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유리잔에 담긴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재희는 감자튀김을 소스에 찍었다. 감자튀김은 따뜻할 때 먹어야 바스락거리는 식감이 좋고 고소한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재희는 입 안에 든 감자튀김을 오물오물 씹으면서도 하나를 더 소스에 찍었다.
“여전하구나.”
우진의 말에 재희는 웃음을 보였다.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은 감자튀김을 그렇게 좋아하는 재희가 뱃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을 무척 궁금해 했었다. 우진도 호프에서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은 터라 감자튀김을 열심히 먹고 있는 재희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여기 한 잔 더 주세요.”
우진은 3분의 1쯤 남은 맥주를 마저 비우고 한 잔을 추가로 시켰다.
“더 마실래?”
“아니, 난 한 잔이면 충분해.”
재희의 잔에는 아직 맥주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뚝섬은 마음에 들어?”
“응, 새로 지은 건물이라 아주 좋지.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 활동 하는 느낌?”
“정말?”
“그럼, 대학 실습실과는 비교도 안 돼.”
“우와 좋겠다.”
“넌 후회 안 해?”
“나? 아냐. 지나고 보니까 이 일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그러면 다행이고.”
“우진이 너 같은 화가들이 팡팡 터져줘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느려도 너무 느려.”
재희의 말이 끝난 후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우진과 재희는 우 화백과 김 교수를 떠올렸다. 둘 다 재희가 느리다고 말한 이유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갑자기 되겠니? 복잡한 문제잖아. 아직 미술작품을 즐기고 감상하는 문화가 대중적인 것도 아니고. 하지만 언젠가는 되겠지.”
“우리나라에도 왓슨 같은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야 되는데 말이야. 그런 컬렉터들이 있어야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잠깐만!”
“왜?”
“잠깐만 우진아!”
재희는 스마트폰을 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왓슨의 얘기를 하던 중에 퇴근길 블루문에서 보았던 로봇 그림의 작가가 생각난 것이다. 스마트폰의 사진을 빠르게 넘겨보던 재희는 지난 번 킨텍스에서 찍었던 ‘로봇 올랭피아’를 찾아낸 후 ‘예스!’라며 짧은 환호성을 질렀다.
“여보세요?”
“부장님! 저예요.”
재희는 아빠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현대미술평론가협회의 사업본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재희씨!”
“밤에 죄송해요. 뭐 좀 여쭤볼 게 있는데 괜찮으세요?”
“괜찮지 그럼. 무슨 일?”
“지난 번 킨텍스 아트페어에서 눈 여겨 본 작품이 있는데 작가 연락처를 좀 알고 싶어서요. 거기 후배분이 근무하신다는 말 들었던 것 같아서.”
“어, 그럼. 후배가 페어 담당이지. 확인 해 보고 바로 연락 줄게.”
“예! 감사합니다. 부장님.”
재희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부장의 전화를 기다렸다. 잠시 후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예! 부장님!”
“어, 재희씨! 그게 말이야. 그 친구가 지난 번 페어를 마치고 9월 1일자로 자리를 옮겼다는데?”
“헉!”
“일단 후임한테 물어는 보는데, 전산자료가 대외비라서 참가자 신상까지 확인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네. 어쩌지?”
“아! 어쩔 수 없죠 뭐. 아무튼 고맙습니다. 부장님.”
부장과 통화를 마친 재희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미안.”
“아니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급한 전화가 있어서.”
재희는 우진과 맥주를 마시는 내내 스마트폰 속 그림을 들여다보며 작가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