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꼭 여자처럼 그렸잖아."
"더러운 새끼. 이 자식 게이야! 우릴 잡아먹을지도 모른다고!"
남학생들은 미술실 뒤편에 그려진 자화상 그림을 보며 수군거렸다. 그들이 보는 자화상에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여성의 모습과 닮은 짧은 머리의 남학생이 자리에 앉아서 학생들의 시선을 피했다.
"야! 너 여자야? 가슴 있냐고."
불량한 학생 한 명이 자리에 앉아 있는 짧은 머리 남학생에게 가서 그의 가슴을 더듬었다. 다른 학생들이 그 상황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짧은 머리 남학생은 양팔을 교차시키며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이야. 이 새끼 봐라. 가슴이 좀 튀어나온 것 같은데. 한 번 더 만지게 해주라. 혹시 거기도 우리랑 다른 거 아냐."
불량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에게 보란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다 같이 짧은 머리 남학생을 놀렸다.
"뭐야! 이게 무슨 소란이야!"
미술실 문이 벌컥 열렸다. 미술 선생이 교실에 들어왔다.
"아직 수업 중인데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래! 너희들 다 운동장에 가서 얼차려 받고 싶어!"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학생들이 미술 선생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로 돌아갔다. 미술 선생은 회초리로 교탁을 소리 나게 두드렸다.
"이것들이, 남이 그린 거 보면서 감상하라고 했더니 떠들고 있고! 감상 다 했어? 수행평가 과제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해도 되겠지?"
그의 성난 물음에 학생들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조용했다.
마침 점심시간 종소리가 울렸다. 학생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미술실에는 미술 선생과 짧은 머리 남학생만 남았다.
"박지민. 괜찮아?"
미술 선생이 자리에 앉아 있는 지민에게 다가갔다. 지민은 고개를 숙인 채로 울음을 삼켰다. 무릎 위로 시꺼먼 얼룩이 졌다.
"이게 다 선생님 때문이에요. 나는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그렸어요. 자화상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을 그리는거라면서요!"
그의 분노한 목소리가 교실에 나지막이 울렸다.
미술 선생은 그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일으켜세웠다. 그는 미술 선생의 손에 이끌려 자기가 그린 자화상 앞에 섰다.
"잘 봐라. 이게 네 모습이야."
지민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 내가 아니에요... 난... 난 여자가 아니라..."
"넌 이게 여자처럼 보이니? 다시 한 번 잘 봐."
미술 선생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눈을 뜨면 자신이 그린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눈을 떠. 네 모습이 어떤지 봐. 얼마나 아름다운지."
속삭이는 목소리를 따라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지민은 자화상 속의 아름다운 남성과 눈을 마주 봤다. 자신이 늘 꿈꾸고, 동경했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이게 나에요."
그가 자화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미술 선생은 지민의 어깨에 손으로 얹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지민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자화상 속에 그려진 아름다운 남성이 그들을 지켜보며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