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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푸른 하늘 발 아래; 鱗
작가 : 동그라미네모선
작품등록일 : 2020.5.15

그의 존재는 악당이라는 말도 아깝다. 악당보다는 악마, 악마보단 포식자에 가까웠고. 그 포식 대상은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에 가까웠으니까.

 
3.통제(統制)
작성일 : 21-01-15 18:07     조회 : 347     추천 : 0     분량 : 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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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푸른 1008년 3월 17일. 황위 계승권 1위인 텍트무어 공작의 버금가는 존재, 레인슐레이츠만 비헤일리스 백작은 이날 공작의 부재로 황실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바로 오늘, 현 황제의 첫째 자식 리안투르누 지홀 피안바스토가 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황태자 책봉식을 거행한다. 이것이야말로 당신이 익히 글로 익혀 알고 있는, 이 피안바스토 제국에 유례없던 –이름하여, 부패의 상징인- 혈연계승.

  그러나 황태자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 이 촌극보다 더한 일이 벌어진다. 황궁에서 황제의 수석 보좌관이자 반려이기도 한 이벨리카 지첸카 피안바스토가 독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황성을 넘어 제국의 큰 치욕이 된다.

  수석 보좌관의 죽음으로 인해 장내가 숙연했다. 자리에 의무적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던 귀족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 사리 분별이 뛰어난 그들은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든 제 살 깎아 먹기란 것을 안 그들처럼 자신의 친우이자 반려를 잃은 황제 또한 슬픔이 덮쳐오는 와중에도 초대에 응한 귀족을 유순히 돌려보낼 뿐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풍경이었다. 비명과 울음 대신 침묵이 쌓인, 화려하게 치장한 회장으로 초대받았던 자들이 열을 지켜 빠져나갔다.

 

 「긁적긁적」

 

  실제 말을 본떠 만든 미모스 마차에 올라탄 백작이 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손이 자연스레 자신의 멱으로 향했다. 힘 조절도 없이 긁적이는 통에 그 손끝은 얼마 안 가 붉게 물들었다.

  그의 눈망울에 비친, 하늘에 쏘아진 하얀 먼지와 같은 구름이 황혼에 눈부시게 빛난다. 그 빛을 받은 목걸이의 보석이 짙은 색을 띠며, 저를 속박한 고리 아래서 살살 움직였다.

 

 「뚝」

 

  뚝뚝. 마치 문을 두드리듯 균일한, 그리고 습관적인 소리가 백작의 손톱을 타고 보석 아래로 떨어졌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아주 짧지도 길지도 않은 레이스가 금세 붉어졌다. 그러나 그 붉은 기는 한 떨기 꽃처럼 겹겹이 쌓인 레이스를 벗어나지 않았다.

  두 개의 저택 사이에 있는 포탈이 열리고 금세 익숙한 풍경이 백작을 반겼다. 거대한 나무로 감싸진 드넓은 벌판을 비롯하여 그 앞에 자리한 백색 성과 적색 성이 각자의 색을 띠고 있었다.

  이윽고 숲을 등진 백색 성 앞으로 마부 없는 마차가 멈췄다. 나무로 보이지만 충격을 잘 흡수할 만큼 잘 휘어지는 바퀴가 멈추자 마차의 중앙 부분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마차의 문을 열고 나온 백작의 모습은 저택을 나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정한 매무새였다. 그의 옷깃은 언제 풀어 헤쳐졌냐는 듯이 빳빳하게 각이 져 있었다. 마차에서 차분하게 내린 그의 시선이 아래서 위로 향했다.

  서늘하게 돌아온 시선 속에 황혼에 물들기 시작한 백색 성이 가까워졌다.

 

 「톡톡」

 

  그런 백작의 걸음을 따라 단단한 바위의 표면 위로 동백꽃의 눈물이 떨어지듯 새빨간 방울들이 가볍게 제 모습을 깨며 가련한 족적을 남겼다.

  기둥 모퉁이를 돌아 현관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을 귀신같이 알아챈 누군가가 중앙 층계참으로 향하는 그에게 다가왔다.

 

 “백작.”

 

  그 기척에 백작이 뒤를 돌았다. 그러자 강렬한 석양빛에 암흑으로 가려졌던 그의 얼굴이 제게로 다가오는 이를 향해 환히 드러났다.

 

 “황성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석양빛으로 엷붉게 물든 그의 얼굴에 보좌관의 눈매가 희미하게 휘었다. 미묘한 표정. 자신의 보좌관을 본 그는 생각했다.

 

 “소식 한번 빠르군.”

 

  그런 생각을 한 그는 다시 몸을 돌려 계단을 올랐다. 그 움직임에 좀 전까지 무뎌졌던 감각이 성에꽃 피듯 날카롭게 솟기 시작했다. 수십. 그 정도의 것들이 자신의 걸음마다 느껴졌다.

  소곤대는 그 소리가 제 귓가를 좀 먹어도 그의 표정은 유리관에 갇힌 맹약의 꽃처럼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의 걸음을 따라 찬란한 금발을 휘날리며 계단을 오르던 보좌관이 저보다 작은 백작의 안색을 집요할 정도로 살폈다.

 

 “괜찮으신 겁니까.”

 

  그 시선에 백작의 걸음이 멈췄다. 2층과 연결되는 층계참을 앞둔 계단에서 멈춰선 그의 투명한 눈망울이 보좌관에게 향했다.

 

 “예.”

 

  그만. 하얀 얼굴에 입꼬리만 올린 그의 표정이 보좌관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뜻을 알아들은 눈치인지 백작을 바라보던 보좌관이 잠시 멈칫했다.

 

 “….”

 

  자신의 경고에 조금 얼어붙은 보좌관을 남겨둔 채 위로 백작이 몸을 돌리자,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보좌관이 신수가 훤한 얼굴을 이용해 두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앞서가던 백작을 금세 따라잡았다.

  제 의도와는 달리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자신을 따라오는 보좌관의 걸음에 백작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나왔다. 말없이 걷는 두 사람의 구두 굽 소리가 한적한 층계참을 울렸다.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 3층에서 4층, 4층에서 5층으로 올라서는 그의 귓가에 아직 앳된 티를 못 벗어난 소리가 들려왔다.

 

 「스물둘」

 

 「일곱」

 

 「여섯」

 

 「셋」

 

  현관과 바로 마주하고 있는 중앙 층계참에서부터 그 위로 쭉 이어져 있는 최상층까지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그의 지침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하나」

 

  그 지침을 따라 최상층에 오르자, 어린 듯하면서도 조금 깔깔한 목소리가 횃불에 그슬려놓은 빙벽에 갇힌 것처럼 끊겼다. 그런 탓인지 자신의 귓가에 나비처럼 내려앉던 가벼운 소리에 잠시나마 귀를 기울이던 백작의 짙은 속눈썹이 스르르 떨어졌다.

 

 ‘소리가….’

 

  눈동자를 굴린 그가 하얀 벽에 감싸진 듯한 검정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른 것과 달리 직사각형에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그 문은 어떠한 문양도 조각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손잡이가 없었다면 문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밋밋했다.

  복도 안쪽에서 멈춰선 백작의 그림자가 어두운 바닥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미묘한 시선을 따라 옆에 있던 밋밋한 문을 지나쳐, 그와 대비될 만큼 반질반질 윤이 나는 문을 바라보던 보좌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하.”

 

 “예.”

 

  보좌관의 부름에 두 쪽으로 나뉜 문을 따라 양쪽으로 달린 금속성 손잡이를 잡은 백작의 손이 멈췄다.

 

 “…자세한 얘기는 안 해주실 생각이시군요.”

 

 “예. 그러합니다.”

 

  역시나 보좌관의 물음에 짧게 답한 백작이 잡고 있던 문고리를 마저 돌렸다. 그렇게 열린 문틈을 보던 그는 너무도 확연하게 차이 나는 방 크기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작아.’

 

  쌍으로 난 여닫이문을 잡은 채로 가만히 서 있던 그가 자신의 눈으로 거슬리는 부분을 속속들이 짚어냈다. 평평한 문지방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까만 석제 책상과 서류 더미 그리고 천장 한가운데에 어둑하게 자리 잡은 네모난 유리 조명이라….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공간이, 그의 시야에서는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침구와 그와 마주한 별도의 옷방까지 한눈에 보였다. 거기에 잡다하게 들어찬 가구와 잡기라니.

 

 ‘흠….’

 

  제 방이 당장에 거추장스러워진 것을 안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거북스러워 보였다. 눈앞의 공간이 실제 크기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작아졌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그의 투명한 눈망울이 자신의 뒤에서 가만히 있을 뿐인 보좌관에게로 향했다.

 

 “오늘은 정리를 좀 해야겠습니다.”

 

  어쩐지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자신을 반겨야 할 것이 없다 했더니, 유능한 집사께서 먼저 손써둔 것임이 분명하리라.

 

 “저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채도가 미묘하게 다른 자색의 눈망울이 제게로 향한 것을 느낀 미하엘 브리텐슈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런 남자의 얼굴엔 자신이 보필하는 상관의 방 구조가 바뀐 것에 대한 놀라움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저하께서는 제게 답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을 돌아본 백작을 향해 고개를 갸울인 보좌관이 곱게 휘어 보인 눈시울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긴 속눈썹 사이로 숲을 녹여 만든 황금처럼 빛나는 녹금색 눈망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가능하시겠지요?”

 

  높은 신장을 이용하여 백작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인 그의 머리칼이 사르르 흘러내린다. 천천히. 자신을 타이르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한쪽 눈썹을 살짝 들썩이던 백작이 그에게 뒤통수를 보였다.

 

 “좋습니다.”

 

  대답을 마친 그가 턱 없는 경계를 넘었다. 썰렁한 벽을 배경으로 한 책상 앞에 멈춰선 그는 뒤를 돌아 자신을 향해 다시 정중한 표정으로 돌아온 보좌관을 바라봤다.

  백작의 시선에 걸음을 멈춘 보좌관이 새삼 천연하게 표정을 지었다. 걱정되어 미치겠다는 것을 꾹꾹 눌러 담은 표현이 기가 막힐 정도로 탁월하며 애잔하다. 그것은 제 눈앞에 있는 백마와 다를 바 없었다.

  백작은 저와 거리를 두고 선 미인의 얼굴을 보며 그와 짧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제 머리 위에서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밤손님의 시선을 따라 그 투명한 눈망울을 아래로 내리깐 그의 호흡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시선을 내린 그의 표정, 호흡, 몸짓까지 겉으로 보기에 특색 없는 분위기가 밤손님의 눈길을 피해 갔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나쁩니다.”

 

  상대의 묻는 말에 그가 무심히 대꾸했다. 보좌관의 시선이 제 옷깃으로 쏠리는 것을 느낀 그의 눈꺼풀이 반사적으로 아래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하엘이 예상한 대로 백작의 턱 밑으로 언뜻 붉은 생채기와 그 안에 고운 모래 가루처럼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보좌관의 시선이 백작에게 완전히 고정됐다.

 

 “상처가… 더 벌어졌습니까?”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러운 감정을 나타내는 그의 표정에 곰곰이 답을 생각하던 백작이 미간을 좁혔다. 자신에게 있어 어느 ‘정도’여야 더 심각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 스스로 아리송한 참이었다.

 

 “조금?”

 

  턱 아래에 모조리 긁혀 있는 제 상처를 스스로 가늠하던 그가 자신의 대답이 모호하다는 것을 인지하곤 새하얀 블라우스의 깃을 올렸다. 상처를 직접 보이는 것이 이 지루한 대화를 더 빨리 끝내리라.

  옷깃에 둘린 크라바트 매듭을 능숙하게 푼 그가 풍성한 레이스가 달린 비단을 단숨에 끌러냈다. 하얀 비단에 백금 자수가 새겨진 크라바트를 탁상에 놓은 그가 답답할 정도로 채운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었다.

  그러자 그 속에서 은은한 조명을 받아 휘영청 빛나는 보석이 반짝였다. 그러한 장신구를 두른 백작의 목은 살갗이 모조리 패여 그 살가죽을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조금이 아닌가?’

 

  불그죽죽한 상처를 배경 삼아 단단한 고리에 매인 녹색 세공품은 그 주위에 있는 모든 빛을 빼앗으려는 듯이 탐스러운 빛깔로 제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보석, 보석, 보석. 아, 이 희귀한 돌멩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그것은 참, 인간의 변명 따위를 위해 탄생한, 마치… 목줄인 것처럼 일생을 반짝반짝.

  석류석이라는 보석의 표면이 이름과는 같지 않게 푸른색을 띠며 윤기를 뽐냈다. 정작 그 주인인 백작의 안색은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목숨을 서서히 빼앗기는 사람처럼 창백했는데, 그런 주인의 낯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빛나는 그 보석의 빛깔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조금?”

 

  그 생생한 빛깔과 함께 순백의 천 자락에 가려졌던 짙은 피비린내가 장내를 파고들었다. 공간을 서서히 침식하는 그 불쾌한 기운에 레인의 불그죽죽한 상처를 눈으로 훑던 미하엘의 눈동자가 일순 분노로 물들었다가 곧 잠잠해졌다.

  화인지 짜증인지 모를 정도로 표정 관리를 할 수 없던 그가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상대방을 바라봤다. 상처를 앓는 상대에게 다가가야 하는 자신이 흉흉한 기운을 풍길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잠시 보겠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몇 걸음 옮긴 미하엘이 하얀 옷깃 사이로 드러난 상처를 살피기 위해 레인의 뒷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쳤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에 기댄 레인의 무게감을 느끼며 시선을 내린 그는 그동안 어림짐작하고 있던 상처가 더 심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받치고 있는 레인의 턱 밑부터 그 아래로 난 빗장뼈 부근까지 불그죽죽한 상처가 골고루 번져 있고 그 붉은 표면에는 그가 예상한 대로 빛도 없이 반짝이는 미세한 입자가 빠짐없이 들어차 있었다.

 

 “…전보다 심해졌군요.”

 

  앞의 멱부터 뒤편의 목덜미까지 살핀 그가 여전히 반짝이는 입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의 표정을 눈 감고서도 알 수 있던 레인이 습관적으로 대꾸했다.

 

 “별거 아냐.”

 

  호들갑. 보좌관의 말에 착실히 대답하던 그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러나 미하엘은 태연한 당사자와 달리, 비헤일리스에서도 ‘괴물’이라 불리던 그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착잡할 뿐이었다.

  이렇듯 미하엘을 향한 레인의 반응은 겉보기에 상당히 협조적이었으나, 실속을 살피자면 겉만 번지르르한 개살구 같은 태도와 다름없었다.

 

 「톡, 톡」

 

  채 마르지 못한 핏방울이 손톱 끝에 맺혀 핑그르르 돌다가 바닥으로 톡 하고 떨어졌다. 너무나 사소해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소리마저 알아차린 보좌관의 고개가 움직였다.

  레인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미하엘의 온기에 안도하며 뒤에 있는 탁상 모서리를 두 손으로 짚었다. 미하엘은 은근히 자신을 밀어내는 듯한 느낌에 그와 멀어지며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상관, 친구, 보호자 등의 관계를 떠나서 그의 태도가 영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이런 꼴을 보고도 걱정 안 하는 보좌관이 미친 겁니다. 백작.”

 

  ‘얘가 진짜 왜 이러지?’라는 듯이 백작을 바라본 보좌관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도 상처지만, 입자가 그 안을 점점 더 파고들며 빛을 발하는 세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미친 사람 있으면, 미친 사람도 있는 거지.”

 

  안 그래? 미하엘에게 상처를 보여준 자세 그대로 얼굴을 들고 있던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보좌관의 걱정을 뻔뻔하게 물리친 그의 희미한 시야에 어둑한 천장에서부터 푸른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후….”

 

  실로 속이 탄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가 완벽에 가까운 불통을 해내고야 만 눈앞의 백작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살짝 피하듯이 아래쪽에 난 푸른 자국을 보던 레인의 눈동자가 천장에서 나는 소리에 위로 향했다.

 

 「…니야!」

 

  그것은 마치 벽 너머에서 들리는 말소리와 같았는데, 그 소리가 워낙 작아서 청력이 좋은 레인이 겨우 귀를 기울여야 했다.

 

 「…ㅏ!」

 

 「…차!」

 

  그가 귀를 기울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소리와 함께, 어둑한 허공에 그려지는 얇은 선이 가느다란 달 조각처럼 빛났다. 그리고 그 소리를 향해 움직인 투명한 눈동자가 어둠에 뜬 달 무리를 한가득 안고 있었다.

 

 「차차!」

 

  그 얇은 호선이 백작의 시선을 알아차리고선 바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차차, 내 말 좀 들어봐!」

 

 「아냐! 내 말부터 들어봐야 해!」

 

  여러 목소리가 뒤죽박죽 엉망으로 섞인 허공 속 대화는 책상에 기대서 있던 그의 귓가에 빠짐없이 쏙쏙 들어왔다.

 

 「…거 몇 번이었지?!」

 

 「몇 번이었어?!」

 

 「여섯 번이랬지?」

 

 「아니야! 일곱 번이지?」

 

 「몇 번째까지 왔었어?」

 

  정신없이 몰아치는 질문 세례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백작의 시선이 보좌관에게로 향했다. 그들이 말하는 ‘횟수’에서 관심을 돌린 지 꽤 오래전 일, 그렇기에 그것을 아는 이에게 바로 물어보는 것이 빨랐다.

 

 “지금까지 몇 번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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