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데요?”
“혹시 우리에게 파수꾼 능력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
“아니요. 우리가 파수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제 창현씨도 다 알고 있어요.”
“그럼 저들은 대체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겁니까? 파수꾼은 꿈으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전부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가 꿈을 꾸어서 어느 장면을 보았는지 알았고, 역으로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파수꾼의 능력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창현의 말에 윤선은 기특하다는 듯 말했다.
“그걸 질문하는 사람은 이 많은 파수꾼들 중에서도 창현씨 하나뿐이네요. 사실 우리 연구소도 그것 때문에 지금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요. 지금까지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전혀 없던 일이라 그림자가 어떤 방법으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거든요. 상부에서도 지금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난리를 치고 있어서 우리도 죽을 맛이에요. 아무런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뭘 알아내라는 건지. 어렴풋이 추측만 가능한 상황이에요.”
“그 추측하고 계신 걸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창현의 질문에 조윤선은 고민하는 듯 잠시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껏 NSR소속이었던 파수꾼들 중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일이라 조금은 허무맹랑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을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들은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신들이 사고를 벌일 현장을 담당하는 파수꾼의 꿈속에 들어가서 그의 꿈을 같이 꾸는 거죠. 그러면 꿈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파수꾼이 대처할지 알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우리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거죠.”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그러니까 막연한 추측인 거죠. 우리도 너무 말도 안 되는 추측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이걸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직접적으로 그들과 접촉해보지 않는 이상 사실 우리도 이렇다 할 수 있는 결론을 낼 수가 없는 현실이에요. 시간이 아직 많이 필요해요. 어떤 부분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우리도 분석 중이에요.”
“그럼 뭔가 밝혀지면 제게도 꼭 전화 주십시오.”
“알겠어요. 창현씨는 그저 몸조심해요. 파수꾼의 안전은 우리 대한민국의 안전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창현은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본부에서도 모른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림자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뜻대로 대한민국을 짓 주무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 나가게 저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림자 놈들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능력을 탓하며 피하기만 한다면 저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분명 무언가 빠트린 것이 있을 것이었다. 창현은 뭐가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 꿈의 시작은 동식과 밥을 먹던 국밥집이었다. 꿈속에서 나왔던 회상 장면은 현실이었고 그 나머지 부분은 모두 그날 하루를 통째로 보여줬던 것이다. 밥을 먹고 식당에서 웬 남자와 부딪혔다. 그리고 동식과 함께 순찰을 마무리하고 집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동식은 편의점으로 향했고, 자신은 라디오를 켜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차 앞 유리에 피가 떨어졌고, 곧장 편의점 건물로 향했다. 옥상에는 노인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었다. 노인을 119에 후송 보내고 건물에서 내려오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남자를 마주쳤다. 남자를 뒤쫓다가 한 빌라 주차장에서 칼에 찔렸고, 그 부분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어느 하나 빠트린 부분도 없었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평소에 꾸던 미래를 보는 꿈과 같았다. 저번 음식점 화장실 살인사건 때 꾸었던 꿈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시한번 또다시 몇 번이고 꿈을 되새김질을 하던 창현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도 평범했기에 창현이 놓쳐버린 장면은 바로 처음 꿈속에서 들려왔던 TV속 앵커의 목소리였다.
‘3주간 벌써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 사건. 하지만 경찰은 아직도 범인의 아무런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해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이에 경찰은 24시 비상업무체제로 전환하여 시민들의 안전한 귀갓길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에 청와대는 강력한 대응 정책 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뉴스도 수십 번의 되새김질을 통해 기억난 부분이었다. 사실 들었는지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매일같이 훈련했던 기억훈련이 아니었다면 이것조차도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훈련소에서 기억훈련은 처음엔 너무나 황당해서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되묻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조윤선 박사는 언제나처럼 씽긋 웃으며 당연하다는 대답을 했다. 기억훈련은 간단했다.
*****
조윤선 박사의 강의실에는 넓은 벽면에 빔프로젝터가 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벽면에는 어느 전쟁 영화의 전투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윤선 박사는 말했다.
“이곳에 나왔던 등장인물을 모두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훈련이에요.”
화면 구석 그마저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기억하라는 것인지 창현은 너무나 막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대체 왜 기억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과연 지금 이 훈련이 대체 꿈으로 미래를 보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억훈련은 창현과 동식의 퇴소 날짜를 정해주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조윤선 박사는 꿈속에서 나왔던 모든 장면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은 파수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말과 함께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여러분 같은 파수꾼들을 제외하고도 모든 사람이 꾸는 꿈은 지금 보는 영화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꿈속에서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고 그 시선 역시나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인 자신에게 맞춰져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멀리 있는 저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꿈을 꾼 것이 아니라 그냥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이 되는 겁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하겠지만, 여러분은 파수꾼입니다. 꿈으로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 중요한 미래를 그냥 꿈에서 이끄는 대로만 기억한다면 여러분은 파수꾼으로써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파수꾼이란 꿈속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사건의 현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을 예를 들어볼까요. 최근 강원도 공장에서 일어났던 화재 사건에서 우린 그림자 일원을 잡았어요. 그 지역담당 파수꾼이 보고했던 내용을 볼까요.”
조윤선 박사가 노트북을 두드리자 벽에 쏘아지던 빔프로젝터에서 해당 지역 담당 파수꾼이 보고했던 내용이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