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향은 사랑만큼이나 사업에도 감동을 주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며 돈을 벌어 차곡차곡 모으는 일이 사랑보다 몇 갑절 흥분되는 일이고 멋진 일이라 살아가는 데 활력소가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국가를 상대하는 장대한 사업은 여자로서 남자이상의 꿈을 성취하고 산다는 자부심에 한 남자의 아내로 자식을 낳고 가정에 안주 할 여인이 아님을 이미 알고 그 길을 열어 주고 떠났다.
넓은 공간에 들어서니 관리들이 회의하는 장소로 정돈되어 있었다. 수인 일행을 안내한 사람이 강단에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호 하였다. 일행은 앞 족에 마련되어진 한 쪽 자리로 안내하였다. 자리에 앉아 보니 회의실 앞쪽 벽에 커다랗게 붓글씨로 쓰인 문구가 붙여져 있었다.
“경주를 빛낸 상인 김수인 ”
시간이 되자 경주 군수가 강단에 올라가 인사를 하고 연설을 시작하였다.
고려시대 경주는 왕경으로 모든 기능을 상실하고 고려의 일개 주(州)인 경주가 되었다. 경주는 관부를 먼저 건립하고 신라 왕궁과 성곽은 황량하게 변모하기 시작한다. 유민들은 경주를 잊지 않았다. 왕궁을 방치한 채 월성에서 서북쪽으로 5리 거리의 평지에 경주 사를 새로 지었다. 경주 읍성은 고려 초기에 지방 주현을 통치하는 관부가 필요했고 이에 경주사가 설치되었다. 경주 사는 오늘날 시청과 도청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그 기능과 구조는 분리되지 않은 이원적 일체다. 지방행정 업무를 총괄했던 관청으로 경주 지방사는 여기서 개시 되었다. 경주사가 설치된 후 80년 후인 1012년(고려 현종 3년)에 경주 부성을 비로소 축성했다. 고려 초에 관부가 먼저 건립됐고 이후 읍성이 축조됐다. 읍성은 그 지방 최고 관부로서 모든 행정이 그 안에서 이뤄졌다.
도청 지사의 인사말이 시작 되었다. 우리 서라벌 신라후손들은 고려 백성으로 전한 한 것이 근 3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 몇 해 동안 신라를 그리며 옛 터전을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고려의 백성으로 손색없는 백성의 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신라에서 그리 성하지 못했던 무역이 고려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시아의 문물이 원만히 왕래할 수 있도록 하여 왕실과 문물의 역사가 이어 왔습니다. 우리관아에서 고려를 세우는데 온 힘을 쏟았다면 오늘 경주를 빛나게 하여 아시아에 경주를 알리고 무역을 하여온 경주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에게 큰 박수로 노고를 위로 하여 주십시오. 자리에 앉아있는 수인을 가리키며 예의를 표했다.
“짝짝짝, 와! 와! 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의 박수를 쳤다. 답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인사 하였다. 3~40명의 관원들이 더욱 환호 하였다.
“그동안 무역 회사를 이끌어 오신 김수인 상도님께 표창장을 거행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수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함께 온 두 사람도 강단에 함께 올라가기를 재촉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일어나지를 않았다. 관아 사람들이 일어나 계속 손 벽을 치는 바람에 혼자 강단으로 올라갔다. 처음 대하는 관아 군수는 그리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다. 경주를 대표하는 권력의 선봉자로서 모습이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수인을 맞으러 강단 끝까지 나온 그가 수인을 가운데로 안내하여 세웠다. 관군은 준비한 표창장을 군수에게 전하였다. 어디서 수입으로 구입하였는지 파란 옥으로 된 네모진 상표는 하얀 종이로 소중하게 싸 상자에 넣었다가 조심스럽게 꺼냈다. 군수는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옥돌에 새겨진 내용을 읽기 시작하였다.
“공로 패 ”
김 수인은
고려 백성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상대하는 상도의 표본인
무역상을 하여 경주를 빛나게 한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가상하여
공로패를 수여합니다.
경주관아를 책임지고 있는 군수 아무개.”
상금은 이 백량 입니다.
조용하던 강단이 박수소리로 술렁거렸다. 수인은 손을 모아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공로패를 받았다. 상금이 귀에 들어왔다. 경주관아에서 주는 거금이다. 군수는 수인에게 소감 한마디 하라는 손짓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수인이 들고 있는 상패 무게를 가름 하여 눈치 빠른 사무실 직원이 얼른 강단으로 올라와 수인이 안고 있는 상패를 받아 내려갔다. 앞을 주시하였다. 수인은 오래도록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있기에 관의 사람들 앞에서 떨리거나 가슴이 콩닥거리지는 않았다. 다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순간 머리에 어른거리는 가족의 얼굴과 일현 스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향의 얼굴도 떠올랐다.
“저는, 강원도에서 태어났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열네 살에 경주에 왔습니다. 저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아시는 분은 다 알고 있는 분입니다. 어린 손녀에게 남장을 시켰습니다. 외국어를 가르쳤습니다. 남자 못지않은 무술이나 말 타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상단을 이 끓어 가는데 필요한 기술은 모두 전수하였습니다. 그런 덕에 할머니가 아니 계셔도 무역업을 하는 데 지금까지 하자가 없이 해 왔습니다. 진정으로 경주 관에서 주시는 이러한 좋은 상패와 상금을 받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 집니다. 그러나 지금껏 해온 대로 열심히 잘해 나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수인은 깊이 인사를 하였다.
관원들 손뼉 소리는 강단을 울렸다. 여인으로 그리 당당할 수 있는 수인을 의아 하여 보는 남자들은 부러워하면서 자기들 딸도 그렇게 키우고 싶은 충동으로 손을 들어 손뼉을 치며 환호하였다. 군수도 손뼉을 치며 치하하였다.
“서라벌에 자랑입니다.
상도의 말씀을 듣고 보니 상도인 할머니로부터 보부상을 물려받았다는 말씀이 인상에 남 습니다. 2대를 이어 무역업을 성공적으로 하여온 김수인 상도님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 또 한 번의 박수를 받고 강당에서 내려왔다. 시간이 점심때가 되었다. 군수가 다가와 식사의 자리로 안내했다.
관내 가옥 집으로 들어갔다. 미리 차려진 상에는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겸상을 하려다가 수인이 불편해 할까봐 군수는 직원들과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군수는 수인이 신기하였다. 강당에서 꾸임이 없었던 말솜씨며 몸의 균형에도 신여성의자질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를 대표하는 최고 권력을 가진 자로 수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남다르게 다가와 흡족한 분위기가 되었다. 여인인 듯 남성 같은 호기와 여유로운 기품은 상단을 키워 무역회사로 성장시킨 게 지금껏 세금의 장부는 한 치의 허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라에 대한 정성이며 자신을 세우는 곧은 심성이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대단 하십니다.”
어찌 여성으로 그러한 배포가 있었습니까. 오늘 들어본 상도님 말씀이 신기합니다. 상도가 되기 위한 사전교육을 철저히 받고 자랐다는 말씀에 존경스럽습니다. 할머니께서 선견지명이 있어 오늘의 상도가 태어나게 되었군요. 앞으로 경주를 위해 더 노력해 주시고 좋은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군수는 수인과 암면을 트고 자주 만나고 싶었다.
“저는 장사꾼입니다. 고귀한 분께서 장사꾼인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그의 눈총을 피하며 음식의 맛을 음미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떠났기에 할머니를 신앙처럼 의지하여 어려움 뒤에 따르는 무역업의 성취감에 모든 걸 잊고 살아도 되었다.
경주관아를 다녀오면서 기뻐해야 할 순간인데 무언가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외로움이 있었다. 부모가 생각났고 형제의 그리움이 있었다. 부모 슬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일이다. 이렇게 좋은 날 왜 생각이 났는지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성취감 뒤에 오는 외로움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일현스님이 이런 때 함께 하였다면 할머니가 계셨다면 할머니 99칸 임영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것을 해보자!”
무역 종류를 다른 각도에 시선을 돌렸다. 서라벌에 국제 상인들이 묵어갈 호텔을 건립하여 야겠다. 하는 충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꿈이 그녀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경주 관아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서라벌은 왕건 시대가 열리면서 무역의 발판으로 바닷길을 통해 문물이 개방 되였다. 군수가 경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걸어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회의를 열었다.
이제까지 보부상으로 국제 무역을 하였다면 그 틀이 단단하여 이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는 국내에다 투자하는 새로운 사업을 하려 한다는 말을 직원들에게 말했다. 수인의 갑작스런 회의 내용에 직원들은 놀라고 의아했다.
할머니께서 이미 오래전에 강원도에서 시도했던 도전적인 사업이 있었습니다. 보부상을 넘어 무역회사를 키워왔듯이 새로운 상술인 건설 사업 도전에 합당한 제시를 제공하였다. 국제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 새로운 창업을 생각해 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때를 같이하여 우리 회사도 다른 사업에 눈을 돌려 시행해 보려 합니다. 그 첫째 사업으로 이곳 경주에다 호텔을 지으려 합니다. 이제 나라 안에서 경제발전을 하여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집을 지어 팔 겁니다. 듣고 있던 직원들은 놀라고 있었다.
“예! 집을 말입니까, 상도님!”
그렇소! 이제 건설 사업을 하렵니다. 건설 자재는 수입으로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려면 고려 사람들이 우리의 사업에 관심을 두게 하여 집짓는 기술을 공유한다면 함께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이지요. 고려의 인력이 남아돌아도 기술이 없어 백성이 궁핍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기술자로 발전시키는 선구자 역할을 담당합시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정보를 수집하여 기술을 협력 해야만 합니다.
꿈에 부풀어 설명하는 수인이의 갑작스런 의견에 사원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까지 보부 상인들만 상대해온 그들이 이러한 혁신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수인의 생각에 동조하지 못할 것처럼 놀라워하였지만 지금껏 믿어온 대로 수인이 하고자하는 일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건설 사업을 어찌 시작한다는 것인지 그들은 머리에 망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수인의 새로운 사업에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이제 명령이 떨어졌으니 기술적인 모든 걸 수집하여 빠른 속도로 새로운 사업에 기초를 다져야 한다. 그들도 희망에 부풀었다. 작은 보따리 장사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덧 틀이 잡힌 무역회사로 발전한 것도 외교적 노력이 탁월하여 성공 하였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이제는 경주관아에서도 인정해주는 사업가가 되었다. 그들도 뭔지는 모르지만 용기백배 하였다. 그렇게 술렁거리는 가운데 사무실에 들어서는 한 남자가 있었다.
“상도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자미원은 내 소관을 떠나 전체 승려들 활력소가 되었다. 하루가 지나 밤늦도록 다음날을 위해 정진하였고 처음부터 자미원 건립에 함께 하였던 행자의 소임을 높여 비구니와 전체 학업을 관리하는 최고 자리로 배치하였다. 행자의 자리가 정해지자 비구니 승려들도 아무런 의가 없었다. 행자는 부족한 면을 말하며 일현에게 고마운 인사를 하였다.
큰스님을 떨어져 살 수 없을 것 같아 무작 의로 따라온 제에게 자비로서 받아 준 것도 은혜로 은데 부처님의 뜻을 펼 수 있는 큰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일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부처님께 기도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더 할 나위 없이 승가의 인연에 만족합니다. 그럼에도 새롭게 큰 중책을 주셔서 이제 물러설 수 없는 부처님 사업에 미래 인재를 위해 성심껏 노력 할 것입니다. 행자스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하고자 했던 일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 안정이 되고 보니 모든 무게에서 벗어나 행자에게 일 임하고보니 무게가 가벼워졌다. 이제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것에 무게를 덜어 내고 보니 할 일이 없다. 생각을 털어내고 사는 것이 승려의 일상이지만 무엇인가 끝맺음을 하였을 때 출현하게 될 가슴 저 깊은 곳 속가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낮선 곳에 홀로 서 있는 수인에 대한 안쓰러움이 밀어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떠나야 하는 가. 반문해 본다. 어디로 갈 것인가. 고려에서 할 일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없다. 안으로의 의심은 무엇을 원하는가, 발걸음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 것인가. 새롭게 이어질 길에 대한 예감을 떨쳐 버려야 하는지 받아드려야 하는지에 고민하여야 했다.
어느 한 생각에 매몰되어 살았던 적이 있다. 그것이 반복되어 의심스러워 질 때 새롭게 알아지는 것에 놀란다. 그 한 가지 의심으로 인해 마음보는 법을 배웠다. 알아지는 것은 일상이 되어 선의 경지를 넘고 넘는다.
밖에서 얻어지는 언어에 귀 귀 울 리지 못하고 수박 겉 헐기 시선이 되어 살다보면, 세상사에 낯설고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럼에도 까맣게 잊었던 기억의 질서를 들쳐 살아나는 때는 기억 맹이라는 말에 의를 달아보기도 한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가려 담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빨리 결정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나쁜 기억을 부추겨 해를 입히는 때를 있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을 부추겨 열을 상승케 하는 무엇에 대한 경계심도 있어야 한다. 그것의 답은 하나다. 끝까지 인간을 찍어 내리려는 간 큰 소심이다. 소심이라 함은 대심의 직관이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직관을 이용하여 항복받는 일에 전환의 기회를 삼아야 한다. 그 일에 익숙하여 여여 하다 보면 질기고 질긴 것도 무너지고 무너진다. 생각이 사라지고 사라지다 보면 참 나를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의지가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된다.
안, 이, 비, 설, 신, 의, 육근이 사람을 조정하여 그 움직임은 인간을 늙게 하여 병을 주고 고통을 준다. 그 육근이 마음이다.
코털 하나와 세포하나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너는 참이 아닌 거짓이다. 코털하나 세포하나까지 움직여 별 짓을 다하려하는 너를 직관하여 바라볼 수 있는 나는, 누구란 말인가. 코털하나 세포하나까지 움직여 해롭게 한다는 우월함을 말하지 말라. 나는 너의 우월하다는 소견을 이미 항복시켜 무릎 꿇게 하였다. 참으로 귀하디귀한 일이 아니더냐. 그 가운데 집착이란 게 한 가지라도 있다면 끄집어 거울 앞에 비추어 보아라. 그리 귀하디귀한 일을 당당하게 된 원인이라면 분명 있어야 한다.
일 년에 오만 번의 절을 십년이 넘은 뒤에도 해 댓 다는데 있다. 무릎이 다 헤져 나가도록 절을 해 댈 때 내가 거지라는 걸 몰랐을 때 충정의 한 장면이다. 그 거지 행실이 원만하여 그리했던 것인지 거지 충정이 남달라 그리했는지 화두 하나 넘겨주었다.
머문 곳에서 할 일이 없다는 조건을 제시 하였을 때 거지였을 때처럼 그 조건에 물 불 가리지 않고 신발 끈을 조였던 때와는 달라야 했다. 제시한 조건에 동조하여 신발 끈을 맬 것인가. 에 의문을 가져 보아야 한다. 그 조건이 참인가에 동조하여 신발 끈을 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머물려 있어야 하는 자미원의 개 공신으로 마음에서 제시해오는 조건을 수인을 만나 답을 찾아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회의를 끝내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물 한 컵을 다 마셨다. 밖에서 노크를 하였다. 수인의 방에 들어온 사람은 외국에서 온 손님이었다. 그 무렵 무역은 아시아권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각 나라의 명산물을 서로 거래하였는데 고려는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과 같은 아시아권의 나라와 문물을 교한 하고 있었다. 중간 상인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거래였으나 본 회사 사장과 직접 만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검은 사내가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자의 첫 인상이 낯설지 않아 호감이 갔다. 그 사내는 고려의 사내와 달리 머리는 짧았고 입은 옷은 간편하여 다리가 길고 얼굴은 고려인보다 작고 검었다. 코 날이 또렷하여 두 눈이 깊고 컸으며 입술은 약간 두텁고 검붉어 보이는 호남 형이었다. 그는 영어로 말했다. 고려의 문물을 뱃길에서 중간 거래를 하였는데 고려 상도와 직접 거래 하고 싶은 오랜 염원 끝에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저는 필리핀이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수인은 놀랐다. 말로만 듣고 거래하였던 곳인데 사람이 직접 찾아오다니, 중간거래를 떠나 직접거래를 하려고 찾아왔다는 것이 아닌가.
“필리핀이 라면,”
고려에 직접 찾아와 거래를 트는 외국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 직접 거래한다면 이익의 강도가 높겠다는 계산을 해본다.
본래 필리핀의 역사는 약 13세기경에 친족, 부족 국가의 형태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되면서 시작된다. 현재의 필리핀이 세계 지도상에 나타나게 된 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험가인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이 섬들을 발견하고 부터이다.
마젤란은 지금의 세부지방의 맥탄 섬에서 원주민들과의 전쟁 중 사망하게 된다.
포르트갈과 스페인의 세계적인 전쟁 중에 스페인에 정복당하게 되고 d 대 스페인이 정복한
나라가 지금의 필리핀이다. 그 영토가 나중에 독립하면서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즉 지금의 영토를 필리핀이라고 이름지어준 게 스페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스페인 필리핀은 한국 못지않게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나라이다.
그 시작은 스페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페인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330년간 필리핀을 지배 하면서 필리핀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이 전파과정에서 일부 지방에서 회교도와의 전쟁이 치열했다.
필리핀은 1898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이 시대는 필리핀 국민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역사의 시작인 것으로 되어있다.
필리핀 거리에서 혼혈을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이 스페인계와의 혼혈로 보여 지는데 수 백 연간 그들의 지배를 받아오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친절한 동양계이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에 비하여 그들은 외국인들에 대한 감정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외국인과의 결혼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몇 가지 이유에서 외국인과의 결혼은 그 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이 끝나자 필리핀은 스페인에 이어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필리핀은 독립을 선포하였지만 스페인은 필리핀 국민들도 모르게 필리핀 나라를 미국에 2천만 달러에 양도하였던 것이다.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필리핀 국민은 다시 미국을 상대로 새로운 독립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전쟁은 약 6년간 계속되었고 1905년에 끝났다.
이후 1935년이 되어서야 헌법을 갖춘 완벽한 정부가 들어섰다.
바다를 호령하면서 황해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동양 3국의 항로를 장악한 청해진 종합상사의 대부 장보고의 취급 품목 또한 다양했다. 신라의 수출 대종 상품은 견직물·마포·금·은·인삼·약재·마피·모피류·공예품이고, 당의 주요 수출품은 주단·약재·공예품·도자기·서적 등이었다. 여기에 페르시아 상인들이 가져온 각종 향료와 악기·상아·보석류·카펫·유리제품 등이 추가된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산인 자단, 심향, 비취모, 대모, 공작미 등이 있다.
3국 시대에 장보고 상단이 일본에 싣고 간 박래품의 인기는 대단했다. 일본에서 박래품에 대한 값은 비단, 금, 소뿔 등으로 결제했는데, 요즘말로 하면 부등가 교환으로 인한 무역 역조현상이 뚜렷했다. 일본 조정은 귀족사회의 사치풍조에 대해 수차 제동을 걸었으나 청해진 상단이 제공한 부 증 품(일종의 사례금)에 의해 치부를 한 다자이후 관헌들이 적극적 단속을 기피하여 큰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부 증 품이란, 귀한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으로 명품의 가치를 더 치루는 관행으로 상인을 매수해 귀중품을 얻기 위한 거래로 은근 슬쩍 주머니에 현금을 찔러 넣어 주는 것이다. 신라 흥덕왕도 서방세계의 사치품· 전래품 등에 대해서는 한 때 수입금지 조치를 단행한 기록이 있다.
해상 왕 장보고의 따뜻한 인간애와 정의감, 그리고 동포 사랑과 국제화 정신은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 계 동포들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었다. 당시 당나라가 정치적 혼란의 시기였는데 장보고를 중 소장 직에 이어 대사라는 직명을 부여했을 만큼 중국에도 큰 공을 세우고, 영향력도 막강했던 게 인정된다.
신라 본국에서도 군사 1만 명을 거느리도록 허락 받은 사실이라든지 감의 군사, 진해장군을 제수 받고 식읍 2천호를 하사 받은 배경, 그리고 두 나라에서 공히 행정상 자치권을 누렸다는 사실은 오늘날로 말하면 장보고 대사가 두 나라 국적을 초월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법권을 부여받고 활동하였음을 뜻한다.
장보고 지휘하의 청해진 그리고 재당 신라인들은 대부분 상공업과 해운·무역업에 종사 하면서 나·당·일의 경제 이익에 공히 기여함으로서 실제 공무역과 그를 대신한 사무 역 행위를 전적으로 주관하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 다국적 종합상사나 초 국경 기업도 감히 행하기 어려운 거래 형태이다. 정경일체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이 같은 거래 행태는 당시 나, 당 또는 나, 일의 정치경제 관계가 불편했을 때나 또는 조공무역이 종종 형평성을 결여하여 어느 한 쪽의 불평의 대상이 되었을 때나 가능하다. 이럴 경우 관련국에 편리한 반 관 반민의 무역형식, 즉 장보고 상단에 의한 견당매물사와 대당 매 물 사 방식이 성행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수인도 장보고의 후대 인물로서 아시아의 무역을 넓혀 나가는 인물이 되었다. 생명부지의 사내가 그것도 영어로 대뜸 수인의 앞에 당당하게 자기의 이력을 말하며 서있는 것을 보니 어디선가 수인의 정보를 들었음 즉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 사내가 아닌 담에야 틀림없이 고려의 문물을 수입하려는 것으로 짐작하고 자리를 안내하여 마주 앉았다. 수인은 수장으로서 영어를 익혀 쓰고 있었지만 언어 구사에 많은 노력으로 익혀 놓았던 결과다. 우선 통성명이라도 하여놓고 생각할 일이다.
그가 먼저 악수를 청하여 오는 것이 아닌가. 수인도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필리핀이라면 뱃길을 짐작해 보아도 한 달여 날짜가 걸렸을 것인데 그는 아무런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저는 김 수인이라고 합니다. 저의 상단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길에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 저의 이름은 마젤란이요.”
필리핀의 이름을 지어준 탐험가의 이름이요. 탐험가는 바다에 떠있는 섬나라에 들어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필리핀이라는 이름을 지에 세계에 알리고 맥 탄 섬에서 주민들과 전쟁 중에 사망하였다는 그 마젤란 탐험가의 이름과 같은 것이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전쟁에 스페인이 몰리어 섬으로 들어와 조용히 바다에 떠 살아가던 섬나라에 대란이 일어났지요. 필리핀이 스페인에게 전복되어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로 살고 있는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필리핀이 고향은 맞소만 그곳을 떠 난지 하도 오래되어 어느 나라가 내 고향인지 모를 정도로 아시아를 떠도는 장사꾼이요. 진즉 상도님에 대한 소문은 알고 있소. 중국 일본을 거처 살다보니 소문으로 듣던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소. 고려에 들어 온지는 여러 날이 되었소이다.
처음만나는 사람에게 필리핀의 역사와 자기의 이름에 대한 설명을 하여 거리감을 먼저 풀어놓고 대화 하는 데 거리감을 좁혔다. 그가 호감이 갔다. 아무 거리낌 없이 친구에게 말하듯 다가서는 모습이 타인이라기보다 서로 같은 일을 한다는 동질감에서 그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고려에 오기 전에 고려 말을 배웠다고 했다. 무역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첫째가 언어가 통해야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젤란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려에서 무역을 하는 여인이 상업 수완이 뛰어나 남자들이 그녀를 도와 최고 상업 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젤란은 어떤 여인인가 만나 보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던 것이다. 수인을 처음 보는 순간 마젤란의 가슴이 뛰었다. 머리를 곱게 틀어 올리고 여인의 부드러움과 사내 기강이 몸에 배여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그들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주로 마젤란이 대화를 끌고 갔다.
마젤란은 필리핀 왕자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고려를 알았다고 했다. 조상들이 신라라는 나라에 바다무역을 하는 장보고의 전설적 이야기는 왕실에까지 퍼져있었다고 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서부터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고 배를 좋아하여 바다에서만 놀았다고 했다.
필리핀 왕인 아버지를 사랑하였지만 부모를 떠나 살기를 결심하고부터 더 넓은 바다를 꿈꾸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배를 타고 다니며 중간 무역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수인은 그가 스스럼없이 솔직하여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먼 옛날 책에서나 들어 봄직한 바다의 왕자 책속의 이야기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수인을 웃게 만드는 신비로움이 있어 그 보답으로 그를 데리고 거리로 나왔다.
서라벌 장터를 걸으면서 수인도 아는 대로 3국의 역사며 고려가 어찌하여 3국을 통일 하였는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받으며 거리를 걸었다. 수인의 말을 듣고 있던 고려 땅 사람들은 국민성이 우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역사는 다른 나라 사이에 끼어 국민성을 모르고 전쟁에 얼룩져 우리라는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무역을 하는 두 사람은 참으로 마음이 통했다. 대륙을 여행하여 필리핀의 작은 섬을 발견한 그 마젤란의 탐험 때문에 우리조상은 지금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요. 저는 이름값으로 세상을 떠돌며 바다에 집을 짓고 떠돌이로 살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수인씨는 어떠한 연유로 이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과거가 궁금하였다. 수인도 이야기 하려면 길다. 다 그릇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수인은 웃음으로 대신하였다. “마젤란이란 이름이 참 독특하네요.”
수인은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 남정네에게는 한 순간도 혼인에 대한 감정과 기대를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이 통한다는 이유인지 그에 대한 느낌이 달랐다. 가슴속에 이상한 요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음미하는 것일까. 그와 잘 통한다는 것과 가슴에 일어나는 감정은 달랐다. 남정네와 단둘이서 여유롭게 거리를 걸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장터의 모습을 구경하고 천년 신라 왕실의 모습도 구경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여유롭게 어색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러웠다. 차츰 궁금증이 발동 하였다.
“마젤란 씨는 혼인 하셨습니까?” 상도의 마음으로 아무러치 않은 것처럼 그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그는 웃으며 수인을 처다 본다. “혼 인요?”
옛적 어느 시대 이야기처럼 얼마를 생각하다 속으로 삼켜 안으로 반문하는 듯 자신에게 묻고자 하는 것 같은, “너무 바삐 살았지요. 바다의 사나이가 어디 한곳에 머물 수 있습니까.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와 결혼 하였지요. 그 바다와 동침하여 사업을 낳으면서 살았더니 중년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한곳에 머물러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는 들더랍니다. 수인씨는 왜 혼자이십니까?”
먼저 물었기에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엇 때문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할머니 하는 일이 다 좋았다. 좋았기에 따랐다.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서 이익분배를 정당하게 하였고 그들 또한 속임수를 쓰지 않고 분배에 대해 행복해 하는 것이 좋았다. 특별한 직업에 정성을 쏟았고 그렇게 세월이 갔다. 마젤란이 비슷한 또래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혼인에 대한 생각을 못해 봤습니다.” 무역을 겸한 다른 사업에도 도전 할 생각 입니다. 새 사업이야기를 마젤란 씨와 해야 갰습니다. 무엇을 생각하시고 고려에 들어오셨는지 몰라도 마젤란 씨와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갔습니다.” 수인은 정말 오랜만에 하얀 이를 마음껏 드러내고 웃었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시려는지.
그것은 차츰 진행하면서 무엇을 수입해야 하는지를 검토해 보아야하고, 아직은 계획 단계 여서 순간 스쳐 가는 바람소리처럼 새 사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나아갈 것임을 말했다. 사업이 시작되면 필리핀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 물건이 있을 것이기에 마젤란 씨와 좋은 만남이 될 것을 수인은 그를 처다 보며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지금부터 우리는 사업 동무로 친하게 지내도 되겠습니다. 이건 우연히 아니고 필연이 되겠습니다. 때에 맞게 수인씨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처다 보며 활짝 웃었다.
안동자미원에 불경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저녁 시간에 모여 배움을 가졌다. 국교로 되어있는 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과목이다. 농경지가 전부인 고려의 백성들은 시간이 많았다. 무엇이든 익혀야 한다는 저녁 시간에 가까운 곳에서 경전을 배울 수 있다는 기쁨은 무엇에 비길 바가 없었다.
불경의 기초는 기도하는 절차와 육조단경 같은 알아먹기 쉬운 것을 기초로 삼았다.
육조단경은 육조스님의 일대기다. 그분은 불교를 만나기전에는 머리에 까치집을 지을 정도로 언문을 깨지지 못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나무를 팔아 연명하는 나무꾼이었다.
일자무식의 육조스님은 30이 되도록 가난하여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느 날 나무를 팔고 빈 지게를 지고 절 부근을 지나다가 절에서 들려오는 금강경 잃는 소리에 깨쳤다. 금강경의 내용은 이러하다.
“응무 소주, 이생 기심”이라. 그 뜻은, 마땅히 어디에도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였다.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육조스님은 한 순간 깨닫고 보니 마음이 급했다. 나무하던 지게를 팽개치고 스승을 찾아 걸음을 재촉하여 집을 떠났다. 스승을 찾아간 곳이 오조스님이 기거하는 곳이다.
오조께 예배하니,
“너는 어디서 온 사람이냐!”
“남북이 어디에 있습니까.”
첫눈에 보아도 무식하고 글자라는 것을 배워보지도 못한 더벅머리가 하는 짓이 놀라워 오조스님은 소리를 질렀다.
“이, 무지 랭이 데려다 부엌 허드레 일이나 시켜라.”
경전에 이르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이며,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고 물으셨다.
“영남 신주에 사는 백성이 스님께 부처되기를 구할 뿐 다른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너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 남북이 있다 해도 불성에는 남북이 없사오며, 오랑캐의 몸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날카로운 선기가 번뜩이는 문답이었다. 처음 본 스승에게 막힘없이 말하는 일자무식인 육조 혜능스님은 오조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오조께서 혜능의 말을 듣고 ‘이 놈이 혜안이 열린 법기(法器)로구나.’
오조스님은 나이가 들어 법을 물려주려 하여도 법을 받을 그릇이 없다는데 고심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오조스님의 휘하에는 오조스님이 입적하시면 법을 이어 받을 제자가 있었다. 더벅머리 육조스님은 무작정 거두어 주기만 간청하였다. 오조스님은 육조를 지키기 위해 아무렇게나 대하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멀리하게 하였다. 육조는 그때부터 ‘응무 소주, 이생 기심, 이라는 화두의 뜻을 안으로 새기며 밤낮없이 큰 절의 일을 도맡아 하며 힘든 줄을 몰랐다. 오조스님이 이제 법을 전수하고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무지랭이로 아는 육조에게 범을 전수해 준다고 한다면 큰일이 일어 날 걸 짐작하여 생각 하다가 시험 글을 지어 제대로 푸는 사람은 법을 전할 것이라고 절 내에다 방을 부쳤다. 그런 것도 모르고 육조는 밤낮없이 방아를 찧어 대중과 공부하는 스님들 먹을 것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육조가 이미 도력이 익어 있는 줄 알고 있는 오조스님이 밤중에 육조를 불러 오조가 지녔던 가사의 장삼과 법을 전수하여 이 밤 안으로 멀리 도망가 법을 펴라 하시었다는 육조단경의 경전이다.
진리란 문자를 많이 배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마음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설하였다. 행자의 신분도 달라졌다. 대중에게 진리를 펴나갈 그릇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생각에 불현듯 자미원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자미원 모든 일을 행자스님께 일임하리라 마음먹었다. 고려 왕실을 떠나 올 때 혜종께서 그동안 노고에 대한 마음으로 금의 수량이 무거울 정도로 챙겨 주었었다. 그러면서,
“일현 대사가 이번에 고생하였소,
태왕전하께서 붕어하시고 고려의 왕실의 평정을 도와주었기에 고마움의 표시로 주는 것이니 요긴하게 쓰시오. 안동의 일은 따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요.”
그리 하였던 금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미리 계획 한일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한다는 결심도 세워지지 않았는데 일현은 떠날 것을 결심하였다. 떠날 때 뒤의 꼬리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날이 새자, 행자에게 편지 한통을 남겨 놓고 자미원을 떠났다.
새벽에 길을 나선 일현은 우선 서라벌 수인에게로 발을 옮겼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선사들이 다녀 온 명나라의 국경을 넘어 요동이나 산둥 성을 돌아올 것이다. 한반도의 끝이 어디쯤 인지 고려임금 왕건이 그리도 북방 정책에 심려를 쏟아 수많은 고려의 젊음이 들을 희생시키며 차지하려던 오랑캐의 땅 요동을 보고 싶었다. 신라나 고려의 고승들이 부처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났던 길을 상상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어릴 때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들었던 명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새록새록 머리에 새겨진다. 과거시험을 공부할 때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물과 이름난 서책을 접해 보았기에 과거시험을 공부하는데 어렵지 않았다는 걸 지금에야 생각을 하였다는 게 고마웠다.
“어머나! 아버~ 스님 오셨어요.”
수인이 깜짝 놀랐다. 소식도 없이 불쑥 나타난 아버지스님의 발걸음에 놀랐다. 새로운 사업에 신경을 썼고 며칠 동안 마젤란과 만나느라 바빴던 탓이다.
“잘 있었느냐?”
“네, 그동안 왕실에 계셨어요?”
“그럭저럭 보냈다. 사업은 잘 되느냐. 지난번에 잠시 들렀지만 너, 가 혼자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은 놓였단다.”
“ 제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저를 따라 주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예요. 스님 이제 저랑 함께 살아요. 다른데 가시지 말고,”
수인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한마디 해본다. 그리고 무역이 아닌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인의 말을 들으니 이제 어른이 되었고 무역업을 하고 있는 수인이가 중이 되라 한들 의지에 없으면 헛말이 되겠다는 것을 알았기에 수인에 대한 마음은 접어야 했다. 사업에 물이 오른 수인이가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데 믿어야했다. 아직 어린 것으로만 생각 했는데 홀로 된 뒤 객지 생활을 어찌 견데 냈을까 하는 걱정도 하였다. 이제 그러한 마음은 접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해인사에 가시는 거예요?”
“아니다. 이제 해인사엔 안 간다.”
수인이 하는 일이 무역업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한다는 수인이가 대견스럽고 애비가 없어도 잘 살아준 것에 감사했다. 중국으로 갈라치면 뱃길을 이용하여야 하는지 육로를 이용하여야 하는지 물어 보았다.
“외국에요?”
“다른 나라의 문화를 한번 보고 싶구나.”
수인은 마젤란이 생각났다. 그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잘 알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본에도, 중국에도, 필리핀에도 무역을 하는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서라벌에도 그러한 생각으로 들어 왔다고 하였다. 그와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스님, 집에서 며칠 묵으며 생각해 보세요.”
수인은 이참에 그리운 아버지와 며칠이라도 함께 있고 싶었다. 아직 퇴근할 시간도 아닌데 일현을 졸라 집에 가기로 하였다. 같이 걷고 싶었다. 아버지를 위해 음식도 만들고 싶었다. 둘이는 장터를 걸었다. 장터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어머니와 마지막 장터를 걸었을 때의 일이 눈에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