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하늘의 뜻이라 이곳 안동 고을만큼은 영원히 안동 권 씨가 권세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데 안동 권 씨의 세력은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자미원과 끈이 된 십 오명의 왕건 여인이 이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에 횡제 중에 횡제라 생각하여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려왕이 내려 준 권세(權) 권자는 대대손손 모범이 되는 행실을 바탕으로 삼아 실천을 마음에 새겨 권세를 이어갈 것을 다짐하였다.
자미원 개관식에 먹을 음식은 삼일 전부터 안동관아 여인들이 장만하여 자미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대접하였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찾아 가야만 했던 부처의 성전이 이제부터 마음만 먹으면 가까이 찾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동 관아 여인들은 신바람이다. 생활의 고됨에 하지 못했던 신행 생활을 곧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가슴이 부풀었다.
안동 여인들 옷차림이 예외 없이 활기차 금방 무엇인가 이루어 질 것 같은 분위기다. 개관식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해가 지자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안동 관아에서 마련한 음식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람들 마음을 채웠다.
1회 학생들을 수용할 교실에 자리를 깔았다. 그동안 자미원을 건축하느라 고생하였던 군, 관민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잔치였다. 여인들은 여인들대로 마당이고 부엌이고 가리지 않고 모여 앉아 앞으로의 자식들 앞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승려 십 오명도 한곳에 자리하고 앉아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먹으려 마주앉은 십 오명 승려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안동의 자랑이며 안동의 귀한 인재를 발굴해 내는 선지식의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자부심을 가졌다.
유 씨 승려가 한마디 하였다. 참으로 좋은 날이 지요.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는 모두다 상상을 못했을 거지요. 우리는 좋은 세상에 살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여 안동을 위해 노력 합시다. 지금부터 1회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우리들이 교육 시켜야 합니다. 서로 학업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였지만 왕실에 보탬이 되는 일에 열성으로 도웁시다. 행동을 조심하고 왕실의 여인이 아니라, 승려로 자미원을 키워 나갑시다. 유 씨 승려는 동생들에게 개관의 기쁨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를 말하고 있었다. 모두는 손뼉을 치며 좋아 하였다.
한 자리에 모인 안동의 유지들과 장차 자식을 공부시킬 예비학부모들도 음식을 앞에 두고 즐거이 화기애애하였다. 좋은 음식에 술이 없다는 아쉬움은 장차 자식들이 공부할 곳에서 추태를 부린다면 못할 일이라 술이 없기 잘한 일이라고 한 바탕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하며 스스로 자제하며 즐겼다.
권행과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럴 때 술이 있어야 자리가 흡족 할 텐데 잔치가 좀 싱겁지 않소?”
권행은 웃으며 한마디 한다. 우리 집안도 신라에 이어 부처를 숭배해 왔소. 대사께서 태조대왕이 붕어 할 것을 미리 알고 안동에다 성전을 지어 달라는 말을 하였소? 기가 막히는 타임이 아니요. 아니 그렇소? 일현을 처다 보았다. 일현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웃었다.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니 놀랍지 않소. 모두가 안동에 부처가 내려 왔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건 그동안 고려왕의 은혜를 입은 나로서는 내 인생도 끝이라 생각 했소, 그러나 아직은 아니요, 자미원이 안동에 자리 잡은 이상 내 모든 힘을 쏟을 것이요. 대사께서도 젊어 한때 고려를 위해 정계에 몸을 담았었다는 걸 알고 있소. 고려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과거시험을 치룬 인재가 아니요. 풍문에 들어서 알았소만 속가의 아버님이 최치원이라 들었소, 그것이 사실이요? 권행의 입에서 아버님의 함자를 들으니 가슴이 벌렁 거렸다. ‘이분도 아버님 성함을 아는구나,’ 오랜만에 들어본 이름이라 반갑고 떨렸다. 권행이 더욱 친근감이 갔다.
“저의 아버님 함자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서라벌에서 최치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오래된 일인 것 같으면서 어제의 일 같기도 하지요. 쓰러져 가는 신라 왕실을 외면할 수 없음에도 왕실의 부름도 거절하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전설처럼 말을 전하고 있지요. 그 분이 신라 사랑했던 마음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요. 그때 왕실과 유대관계가 없었던 때라 나중에 소문으로만 들었소. 신라는 골품제 때문에 망했어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치도 바뀌어야 하는데 권력 유착이 썩은 냄새가 나는 때에 나라가 망하지 않았나, 안타까운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요. 이번 일을 보아도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아 앞으로 후퇴적인 정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데 찬성 합니다 그러기에 적극적으로 자미원 일에 동참합니다. 안동이 대사를 만난 것도 이곳이 부처의 중심 도시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모처럼 아버님의 함자가 그로 인해 나올 줄 몰랐다. 아버지 최치원의 행적을 알고 싶었는데 대화는 다른 데로 흘렀다.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있겠는가. 권행은 안동에 대한 꿈이 컸다. 나는 안동에 대한 애착은 없었다. 다만 부처의 사업을 안동에 정착시켜 모든 이 들이 자유롭게 마음을 닦아 좋은 세상을 살기 바랄 뿐이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게 부처의 길이다. 어디고 앉아있는 곳이 불법이고 진리다. 권행이 뜸 금 없이 한마디 한다.
“권력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들어와 부처의 가르침을 받을까 하오만,”
“참으로 좋은 생각이 십니다.”
아무리 놓은 권력이 좋아도 지나고 보면 한낮 바람이고, 그림자와 같고 번개 불과 같은 것이라 했다. 하루라도 빨리 불가의 진리를 탐독한다면 인생이 허무하지를 않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가장 빠른 시작인 줄 그 늦음이 얼마나 억울한가를 체험해 보신다면 인생이 허무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 말이 한번 해본 말인지는 진심인지 몰라도 말이 씨가 된다고 그도 머지않아 이곳 자미원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면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볼 것이다.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한 번의 생각으로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것이 불가와 인연이다. 그런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총책의 무게를 하루아침 무 자르듯 잘라 버리지 않았던가. 권 행 권력도 태조와 인연이었던 거지, 태조와 인연이 끝난 지금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바빴던 개관식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1회의 아이들이 입학의 원서를 들고 올 것이다. 우선 입학원서를 받는 대로 배움터를 열어야 할 것이다. 국고로 진행된다는 인재양성에는 안동의 백성들에게 더 기쁜 소식은 없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여들 것이다. 그러나 계율은 확실 하게 정해 놓아야 한다. 지금껏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부처의 교리를 배우는 곳으로 팀을 정하여 불법을 배우게 하리라.
장차 우수 학생들은 시험을 보게 하여 누구나 공정의 틀을 세워 불신 없이 동참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 할 교육의 틀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아침 일찍 회의를 열었다. 자미원 첫 사업이 시작되었다. 한 반의 명수는 30명씩 90명을 선착순으로 1학년을 받기로 하였다. 90명의 학생들은 승려들이 학업을 책임지기로 하였다. 불경을 배울 사람은 일현과 행자가 책임을 지기로 하였다. 곳곳에 방을 부처 놓았기에 어디서든 알고 찾아 올 것이다. 넓은 강당에다 세 곳의 책상을 마련하고 접수를 받았다. 과목은 우선 5과목으로 정하였다. 그 5과목을 승려가 담당하기로 준비를 마쳤다.
1과목: 역사
2과목: 지리학과 생물학
3과목: 체육
4과목: 예술과 문학
5과목: 불교와 경전
지금까지 집집마다 가정의 환경에 따라 개인 선생을 두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을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 년에 쌀 한 말의 학비를 받고 정자나 훈장 집에서 공부를 했었다.
신라시대 화랑들은 학문과 예술 문학을 배우는 최고의 학도였다. 그러나 자미원 교육 과목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몸을 단련시키는 체육시간을 넣었다. 예술이나 문학은 화랑의 후예가 익혀야 하는 덕목과 선비의 정신을 익히는 학문으로 사서 삼경시간에 넣었다.
벽보를 보고 모여들 학생들은 사는 곳이 멀거나 가정이 풍족하지 못하면 유학을 보내기가 어렵다는 판단도 하여 자미원에서 기숙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5년의 소학을 배우고 중학을 올라가는 데에는 시험을 통가해야만 가능하게 하였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학문이라 착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점차 고처 나가기로 하였다. 이 과목들은 승려들이 어릴 때 가정에서 배웠던 탓에 보충의 시간을 갖는다면 어려울 게 없을 것이다. 다만 체육시간을 접해보지 못한 승려가 이론으로만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하여 체육선생을 따로 두기로 하였다. 이러한 모든 준비는 대궐에서 배우던 학문을 책으로 엮어 만들었다. 그것을 혜종 임금이 대궐의 훈장에게 도움을 청해 주었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최고의 학업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방을 부쳐 홍보하였다.
대궐 학문은 최고의 지식인이 담당하여 왔기에 최고의 학문이라 어디에도 비교될 수 없었다. 그런 걸 생각하다 해인사에서 강의했던 강의 내용을 확실하게 준비하여 전달할 길을 찾느라 고생하였던 생각이 났다. 고려 궁궐에 없는 것이 없다보니 종이고 분필이고 원만 하였다. 무역으로 사들인 물건들은 공부하는데 최고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 학업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기쁨은 컸다.
안동에다 자리를 잡은 것은 옛 서라벌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대궐과 가까워 어려움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는데 유리할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태조가 붕어하기 이틀 전에 그러한 약속이 이루어 진 것에 감사하였다. 대궐의 어느 누구도 태조가 그리 빨리 세상을 하직할 줄 몰랐다. 모든 게 다 부처의 힘이다. 그것을 받아 행 할 그릇이 되어 있는 나의 업적이기도 하다.
임영관을 지어 인제양성에 쓰이라고 명주관아에 넘겨주었다. 보부상 무역업으로 모았던 돈을 신라 서라벌이 아니라 아들이 아찬으로 있던 명주관아에 선물하였다. 통 큰 미향은 그것을 초개같이 버리고 수인이만 데리고 명주군을 떠나 다시 신라고향 서라벌로 와 남성화로 단련시켜 남성을 넘어선 여인으로 무역 상단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권행의 말끝에 묻어나온 아버지에 대한 일들이 잊고 살았던 가슴을 그리움으로 적셨다. 머지않아 최치원의 뒤를 따를 것이고 어머니인 미향을 따라갈 것이다.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니 아내의 남편으로 애들의 아버지로 남겨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였다. 최치원 아버지와 김미향 어머니는 인간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특별한 만남이었다. 나와 가족과는 그리 특별한 만남은 아니다. 그러기에 쉽게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특별한 인연으로 가족을 갖는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 하늘사람 이라 해도 그렇다. 태조 왕건이 하늘을 오르던 날 옥황상제를 보았다. 인간세상 백 년도 살지 못한 하늘의 아들 왕건은 땅의 세상에서 불같이 번개같이 타올랐던 마음을 다 소모하였던가. 하늘의 왕자 번개는 궁예천둥을 만나 하늘의 왕이 되었을까.
땅의 세상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보이지 않은 세상을 생각하고 보이지 않은 것을 글로 엮으며 하늘의 도움 없이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리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면 소설 속 인물은 진실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 허상에 매몰된 사람을 볼 때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한 순간 잘못된 생각에 빠지면 별짓을 다하여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략한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또 마음이기에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죄를 판결하는 판사도 국민의 소리를 대행하는 국회의원도 예외가 없다. 한번 매몰되었다하면 180도 변하는 게 믿을 수 없는 마음의 허상들이다. 그 허상들은 인간이고 싶어 한다. 인간이 될 수 없지만 인간으로 인해 세상에 나타난다. 별의별 짓을 다하면서 인간 마음을 변하게 한다. 잘못 생각에 매몰되면 인생을 그르치는 일은 허다하다.
글을 쓰다가도 허상의 습에 빠지는 수가 종종 있다. 예상하기 어렵다. 몸 어느 부분이라도 예외는 없다. 일일이 나열 한다면 미친 사람이다. 그렇게 신의 세계에 노출되어 있는 게 인간의 삶이다. 생각 할 때나 잠잘 때에도 조심하라는 선인의 말씀은 그러한 일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현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에 떨리는 문풍지소리도 귀신의 소리라 했다. 인간의 머리는 한이 없어 기계가 달나라 가는 세상이라 해도 한 순간 방심할 수 없는 게 마음속의 장난이다. 조심하고 조심하여도 마신의 잔꾀를 벗어나기 어렵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해도 바른길이 열린다. 학생들만 시험 보는 것이 아니다. 승려들이 수없이 넘어야하는 것이 마음으로 오는 순간순간의 시험이다. 정진하는 사람은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기에 속으면서 바라볼 수 있어 매몰 되지 않는다.
여 승려가 달거리가 지날 때 일어나는 남성의 향기는 그 또한 시험의 문제다. 깊고 깊은 산속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몇 산을 넘어 코로 들어오는 남성의 향기기 그렇다. 공부하는 승려의 시험은 단계별로 이어진다. 남성들도 다르지 않다. 그러한 것들을 넘어서는 것이 공부하는 시험의 대상이다. 그런 것을 미리 알고 공부한다면 신의 농간은 더 이상 진전하기는 어렵다.
선과 신의 경계가 신선이라 했다. 그러한 것들을 넘고 넘어서 선에서 지혜를 얻는다. 신선의 경지에 닿으면 마음속 모든 것을 예상하고 바라본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보리수 나무아래 깨달음의 장면은 진리의 전설이다. 귀녀들이 유혹하는 장면이다. 아름답기로 말하면 천상의 여인이 무색할 정도로 유혹하는 장면이 있다. 그 아름다움을 가장한 귀녀들의 몸짓은 석가의 깨달음을 막으려는 불가사의 마귀 대왕이 꾸며낸 허상이다. 귀녀의 목소리는 귀에 사무치는 노래로 육신을 허물어뜨리며 그 아름다움은 오금이 저릴 만큼 헤어나기 어렵게 유혹을 한다. 이미 그들의 출현을 알고 있었던 석가의 마음은 무슨 짓으로 유혹한다 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마귀들은 승려들을 방해하기 위해 고도의 기술을 사용한다. 그 기술에 넘어갈 수 있어도 결코 매몰되지 않는다. 시험 중에 어려운 것이 성욕의 실체다. 신의 세상을 모른다면 승려는 자격이 없다. 앉아서 밥이나 얻어먹고 아녀자나 넘보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신의 세계는 집착에서 온다. 집착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세계다. 집착은 무서운 독이 되어 인간을 무너뜨린다. 마음공부는 집착을 소멸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어느 하나에도 집착의 그림자가 없어야 한다. 그 집착이라는 것이 인간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예술이나 학문의 탐구에 쓰여 진다면 인생을 합일하여 성공의 발로를 만든다.
고통의 근본은 욕심이다. 하늘 세상에도 복을 다 까먹으면 땅으로 내려와 다시 도를 닦아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한 존재적 보전이 있는 한 인간의 고는 이어질 것이다. 오늘 의 행각이 미래 자신의 얼굴이다.
승려 유 씨 부인도 우물가에서 왕건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범한 여인으로 살았을 것이다. 고려왕실의 첫째 왕비 유 씨는 정주에 사는 대 부호 유천궁의 딸이다. 왕건이 견훤과 전투 중에 목이 말라 우물가로 찾아들었다가 때 마침 유 씨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가에 왔을 때 왕건이 목을 축이려 우물가에 왔다가 유 씨 부인을 만났다. 왕건을 본 유 씨 부인은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왕건에게 주었다. 천천히 물 한 바가지를 다 마신 왕 장군은 여인의 지혜로움에 집안을 물었다. 여인의 부친인 유천 궁은 이미 왕건의 존재를 알고 있는 터라 딸을 왕건에게 바쳤다. 하룻밤 인연은 여인에게 고귀하고 슬픈 밤이다. 시대가 혼란스럽던 때 유 씨 여인은 왕건의 잊혀 진 여인이 되었다. 유 씨 여인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그 후 다시 왕건과 만나게 되었지만 첫째 왕비로서 왕손을 생산 하지 못하여 다시 왕가의 최고 자리에서 밀려나 계율과 법도를 교육시키는 큰 역할을 하였다.
여인들 삭발하는 일이며 옷 지어 입는 일이며 어렵지 않게 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학업에 필요한 책들도 대궐에서 교과서로 복사하여 마련하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대궐의 첫째 어른이었던 유 씨 승려는 승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 주었기에 어려움이 적었다. 유 씨 부인은 자미원을 건립하여 자리를 잡는 일에 일체 관여하여 도왔기에 어려움이 적었음을 알고 일현은 보살의 역할이라 치하하려 하였다. 어느덧 안정된 생활이 유지되는 시점에 유 씨 부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한 번도 조용히 마주앉아 본 일이 없지만 자미원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대화도 하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무엇이 통하였는지 유 씨 승려가 대사의 방문을 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였다. 유 씨 부인은 세 번의 예의를 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마주 앉았다. 찻잔을 마주하고 앉아 먼저 인사를 하였다.
“부처님 사업에 승려의 힘이 만대에 빛날 것입니다. 제가 해인사에 기거하였을 때도 세분 여인 불자로 인해 큰 도움을 받고 일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후학의 문제도 그러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안동에서 부처님 사업을 해내야 하는 큰 과제입니다.”
일현은 유 씨 승려에게 찻잔을 권하였다. 대궐의 일인 권력자가 불가 스승을 대하는 몸가짐이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저희가 대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큰 복입니다
태왕 없는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슬픔에 잠겨 있었을 저희들을 구제하여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대사님은 고려의 은인이 십니다. 우리들이야 이제 모든 마음을 불가에 바치기로 다짐하였으니 다른 말씀은 아니 하셔도 됩니다. 다만 앞으로 경험을 쌓아 가는데 대사님의 가르침이 절신합니다. 아이들에게 역사공부는 고려의 위상인데 삼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잘못된 점도 있을 터이고 역사가들이 고려에 유익하게만 하여도 아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났지만 역사는 제대로 쓰여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화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참으로 올바른 마음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지만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과 이미 써 내려 왔을 역사의 내력을 역사가들의 판단에 맟길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고려를 짊어질 미래의 아이들을 생각하다보니 거기까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래의 역사가들이 태왕과 연관된 29명의 여인들에 대한 논란도 없지는 않을 것이기에 권력에 희생양이 된 여인들 한을 역사는 반듯이 집고 넘어갈 사항이 될 것입니다. 대궐의 여인들이 비구니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처님에게 홍복인지 몰라도 예외 없이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유 씨 승려는 왕실의 수치를 미리 꼬집는다. 역시 불가에 입문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님, 저는 이제 어떤 공부를 하면 됩니까.”
참으로 감당 할 수 없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불교 초학을 공부한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 기도의 순서와 무엇을 공부의 대상을 삼아야 하는지 들어서 실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듯한 승려의 길이 따로 있었다. 부처님 시대에 부처님 사촌누이가 승려가 되기를 갈망하여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 가르침으로 살고 싶습니다. 승려로 받아주십시오.”
왕궁에서 탈출하여 자유인이 되신 싯다르타 태자를 알고 있는 그녀는 어려서부터 싯다르타 태자를 좋아했던 여인이다. 그때 석가는 반대 하였다. 열심히 공부하는 비구니 승려들의 마음가짐을 흔들 수 있는 일이라고 반대 하였다. 그러나 석가의 시대가 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상은 달라졌다. 여인들의 사고가 트이어 승려를 갈망하는 여인들이 늘어나면서 여 승려에 대한 계율이 엄하게 적용 되면서 출가를 허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려가 정착 하여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남녀 평등사상이 여성들 생활에 권위를 높여 주었다. 여인들의 생활이 자유로웠던 때를 같이하여 모든 여인들이 부처의 진리를 배우려는 시대가 되었다. 유화 승려는 이제 그런 초학 적인 것에서 벗어난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아랫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선의 경지에 들어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하여야 학문에 이입시켜 후생교육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릇이 될 겁니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계획을 세워 한 겨울 석 달과 한 여름 석 달은 춥고 더운 탓에 배움을 쉬는 계절이라 그 틈을 이용해 정진하여 선을 이루십시오. 그것이 다섯 단계로 이어져 마치면 기본 승려자격이 갖추어 집니다. 자미원을 계획한 목적은 후생들의 기초학문과 불교진리를 중심으로 불법을 전파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학문과 선의 세계를 넓혀 가신다면 부처님 가피가 분명히 따를 것입니다. 애들의 학문이야 학업에 따라 반복되지만 승려의 공부는 다릅니다. 이제 부처님시대에 행했던 대로 사계절 중 겨울과 여름 석 달을 정해놓고 참선 공부를 실천하는 때를 삼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공부입니다. “이 뭣 꼬” 이것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이 몸은 누가 조정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곧 부처가 자신이고 자신이 곧 우주라는 것이지요. 자신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사십구일 기도하는 동안 하늘 세상 염라국과 여인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여인의 나라에서 여인들에게 부처의 공부를 실험했습니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부처의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생각도 아무런 의혹도 없던 죽은 자가 생각을 하고 희망을 갖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자와 산자의 차이가 있다면 몸이 있고 없는 차이입니다. 몸이 없는 자는 생각만으로 어디든 갈수 있습니다. 그 마음도 죽은 자와 산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산자들에게 어떤 생각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입니다. 그 책임은 이제 승려 여러분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승려의 책임이고 고려 백성들이 깨우쳐 가야 할 일입니다. 공부하다가 의심이 생기면 서슴없이 물어 오십시오. 공부 중에 어려움이 종종 있을 것입니다.
유 씨 승려는 용기를 얻었다. 어렵게만 여기고 있었는데 만나서 궁금한 것을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였다. 동생들이 물어 올 때면 서슴없이 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였다. 왕손을 낳지 못하여 가슴의 설음을 삼켜야했던 자신에게 왕손이 있었다면 이러한 처지는 되지 않았겠지만 다행인지 또 다른 길에 서 있다는 게 놀라웠다. 첫째 왕비로 왕과 함께 나랏일에 대한 병법을 논의하여 이롭게 하였다. 그러한 힘으로 살았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승려가 다시 되고 보니 다 부질없었던 지난 일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왕건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불제자로서 손색이 없는 위치에 있었을 것을 후예도 해보았다. 그런 생각이 자기뿐이겠는가. 승려가 된 여인들이 아무 소용도 없는 허울 속에 살았던 허무한 세월을 곱씹어 알음아리를 할 것이다. 윗사람으로 무엇인가 모범이 되기를 바랐다.
일현은 유 씨 승려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는 그 오랜 세월 평생을 부친인 최치원을 그리며 살았다. 아들하나에 의지하다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어찌 또 버티어 냈을까. 아련히 과거를 회상하다가 다행히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하였으니 다시는 생각을 하지말자, 다짐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 수인이 있다는 것을 있고 있었다. 혼인이라도 하였다면 뭐 그리 마음에 담을 일이겠는가. 낮선 곳에서 부모라고 만났는데 마음대로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수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수인을 승려로 권해 보리라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가 다시 찾을 거라는 기대로 살았다. 하고 있는 일이 크다보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고려왕실에 간다던 일현이 1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영영 못 볼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를 닮아 무역을 하여 벌어들인 돈을 서라벌 땅 늘리는데 한몫 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사업도 점점 커서 서라벌에서 알아주는 사업가로 변하였다. 옛 서라벌 궁전이 도청부근에 있었다.
왕건 죽음을 함께했다는 일현 대사의 일화는 소문의 꼬리를 물고 서라벌 백성들까지 알고 있었다. 경주의 사업가인 수인이 일현 대사의 속가 딸이라는 것도 알았다. 유명세를 타는 사람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알고 싶은 것이다. 서라벌 경주 도청에서 수인이 운영하는 보부상에 사람이 왔다. 수인은 보부상들 사이에 큰손이라고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사업을 잘하여 그랬는지 도청에서 찾아오기는 처음이다. 말쑥한 남성이 수인의 사무실에 들어 와 이리저리 살폈다. 사무실 직원들이 의아해 방문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중 한사람이 일어나 낯선 사람을 맞이하였다. 도부상인으로 거래 하기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게 옷차림이다. 손님에게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었다. 서라벌 군청에서 나왔다며 이곳 사장님을 뵙기를 원했다.
군청에서 직접 찾아왔다면 혹시 세금이라도 잘못되었나,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수인의 사업은 회사원들과 투명하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군에 바치는 세금의 서류에도 매달 청검하여 투명하게 하는데 빈틈이 없어 보부상 규율 법에 정해 놓았다. 세금이 잘못 되어 찾아왔느냐고 물어야했다. 사장을 찾는다는데 확실한 이유를 알고 사장에게 연결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런 것이 아니고 여기사장님을 초대 한다는 초대장을 전달하려고 왔으며 이번 서라벌 우수 회사로 결정이 되어 군수님 특별상을 드리게 되었다고 전하라는 명을 받고 찾아 왔다는 걸 말했다. 긴 봉투를 내어 밀었다. 봉투를 받아든 보부상직원은 봉투를 높이 들고 흔들었다. 이방인의 방문에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봉투를 든 사람 옆으로 섰다. 그리고 군청에서 나온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사장님께 잘 전달하겠노라고 했다. 다시 생각하여 이 사람을 섭섭하게 한다면 어떤 불이익이라고 받을까 하여 물었고 자리를 권하여 차를 권하기도 하였다. 군청사람은 사장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랫사람들이 사장을 만나게 하지 않고 보내려는 속셈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사장님을 만나 뵈면 안 됩니까.”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노크를 하였다. 그리고 군청에서 들고 온 초대장을 전했다. 아무반응 없이 서찰을 받아 옆에다 놓았다. 군청에서 온 사람이 사장님을 한번 뵙기를 원한다고 했다.
대답이 없는 사장의 행동에 직원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할머니가 교육 시킨 대로 몸가짐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사 내의 위기질서를 철저히 하고 품위 있는 인간관계를 귀 칙으로 삼아 권위를 스스로 지켜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교훈으로 남긴 할머니의 말씀은 위엄을 갖춘 여성 사업가가 되려면 어떤 행동과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었다. 아무리 군청의 관리라 해도 남성임에는 틀림이 없기에 그렇게 위엄을 보였던 것이다.
군청의 사람은 자신하고 들어 왔다가 사장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사무실은 웅성거렸다. 군청에서도 회사의 능력을 알아준다고 기뻐하였다.
군청에서 주고 간 초대장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며칟날 군청으로 오라는 편지다. 보부상인들 간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여성이다. 어린 시절부터 몸을 단련하여 무술을 익혔고 남장을 하고 살았기에 누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무실 직원들도 그런 그녀를 그림자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스승을 드려 외국어를 배웠다. 일본, 중국, 영어권도 배워 익혔기에 어느 나라에서 온 상인이라도 사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탁월한 상업 기술이 있었다. 이제 보통 재력가가 아니다. 현대식으로 지은 회사는 누가보아도 아녀자가 사장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없을 만큼 크고 높았다. 회사가 커갈수록 몸가짐에 조심하였다. 친 가족은 멀리 있고 옆의 사람들이 가족같이 둘러져 있다고 해도 혼자라는 향수병을 감추며 살다보니 말이 적고 사업 수완에 정성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일현이 다녀간 후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옆에 보호자가 있다는 것은 상인들 간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이 되었다.
상승하는 기온은 기록상으로 100년만이라는 최고치를 올렸다. 참는 데 한계를 느끼는 더위에 8월 두 번째 주까지 더위가 있으니 노인들은 낮 시간에 밖으로 나가지 말고 물을 자주마시며 더위를 지혜롭게 넘기라는 것이다. 그 즉시 인간의 뇌는 다른 프로그램을 짜야 했다. 긍정적 마인드로 더위를 다스려야 한다는 건강 비결이 뇌에 전달되자, 뇌는 부담과 한계를 느끼고 가슴에 전달하였다. 선풍기에서 에어컨으로 기계의 도움 없이는 이 상황을 넘기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솟아 오르던 더위를 참을 만큼 참았던 하늘도 한계점에 도달 하였는지 지난 밤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를 대지위에 퍼 부었다. 땅과 하늘, 인간의 마음까지도 불덩이로 만들었던 여름의 기승은 하늘의 노여움을 샀다.
이제 곧 가을로 접어들어야 하는 계절인데도 여름이 기승을 부려 가을의 초입을 방해 한다면 하늘이 개입하리라! 무엇이든 도가 지나치면 스스로 벌을 자처 하는 것이다. 하늘은 여름을 심판하였다. 갑자기 하늘이 반쪽으로 쪼개지는 천둥소리가 뒤이어 하늘전체를 찢어 갈기는 번개 불의 출현은 잠 못 들었던 새벽 2시 여름의 방자함을 꾸짖는 하늘 소리인 듯 오금 저리 게 무서웠다.
더위에 절여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꺼 놓았던 텔레비전이 갑자가 번쩍 켜지면서 화면 속 그림이 울긋불긋 나오고 있었고, 방 하나씩 차지하고 뒤척였던 남정네와 나는 번개 불로 밝아진 방안에 전기 코드를 급히 찾아 빼고 생각했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치닫기만 하였던 여름은 쏘다지는 소나기에 꺾기지 않으려는 발악으로 쇠 달구듯 달구어 놓은 방안의 기온을 찜질방이라 연상케 하였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던 여름은, 바람의 열도로 상승하다 마지막 열풍을 뿜으며 방안으로 진입하여 바닥에 누웠다. 새벽을 지나 동이 틀 때까지 예외 없이 하늘은 번개와 천둥의 위엄을 보였다. 하늘 밑에 영악하기로 인간이 제일일 테지만 여름이 하늘에 의해 꺾이는 것을 보았다. 가을은 그렇게 하늘의 심판으로 여름을 밀어내는 기회를 잡았다.
“사계절이 분명 지켜져야 하거늘 어찌, 여름은 여름의 것으로만 만들려는 것이냐.” 하늘에서 여름을 훈계하는 소리를 듣는다.
계절의 영역을 침해하지 말라! 수많은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마치 섬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기상은 호랑이 얼굴이 아니 더냐. 그럼에도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목숨을 잃었을망정 굳건하게 나라를 지켜오지 않았더냐. 땅덩이는 작지만 다른 종족과 달리 우수한 인재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곳이다. 환경과 지리적 조건이 뛰어나 다른 이가 부러워하는 그 아름다음의 원인은 사계절이 뚜렷하게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또 여름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봄의 꽃샘바람까지 너희가 관여하려 드느냐. 꽃샘 바람이 있는 것은 봄의 역할이 틀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과 봄 사이 피는 꽃들은 그 아름다움과 향기가 달라야 하고 꽃샘이 지나간 자리는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절제하여 봄의 기능을 높이는데 그 의가 있음이다. 지난 3년 동안 지켜 본 결과 여름이 점점 봄을 관여하여 행세를 하려 하는 것을 지켜보았노라. 여름이 봄을 관여 한다면 경계도 없이 한꺼번에 흔하디흔한 꽃이 되어 꽃의 고귀함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꽃의 곧은 절개를 땅에 떨어지게 하였다는 걸 여름은 모르느냐. 꽃의 생명은 아름다움이다. 계절에 따라 일찍 피고 늦게 피어 봄 내내 자연의 신비함을 인간에게 제공하여 왔다. 그 질서를 흔드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름이 관여하는 바람에 추운 곳이나 더운 곳이나 올 봄의 꽃들이 제주도나, 강원도나, 하늘 첫 동리로 아는 대관령 넘어 평창, 진부에도 경계가 없이 똑같이 흔하디흔하게 벚꽃이 피었어라. 봄을 여름이 침범하여 망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엄연히 분배되어진 계절을 무슨 연고로 침범하려 드느냐. 하늘의 노여움에 여름은 죄 지은 듯 조용하게 듣고 있었는데,
“하늘 님, 여름도 할 말이 있습니다.” 여름은 처음부터 여름이었고 앞으로도 여름입니다. 여름이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그리 만들고 있습니다. 하늘 님은 그것도 모르십니까. 여름을 봄에 끓어 들인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특수한 뇌는 어디까지가 한계점입니까. 물이 기름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생기 전에 지구는 오염으로 불덩어리가 되어 한계점에 이루게 될 것입니다. 어찌 감당하렵니까. 하늘 님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십니까. 하늘 사람을 땅으로 내려 보내시어 오염 없는 세상을 만들 계획은 없는 겁니까. 대한민국이 더 이상 쇠붙이로 달아오르는 불덩어리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되지 않을 런지요. 여름도 여름의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인간이 기계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부리는 시대가 왔습니다. 여름은 자연히 끌려들어가야 합니다. “듣고 보니 그런 면도 있겠구나.”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리되어도 되는 나라다. 이제 그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고생 끝에 낙이라 아니더냐. 그래도 여름아, 대한민국은 언제라도 사계절이 뚜렷해야만 한다. 더 이상 계절을 무시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백년에 한번 있는 현상이라니 용서는 하겠지만 봄을 그대로 꽃샘이 제 구실을 하도록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땅의 온도를 급속도로 조정할 것이다. 너의 오만이 원만하여서는 물러서지 않을 듯하다. 급한 마음에 천둥을 불러 혼 구멍을 냈고, 번개를 일으켜 소나기를 뿌려 너의 고개를 꺾었다.
남대천 버드나무숲이 갑자기 쏘다지는 소나기와 천둥번개 소리에 오금을 저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구술 쏘다지듯 땅에 구르는 소낙비가 허술하게 하였던 산사태의 붉은 흙물이 냇물을 덮쳤다. 불어나는 물에 버드나무, 미루나무가 뿌리 채 뽑혀 떠내려간다.
찌들어 늘어난 창문은 뜨거운 소낙비가 목욕을 시켜준다. 창문사이로 흐르는 하얀 비 줄기는 여름내 달아올랐던 온도를 차례로 밀어 내리고 매연에 찌들었던 길바닥도 갈기갈기 찢어져 흩어진다. 말갛게 단장한 창문이 작은 바람에도 맑은 휘파람을 분다. 뜨겁던 바람이 서늘하여 귀하고 창문에 흔들이는 빗물도 귀하고 귀하다.
여름은 2019 봄의 기운을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여름의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 인간을 이롭게 한다. 땀으로 얼룩졌던 마음을 추슬러 그렇게 일상이 지나간다.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라는 세상에 살면서 인연이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즐겨야 한다는 가을, 패턴을 넘겨받은 논에는 어느 사이 햅쌀이 나오고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과일을 보면서 여름의 그림자를 넘는다. 계절은 미련도 없고 집착도 없이 보내고 맞이하는데 하늘이 귀한 선물을 준 날 하늘과 여름의 대화를 적었다.
경주관아에서 오라는 날 직원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관아에서 부른 것은 표상을 핑계 삼아 무엇인가 큰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들은 모든 정보를 수입하여 상도일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때 스님이 옆에 있다면 힘이 되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처음 관아의 부름을 받고 보니 무엇인가 이루어 낸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보부 상인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이지만 관리를 만나는 일은 가슴이 뛰었다.
“ 우리가 무역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도청 관아에서 포상하려는 것이겠지요?”
조용히 걸어가던 직원이 수인을 쳐다보며 지루함을 덜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입을 다물고 걷고 있었다. 표상을 줄만도 하지. 국익을 위해 노력한 대가는 관아에서도 알아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에 들어가서도 고개를 숙이지 말고 의젓하게 행동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고 그들이 어떠한 말을 할지라도 직접 답을 피하는 것으로 다시 생각하여 전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수인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함께 해 왔기에 창립 동료로서 믿고 따랐고 한 번의 실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익의 흑자에 대해 그녀는 투명 하였다. 그러기에 충성심은 날이 갈수록 깊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들에게 유언으로 부탁하였다 언제나 믿고 도와주라는 말이었다. 이익의 분배가 공평한데 무엇에 불만을 갔겠는가, 그렇게 그들은 사업 동지였다. 그들은 수인 일행을 맞이하였다. 관 입구에서 그들 뒤를 따라가면서 수인은 최치원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신라왕실 왕의 친서를 받고도 왕명을 거역하여 다시는 왕명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로 귀를 씻어다는 최치원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뜸 금 없이 하였다. 신라왕실이 고려에 이입되면서 신라는 이제 희망이 없다는 절망에 저작거리를 헤매던 최치원은 할머니 미향을 만나 아버지 일현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평생을 수절하며 살았어도 흐트러짐 없었던 미향의 이야기는 수인 가슴을 아프게 하여 그런 사랑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