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할머니와 마지막 걸었던 곳이구나.”
할머니 보내고 어찌 살았느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아비를 원망은 안했느냐? 물음이었다. 수인은 고개를 숙였다. 수인은 아버지를 원망 했었다. 의지하고 살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수인은 힘들었다. 매일 할머니 생각에 울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오래 슬퍼 할 수도 없었다. 때로 어려움이 있을 때 할머니가 겨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리움이 시간이 흘렀는데도 비가 온다든지 계절이 바뀌어 자연의 변화를 접할 때는 예외 없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오래 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그리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할머니가 그리운 아들을 만나 마지막 걸음을 걸었던 것처럼 수인이도 아버지와 나란히 걷고 있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아버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 그러나 또 멀리 가신 다는데 언제 또 만나게 될지 언제나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지 가슴 깊은 숨을 몰아 삼켰다. 그리고 며칠 동안 마젤란을 만나보니 그와 인생을 함께 걸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 외로웠던 탓일까. 그와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를 의아하게 하였다.
마젤란과 음식을 함께 먹었다. 서라벌 차집에 들어가 차도 마셨다. 수인이 집에서 차를 마셔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 너는 언제 까지 혼자 살거니, 마음이 맞는 사람이 그리 없더냐?”
딸이 너무 안 되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세상에 사네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음에 드는 사네가 없다는 것은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인은 마젤란의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지 못했다.
“수인씨!”
앞을 가로 막는 사네가 있었다.
“어머나! 여기는 어찌 아시고.”
상단에 갔는데 장터로 갔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고려의 얼굴이 아니다. 그러타고 저런 얼굴이 외국의 얼굴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고려의 남정네와 달리 생겼다. 볕에 그을린 얼굴도 아니었다. 그런데 낮 설지 않은 얼굴이다. 옆에 걷고 있노라니 그들은 친구라도 되는 양 주고받는 말들이 자연스럽다. 수인은 마젤란을 어찌 소개를 시켜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 속을 알아버린 나는 먼저 아는 척 하였다.
“상도와 아는 친구요? “
수인을 건너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놀라 처다 보았다. 마젤란은 그제야 옆에 사람이 있었다는 걸 인식하고 수인을 처다 보았다. 수인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어색하여 얼른 어찌 하지를 못하는 수인이가 마젤란에게 인사를 한다. 손님이 오셔서 집으로 가는 길이니 내일 만나요. 속삭이듯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집에 같이 가면 되겠네,”
상도가 장터에서 맛있는 반찬을 샀는데, 상도 집으로 가서 상도 요리 솜씨가 어떠한지 합께 먹어봅시다. 나의 스스럼없는 말에 그래도 되는 지를 물었다. 수인은 아버지가 그러한 말을 할 줄 몰랐다. 처음 보는 사내에게 여인이 혼자 사는 집으로 가자고 하니 당황스럽다. 그런다고 아버지의 말을 반대하고 나서기는 용기가 없었다. 반찬거리를 살 때마다 마젤란이 들고 따라다녔다. 그들을 바라보며 둘의 친분이 어제오늘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마젤란은 수인의 집에 오게 되었다. 수인은 오랜만에 그리운 아버지를 만났지만 가슴속에 있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이 않아 둘이라면 어색 할 수도 있었는데 마젤란 때문에 분위기가 좋아졌다.
집안일 하는 사람 도움을 받아 신속하게 음식을 만들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생각나는 대로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 들고 왔던 것이다. 방에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웃음소리가 부엌에도 들렸다.
“그리 멀리서 왔단 말인가?”
그의 말에 호감이 갔다. 인간을 상대하는 사업가라 말하는 것마다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웃어보는 순간이다. 오래 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렸다. 기분도 좋았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무슨 재주가 있는 사람 같았다. 산에서 살아온 탓에 한 마디도 허 투른 말을 하여본 때가 없는 일현은 그가 말하는 소리는 동화를 읽으며 상상하는 기분이다. 더욱이 필리핀의 왕족이라니 더욱 놀랍다. 왕족이 어찌하다가 장사꾼이 되었는지 이야기는 계속 들어 보고 싶었다.
수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반찬과 식사는 그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오래 만에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하였다. 그도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마음이 즐거워 그러했는지 몰라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잘 먹는 것을 보니 수인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수인을 보아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이런 인연도 있을까, 그와 인연이 되려고 여태 혼자 살았단 말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순간이다. 잘 보이려는 몸짓이 분위기 파악은 하는 눈치였다. 밥상이 나가고 셋은 차를 마셨다. 그 이름이 필리핀을 발견한 최초의 탐험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단 말에 그 이름이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왕가에 태어난 왕자님께서 어찌하여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그 이름대로 대륙이라도 탐험하는 마음으로 이곳까지 왔을까, 아니면 수인이의 인연을 찾아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나라로 들어왔을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차를 음미하는 동안,
“마젤란은 처자가 있는가?”
슬슬 관심을 보였다.
“지금은 혼자입니다.”
아직 결혼 할 여인을 만나지 못했는지 시간이 없었다고나 할런지 스님께서 물으시니 고맙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갔습니다. 수인씨를 보는 순간 놀랐습니다. 제가 꿈에서 본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신기 하였습니다. 하늘이 맑아 바다 또한 파랗게 내려와 고운 풍경을 귀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리도 잔잔하여 얕게 보이는 물위에 은 구술 톡톡 튀듯 반짝이는 물보라를 반사시키는 바다위에 서 있었는데 저 멀리 수평선 끝 가물가물 손짓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거리상으로 너무나 멀리 보였지만 여인의 얼굴은 또렷이 보였습니다. 그 여인은 하얀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이 곱고 손의 하얀 피부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가까이 가려고 배를 타고 달렸는데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여인은 두 손을 흔들며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얼마를 애를 써 그 여인의 손을 잡으려다 깜짝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무엇에 홀린 양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랬던 시간이 1~2년의 세월이 지나 갔습니다. 저와 수인씨는 이렇게 만나야 할 인연인 것 갔습니다. 마젤란의 꿈 이야기는 진짜인 것 같았다.
“수인씨와 혼인하고 십습니다.”
마젤란은 일현이 수인의 아버지라는 걸 알아차리고 기회를 잡아 급작스럽게 청혼을 하였다. 수인은 놀랐다. 무어라 말을 하여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동양 법도라면 큰 절을 하려지만 그는 그런 행동을 하였다.
필리핀은 스페인이 장악하면서 카토릭 교와 기독교가 성행하였다. 마젤란은 일현을 보는 순간 예사로운 인품이 아니라는 걸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마음을 졸인다면 허 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일현 앞에서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조심하려 노력하였다. 그랬는데 대사의 인상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딸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보였다. 수인씨가 집으로 모셔올 사람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거리를 두고 분위기를 피하려 하지만 마젤란은 알 수 있었다. 오래 머물러 있을 분이 아니라는 걸 기회를 보다 불쑥 꿈 이야기를 수인에게 털어 놓았다. 수인이 얼마 전에 경주관아에서 공로상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외롭다는 감정을 가진 게 이러한 경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딸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물어볼 일도 아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여기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딸이 마음을 주고 사랑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면 어쩔 것인가. 어머니가 평생 아버지를 그리며 자기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이미 속가를 떠나 남이 된 딸이지만 그녀의 앞날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몰랐으면 몰라도 우연히 이 자리에 함께하는 이상 집고 넘어갈 것이 있었다.
“참으로 당돌 하구만.” 처음만난 자리에서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에 들긴 하였다. 허지만 이 자리에 없었다면 할 말은 없었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상 집고 넘어갈 일은 집어보아야 하지 않겠나 하여 두 사람이 혼인 할 때가 넘은 줄 아는데 늦은 나이에 마음이 맞으면 서로 사모하여 한 집에 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마젤란의 처지로 이곳 고려에서 자식을 낳고 살면서 언제까지라도 사랑하며살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라고 솔직하게 마음을 보이며 처다 보았다.
그러한 문제를 왜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국제적인 사업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곳으로 올 때는 모든 각오를 하고 고려의 말도 2년 동안 배웠습니다. 수인씨와 사업을 합치는 것입니다. 사업은 수인씨가 주인이 되어 운영하고 저는 가끔씩 아시아를 돌면서 사업을 관리하는 역할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 고려에서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 사업의 시대가 몰라보게 발전할 것입니다. 여인 혼자 몸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업 파트너로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습니다. 허락만 하여 주신다면 수인씨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기회를 놓칠까 급한 마음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명하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 혼인이 어림의 반 푼 어치도 먹히지 않을 일이지만 두 사람의 개방된 사상은 사랑을 이해하였기에 가능하였다.
다음 생에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어 대장부의 기계를 세워 볼 것이다. 눈이 모자랄 평야를 걸으며 생각했다. 고려가 통일되어 좁았던 한반도의 땅을 넓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왕건의 기계가 느껴졌다. 그는 지금 하늘의 주인이 되었을까.
푸석푸석 짚신 발고간 자리가 선명하게 그려졌다가 지워지는 평야를 일현은 걷고 있었다. 보부상의 발걸음에 뒤지지 않으려고 걸음을 빨리하였다. 줄을 이어 걷고 있는 보부상들은 말이나, 낙타, 또는 등에 물건을 지고 끝도 없이 걸어간다. 주로 한반도에서 귀한 인삼이나 홍삼을 지고 명의 국경을 넘어 요동이나 산둥 성으로 들어 가기위해 끝도 없는 길을 걷는다. 일현은 바다 길을 택할진대 수월하겠지만 바다 뱃길에 자신이 없어 육로를 택해 명나라에 다녀오기 위해 보부상들과 합류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하루, 이틀, 언제까지 걸어 가야하는가, 발가락이 물집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물집이 터졌는지 아리다. 그래도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걸어가야 한다.
부처는 왜?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안으로 반문해 본다. 세상은 하나다. 우주라 칭하는 인간도 하나다. 그 하나인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 걸어가는 것이다. 수인이가 말을 준비하여 준다는 것을 사양하였다.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명주군왕의 일행을 따라 대관령을 넘었던 철부지 동희가 아니다. 최치원의 자식으로서 대서양 판타지를 경험하기 위함이다.
육조혜능스님이 깨달아 실천한 “머문바 없는 마음”을 찾아 걷는다. 수인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옷을 지었어요.”
아버지께 드리고 싶다며 건네주던 옷을 받았다. 입고 있던 옷을 빨아 가방에 챙겨 넣고 새 옷으로 가라 입었었다. 황야의 공기와 바람과 먼지가 옷 갈피마다 저몄다. 길을 이은 보부상들 행렬이 황야의 곳곳에 쉬어가는 곳을 정해놓았다. 한 무리가 쉬었다 일어나면 다음 무리가 차지하여 쉬어가고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질서가 몸에 배어 있었다. 끝도 없는 황야를 걸어가야 하는 질서였다. 무리 중에 나이어린 소년도 있었다. 그 옆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수인을 생각했다. 내가 출가하지 않고 가정을 지켰다면 수인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아이를 몇을 두었을 나이 가정을 꾸미고 남편과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을 테지. 미향의 뛰어난 상술과 외교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수인이가 고행도 없이 무역업을 하고 있다. 이제 은혜 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행복할 것이다.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면 외로움도 사라지겠지. 새로운 삶이 시작되니까.
수인 어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대관령 반점에서 만남 최달호 병사와 인연이 되어 그의 딸과 혼인하였다. 애틋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이 둘을 낳았다. 결혼도 해 보았고 자식도 가져 보았다. 그랬기에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적었다. 어떠한 마음이 이곳으로 발길을 돌려놓았는지 걸으면서도 화두에 집중하였다. 발에 물집이 생겨 아파왔지만 미지에 대한 발걸음은 이어졌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고려는 변하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중도 사상은 인간을 중히 여기지만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여 평야의 모래를 뒤집어쓰고 매일 걸음을 걷는다. 발의 물집이 굳은살로 변하여 길을 걸어 벌어온 돈으로 가족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걸어야만 돈이 생기는 상인들이다. 며칠을 걸어 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고려인들이 사는 마을이다.
오랑캐에게 끓여가 오랑캐의 자식을 낳고 오랑캐를 남편으로 모시며 살던 여인들이 고려가 개국되면서 북방정책으로 내세운 왕건의 애민정신으로 고려 촌이 라는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곳이 있다. 오랑캐들을 척벌 하면서 고려의 백성들을 챙기는 애민 정신이 그것이었다. 어린것에서 어른까지 강제로 잡혀 갔던 사람들을 한곳으로 이동시켜 살도록 만들어 놓은 땅이다. 그들은 황야의 땅을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어 산 짐승을 잡아 연명하기도 하면서 마을을 이루어 놓았다. 이미 자존이 무너진 여인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박했다. 고려의 사내나 적군인 오랑캐라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던 때다.
오랑캐를 척벌 하는 과정에 왕건은 강력하게 교지를 내렸다. “아녀자를 겁탈하는 병사들은 무거운 죄로 다스릴 것이다!”
처음으로 며칠을 걸었던 탓에 발목과 발바닥의 형태가 말이 아니다. 며칠 이곳에서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 다급한 걸음도 아니어서 몸을 쉬어 가도 되었다. 함께 걸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당도하자 반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한 인정 때문에 그리도 먼 길을 걷는가 보다. 맨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사람들을 보니 보기가 좋았다. 긴 피로를 하룻밤의 정으로 풀어버리고 다음날 떠나야 하는 걸음이다. 보부상들은 그들에게 돈줄을 이어주는 사람들이다.
오고가는 보부상들을 상대로 주막이 생기고 술집이 생기고 장사 술이 있는 사람은 돈 많은 보부상들을 호리려고 여인을 두기도 하여 중국과 고려를 있는 길목의 자리 세를 톡톡히 받고 있었다. 보부상들은 아무렇게나 하룻밤을 쉬어가는 것이지만 다리의 상처와 피로를 풀고 떠나려면 좀 더 조용한 곳을 찾아야 했다. 어느 주막을 정하여 짐을 풀까, 번잡한 곳은 피하기로 하였다. 그러한 마음으로 주막의 푯말을 유심히 보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푯말에 “길 위의 주막” 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 집 앞에 섰다. 보통 주막의 분위기와 차이가 있었다. 경계의 문도 없는 마당이 금색으로 다져 있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의 피로와 마음의 평정을 주는 것 같은 별난 집으로 들어갔다. 기둥의 꼿꼿함과 문살의 정교함도 있었다. 주막보다 위에 있는 여관이랄까, 그런 집 마당에 서 있었다.
뒤뜰 높지 않은 담벼락 사이사이가 정교하게 다듬어져 마당은 고택의 품위처럼 붉은 흙으로 곱게 흙 맥질을 금방 한 그런 신선함이 있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색은 뜰과 마당을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사람이 아무 기척을 주지 않는 집은 여인이 금방 문을 열고 하얀 버선발로 뛰어와 반길 듯하다. 마루로 이어진 방이 여러 칸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 뜰아래 댓돌 위 마다 사람흔적이 없는 게 주인도 없는가를 의심하며 집안 내부를 둘러보는 중에 생각한 대로 여인의 고은 모습이 댓돌을 내려서고 있었다. 저녁노을에 반사된 여인의 얼굴이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스님, 안으로 드시지요.” 놀라움에 눈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물었다.
“쉬어 가는 곳이 맞습니까?”
여인은 가방을 받아 안으로 들어간다. 방 하나를 정하여 짐을 풀었다. 우선 시원한 물로 발을 씻었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았다. 세수를 하였다. 팔과 다리 살 나온 곳은 모두 씻었다. 정신이 맑아졌다. 어디든 사람이 산다는 게 말로만 듣는 것보다 실지로 체험하면서 걸었고 전신의 몸에 피돌기를 자청하던 대 고려를 그 순간 뒤로 하였다. 고려에 전할 말은 없다. 어디든 발 닿는 곳에서 부처의 진리를 펴 나갈 것이다. 세상 밖의 세상은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사람도 생활도 풍습도 달랐다. 옷 입는 법도 달랐다. 땅은 넓고 사람은 적었다. 겨울은 길고 여름은 짧았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젤란이 고려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처럼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부처의 진리를 펴야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세상 밖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걸음이라 길 위의 나그네 길을 시험으로 받았다.
세상 밖 세상에 대한 시 한수 적어 보자.
고려인
질경이 목숨으로 살았소
진한 날 민들레 홀씨 되어
천리 길 만 리 길에
외로움에 떨었소
버려진 생이라도
황야에 뿌리내려
정 부치려 하였소
밤마다 살 부질 곳 서성이다
길목에 자리하여 고향소식 듣소만
삶의 무게 덜어 줄
고려백성이면 족하오
마루에 걸터앉았다. 참으로 편안하다. 발가락 사이마다 통증이 있어도 참아볼 일이다. 저작 거리에 등불이 켜지고 주막마다 술렁술렁 정담소리 들렸다. 집주인이 차려준 밥상을 받았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앉으니 마음도 몸도 편안하다. 오랜 고행 끝에 먹는 밥상은 이 것 저것 가릴 새 없어 모두가 꿀맛이다. 하나 남지지 않고 비웠다. 대접의 물까지 마시니 나그네 바람의 길이요, 나그네 행복이다.
주막에 드는 사람이 없다. 숙박비가 비싼가, 보부상들이 묵어갈 여력이 없는 집인가. 상을 물리고 마루에 나왔다. 앞을 내다보니 오밀조밀 골목마다 흐르는 불빛이 정겹다.
“스님께선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마루 옆으로 다가와 앉은 여인이 물었다. 커다란 집에 두 사람 뿐인가 싶었다. 여인을 처다 보니 사람들을 상대해서 그런가, 거리낌이 없다. 어스름 불빛에 비추는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 여인의 얼굴에서 어머니 미향을 떠올렸다. 어릴 때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 혼자 늙어가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낯선 곳에서 어머니를 닮은 사람을 보다니 반갑고 친근해 스스럼이 없다.
“정한 곳이 없어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꼭 어디로 갈 것이라고 정하여 떠났던 게 아니다. 이제 고려에서 할 일이 없다는데 떠나왔던 것이다. 선지식을 만나보려 떠났다고도 할 수 없고 또 안 만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여행하고자 했던 길이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편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무작위로 길을 떠났던 것이다.
자미원 승려들이 갑자기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황망하고 막막했을까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믿고 의지했던 행자의 마음에 놀라움과 그 당황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그들은 이해라도 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미안하였다. 발길 닫는 대로 떠돌다 때가 되면 고려에 돌아 올 그 날을 기대할 뿐이다.
“가끔씩 스님들께서 이 길을 걸어 저의 집에서 며칠씩 묵어간 분도 있습니다. 스님도 발이 다 낳으려면 3~4일은 묵어 가셔야 할 겁니다.”
아녀자와 단들이 앉아 있어도 아무런 부담이 없어 좋았다. 여인은 혼자 말하듯 하면서 일현을 쳐다본다.
“지금쯤 고향에는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시간이군요. 우리들은 죽어서나 그리운 고향에 가려는지요.”
여인은 먼 고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그럴 것이다. 묻지 않아도 알 정도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전쟁 중에 오랑캐에게 겁탈을 당해 끌려온 여인 들이다 보니 그러한 몸으로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같은 처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밤이 이슥하도록 끝나지를 않는다. 스님이라 그런지 여인은 처음 본 처지에도 무엇인가 위로 받고 싶은 가슴을 털어 놓는다.
고려 왕건의 부인 열다섯 여인들이나 고려인 땅에 돌아갈 수 없는 고려 촌 여인들이나 한 서린 마음이 가슴에 차 있었다. 어스름 달빛이 황야의 벌판을 고루고루 비추고 있다. 하늘엔 별이 반짝 반짝 보석이 되어 삶의 뜨거움을 시키느라 지붕위에 쏘다지고 있다.
“ 18세에 혼인을 하여 자식도 하나 나았지요.”
여러 남매 중 후덕한 집안의 딸이었는데 어찌하다 오랑캐 무리에게 잡혀 여기에 와 있는지 딸자식 소식도 모르는 어머니는 어찌 사시고 계시는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합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혼절하였을 부모님에게 죄인 중에 죄인이 되었지요. 그녀의 고향 그리는 마음이 눈에 보인다.
중국 베이징은 원, 명, 청 시대에 이르기까지 육로 뿐만 아니라 해로 실크로드의 최대 중심지였다. 당시에는 한반도 고려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완 평 현 ‘지금의 고려 촌’ 이곳은 어떤 곳이었는가? 대도는 원나라 수도였다. 즉 대도 성이 있었던 곳이다. 원나라 시대의 대도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과 교역이 이뤄지는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각종 문물로 넘쳐났으며, 각국의 사절단과 상인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다국적 도시였다.
당시 완 평 현에는 고려인들이 매우 많았다. 현재도 이곳에는 당시 고려인들이 모여 살았던 집단거주 흔적이 남아있다. 집단거주지는 고려와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원나라 시대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집집마다 대문 위에 붙어있는 마을 이름의 흔적이 그것이다. 원래는 고려장촌 이었으나, 명나라 때 고력 장으로 개명돼 현재는 고력 장으로 명패가 붙어 있다.
퉁저우에 있는 장자 완은 원, 명 ,청 시대에 이르는 동안 관문역할을 수행했던 물류 집결지이자 교통의 최고 요지였다. 동으로는 ‘백하 발해-황해’를 통해 고려와 일본으로 바닷길이 연결되고, 남으로는 남중국해로 연결되어 있어 대도 성으로 오는 모든 물자들은 이곳으로 운반되어 내륙운하로 전달됐다.
원의 대도가 건설될 때도, 명의 북경이 건설될 때도 필요했던 석재와 목재, 그리고 남방 물자들이 모두 이곳을 통해서 오게 되었다. 당시에 이처럼 좋은 지리적 위치의 인문환경 조건은 장자완 마을의 독특한 문화적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다. 소설 홍루몽 등에서도 이곳의 분위기를 차용하기도 했다.
며칠 동안 말을 달려 대관령 정상에 닿았다. 수인과 마젤란은 말에서 내려 저어 아래 보이는 하슬라의 고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 청명하여 멀리 동해바다도 보였다. 수인은 마젤란의 팔을 잡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14세에 할머니를 따라 넘어오던 아득한 길이었던 대관령 구비를 보고 있었다. 그리도 멀고 힘겹게 올라왔던 생각이 났다.
“저기가 수인씨의 고향인가요?”
마젤란은 수인을 따라오면서 길을 물어물어 대관령에 당도하여 저~어 아래로 보이는 동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릴 때 왔었던 길을 찾아온다는 것은 용기였다. 수인은 옆에 또 다를 사람이 있다는데 용기를 내어 하슬라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거리가 먼 관계로 가족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살아 온지가 얼마던가, 이렇게 혼일 할 사람과 부모님을 찾아가는 게 그녀는 꿈만 같다. 어머니에게 사위 감을 보여주고 혼례를 올리려고 찾아가는 고향이다. 용기를 부추겨준 아버지가 좋게 보아 허락하는 바람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일현이 떠나고 그들은 마음이 급했다.
“우리 부모에게 인사 갈래요?”
했던 한마디가 먼 길을 떠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직원을 보내 가족을 서라벌에 올라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혼자 다녀오는 게 옳을 거라는 생각에서 무작정 떠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길이 멀어 미안하였다. 그가 적극적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급히 오지를 못했을 것이다. 떠나고 보니 아득하기만 했던 고향이 발아래 보였다. 가슴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마셨다. 말을 타고 왔기에 반정이 있는 옛길 비탈길을 피해 아흔 아홉 구비의 길에 들어섰다. 세월의 흔적이 얼마였는지 대관령 길을 보니 알았다. 수레바퀴 지나간 자리가 선명하게 있다. 금방 지나간 자리다. 둘이는 말 타는데 능숙하여 어려움이 없었다. 말 두 마리가 한 일자 꼬리를 하고 아래로 달린다. 몸을 말 등에 의지 하여 속력을 냈다. 대관령 밑 첫 마을이 있는 어흘리 마을에 당도하였다. 두 사람은 말고삐를 채어 속도를 조절하였다. 이제 아흔 아홉 구비는 다 내려 온 듯 하다. 두 사람은 나무 그늘 밑에 말고삐를 놓고 쉬어가기로 하였다. 몇 집 안 되는 어흘리 동리에 말울음 소리가 요란하다. 세 참 때를 지나 알리는 시장 끼를 참아야 하는지를 수인은 마젤란에게 물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 물이라도 얻어먹고 가는 게 어때요.”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집에 들어간다면 갑자기 나타난 딸을 보고 가족이 놀라 기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 내려 온 안도감에 몸가짐을 평온하게 하여 쉬어 가려고 하니 배가 고프다.
할머니를 따라 나서지를 않았다면 지금쯤 고향에서 어느 사내를 만나 아이 몇을 낳고 살았을 수인은 입가에 웃음도 번졌다. 이제 집에 들어가는 게 밤이면 어떻고 새벽이면 어떠랴. 길을 잃을 염려도 없으니. 말을 끌어다 물가에 세워두고 숲과 나무에 가려진 집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당에 들어섰다. 강아지가 낮 선 사람의 출연에 놀라 짖었다. 낮은 정지 문이 열리더니 주인이 나왔다.
“헉!”
인기척에 마당으로 나오던 여인이 비틀, 뒷걸음질 친다. 마젤란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것이다. 수인이 급히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명주관아에 계셨던 동희 아찬 어른의 여식입니다. 지금은 아니 계시지만 하슬라 고을 잦은 홍수로 물난리를 겪을 대 북쪽의 물길을 남쪽으로 돌려 장마의 피해를 기적같이 줄어들게 하여 백성에게 친 송을 받았던 김동희 아찬어른의 딸입니다. 지금 서라벌에서 대관령을 넘어 왔습니다. 고향에 오니 마음이 흡족하여 잡시 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들어왔습니다. 고향 아주머니를 뵈오니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수인은 예외 없이 수다스러워 졌다. 그녀 말을 듣고 있던 그 여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손뼉을 탁 쳤다.
“어머야! 이게 뭔 일이래.”
새댁이 그분의 딸이라니 별일도 많아라.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문이 있었던 그 때 그분의 자손이라고요! 그리 떠난 군수님에 대한 아쉬움이 명주군을 슬프게 하였는데 그분의 따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네요. 하는 여인의 말에 아버지의 일이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여인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소문도 많았는데. 어째 무엇을 드려야 하는데,”
행주치마를 걷어 올리며 안절부절 하였다. 수인은 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상상하며 명주군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였다. 그 일로 하여 자기도 할머니를 따라 나섰던 것이 아닌가. 집주인은 우물가로 뛰어가 바가지로 샘물을 퍼 왔다. 급한 마음에 바가지를 수인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미안한 얼굴이다. 바가지의 물을 먼저 건네주었다.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마젤란의 목젖이 사내답다. 거의 비워버린 물바가지를 받아 마셨다. 그러는 중에 안으로 들어간 여인은 무엇인가 들고 나왔다. 동그란 나무 밥상에다 보리쌀이 거의 들어가 있고 그사이 하얀 감자가 드문드문 석여있는 밥 한 그릇에다 열무김치를 한 사발 담아 내왔다.
“드릴 것이 없어 어쩌나, 장 보러간 우리 집 양반의 밥인데 들고 가세요.”
찾아 준 것에 대한 고마움에 드릴 것이 없어서 어쩌나하는 시골 인심이었다. 지금껏 그런 밥은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도 먹지 않는 다면 안 될 것 같아서 서로 처다 보았다. 그 또한 그런 밥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먹자는 시늉을 하였다. 반찬이라야 딱 한 가지 파랗게 익은 시큼한 열무김치와 국물 맛이 코 속으로 들어 왔다. 침이 꼴깍 넘어 갔다. 수인은 마당 뜰에 걸터앉아 밥 그릇 에다 열무김치를 다 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썩어서 마젤란에게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누가 먼저라 달려들었다. 아삭 아삭 열무김치 씹히는 소리는 세상에 이런 맛은 처음이라는 생각에 목구멍이 넓어졌다. 순식간에 다 먹었다. 언제 떠 왔는지 놋대접에 샘물이 그득했다. 이번엔 수인이가 물 한 대접을 거의 마셨다. 고향 땅에 들어서자 고향의 맛으로 보리밥에 열무김치로 허기를 면했다. 태어나면서 아버지를 잘 만나 호강했었다는 생각이 가슴 뭉클하게 하였다. 여전히 강원도는 가난하였다. 나라님도 가난은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남편이 돌아오면 줄 밥 한 그릇을 다 먹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에서 돌아오면 시장해 할 주인의 밥을 먹어 치웠으니 인사라도 해야 했다.
“밥을 정말로 맛있게 먹었어요.”
고개를 숙이고 고마움을 표했다. 너무나 먼 길을 생각도 없이 떠나오다 보니 가족에게 줄 선물도 생략하고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런다고 이 여인에게 무슨 답례라도 할라치면 부담이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고맙게 먹어 주는 것이 더 고마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집 마당을 나서 머뭇거리던 그가 무엇인가 손에 꺼내 들었다. 여인이 마당 끝까지 따라 나왔다. 그 여인의 손에 엽전을 쥐어준다. 여인은 놀라 사양하였지만 마젤란의 강력한 행동은 여인의 마음을 꺾었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지나쳤다면 아쉬움이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눈치 빠른 마젤란이 수인의 마음을 가볍게 하였다.
대문을 열었다. 어둠이 깔리려는 저녁때 안에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마당이며 뜰이며 마루가 그대로다. 수인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쏘다졌다. 그동안 와보지 못했던 집이 그녀를 반기는 듯 다가왔다.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대문과 집 마루까지 그리 먼 줄을 몰랐다. 죽었다 살아 돌아오는 기분이다.
“어머니~”
마당을 가로질렀다.
“어머니!!”
안에서 문을 열었다. 마당을 뛰어 들어오는 딸을 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서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 저예요, 수인이”
수인이란 소리에 발을 떼었다.
“수인이가, 우리 수인이가.”
버선발로 뜰을 내려 두 모녀는 부둥켜 않았다. 눈물이 비 오 듯 내려온다. 아버지와 갑자기 생이별을 하고도 집안의 일을 살뜰히 지키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자기가 너무나 무심하였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부엌에서 올 캐 인 듯 새댁이 나왔다. 생면부지다.
“애기 씨”
그녀도 가족인지라 상황파학이 빨랐다. 시누이가 어떠한 사람인지 말로만 들었더니 천리 길을 달려와 시어머니를 만나고 있다. 두 모녀는 얼마동안 그러고 있다가 옆에서 이상한 사람이 딸과 함께 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떨어졌다. 눈물을 훔치며 마젤란을 살폈다. 수인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서라벌에서 같이 온 사람이 예요.”
수인도 눈물을 훔치며 마젤란의 손을 끌어 어머니 앞에 세웠다.
“안녕하십니까, 마젤란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설마 딸이 데리고 온 사람이 사위 감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수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을 달려 타고 온 말을 안으로 안내하여 쉴 곳으로 보냈다. 두 사람은 나란히 큰절을 올렸다.
‘이게 뭐야 수인의 신랑이란 말인가’ 둘이 나란히 하는 절을 안 받는다고 할 새 없이 절을 받았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외국 사람이 집에 왔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에게 무어라고 말하기도 그러하여 우선 참아보기로 하였다. 마젤란은 처음부터 반겨 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 상대로 물이 녹은 그가 겁날 것은 없다. 수인을 반기는 기쁨 때문에 어쩌면 쉽게 자신의 모습이 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인은 올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마젤란을 인사 시켰다.
“언니가 어머니를 모셔 주어서 고맙습니다. 이 사람은 저와 혼인할 사람입니다.”
“마젤란이라고 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 하였다. 올케는 그를 처다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수인을 처다 보았다. 수인은 아무러치도 않은 얼굴이다. ‘어찌 저런 사람과 혼인 한단 말인가,’ 스스로 얼굴이 붉어졌다.
수인은 마젤란의 어색한 마음을 덜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 밖으로 나왔다. 그의 손을 잡았다. 올케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아무러치도 않은 얼굴로 자연스럽게 행동하였다. 방에 남은 두 여인은 서로 얼굴을 처다 보며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수인은 마젤란이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집 구경을 시켜 준다는 핑계로 마당에 나와 보니 추억이 새롭다. 사람을 드려 공부하던 때며 물난리로 불안했던 일이며 수인의 마음을 어린 시절로 돌아오게 했다. 수인은 남대천으로 나갔다.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도 하슬라에 대한 사랑이 넘쳤는데, 무엇이 그리 매정하게 아버지를 뺏어 갔는지 수인은 아직도 그것이 알 수 없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이곳이요?”
대강은 들었지만 마젤란은 직접 남대천에 나와 보니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