽤 많은 분노로.

 

 “마음이 중요한 양반이 문 따고 남의 집에…….”

 

 “아무튼!”

 

 노인이 양손을 들어올렸다.

 

 “내가 누구인건 같나? 도둑은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실수했다지 않았나? 오해가 많은 듯 하니 힌트를 주겠네. 나는 말이지,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키는.”

 

 “파워레인…….”

 

 남자가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아니야! 다섯 명이서 정의의 이름으로 한 놈 족치는 깡패집단이랑 내가 같아 보이나.”

 

 “충분히 같아 보이네요. 집단이 아닌 것만 빼면.”

 

 “아니야, 잘 봐. 빨간 옷이잖아? 딱 감이 오지 않나?”

 

 “빨간 내…….”

 

 “겨울에 내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변태가 어디 있어? 더 자세히 봐!”

 

 부드럽고 두꺼워 보이는 붉은 옷에 하얀 단추가 수놓아 있는 옷. 확실히 내복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잠옷이네요.”

 

 “잠옷입고 돌아다니는 변태도 없어! 뭐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유행인 것 같긴 해도, 아무튼 난 그런 변태가 아니야!”

 

 “제 앞에 있는 것 같은…….”

 

 “그만. 알았네. 좋아, 힌트를 더 주지. 난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주는.”

 

 “유괴범인가요?”

 

 “아니야! 자네 혹시 정신적으로 무슨 병 있나? 아무튼 그런 의미를 주는 게 아니야. 난 그저 순수하게 아이들을 좋아하는 거라네.”

 

 “어, 그건……. 전자 발…….”

 

 “워, 워. 거기까지.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야. 자네 어릴 적에 뭔 일 있었나? 매사에 왜 그리 삐딱한가? 남들이 너무 신경질적이라고 안 하던?”

 

 “그런 얘긴 들어본 적이 없어요.”

 

 겉옷을 벗으며 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위협적으로 손을 들어 올린 그림자, 그리고 비어 있는 손바닥의 감촉이 머리를 스쳤다.

 

 “어릴 적에 별일도 없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는 변태에게 그런 얘길 듣고 싶지도 않구요.”

 

 “좋아, 알았네. 내가 졌어. 그냥 알려주지. 좀 멋지게 소개하고 싶었다만. 하여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성미가 너무 급해서 탈이야.”

 

 노인은 아무것도 없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자네도 이미 날 잘 알고 있네. 누구든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깊은 이면에서는 누구나가 날 믿고, 날 갈망하지. 내 이름은…….”

 

 정적. 좀 전과는 다른 새삼 무거운 분위기가 방안을 감쌌다. 그렇게 말하고보니 노인의 얼굴은 어디서 본적이 있는 얼굴 같았다.

 

 “사탄.”

 

 마왕, 왕을 몰락시킬 자, 무저갱의 천사, 용이라 불리는 거대한 짐승, 이 세상의 왕자, 거짓의 아버지. 좀 전과는 다른 무거운 분위기. 종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알 수 있는 이름. 그는 침을 삼켰다.

 

 “사, 사탄?”

 

 “아, 미안. 수염이 씹혀서.”

 

 그러더니 노인은 짜증스레 수염을 가다듬었다. 간혹 엉켜서 털이 몇 가닥 뽑힐 때면 ‘이런 씨…….’라고 중얼대면서.

 

 “망할 수염 같으니. 도대체 왜 이렇게 하라는 거야. 아무튼 난 산타클로스라네.”

 

 “와, 그것 참…….”

 

 그가 과장스럽게 손을 벌려보였다. 알고 있는 사람은 얼어죽을.

 

 “멋진 자기소개네요! 와하하, 산타클로스가 우리 집에 무단 침입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무고한 시민에게 흰 집에 가보라고 충고도 해주시고.”

 

 동양인 산타클로스라. 퍽도 흔한 일이지.

 

 “크리스마스이브 날 남자 혼자서 집에 들어와서 쓸쓸하게 있는 게 뭐가 평범한가?”

 

 “잠깐만요. 그건 좀 심한 발언이네요. 솔직히 안 좋은 것 알겠는데, 보통은 이게 평범한 거에요. 그리고.”

 

 그가 다소 격하게 왼손을 펼쳐 보였다.

 

 “자, 보세요.”

 

 약지에 낀 반지가 형광등에 초라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어,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그냥 크리스마스는 가족끼리 보내는 거라는 의미였다만...”

 

 “아…….”

 

 남자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 반지는 며칠 있으면 의미도 없잖나?”

 

 “네?”

 

 아무렇지도 않게 노인의 입가를 벗어난 말이 순간적으로 몸을 경직시켰다.

 

 “뭐라고 하셨죠?”

 

 “무슨 의미인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텐데?”

 

 노인은 좀 전과는 다른 싸늘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정면으로 대했다.

 

 “어떻게 아는 거죠?”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착한 아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노인의 수염이 꿈틀거렸다. 마치 흰 뱀처럼 꿈틀거리며, 교활한 웃음이 차갑게 온 몸을 말았다. 언제 어디서나 새하얀 뱀이 그 교활한 이빨을 드러내며 그를 보고 있었다. 붉은 핏속에 꿈틀대는 새하얀 순수함이 그의 모든 고민과 추억에 교묘하게 비웃었다.

 

 “나가! 이 새끼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노인은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곧바로 현관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문을 막 열어놓았을 때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욕을 하는 건 좋지 않네. 여러모로 바른 말을...”

 

 뒤에 더 뭐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남자가 거세게 문 닫는 소리에 묻혀 들리질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잠그고 나서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그는 씩씩거리며 발로 문을 찼다. 쇠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으으, 진짜 아프겠는데…….”

 

 그의 눈이 다시금 커졌다. 좀 전의 노인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까 보였던 교묘한 표정 대신 한없이 친근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당신?”

 

 “그러니까 산타 클…….”

 

 “아니 어떻게 들어온 거냐고?”

 

 “말 좀 끊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무튼 당연히 내가 산타 클로스니까 그런 거 아니겠나. 산타에겐 불가능 따윈 없다네. 아무튼 좀 전에 화나게 해서 미안하네. 자네 사정은 그냥 보면 알 수 있었어.”

 

 “어떻게요?”

 

 그가 다시 바닥에 앉으며 물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다시 존댓말로 바뀌었지만 정작 본인은 알아채질 못하고 있었다.

 

 “그냥. 솔직히 그런 반지를 끼고 있는 양반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 쓸쓸히…….”

 

 “네, 거기까지 하죠. 그럼 착한 아이는 어떻게 아는 건데요?”

 

 “어……. 그건…….”

 

 노인이 이전과는 다른 꽤나 태도로 머뭇거렸다.

 

 “그거 분명히 법으로 따지면 개인정보무단…….”

 

 “아무튼!”

 

 노인이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아까 자네에게 한 무례에 대해 내 사과로 뭔가를 하고 싶군.”

 

 “좋아요, 무슨 선물이라도 주려구요?”

 

 남자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니, 안 줄 건데…….”

 

 노인이 또 그 특유의 ‘호호호’ 소리를 연신 뱉어내며 웃었다.

 

 “왜요? 제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요?”

 

 그가 한껏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착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자네는 이제 아이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선물은 안 줄 꺼야. 대신…….”

 

 노인은 바지 속에 손을 넣더니 이어 작고 검은 뭔가를 꺼내 보였다.

 

 “다른 걸 주도록 하지.”

 

 뭔가 ‘달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동차 경적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이번엔 뭔데요? 자동차?”

 

 “아니. 그보다도 훨씬 좋은…….”

 

 노인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가장 가까이 있는 창틀로 다가갔다. 노인이 이내 커튼을 젖히자,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강한 빛 2줄기가 남자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썰매라네.”

 

 “세상에. 당신 진짜로…….”

 

 “산타라고 말했잖아. 아무튼 어서 타지. 할 일도 없잖나?”

 

 ***

 

 겨울밤의 상공은 꽤나 추웠다. 하지만 얼굴을 에는 바람은 생각보다 시원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풍압을 막기 위해 낀 고글에는 밤의 풍경이 모습을 바꾸며 새롭게 그려져 나갔다.

 

 “어떤가? 멋지지?”

 

 노인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괴상한 노인네인건 맞다만 그 부분은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답대신 미소를 보냈다. 물론 그렇다고 의문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의문이 더 늘어났다.

 

 “멋지긴 한데, 왜 사슴은 없죠?”

 

 아무것도 없는 썰매 앞면을 가리키며 그가 물었다.

 

 “사슴이 아니라 순록이야.”

 

 “아무튼요. 왜 없죠?”

 

 “잠깐만.”

 

 노인은 왼쪽으로 핸들을 꺾고 나서 뒤에 앉아 있는 그에게로 눈을 돌렸다.

 

 “원래는 개조해서 쓰긴 했는데…….”

 

 “잠깐, 개조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쓰긴 썼는데 SCP인지 뭔지 하는 동물보호단체랑 문제가 있어서 중단됐어. 아니 중단보다는 소량 생산으로 바꿨지. 근데 문제가 생긴 게, 개조를 너무 해서인지 루돌프 중에서도 영리한 녀석이 태어난 거야. ‘시저’라는 녀석이었는데 ‘성탄절과 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불만스러운 태도를 보이더니 점차 노골적으로 반항하더라고. 난쟁이들과 산타들 몰래 다른 루돌프들도 자신 수준의 지능을 가질 수 있게끔 몰래 교육을 시키고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다른 녀석들에게도 더욱더 개조를 거듭했어. 그리고 그러던 녀석들은 마침내…….”

 

 노인은 거기서 잠시 틈을 두더니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었다.

 

 “파업을 시작했지. 망할 놈들. 1년에 썰매 한 번 끄는 게 뭐가 힘들다고.”

 

 “어……, 그거 참 안 됐네요. 그게 다에요?”

 

 남자가 고글을 고쳐쓰며 물었다.

 

 “그게 다지. 뭘 또 바라나?”

 

 “아니, 이해가 안 가는게 여러모로 많아서……. 근데 그 전에 방금 술 마시지 않았어요?”

 

 “왜? 마실텐가? 고급 위스키다만.”

 

 “아니요. 안 마셔……, 고급 위스키요?”

 

 “어.”

 

 “그럼 일단 주세요.”

 

 노인에게서 병을 받아들이고는 바로 한 모금을 들이켰다.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 온 몸의 혈관으로 돌아가니 순식간에 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그거 엄연히 음주운전 아닌가요?”

 

 “아니 괜찮아. 사고 날 위험은 없어. ‘SAL9000’이라고 이 썰매에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있거든.”

 

 “쌀……, 뭐요?”

 

 “그냥 SAL이라고 부르게. 아무튼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위험하다 싶으면 이 친구가 도와 줄 거야. 그렇지, SAL?"

 

 산타가 다시 한 번 위스키로 목을 축이고는 운전대 옆에 놓인 반원형의 물건에 손을 올렸다. 유리로 된 겉면에 붉은 빛이 나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산타.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군요.”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산타의 손 사이로 흘러나왔다.

 

 “어... 방금 저게 뭐라고...”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게. 이 친구가 원래 장난을 좋아해서...”

 

 “이 임무는 저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당신이 임무를 위태롭게...”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음이 멈췄다. 노인은 멋쩍게 웃어 보이며 스위치인 것으로 보이는 물건에서 손을 땠다.

 

 “난쟁이들이 어쩌다 실수를 했나 보군. 루돌프들이 파업을 시작한 후로 여러모로 난쟁이들도 불만이 늘어서 말이네. 어떤 녀석은 ‘나는 하루하루 장난감을 만드는 노예였다’였던가? 뭐 아무튼 괴상한 수기를 출판하려고 했지.”

 

 “하루하루……, 뭐요?”

 

 “별거 아니야. 넘어가게.”

 

 “어, 그건 분명히...”

 

 노인은 다시 핸들을 잡으려다말고 남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법정노동시간 초과냐고? 아니야. 돈은 충분히 주고 있네. 휴식도 충분하고. 그냥 괜히 그러는 거야. 원래 사람이란 게 더 편해지고 싶어하는 법 아닌가?”

 

 “난쟁이라면서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산타가 기어를 바꾸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영감님도 꽤 힘들게 일하나 보네요.”

 

 “뭐 이 바닥이란 게 그렇지. 1년에 한 번 뛴다고 해서 산타들이 편하게 일하는 건 아닐세.”

 

 “아, 그래요. 그거 물어보려 했는데, ‘산타들’은 대체 또 뭐에요?”

 

 남자가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펴며 물었다.

 

 “원, 젊은 친구가 궁금한 것도 많군.”

 

 “자동차인지 썰매인지 구분도 안 되는 쇳덩이가 하늘을 날고 있으면 보통은 궁금해 하는 게 정상이죠. 아무튼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산타는 여러 나라에서 뽑는 거야. 종교도 인종도 성별……만은 따지지만 아무튼 그거 외에는 상관없네. 날 봐. 내가 외국인으로 보이나?”

 

 노인이 검은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렇긴 하네요. 그럼 기준 없이 그냥 나이만 많으면 뽑는 건가요?”

 

 “아니, 기준은 있네. 나는 심사관이 아니라 모르지만. 뭐 일단 지원서를 접수해서 면접을 보고 뽑는 듯하더군. 그렇게 각 나라에서 뽑힌 산타들은 각국에 파견되어서 담당 구역에서 근무하는 게지.”

 

 “산타는 한명인 줄 알았는데, 꽤 충격적이네요.”

 

 “그러겠지. 아무래도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고 해두는 것 같더군.”

 

 누구의 동심을 지킨다고? 그의 얼굴이 또 다시 일그러졌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나? 아무튼 여러모로 51구역 같은 데서도 기술을 많이 얻어낸 듯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세계 곳곳을 한명이서 나는 건 힘들다고 하더군. 사실 나도 꽤 충격을 받긴 했지. 참고로 대한민국 담당자의 경우는 TEPS나 JLPT 같이 외국어 관련으로 스펙이 있다면 더 유리하다더군. 이유는 모르겠다만. 여튼 생각 있으면 공부해두게.”

 

 “묻고 싶은 게 괜히 더 많아졌지만 이젠 묻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 넘어가죠. 아무튼 뭐가 유리한데요?”

 

 “보수랑 썰매가 더 좋아지거든. 아쉽게도 난 살아있을 때 공부를 안 해서 말이야, 이렇게 고글을 쓰고 있지.”

 

 노인이 자신의 고글을 손가락으로 톡톡 쳐보였다.

 

 “네, 방금 뭐라…….”

 

 그때 뒤에서 괴상한 소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자동차가 털털거리는 것처럼 연신 독한 방귀라도 뀌는 듯한 소리였다.

 

 “별로 좋은 느낌이 안 나는 소린데요?”

 

 그가 썰매 뒤편에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괜찮을 거야. 아까 말했지? 산타에겐 불가능따윈 없다네.”

 

 그 소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뒤에 나오던 소리가 더 심하게 울렸다.

 

 “못 믿겠는데요.”

 

 “쇳덩이가 날기까지 하는데 뭘 못 믿겠나. 속는 셈 치고 이 산타 할아버지의 마법을 믿어보게.”

 

 ***

 

 “속는 셈이 아니라 진짜 속았네요. 마법이라면서요?”

 

 근처 골목에서 가지고 온 쓰레기봉투를 힘겹게 눈 바닥에 내려놓으며 그가 물었다.

 

 “뭐 연료가 떨어진 줄은 몰랐지.”

 

 노인이 썰매 뒤를 만지작하더니 이내 기계음과 함께 트렁크 크기와 비슷한 뚜껑이 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날고 있던 썰매는 지금 눈에 파묻힌 상태로 우스꽝스럽게 박혀있었다.

 

 “솔직히 연료가 떨어진 거면 어쩔 수 없잖나?”

 

 “그래서 마법을 믿으라고 하신건가요?”

 

 남자가 노인에게 봉투 하나를 넘겼다.

 

 “정말로 삐딱하군 그래. 마법은 뭐 연료 없이 움직이나?”

 

 노인은 끙 소리를 내며 봉투를 들어 올리고는 열린 뚜껑에 집어넣었다.

 

 “됐어요. 얘기 하는 제가 바보죠.”

 

 그가 나머지 쓰레기봉투를 건내며 한숨을 내쉈다.

 

 “쓰레기를 연료로 움직인다니까 일단 마법이라고 쳐주죠.”

 

 “인정해주는 건 좋다만 어째 좀 기분 나쁘군. 환경을 생각해서 놈들한테 어렵게 얻어낸 거라고.”

 

 노인은 나머지 봉투도 집어넣고는 문을 닫았다. 썰매 뒤편에 하얀 글씨로 ‘T-65 S-Wing'이라고 적힌 글씨가 눈에 띄었다.

 

 “놈들은 또 누군데요?”

 

 “응? 뭐 별거 아닌 놈들이야. 외국서 살다 온 놈들인데, 집이 없어서 우리들이 거둬들이고 있지. 녀석들이 고향에서 가지고 온 기술이 꽤 좋아서 우리가 집을 제공하는 대신 기술을 받아가는 거지.”

 

 “도대체 어떤 외국에서 하늘 날고, 쓰레기로 연료를 움직이고 사슴을 개조하는데요?”

 

 “그래, 나도 자네가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알아.”

 

 노인은 다시 썰매로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아마 자전거 타고 하늘을 나는 못생긴 녀석이나, 자동차로 변신하는 이상한 녀석들을 떠올리겠지. 아니면 열 받았을 때 머리 모양이 노래져서 바뀌는 녀석들이거나. 사실 그 정도로 대단한 녀석들은 아니다만, 그래도 함부로 얘기하면 안 돼.”

 

 노인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얘기하면 검은 양복 입은 양반들이 잠깐 얘기 좀 하자고 자넬 데리고 갈 거거든.”

 

 “좋아요. 넘어가죠.”

 

 그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래, 그래주면 좋겠군. 나도 기억이 제거되고 싶진 않으니까. 혹시 그 외에 또 하고 싶은 말 있나?”

 

 노인이 힘을 주어 열쇠를 돌렸다. 아무래도 시동이 걸리질 않는 모양이었다.

 

 “음……. 아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갈래요. 얘기하면서 느끼는 건데 영감님 수염 속에서 말 한마디 튀어나올 때마다 점차 건너선 안 될 강을 건너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는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노인 옆으로 가 앉았다.

 

 “그렇게 얘기해주니 고맙군. 기업 비밀이 좀 섞여 있어서 함부로 누설하면 큰일나거든.”

 

 노인이 한 번 더 열쇠를 돌렸다. 아무래도 시동이 걸리지 않자, 노인은 나지막이 ‘젠장’이라고 중얼거리고는 썰매 앞 쪽으로 갔다.

 

 “뭔가 문제 있는 건가요?”

 

 그가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댔다.

 

 “글세……. 잘 모르겠군. 이상은 없는 것 같다만.”

 

 노인이 썰매 앞쪽에 손을 대자 이번에도 좀 전과 비슷한 크기의 뚜껑이 열렸다.

 

 “부품이 잘못 연결됬나……. 흠…… 이제 내 쪽에서 질문해도 되나?”

 

 노인이 구멍에 머리를 박은 채로 남자에게 물었다.

 

 “자네 반지, 결혼반진가?”

 

 남자는 유리창에서 얼굴을 때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네 맞아요.”

 

 남자가 거의 건성에 가깝게 대답하자, 연이어 앞쪽에서 ‘호호호’ 소리가 구멍에서 울렸다.

 

 “왜 웃어요?”

 

 “결혼반지라고 생각했는데, 맞췄잖나.”

 

 “어떻게 알았는데요? 아니요, 됐어요. 보나마나 그 스토…….”

 

 “뭐가 아쉬워서 남자한테 그런 짓을 하는감?”

 

 썰매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럼 여자라면 하…….”

 

 “쉿! 부탁이니까 사람을 그런 몹쓸 놈으로 만들지 말아주게. 나도 예전에 결혼을 해서 그냥 감으로 알았던 것뿐이야.”

 

 “와, 놀라워라.”

 

 “국어책 읽기 식으로 대답하지 말게, 진짜라니깐. 아무튼 결혼까지 한 양반이 뭐가 아쉬워서 크리스마스에 그러고 있었나?”

 

 아빠, 잘못했어요.

 

 “대답하기 싫으면 됐네.”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가 주머니 속에서 왼손을 꺼내들었다.

 

 “아주 착한 녀석이에요. 초등학생 밖에 안 됐는데, 공부도 알아서 하고, 혼자서 잘 일어나고……. 저는 누가 안 깨워주면 일어나질 못하거든요. 근데 고 녀석은 자기 엄마를 닮은 건지, 저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더라구요. 그리고 말썽도 안 피우고 저랑 노는 것도 좋아해요. 제가 집에만 있으면 놀아달라고 졸라대기도 하구요.”

 

 남자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것참 좋은 아들이구만.”

 

 “네 착한 녀석이죠. 근데…….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할까…….”

 

 반지가 근처 불빛에 초라하게 빛났다.

 

 “그…… 가끔 제가 이성을 잃을 때가 있어요.”

 

 “술먹어서?”

 

 “물론 그럴 때도 있죠. 근데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뭐라고 해야하나, 가끔 화를 잘 못참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가 한숨을 쉬며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엄마는 항상 아버질 닮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사실 아버지 얼굴은 제대로 기억 안나지만, 몇몇 가지 기억 나는 게 있어요. 좋지 않은 기억들이죠. 그래서 저는……. 저는 그렇게 안 되겠다고…….”

 

 목이 매여 온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면 항상 그러고 있더군요. 거기다 제가 그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왜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아무튼……. 물론 다른 날이더라도, 그랬겠지만……. 그 날은 좀 심했어요……. 왜, 왜 거기에……. 그 효자손이 있어서…….”

 

 스스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 채 그는 계속해서 횡설수설하며 뭐라고 지껄였다.

 

 아빠, 잘못했어요. 놀아달라고 해서 죄송해요. 제발. 아빠. 아빠, 싫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 그럼 잘못했으니까 맞아야지, 애새끼야. 일로 안 와! 이 새…….

 

 “이런 젠장.”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도 현실로 돌아왔다.

 

 “네?”

 

 “아, 자네에게 한 말은 아니야. 왠지 몰라도 작동이 안 되는군. 다 정상적으로 연결은 된 것 같은데…….”

 

 “잠깐만 나와봐요.”

 

 그는 썰매에서 내려 노인은 옆으로 밀쳐냈다.

 

 “뭐 하려고?”

 

 노인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남자의 발이 썰매 앞을 강타했다.

 

 “세상에! 뭐 하는거야?”

 

 노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계속해서 썰매 앞면을 발로 찍어 내렸다. 다 추운 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한참을 그렇게 하더니 노인에게 시동을 걸어보라고 요청했다.

 

 “그런 무식한 방법이…….”

 

 “하라면 해보세요.”

 

 사내가 헉헉대며 썰매를 가리켰다.

 

 노인은 곧 말없이 열쇠를 돌렸다. 잠시 후,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썰매가 진동했다.

 

 “오, 되는군.”

 

 “봐요, 되잖아요.”

 

 “이런 건 어떻게 알았나?”

 

 노인이 핸들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아버지가 예전에 알려주셨죠. 사람이든 기계든 때려야 말을 듣는다나…….”

 

 남자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지친 숨을 골라냈다.

 

 “저런. 몹쓸 애비구만.”

 

 “농담이에요. 오랫동안 눈에 파묻혀 있어서 그랬던 거에요. 그럴 땐 어느 정도 충격을 주면 얼어있던 게 녹거나 떨어져 나온다고 하더군요.”

 

 “자네 아버지가?”

 

 “아버지가요.”

 

 “그래.”

 

 노인은 짧게 대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는 건지, 감사하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였다.

 

 “왜 그래요? 기분 나쁘게.”

 

 “자넨 정말 말을 막 하는군.”

 

 썰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눈에서 튀어나왔다.

 

 “영감님께 듣고 싶진 않아요.”

 

 “아까 얘기는 뭐였나? 엔진에 신경 쓰느라 못 들었는데…….”

 

 “됐어요. 괜찮으니까.”

 

 “정말?”

 

 “네.”

 

 사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글을 꼈다.

 

 “그런가.”

 

 노인도 고글을 끼고서 기어를 바꿨다.

 

 “그럼 다행이고.”

 

 ***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에요?”

 

 “조금만 더 참게. 어차피 나도 근무 시간되면 돌아갈거야.”

 

 “돌아가는 건 좋은데 왜 우리 집 근처가 아닌지를 묻는 거에요.”

 

 “ 저기로군.”

 

 노인이 경쾌하게 웃더니, 다시 한 번 기어를 바꿨다. 이내 썰매에서 나는 소리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왜 자네 집 근처가 아닌가는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라네.”

 

 “그건 또 뭔 얘기에요?”

 

 “선물을 줘야하지 않겠나?”

 

 노인이 눈을 찡긋해보였다.

 

 “저한테 안 준다면서요.”

 

 “자네에게 준다고는 안 했어. 나한테 줄려는 거지.”

 

 “아이가 아니면 안 준다면서요.”

 

 남자가 불만스레 노인을 노려보았다.

 

 “알 게 뭐야. 내가 산탄데.”

 

 “그래요. 맘대로 하세요.”

 

 이젠 질렸다는 듯이 남자가 손을 내저었다.

 

 썰매는 어느 호숫가 근처에 도착했다. 착륙까지 얼마 안 남았을 때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선물 주는 거랑 여기까지 오는 거랑 뭔 상관인데요?”

 

 “그냥 보면 알아. 자 내리지.”

 

 노인은 열쇠를 빼서 썰매에서 내리고는 스마트키 버튼을 눌렀다. 썰매에서 경적 소리가 났다.

 

 “문 안 열어도 들어갈 수 있는데 그 기능은 왜 달아 논 거에요?”

 

 “그냥 멋이지.”

 

 “그건 난쟁이들이 달아 준 건가요, 아니면…….”

 

 “산타들이 부탁했지. 멋지잖아?”

 

 “난쟁이들이 왜 파업하는 지 알 만하네요.”

 

 남자도 썰매에서 내린 뒤 호수 근처로 걸어갔다. 숲에 둘러싸여 꽁꽁 언 채로 누워있는 호수는 그 작은 몸뚱이에 동네 아이들이 두고 간 얼음썰매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있었다. 벌써 21세기인데도 시골지역이라 그런지 아직도 썰매 타는 아이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호수에 오른발을 올려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미끄러지지 않도록 몸을 낮춰 양발을 올렸다. 호수는 단단히 얼어 속을 보이지 않고 그저 하얗게만 보였다.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서 천천히 고개를 드니 숲에서 날아온 바람이 호수를 타고 서늘하게 살을 에고 들어왔다. 조금 추운 새벽 공기가 나쁘진 않았다.

 

 “썰매는 안 타나?”

 

 노인이 양손에 든 얼음썰매를 흔들어 보였다.

 

 “됐어요. 그럴 나이가 아니잖아요.”

 

 “그런가.”

 

 노인은 멋쩍은 듯 웃고는 썰매를 의자로 삼아 빙판위에 앉았다.

 

 “선물은요?”

 

 “선물?”

 

 노인은 무슨 얘기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다시 한 번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썰매라네.”

 

 노인이 붉은 벙어리장갑으로 엉덩이에 깔린 썰매를 연신 두들겼다.

 

 “사실은 아들이랑 같이 타고 싶었네. 그 놈이랑은 타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뭐 이젠 불가능한 일이지.”

 

 노인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보며 허리춤에서 위스키를 꺼냈다.

 

 “마실텐가?”

 

 남자는 위스키를 받아들이면서 노인이 가져온 썰매 위에 앉았다.

 

 “나도 자네랑 마찬가지야.”

 

 “아들이 있었나요?”

 

 남자는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노인에게로 넘겼다.

 

 “그래, 착한 녀석이었는데...”

 

 노인은 곧 바로 위스키를 들이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놈도 나랑 자주 놀아달라고 했어.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아버지란 게 늘 놀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사실 많이 때렸어. 사내놈이 징징거린다고 때리고, 어쩌다 한 번(그래 애들이 항상 말을 잘 듣는 건 아니잖은가?) 말 안 들어서 때리고. 사실 그 때는 그게 잘못한 건지도 몰랐어. 아버지로써 당연히 해야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다가 자네처럼 나도 일이 터졌지.”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그날은 나도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었네. 그 녀석은 이제 기억하지 못 할테지만, 아무튼 난 똑똑히 기억하네. 마침 고향에 일이 있어서 가족이랑 같이 돌아왔는데, 동네 또래 녀석이 썰매 타러 간다고 나보고 데려가 달래더군. 좋다고 했네. 다만 잠깐만 쉬고 나서라고 대답했지.”

 

 노인은 다시 한 번 위스키를 털어 넣었다.

 

 “마침 고향에는 왜 돌아왔을까. 간단하지. 내가 운영하던 회사가 아주 박살이 났거든. 각하 마음에 들지 않는다나 뭐라나 하면서 말일세. 가족들은 아무 말 없었지만, 어떤 식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어. 가족 전 재산을 긁어 집나가더니 쫄딱 망해서 왔으니까 이해는 하지.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어.”

 

 노인은 갑자기 다시 ‘호호호’하고 웃더니 고개를 젖혔다. 노인의 눈동자에 별들이 다가왔다.

 

 “깨고 일어났는데 고 놈이 울상이 돼서 내 앞에 있더군. 그야 당연하겠지. 그 놈이 울면서 소리쳤지. 약속도 안 지키는 나쁜 아빠라나. 뭐라고 해야 할까. 평소라면 넘겼겠지만 그날만은 그럴 수가 없었네. 너무 화가 났지. 가족도 아들도 모든 세상이 마음먹고서 나 혼자 엿 먹이려는 것 같았어. 그래서 때렸네. 정말 죽일 듯이, 평소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노인이 꽁꽁 언 빙판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 후 마누라랑 난 이혼했네. 아니 정확히는 마누라가 아들을 데리고 도망갔지.”

 

 “하지만 영감님이라면...”

 

 “그래, 알아. 무슨 말 하고 싶은지. 하지만 어디 있는지 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네. 사실 이 일을 하기 전에도 마누라랑 아들이 어딨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어. 의외로 말일세. 마누라 몰래 아들을 만나기도 했었지. 하지만 재밌는 일이 생겼더군.”

 

 노인이 몸을 흔들었다. 다시 한 번 독특한 웃음소리가 강박적으로 빙판에 튕겨졌다.

 

 “날 전혀 기억 못하더군. 너무 어릴 적에 헤어져서 인지 아니면 그 때 일이 상처가 되어 정말로 날 잊게 된 건지……. 망할……. 대체 그 때 왜…….”

 

 노인은 말을 마치고는 얼굴을 양손에 파묻었다. 발작적으로 어깨를 들썩이면서.

 

 “그래서... 절 데리고 온 건가요? 제가 아드님과 닮아서?”

 

 남자가 조심스레 노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니, 그냥 만만해 보여서.”

 

 노인이 껄껄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흰 수염이 다시 뱀처럼 꿈틀거렸다.

 

 “그래요. 그럴 줄 알았네요. 그 얘기들도 다 거짓말이죠?”

 

 “아니 사실이야. 사실 오늘도…….”

 

 노인은 시계를 보더니 말을 바꿨다.

 

 “아니 어제도 만났었어.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서 긴장해서 말이 헛나왔는데 미친놈 취급 하더군. 뭐 그게 나쁘단 건 아니지만. 아 그래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네. 아무렴, 어디 사는 양반보다야 낫지. 우리 아들인데.”

 

 그래야 당신인 거겠죠. 그도 같이 웃었다. 이제 분노가 슬슬 한계점에 오고 있었다.

 

 “열 받았나 보군. 미안하네만 사과할 생각은 없네.”

 

 노인은 씩 웃어 보이더니 자세를 바로잡았다. 곧 썰매가 거대한 붉은 덩어리를 몸에 지고 자유롭게 미끄러지는 괴상한 기적이 일어났다.

 

 “열 받으면 따라와 보던가. 아니면 못하나?”

 

 노인이 입술을 비쭉이며 소리쳤다. 그래, 이만하면 많이 참았지.

 

 “일로 안 와! 이 망할 노인네야!”

 

 남자도 곧바로 자세를 바로 잡고 주변에 널린 아무 막대기나 집어 썰매를 끌었다. 얼음 긁히는 소리와 함께 겨울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

 

 “이제야 가나요?”

 

 남자가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썰매를 얼마나 탔는지 이젠 기억도 나질 않았다.

 

 “왜 아쉽나?”

 

 노인이 멀찍이서 썰매에 시동을 걸며 웃어 보였다.

 

 “아니요, 빨리 좀 가셨으면 좋겠네요.”

 

 남자가 지쳐서 웃었다. 이젠 산타고 뭐고 간에 다 필요 없이 혼자 쉬고 싶었다.

 

 “섭섭하군.”

 

 노인의 말과 함께 썰매가 땅에서 불과 몇cm위로 떠올랐다.

 

 “그래도 난 재밌었거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기도 했고 말일세.”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네요. 아드님이 살아 있다면 다음번엔 아들이랑 오세요.”

 

 “이미 한 번 아들이랑 와봤네.”

 

 “아깐 온 적 없다면서요.”

 

 “그래, ‘아깐’ 아니었지.”

 

 “그건 또 무슨…….”

 

 갑작스레 소리가 커지더니 썰매가 천천히 그에게 날아왔다.

 

 “있잖아, 이 세상은 아쉽게도 동화가 아니야. 자네가 뭔짓을 해도 자네 잘못은 지워지지 않을 테고 이혼을 막을 수도 없을 거야. 그런 표정 짓지 말게, 내 말이 기분 나쁘다는 거 알아. 그래도 말이야, 자네가 설령 그러더라도 정말 아버지라면, 그 아이를 사랑한다면, 가서 말해.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노인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다.

 

 “그렇게 땅만 보면 나처럼 후회하게 될 거야.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네. 망설이지마.”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 고개를 들었다.

 

 “알겠어요.”

 

 “그래 그거면 됐어. 그럼 이만 가지. 젊은 친구, 오늘은 선물 줘서 고맙네.”

 

 썰매에 앉아 자신 위에 둥둥 떠다니는 썰매를 올려다보며 남자가 피식하고 웃었다.

 

 “제가 언제 선물을 줬어나요?”

 

 그때였다. 아주 큰 손이 그의 머리위에 사뿐히 내려왔다. 포근하고 따뜻한 손이 차갑게 식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고말고.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쭉.”

 

 “잠깐, 지금 뭐…….”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썰매는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눈앞에는 숲 사이에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달뿐이었다.

 

 사라질 거면 진즉에 사라질 것이지. 남자는 혼자서 키득거리다 빙판을 발로 차보았다. 빙판 울리는 소리와 함께 공허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나 공허함은 이내 곧 사라졌고 노인이 한 말이 여전히 남아 휑한 빙판을 가득 채워 나갔다. 늘 이런 식이었다. 있어야 할 때 정작 없는, 약속도 안 지키는 멍청한 영감. 몇 년만에 와서 한다는 짓이 남의 집 문이나 따고 들어오는 거라니. 그냥 빨리, 조금만 빨리 왔으면 될 것을……. 아니 그냥 조금만 더 빨리 얘기해주기만 해도 될 것을……. 하여간 겁은 많아가지고…….

 

 실컷 욕을 하니 문뜩 피곤함이 느껴져 눈이 흐려졌다. 그는 눈을 닦아냈다. 어찌보면 노인이 그에게 선물을 주지 않은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산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으니까.

 

 어디서 ‘호호호’ 소리가 울렸다.

 

 뭐 아무렴 어때.

 

 달을 뒤로해서 산타가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산타를 향해 남자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메리크리스마스, 아버지.”

 

 

 

 

 ***

 

 뒷이야기.

 

 별빛을 한껏 눈에 새기며 그는 조용히 자리를 일어났다. 뭘 해도 겁많은 바보 같은 양반. 그게 사실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지나쳐 갔다. 설마. 피식하고 웃음이 살며시 흘러갔다.

 

 빙판에서 나왔을 무렵, 문득 계속 잊고 있던 생각이 그제야 머리를 때렸다. 진짜 못된 영감이야. 그는 씩 웃으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갑을 잊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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