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선은 대모가 항상 어려웠다. 제 비밀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쉽지 않은 법이었다.
- 그냥 내가 피에 미쳐 문걸로 하는 게 좋겠다.
입가에 피를 닦고 곰방대를 문 대모가 말했었다. 목을 물린 단야는 죽은 듯이 이불 위에 쓰러져 있었다. 선이 그에게 다가가 바로 눕히고 이불도 목 아래까지 덮어 주었다.
곁에 있고 싶어서 그랬다면, 너는 나를 원망할까. 쏘아 보며 욕을 퍼부을까.
그런 걱정을 잠식시킨 건 대모의 제안이었다. 선이 물어 달라한 건 없던 일로 하고, 제가 피에 목말라 문 걸로 하자고. 왜 그러냐는 물음도 못했다. 그렇게 하자는 이유도 없었다. 선은 그저 단야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단야의 얼굴을 한 번 내려다 본 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모는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있었던 일이 없어질 순 없었다. 잘 흘러내리는 천으로 대충 덮어 놓았을 뿐이었다. 그 후로 대모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제 모든 걸 아는 것 같았다. 단야의 모든 것도.
*
“어떻게 아셨어요.”
“죽이진 않았더구나. 난 네가 죽일 거라 생각했는데.”
대모의 빨간 입술은 지긋지긋했다. 그럼에도 단야가 여기까지 찾아온 건 다 윤오 때문이었다. 윤오를 위험하게 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했다.
“정윤오가 9층에 있는 거. 어떻게 아셨냐니까요.”
“내가 지금 이렇게 뒷방 늙은이처럼 앉아서 너한테 협박이나 당하고 있어도, 그래도 내가 이 병원 이사잖니?”
협박은 무슨. 단야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거 평생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차피 답은 못 들을 것 같았다. 단야가 뒤를 돌았다.
“괜히 병원 헤집고 다니지 마라”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꽤 엄중했다.
“내가 널 이 병원에 둔 건 나중에라도 쓸모가 있었으면 해서야. 괜한 일 벌이지 말아라.”
대꾸도 안하고 문을 열었다. 쾅 닫는 소리가 충분히 답이 되었을 거였다.
난 당신이 싫어. 정말 싫어.
마을에 살고 싶었다. 함께 살던 사람들과 살고 싶었다. 피를 먹는 자가 되고 다시 찾은 시댁에서 받은 건 괴물 취급 뿐이었다. 사내랑 바람이 나서 도망갔다는 말로 보름을 족쳐도 묵묵히 참고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넘게 피를 안 먹고 살 수는 없었다. 제 며느리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먼저 느낀 시어머니는 달밤에 산에 들어 갔다 입에 피를 묻히고 오는 며느리를 발견했다.
- 괴물년아!!! 우리 아들 잡아 먹으려고!!!!!
돌아갈 곳은 결국 대모와 선이 있는 산 속이었다. 머리는 산발이 돼서, 신발 하나를 잃고 돌아온 길 끝에 대모가 서 있었다. 마루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무릎을 모으고 마당만 내다보는 단야의 어깨에, 대모가 손을 올렸다. 되도 않게 포근한 느낌이어서, 단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나를 이 괴물로 만든 여자. 그 여자가 나를 위로하고 있다니.
“손대지 마세요.”
단야의 말에 대모의 손이 금세 떨어졌다. 잠시나마 저 손에 포근함을 느꼈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배를 곯아서, 피에 미쳐서 제 목을 문 이에게서 평안함을 얻으려 했다니. 산골 집에서 함께 산다는 건 쉽지 않았다. 단야는 매순간 그 포근함에 젖지 않고자 노력했다. 대모에게 화를 내고, 작은 걸로 짜증을 냈다. 이게 사는 거냐. 콱 죽어버리겠다 말은 하지만 죽지 못하는 걸 알기에 더 절망적이었다. 선까지 저를 잡고 왜 그러냐 물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모는 그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저를 질타하거나 제게 큰소리 낸 적이 없었다.
“배고파요.”
더 이상 헤매거나 갈 곳은 없었다. 여기가 제 집이었다. 저와 같이 피를 먹고, 평생을 살 사람들이 있는 집. 그걸 인정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옆에서 견뎌준 건 대모였다. 결국은 대모의 옆자리라는 걸 단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모는 정말 제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업에 대해 가장 먼저 알려준 것도 대모였다. 하긴, 대모 말고는 그런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공중에 물건을 띄우고 끌고 당기는 것, 다른 인간들보다 더 힘이 세지는 것, 그리고 타인이나 저 스스로의 병증을 치유하는 것까지.”
어느 날, 대모가 단야를 앉히고 조곤히 말했다.
“끔찍한 생에 유일한 축복이네요.”
퉁명스런 말투에도 대모는 성내지 않았다.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축복인 줄 알았던 것들이, 실은 저주였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지.”
그게 민호를 잃는 순간이 될 거라곤 그때 단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에겐 업이 있다. 평생 영원한 사랑은 없을 것이며, 그렇기에 사랑을 한다 생각하는 순간에도 평생 외로울 것이고. 그 축복은 정작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거니까 제게는 그 무엇도 해당하지 않을 얘기네요.”
단야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시댁에서 쫓겨나면서,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사랑이든, 정이든 인간 간에 주어지는 그 어떤 애틋한 마음도 제게는 이제 없을 거라고.
“사람을 못 만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겠습니까.”
그 말은 역설적으로 사람을 만나면, 사랑을 할 수도 있다는. 그 축복 같은 저주를 알고서도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말이었음을, 단야는 훗날 알게 되었다.
“난 정말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없어.”
쇼파에 다리를 겹치고 앉은 단야가 딱딱한 목소리로 선에게 제 마음을 털었다. 대모 얘기를 같이 할 사람은 선밖에 없었다.
“넌 어떻게 그 여자랑 그렇게 잘 지낼 수가 있어?”
항상 능글거리며 제 말 하나하나 다 받아치는 선은 이상하게 대모 얘기만 하면 입을 다물었다. 한 번도 그 이유를 물은 적은 없지만 단야는 저랑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두 갈래로 나뉜 마음이었다. 미움과 안쓰러움. 대모를 볼 때면 그런 마음들이 제 안에서 엉켰다. 단야는 영원을 사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니 저보다 더 긴 영원을 살고 있는 대모가 안쓰러웠다. 그는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끔은 그렇게 보이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러다가도 대모가 미웠다. 자신도 영원을 사는 외로움이 뭔지 알면서, 어떻게 자신을 그처럼 만들었을까. 영생을 견디는 게 어떤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랬을까.
단야는 이러한 의문들을 혼자만 안고 있었다. 선은 단야가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할때마다 모른 척 피했다.
“나 갔다 올 때까지 자지 말고 기다려!”
지금 이렇게. 자기나 나나 안 자는 거 알면서 선은 장난스런 얼굴로 단야의 작업 마무리를 하러 나갔다. 팔랑팔랑 흔드는 손에 문이 닫히고 등을 돌린 선의 눈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
병원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항상 미지수로만 표기 되었던 그 ‘무언가’는 규희 덕분에 풀렸다. 규희는 죽기 전 윤오에게 꽤 많은 단서들을 남기고 갔다. 윤오가 할 일은 그 단서의 퍼즐을 맞추고, 찾지 못한 조각을 찾고, 그것들의 증거까지 찾는 거였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백신을 개발하려는 거죠?”
규희가 죽기 전 윤오는 그에게 취재하다시피 질문했다. 제가 덤벼들어 물다 매맞고 쫓겨난 꼴이 됐지만, 그래도 문 자리와 그 느낌은 명백히 기억하는 법이었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저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대로 움직였어서...”
“위에서요? 누가 위에 있는데요?”
윤오가 단어 하나 놓치지 않고 물었다. 그런 윤오를 단야와 선은 내버려 두었다.
“죄송해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네.”
“저희 백신 개발 TF팀장님이 한성근 과장님이셨어요. 과장님은 아실 거예요. 윗선에 보고를 하고 연락을 주고 받던 게 다 한 과장님이시니까.”
“한성근 과장님이요?”
윤오가 단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군지 알아. 백신 개발 쪽으로 정평이 난 사람이야. 아마 우리 병원도 그 쪽 전문으로 들어왔을 거야.”
“만나보신 적 있으세요?”
“그냥 오다가다 한 번.”
단야가 하는 말을 윤오가 빈 종이에 빼곡히 쓰고 있었다. 선이 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종이를 읽었다.
“어떤 사람이에요. 한 과장이라는 사람은.”
“되게 야심 있는 사람이에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부드러움과 강함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되게 센 편이죠.”
규희의 말에 단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였어요. 첫 만남 때 나한테 이사님이랑 꽤 친한 사이 아니냐고 묻더라고.”
“걘 그걸 어떻게 아는데?”
단야 말에 선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몰라. 아무튼 되게 눈빛이 뭔가를 품고 있는 것 같았어. 좋은 느낌보다는 그 반대.”
“맞아요. 저희 백신개발팀도 한 과장님 때문에 몇 번이나 큰소리가 났었어요. 어떻게서라도 빨리 백신이 개발돼야 한다며 닥달하는데. 사람이 몇이나 죽어가는데도 안나오는데 어떡하냐며 한 선생님이 들이 박았거든요. 그런데 눈 깜짝 안하고 그럼 얼마나 더 죽어야 해? 하는 거 있죠. 되게 사람 이상한 데를 건드려요. 그 선생님한테 그러는 거예요. 너 의사 아니냐고. 의사가 사람 살리는 거지 사람 죽여 가면서 이러고 있는 거 부끄럽지도 않냐고. 웃겨요. 되게 맞는 말인데 거기서 자기는 쏙 빠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죽지 않게 빨리 개발해야하지 않겠냐고.”
규희는 다시 절망 어린 목소리를 냈다.
“그 말에 찔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내가 이렇게 잘 못해서 사람들까지 죽여가면서 이러고 있구나.”
“규희 씨. 그건...”
단야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알아요. 제 잘못만은 아니라는 걸. 근데 한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어요. 한 과장님도 자신에 대해, 환자들에 대해 저만큼이라도 생각할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과장님은 왜 그렇게 백신을 개발하고 싶어하셨을까요?”
모두가 규희를 보았다.
“저는 그게 환자들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야 씨.”
쇼파에 앉아 제가 적은 종이를 뚫어져라 보는 윤오 옆에 단야가 앉았다. 윤오는 날이 갈 수록 더 늘어나는 자료를 붙들고 있었다. 어떤 날은 집에 아주 늦게 들어왔고, 아예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단야는 윤오가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건지 여전히 잘 몰랐다. 지금 하고 있는 있는 걸 봤을 때, 그건 윤오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윤오 말에 따르면 그건 윤오를 위험하게 만들 일이었다.
“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항상 어리게만 보였던 얼굴은 진지한 빛으로 가득했다.
“이 리스트에 있는 약품이요. 이거 병원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랑, 그리고 여기 동그라미 친 거 이 약품들의 부작용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근데 혹시 어려우시면 괜찮아요.”
묻는 얼굴이 간절하고 진지해서 드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어진 답이 아니었다.
“도와줄게.”
그 답에 윤오의 얼굴이 환해졌다. 간만에 보는 환한 얼굴이었다. 단야는 저 얼굴을 잡고 입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했던 답이었다. 그 얼굴이 간절하고 진지해서가 아니라, 그 얼굴이 저렇게 환해지는 걸 보고 싶어서.
“필요한 건 다 도와줄게.”
그 환한 얼굴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단야랑 싸우셨어요?”
대모의 집을 찾은 선이 립스틱을 덧바르는 대모에게 물었다. 방금 단야의 집에서 작업 처리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걔가 나랑 싸울 위치니?”
그럼 문자는 왜 하셨는데요. 선이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단야는?
이어지던 문자도 아닌데 가타부타 보낸 문자에 처리 후 집으로 향하던 핸들을 돌렸다.
“너 단야 집 들어갔다며.”
“네.”
“왜? 걔 때문에?”
웃음기 가득한 말에도 선은 웃지 않았다. 네. 맞아요.
“많이 용감해졌네. 성선.”
“왜요.”
“단야 제 집에 누구 들이는 거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
“정윤오는 들였잖아요.”
윤오가 단야 집에 산다는 거, 그리고 아마 정윤오가 단야를 좋아한다는 걸 대모에게 말한 것도 선이었다. 선은 대모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전했다. 그건 다 단야에 관한 것이었다.
“직접 물어보시지 그래요.”
“뭘.”
“궁금하신 거 많잖아요.”
선은 그게 대모의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