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펴보니 동굴 문이 비스듬히 열려있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긴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저 멀리서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들
어가니 난데없이 몸집이 큰 곱지 않은 여인이 앞을 막았다. 가볍게 떠 있던 기분이었는데 몸이 아래로 내려섰다. 그곳은 가끔씩 들어오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 감시원이었다. 시간 때에 맞게 들어 왔다 나가는 그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여인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완벽할 수는 없다. 여인들 대부분은 전쟁 중에 죽었거나 모진 돌림병으로 죽은 여인들이다. 죄지은 것이 없으니 염라국에 제판 받은 적도 없다. 죽은 망자는 자동적으로 죽은 자의 법에 따라 그리 분리 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몹쓸 짓을 당하여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은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여 여인들끼리 모여 사는 것이 자유로웠다. 몸집이 크고 곱지 않은 여인이 옷차림을 보고 감시하러 온 사자들이 아니라는데 놀랐다. 한 번도 타인이 들어온 적이 없는 이곳에 살았을 때 보았던 스님의 출현에 놀라고 있다.
“여기는 산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어찌 들어 왔소?”
말로 물어 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어라고 설명을 하여야 할지 망 서려 졌다. 그러는 사이 곱지 않은 여인의 경계가 시작되었다. 보 호 막으로 들고 있는 물건은 이리저리 굽으러져 울퉁불퉁한 칙 뿌리로 만든 막대기였다. 여인 손에서 위협적 무기가 되어 일현을 막았다. 이 여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 하여 알아들을 리 없다는 판단이 들자 밀어내는 대로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냥 물러설 수 없다. 그 여인 앞에 공손히 합장하였다.
“이곳 어른을 좀 만나보고 싶소.”
어른을 찾는 자가 얼굴이 사납지 않고 온화한 것에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들고 있던 칙 뿌리 무기로 한 발 더 밀어내었다. 곱지 않은 여인은 속으로 이상한 것을 느꼈다. 몸이 가벼워 보이는 자가 죽은 여인들을 찾는 이자는 누구일까. 하늘 사람인가 땅에서 올라온 사람인가, 무슨 일로 어른을 찾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밀어 내기보다는 어른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락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어르신을 만나려면 잠시 기다려 보시오. 알아보리다.”
연락망은 빨랐다. 금방 한 여인이 당도 하여 일현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손뼉을 탁 쳤다.
“당신은 재판장에서 변론 하던 자가 아니요!”
“법정에 오셨습니까?”
“우리 어른이 억울함을 말했을 때 당신은 망자의 편을 들어 변론 했는데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습니까. 돌아가시오. 어르신은 당신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남성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소이다.”
그 여인은 매몰차게 말을 하고 돌아 섰다. 일현은 그 여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곱지 않은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앞에 가던 여인이 돌아보고 놀랐다. 손으로 옷소매를 잡아채려 하였지만 손에 잡혀 지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연인들이 물물이 앉았거나 누웠거나 시선의 초점도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여인들이 모여 사는 나라였다. 집은 있으나 그림자처럼 일렁거렸고 그 모습은 하나도 생의 활력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있을 뿐이다. 가끔씩 음침한 곳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도 보이고 둘 셋이 끓어 안고 헉헉거리는 문란한 것도 보였다.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생의 활력을 읽고 사는 여인들을 어떤 방향으로 선도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앞에 가는 여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어느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주위가 정갈하여 탁한 기운은 하나도 없었다. 여인이 찾아든 곳에는 책상에 많은 책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법정에서 눈을 초롱이며 증인석에서 할 말을 다하던 여인이 있었다. 여인이 무어라고 말을 하더니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다른 이 들은 일현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자기들 하던 대로 주위를 보지 않았다.
이곳의 어른인 듯 저들을 통솔하는 책임 있는 모습은 몸에 배어있는 엄격함이 이 있어 보이고 입고 있는 옷매무새가 어제와 달랐다. 머리를 곱게 빗어 올려 죽은 자의 몸에도 품위라는 것이 감돌았다.
“무슨 연유로 남성금지 구역에 오십니까.
입구에서 확인했을 것인데 여기는 아무나 들어오는 것이 아니요. 이곳까지 들어온 연유를 말해 보시오. 여기는 귀신들의 소굴인데 당신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죽은 자요? 여기 있는 귀신들은 의혹도 없고 죽었다는 의식도 분명하지 않은 자들이 사는 곳이요. 다만 육신은 없어도 본능은 살아있어 그 본능이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뿐이요.”
그러한 곳에 무엇을 원하여 들어 왔느냐 다구 쳐 물었다. 이 여인이라면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 같기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보시다시피 고려의 영웅이었던 망자 왕건의 재판을 변론하기 위해 선택된 대사 일현이라 합니다. 어제 일이 마음에 남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처음 느껴보는 안타까움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음을 말했다. 여인네들의 깊은 상처가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는 소리를 듣고 혹시라도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성심을 다해 도울 수 있소. 그 여인의 싸늘한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그 여인은 무언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하든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을 가졌으니 그 무서운 염라국에 두 번씩이나 앉아 있었을 것이다.
어찌 도울 수 있는지 말해 보라는 여인의 말에 여인과 마주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다름 안인 환생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입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이곳을 나갈 수 있는 길이다. 천상의 길은 멀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기에 정신을 차려 말에 귀 기 울려들어야 가능 하다는 것을 강조 하였다. 여인은 눈을 반짝이며 귀에 담았다.
“저들을 뜻대로 해 보시요.”
여기 있는 여인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활력소를 불어 넣어 준다면 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매일 한 번씩 들어와 설명하겠다는 게 일현의 생각이다. 의욕이 없는 이들이 어르신의 말은 인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지만 저 여인들이 그런 마음을 받아 않을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다.
그 여인의 말은 여기까지 들어올 때는 그 만한 각오는 하고 왔을 터이다. 라는 생각으로 한 낮 희망의 눈빛이 반짝였다. 여기일은 자신에게 맡겨 달라며 저들이 당신 말씀을 듣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됩니다. 당신 말씀을 인식 한다면 다음은 그들의 몫이니까요. 여인은 도리어 약속을 어길까 걱정이다. 여인과 약속을 하고 돌아 나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새벽이 다 되었다. 가부좌를 접고 몸을 풀었다. 그리 오래 선에 들어 본적도 드물다. 이번 사십 구제는 참으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앞으로 21일 남았다. 그동안 여인의 나라에 들어가 매일 설법을 해야 한다.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새벽잠에 빠졌다.
아침부터 대궐 안 성전은 분주하다. 마지막 제 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제에 차려놓은 음식이며 과일이며, 부침이며 없는 것 없이 상에 차려 올리느라 대궐 안이 분주하다.
오제 기간에는 여인의 나라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들을 깨우쳐 맑은 정신이 되어 생각할 수 있도록 설법을 하느라 그곳의 어르신과 합심하여 보름 동안 드나들었다.
육제 때 염라국 방청석에 앉았던 험상 굳게 생긴 남자귀신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할 말이 있다하여 법정이 혼란스럽던 일이 있었다. 법정에 염라판사가 이름을 대라고 하였다.
“여기는 신선한 망자의 법정임을 모르는가, 망자에 대한 할 말이 있는 것인가?”
염라판사가 위엄을 보이며 말하였다.
“저는 고려 백성이었습니다.”
“그래 무엇이 억울하여 이곳에 왔는가.”
“염라재판장님, 저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주십시오.”
사내가 염라 재판장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법정은 소란스러워 정정의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방청객은 의아했다. 망자의 죄가 아무리 만아도 아무나 억울함을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곳이 어디인가.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염라 법정이 아니던가. 사내는 우선 고려의 백성임을 판사에게 일렀다. 스스로 자기는 백정이라 말했다. 사내는 죽을 결심으로 염라왕을 쳐다보았다. 먹고 살기위해 백정 노릇을 하며 살았다고 했다.
저 망자의 나라에서 백정 짓을 하다 죽은 사람입니다. 제가 법정에 나와 재판 과정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저가 살아온 처지가 너무나 불상하여 여쭙니다. 백정이라 하면 인간들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무서운 짐승 보듯 하였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백정이 잡아놓은 고기를 먹으며 행복해 합니다.
어떤 스님이 푸주 간을 지나가면서 무엇에 쪼기는 듯 손으로 코를 막고 뛰어 가는 게 보였습니다. 그날따라 고기가 많이 팔려 기분이 좋았는데 스님의 그런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몸에 두르고 있는 가죽 앞치마에 붉은 피가 낭자하였고 열손가락 사이사이에 붉은 피가 묻어 흉측했습니다. 새삼 사람의 몰골이 아니라는 생각에 놀랐습니다. 얼굴이고 몸 전체에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저 자신의 몰골이 무서웠습니다. 가족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백정인가 살인자인가하는 잠시 동안 몽롱하여 비틀 거렸습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 하였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렵게 택한 일이 아니던가. 자식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에 즐거웠습니다. 그랬던 마음이 갑자기 소름 끼쳤습니다. 푸주 간을 일찍 닫고 큰 개울로 나갔습니다. 풀을 뜯어 거품을 내어 몸 전체를 씻고 씻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생각이라는 걸 해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살 바에 차라리 죽어 버릴까 생각하다가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의 얼굴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 와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루의 일이 끝나면 매일 개울로 나가 짐승가죽으로 된 앞치마와 피 묻은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리고 푸주간도 매일 깨끗하게 청소를 하였습니다. 피 비린내가 덜 나게 하기 위해서지요. 백정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목이 메어 말을 있지 못 했다. 죽어서도 다른 귀신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코를 막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를 원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고려의 백성입니다. 이 재판의 다양성을 재판장에서 보았습니다. 저의 비천한 몸을 버릴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열 번 죽어서라도 그것을 따르겠다며 울었다. 염라재판장은 더 들을 수 없어 일현에게 변론을 부탁하였다.
“이번 법정은 억울한 자들의 법정인 듯 하여 망자와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면서 연관이 있으니 이 일은 망자의 변론자인 대사께서 저 사람의 억울한 생을 변론 하여 저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의 한도 시원하게 풀어 주시오.”
법정에 앉아 백정의 말을 듣고 있던 방청객은 코에서 손을 떼었다. 그렇게 치근한 눈물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마음의 동정을 일으켜 그에 대한 좋은 수가 있으면 좋겠다고 재판장을 올려다보았다. 염라재판장도 뜻하지 못했던 방청객의 출현에 무시할 수도 없었다.
조용히 일어나 엄숙하게 말하였다. 부처의 계율에 살생하는 것을 첫 번째로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는 살생은 금지 하지만 저 사람의 경우는 인간 세상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직업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 업에 따라서 무엇을 하든 먹고 살고자 하는 게 인간의 제일 첫 번째 목적이지요. 목숨을 부지하는 게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인간이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간다면 푸주 간 고기 한 절음을 먹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중요한 영양보충을 책임지고 있는 직업이라 인간 세상에 없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내는 직업이지요.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려는 저 자는 생계를 위해 선택한 많은 직업 중에 푸주 간을 택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 합니다. 저자는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 인간들은 누구나 그러한 고마움은 생각지 못하고 천대를 합니다. 씻고 씻어도 몸에 배어있는 피비린내가 죽어서 까지도 몸에서 없어지지 않아 백정이라는 멍에가 씌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정이라는 이름이 너무 강해서 이름이라도 바꾸어 부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푸주간이 있으므로 영양 부족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고 병이든 사람을 영양보충으로 고칠 수 있는 푸주간의 명칭을 보신점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을 런지요. 저 사람이 지금은 죽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인간으로 다시태어 난다 해도 과거의 단련된 솜씨는 다시 보신 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업이라 하는데 그 업을 벗어 낼 수 있는 길이 부처의 마음을 닦는 길입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는 게 부처의 세계입니다. 몰라서 모르는 것이지 모든 것이 본인들의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원혼들이 몸이 있지 않아 그 마음으로 인해 오고가고 하는 것이지 몸이 없다고 하여 마음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저자의 업이 바뀔 수 있는 길은 청정하게 마음 닦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처의 진리를 익혀 배운다면 몸은 점점 청정하여 좋은 업을 쌓아 나쁜 인연은 버리고 새로운 인연으로 태어나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얼굴마저 험상 굳어보이던 백정이 긴 변론을 듣고 있는 동안 그 얼굴이 변하여 희망이 꿈틀 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살려달라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염라왕국의 재판이 백정을 변론하는 동안 6제 시간이 지나갔다.
마지막 제 날은 날씨도 좋았다. 파랗게 비단 필 풀어 놓은 하늘, 대궐 전체는 사람들 걸음 거리가 가벼웠고 기분이 좋았다. 오후 시간을 정해놓은 시간에 분주한 왕실과 고려 백성들이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왕실 가족, 친지, 궁녀, 시녀, 재상, 군졸, 대신, 장군 거리의 백성들과 각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넓은 성전을 메우고 마당이고 대궐처마 밑에도 빈곳이 없게 채워졌다. 몸이 없는 죽은 자들은 지붕위에도 나무위에도 겹겹으로 대궐을 외워 싸고 구경하는 모습이 마치 2018 동계올림픽 스타디움을 연상케 하였다. 제사상에 놓여 진 음식은 말 할 나위도 없고 활옷을 챙겨 입은 승려와 대사 여러 명과 한쪽에 앉아있었다.
바라춤을 출 승려 다섯이 일어나 고려왕의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잔치를 시작하였다. 역대 최고의 이별잔치가 고려 왕실에서 시작 되었다. 망자가 아닌 고려왕 태조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대궐의 곳곳을 돌고 돌아 하늘을 울렸다. 왕건을 가운데 두고 양쪽 줄을 이어 하늘여인들이 가는 바람에도 춤을 추는 날개옷을 아름답게 날리며 태조 왕건을 호위하여 내려오고 있었다. 태조 왕건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한 분위기는 주위를 편안하게 하였다.
사십구일동안 감옥에 있었던 때와 다르게 구척의 풍채와 온화한 화관은 마치 부처님의 자비로운 모습과 같았다. 선녀들이 양쪽에 줄을 지어 서 있고 태조 왕건의 구척 몸에는 위엄의 상징으로 붉고 화려하게 장식한 금박 무늬로 되어 있어서 눈으로 차마 우러러 볼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고 위엄이 있었다. 땅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한스러울 정도로 일현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무아의 경지 마음의 눈에 보여 지는 아름다움은 그동안 해온 일들에 대한 보람으로 인식하고 가슴을 울렸다. 다만 누구도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일현 대사 눈에 왕건은 하늘 사람 옥황상제의 아들로 앉아 있었다.
성전에 차려진 음식은 손으로 곱을 수 없을 정도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그릇을 채우고 채워 보는 이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나올 정도로 배에서 나는 소리는 요란하였고 눈을 떼지 못하도록 푸짐 하였다. 무엇이 다 한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는 날, 왕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음식이라도 차려 산사람이나 죽은 자가 배불리 먹고 소문에 소문의 꼬리를 물고 영웅 태조왕건의 죽음을 아쉬워 슬퍼하는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다. 넓고도 넓은 곳이 대궐이다. 대궐의 상징인 화려하게 무늬가 그려진 대궐의 집과 서까래와 지붕이 정들어 살았던 곳이지만 왕건의 마음은 한 순간도 인간 세상에 아쉬움은 없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마음은 이별이 슬프고 슬픈 마음이지만 왕건의 위대한 모습은 볼 수 없다. 넓은 공간에서 시작하는 잔치가 왕건의 마지막 길을 밝혀 주리라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와 호기심은 그저 발아 춤의 몸놀림에 심취하여 숨을 죽이고 지켜볼 뿐이다.
챙! 챙! 챙! 발아 춤에 모든 잠 염을 걷어가 아무런 욕심도, 슬픔도, 배 고품도, 느끼지 못하고 바라 볼 뿐이다. 승려의 아름다운 발 몸놀림은 전국에서 제일 으뜸으로 가는 발아 춤의 대가 승려 들이다. 하얀 보선발이 모였다 돌아 사분히 안고, 가볍게 날고, 날았다 모아 돌고, 빙글빙글 챙! 챙! 챙! 승려의 소매 속 백옥 같은 속살이 보일 듯 말듯 손가락의 예술적 손놀림에 따라 정신을 놓아 버리게 하는 아름다움에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져 슬픔인지 기쁨인지 분위기를 망각시키는 발아 춤을 보게 하였다.
망자가 타고 갈 꽃가마는 인간 눈의 한계로 보는 대로 화려하고 아름답고 예뻤다. 망자가 타고 갈 하늘 길은 황금 비단 필이 풀어져 있었다. 이제 끝인가, 고려의 영웅이 인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인가. 구름위에 떠 아래의 광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태조왕은 하늘에서 타고 온 가마에서 살 풋 내려 흐뭇한 미소를 띠고 일현의 등을 다독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 광경을 직관하여 보고 있는 일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예의로 두 손을 모아 합장하였다. 그는 다시 이별의 슬픔을 아쉬워하는 이십 구명의 부인들 옆으로 가 차례로 등을 토닥였다. 아름답게 승려 복을 갖추어 입고 기도하고 있는 십 오명 선 여인들 모습에서 미소를 머금었다. 왕건의 여인들은 태왕의 손길을 느끼기라도 하는지 두 볼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인들을 둘러보는 망자는 이별의 슬픔도 아쉬움도 없었다.
67년 동안 살았던 인간 세상에 대한 망각은 지우고 대궐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화려한 꽃가마에 올랐다. 다섯 승려의 발아 춤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승려의 예쁜 보선 끝이 빙글빙글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쓴 모자가 흰 나비인양 높이높이 날개 짓 하며 이별의 순간을 예감한다.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고깔 모자속의 승려얼굴이 보일 듯 말듯 마치 왕건의 모습을 보기라도 하였는가, 무아의 경지다. 하얀 보선 발을 모으는 순간 승려가 빙긍빙글 쓰러지듯 비단 필 가운데로 들어가더니 비단이 두 갈래로 갈라져 나갔다. 정 가운데를 가르는 긴 비단 필은 단숨에 두 갈래로 갈라져 아래로 나붓 낀다.
승려 다섯 명은 꽃가마를 높이 들어 인파들 사이로 버선발로 걸었다. 그 모습은 가볍고 곱기도 했다. 가마는 성전을 돌아 구름같이 둘러선 사람들 사이를 지나 이별의 손짓으로 불속으로 살아졌다. 바단 필은 불 속에서 노울 너울 불꽃이 되어 춤을 추고 하늘로 오른다. 대사, 승려, 궁궐 가족들과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염원했다. 가마가 타는 불꽃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소리로 땅이 흔들리고 산천이 흔들렸다. 산자들은 죽은 자에 대한 이별의 곡성은 그러한 울림을 느끼지 못했다.
재판장에 사십구일 동안 모여왔던 죽은 자들은 아련하게 하늘 세상을 보았다. 끊길 줄 모르는 지장보살 염원소리가 천둥 번개소리와 함께 하늘 열리는 소리로 이어졌다. 멀어지는 하늘 길은 하늘 여인들 날개에 가려 태조 왕건은 영원이 살라졌다.
지장보살은 서방정토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서 밀려오는 죽은 자들의 안내자가 되어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뒤를 이어 귀신들에게
“인간 세상에 머물지 말고 떠나라!”
천둥번개 치듯 우레와 같은 지장보살의 목소리는 천지 사방을 울렸다. 그 호령소리는 귀신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였다. 혼 비 백산으로 죽은 자들은 서로 밟고 넘으며 갈팡질팡 겹치고 겹 처서 서방의 문으로 밀려들어 가고 있었다.
그날은 지옥문을 막고 서방정토의 문만 열어 놓았기에 한곳으로 미어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염라법정에서 이미 지장보살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의심도 없이 서방 정토에 밀려들어 가는 죽은 자 들을 변론한 일현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몸을 받아 어느 세상에 나와 살게 될 것이다.
일현은 여인들 세상에 들어갔던 일을 생각했다. 그곳 어르신 여인이 어떠한 행동으로 그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하였는지 안개 속 세상은 생각하는 의식이 없었다. 그러했음에도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들에게 무엇부터 설명을 해야 저들의 의식을 깨어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르신여인이 흐릿한 공간을 내려다보고 아주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중 염라법정에 다녀온 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제일 앞자리에 앉아 듣고 있었다.
“여러분! 이분이 보이십니까!”
일현은 승려 복을 입고 사좌 자를 들고 위엄 있게 그들 앞에 앉아 있었다. 사좌 자 지팡이가 하늘로 등천하는 용의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흐릿한 정신을 깨우자면 무슨 자극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땅이 흔들릴 정도로 세 번 쿵! 쿵! 쿵! 내려쳐 위엄을 보여 주었다.
“정신을 집중하시오!” 라는 엄포를 주며 세 번을 똑같이 쿵! 쿵! 쿵! 하였다. 무언가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골을 타고 내리는 물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해도 결국엔 바다에 합류한다. 바다는 천차만별의 얼굴을 감추고 삼백 육십오일 동안 한 가지씩 드러낸다. 바다가 하늘을 비추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는 색감에 따라 바다는 천차만별의 얼굴이 되어 변화 시킨다. 맑은 날 바다 속 고기들이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고 하는 모습은 그 파란 하늘의 색감 때문이다. 인간은 그 파란 바다를 보며 감동하고 환호한다. 매일 그러한 날이 계속된다면 재미없을 것이다. 불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사랑도 그러하거니 영원이란 단어는 인간사에 함께 갈 수 없는 아름다움을 파기하는 언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좋은 일 뒤 따르는 불행을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선인들은 말을 아껴 “오늘만 같아라.” 영원의 단어보다 아름다운 말이다. 말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 아름다움을 파계하여 희열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인간 본연의 욕심이 물질이든 집착이든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동하는 것을 무한은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비추었다 사라지고 또 비추이는 것이 바다의 실체와 같아서 바다 속은 사람의 마음이다.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게 가족이나 자식에게 하는 기도라고 모두는 생각하지만 자신에게 하는 기도다. 그 정성의 기도를 받는 자가 자기라는 걸 몰랐을 때와 알았을 때 세상은 달라 보인다. 거기에도 영원히 란 말을 결부시키면 안 된다. 처절하도록 소멸해야 하는 자기 사랑 법은 영원한 것이면 안 된다. 절제하고 꾸짖고 사랑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모든 것이 소멸의 의가 기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육체가 소멸하는 단계까지 다스려야만 영원이란 단어가 존재하여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어려울 때 하늘을 가까이 하였다. 별을 보고 달을 보고 어려움을 의론하며 살았다. 오늘의 사람들은 하늘보다 쇠 부치를 우러러 살고 있다. 그 무게의 열기가 지구를 태운다. 지진이 나고 가스 폭 팔과 물질은 황패한 산과 같이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
지구가 그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다. 지구가 가벼웠던 때 사람은 질서보다 윤리를 중히여기며 살았다. 욕심과 애욕이 적었기에 몸이 가벼웠다. 방 한 칸에 모여 살았어도 여인은 불편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억울한 것에 대한 억눌림에도 그저 하늘에 의지하고 살면서 천년을 진화하고 진화하였다.
한 시절 나는 성경책이 좋아 2~3년을 성전을 찾았던 때가 있다. 기도가 술술 나오기 시작하던 스무 살을 갓 넘은 나이에 하늘에서 불기둥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기를 원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은혜가 시작 되려는 때였으리라. 하늘의 불기둥은 대궐의 그것 같았고 하늘 세상이 있다는 걸 믿었다. 순수했던 믿음은 인연이란 틀 속에 꿰어 성경이 불경으로 바뀌었다 해도 다를 것이 없다. 탑이든 불기둥이든 내 것이면 된다. 밖의 모든 물질이 내 것에 견주려 하여도 내 것에 닫지 못한다. 하늘과 땅이 주는 에너지는 마음 안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에 닫지 못한다.
진리를 전하는 포교자의 에너지가 도가 넘지 않도록 안으로의 타협과 교감이 있어야 한다.
그 여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하다가, 여러분은 바람을 아십니까? 들에 아름다운 꽃을 아십니까. 수평선 저, 멀리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아십니까, 하얀 파도가 거품을 밀어내 만들어 놓은 모래알의 이유를 아십니까. 그들에게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서로 엉키어 안개 속을 헤매던 여인의 나라에 상상을 일으켜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처 앉게 하였다.
바다 속이 자유롭다는 건 아름다움을 드러내 뽐내지 않음이고 고기들의 아름다운 놀이는 물속의 질서를 지키려는 몸짓 입니다. 망각의 눈은 바다 속은 보지 못하고 위만 보이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마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기는 바람, 꽃, 수평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당신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어디서 들렸다.
“살아있지만 죽어있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살아 있는 자이고 당신들은 죽은 자입니다. ”
생기 있는 소리가 반가움에 살폈다. 염라법정에 나왔던 여인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한번 죽었으니 그만입니까?”
“죽으면 그만이지.”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들이 서로 말을 하였다.
몸은 없지만 마음은 살아 있습니다. 당신들은 죽었기에 모든 게 사라졌다고 포기 하였습니다. 마음의 눈은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또 여기에 올 것입니다. 내일을 생각하십시오. 마음은 당신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그들의 마음을 깨우는 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좌선을 풀고 대궐 밖의 바람을 씌웠다. 하늘에 별이 총총히 모여 아래로 향해 쏘다지고 있었다. 안동에 간 행자 일이 궁금하다. 안동 일은 잘 되어 가고 있는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생각의 방향을 틀어 보기도 하였다.
남성 금지 구역 여인들이 어제의 자세가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증거다. 어제와 같이 사좌 자에 올라 주장자를 옆에 세워 놓았다. 구름같이 엉켜 있는 여인들은 어제의 눈망울이 아니었다.
여러분은 꽃이 될 수도 있고 바람이 될 수도 있고 바다 속고기도 될 수 있으며 자유롭게 그곳을 바라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원한다면 모래알이 반짝이는 바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모두 눈을 감고 해 뜨는 동해바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은 새로운 희망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물이 깨어나고 바람이 깨어나고 바다가 깨어납니다. 꽃들이 피고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행복하여 천사 같은 얼굴로 재잘 거립니다. 들에는 붉은 해가 꽃을 피우고 바람을 몰아 사람들을 깨웁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 합니다. 그곳에 아는 이나 가족이 있습니까. 찾아보십시오. 여인들의 얼굴에 이상한 웃음이 번진다. 그들은 나름대로 가족을 찾은 기쁨에 눈물이 흐르는 여인도 있고 이름을 부르는 여인도 있었다.
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살고자하는 의욕이 넘쳐나 그곳의 질서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들이 망상에서 깨어나라는 기암 같은 주장 자 내리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그들은 이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밖은 여전히 별이 총총히 쏘다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주 동안 남성구역의 여인귀신들을 위해 노력 하였다. 그들은 이번 사십 구 일의 마지막 날 그 자리에 와 있었다. 그랬기에 왕건 재판의 결과는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받아 냈던 것이다. 엄청나게 미어터지도록 많은 원혼들을 일깨워 신의 세계를 평정한 일은 고금에도 드문 일이라 여겨졌다.
행자는 내가 써준 서찰을 들고 안동관아로 들어가 권행 군수를 찾아 서찰을 보여 주었다. 왕건 사십 구제가 끝나기 전에 터를 잡아 시작하라는 명을 안동관아의 관리들에게 전하고 직접 권행이 간여한다는 것을 알렸다.
행자는 그곳에 머물면서 일의 진척에 따라 설계도를 상상하며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지 열심히 생각하였다. 십 오명 왕비가 한곳에 머물러 부처의 진리를 배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하는 놀라움에 마음이 설레었다. 세상일이란 아무도 모른다. 대사께서 고려 왕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게 왕실과 오래전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행자는 생각했다. 자기의 관계도 깊은 인연이 아니겠느냐며 매일 자미원의 터 닦는 곳에 빨리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안동관아 군수는 자미원에 대한 책임은 곧 고려의 왕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기회로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안동자미원이 개관하는 날 고려 왕실에서 혜종임금이 써준 친서를 왕궁에서 나온 도승지가 읽고 있었다. 안동 관민이 모두 모인 자리이다.
“오늘 이 뜻 깊은 자리를 치하 하는 고려왕의 친서를 읽겠습니다.”
대중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했다.
“태종 대왕께서 생존해 계실 때 일현 대사에게 엄명하시어 지은 특별한 곳에 짐이 참석하지 못함을 심히 아쉽게 생각하노라. 그동안 안동 관아 관리들, 관병들이 나서서 짧은 시간동안 자미원을 지었도다. 그들에게 치하하노니 앞으로도 자미원이 순조롭게 번창 되도록 관리 또는 인재양성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기 바라노라. 그리고 고려 미래의 대성을 위하여 대사와 승려는 불교 부흥을 책임지고 고금에 없었던 불교 발전을 위해 나가도록 힘쓰기 바라노라.”
모였던 사람들은 고려왕의 축사를 듣고 만세 삼창을 부르며 환호하였다.
다음은 권행이 강단에서 축사를 시작하였다.
먼저, 고려왕실 전하께서 축사를 써 주셔서 전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 전하의 축사를 듣는 것이 영광이라 생각이 듭니다. 왕실에서 자미원의 건축비용을 모두 전담하여 주셔서 전하께 엎드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미원을 건립 하려 노력하신 대사의 큰 은덕을 기리보존 할 것입니다. 일 년 여동안 자미원을 건축하느라 수고 해 주신 안동 관아 여러분과 안동에 사는 백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십습니다. 앞으로 자미원은 안동의 인제 양성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안동에 거주하고 있는 초등과 중등과의 교육은 자미원을 걸쳐 갑니다. 학비는 국고로 충당하는 대신 엄격한 학업을 중시 할 것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는 부처의 가르침인 불경위주로 할 것입니다. 대 고려의 윤리는 불교의 사상입니다. 높고 낮음이 없는 중도의 가르침은 인간을 중이여기는 인간 중심의 가르침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세상 대 고려를 이어 갈 인재 양성에 동참하시어 안동의 위상을 높여 전국에서 의 뜸 교육 도시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칠세의 어린아이에서 십 오세가 될 때까지 교육을 통해 학문을 익혀 졸업하면 고려의 관군이나 관원으로 나라에 공헌 할 인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칠년의 시간을 보낸 뒤에 안동의 여러 관아에 들어가 행정을 책임지고 담당할 수 있는 인제를 키워 나갈 것입니다. 권행의 축사가 끝나자 술렁거렸다. 딸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려나. 하는 기대감은 꼭 그렇게 될 것이라는데 믿음을 가졌다.
자미원 내부는 관아와 비슷하여 지붕을 높였고, 분야도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설계한 학문 당은 안동의 희망으로 많은 사람들의 꿈에 부풀었다. 자미원을 설계할 때, 선 여인들의 거처를 생각했다. 따로 집을 마련할 것인가, 한 곳에서 살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미 왕실의 여인이 아니므로 선가의 법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기거할 곳은 일자형으로 지붕을 낮게 하여 방 일곱 칸을 만들었다. 방 하나에 두 사람씩 기거 하게끔 설계하였다. 그리고 선 여인들 순서는 나이 차례로 정하여 놓았다. 왕건 첫째 부인은 어른으로서 질서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들은 일 년여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불경을 탐독 했고 불가의 승려로서 자세가 충만하였다. 조용한 몸짓은 아름다움을 풍기는 학식을 가춘 고려의 여인으로 손색이 없었고 부처님 제자로서도 매력이 있었다. 앞으로 후대 양성에 필요한 공부도 열심히 하여 안동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새 길을 열어준 대사에게 감사했고 새로운 인생길에 최선을 다 하였다. 고려의 왕실 여인이라는 게 입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소문이라는 게 안동을 돌고 돌아 개관식에 모여든 안동 백성들의 마음을 흔드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개관식 귀빈석에 앉아 있는 승려들의 모습은 안동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참으로 꽃보다 아름다웠다.
여러 사람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여 승려들은 이틀 전에 대궐에서 안동으로 옮겨 왔다. 대사는 그들을 미리 교육시켰다.
“개관식 날 안동의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과거를 잊고 불가의 여인으로 승려의 자격을 보이는 것 입니다. 고려의 여인으로 부처의 가르침대로 고려를 짊어지고 갈 인제를 교육시키는 지식인이라는 것을 대중 앞에 당당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재를 발굴해 내는 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해야 할 고려의 미래입니다.”
뒤 돌아볼 슬픔도 미련도 없는 자신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동안 십오 명의 여인들 마음에 변화무상한 고민은 없었다. 정신이 자유롭고 한 곳에서 한 마음으로 생활 한다는 게 그들 현실에서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날개를 단 자유로움은 다른 생각을 키우지 못했다. 형제로서 도반으로서 서로 위하고 사랑하였다. 모습이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행동이 변했다.
학문과 법을 가르치는데 집요함이라든가, 지능적으로 강요하여 상대편에게 질리도록 한다면 그것은 학문의 속도를 느리게 할 것이며 데려 악의 마음을 키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고려 왕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미래 양성을 책임지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선의 경지는 여유로워야 한다. 긴 시간을 두고 한 가지만 탐구하다 보면 몸이 어느 곳에 있어도 그것이 일상이 되고 모든 것이 된다. 자신의 마음을 주도 적으로 관찰하고 관리하고 틈을 주지 않고 살피다 보면 마음에서 수 없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수시로 관찰하여 분해시키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외롭지 않고 지루하지 않아 안으로 산책은 그런 것이다.
자미원을 건립 하였다는 책임감이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큰 덤으로 십오 명의 여인을 부처 제자로 입적 시켰으니 자미원 개관으로 더 할 나위 없이 가슴이 부풀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해인사에서 보았던 사람에 비하랴. 더욱이 하늘의 옥황상제도 보았고 염라국에 올라 직접 망자의 변론도 해 보았다.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부처의 사업에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동참하여야 하는 안동의 백성들은 일현을 하늘 사람이라 믿었다.
고려시대 안동의 입지는 고려가 창건 되면서부터 멸망하기까지 직접적으로 왕실이 개입을 많이 했다. 고려태조가 견훤을 토벌할 때 3공인 김선평과 권행, 장정필이 군민을 거느리고 태조를 도와 병산의 대첩을 거두게 되었다는데 고려왕은 큰 혜택을 주었다.
안동 부사 권행은 고려 건국을 도왔다는 왕건의 시대에 권세와 권력을 얻었고 고려 왕실에 귀한 인제였다. 고려 태조 13년에 고창군이었던 안동은 왕건과 견훤 사이의 마지막 싸움의 결전 지였다. 그때 견훤은 신라의 여인들을 겁탈하여 전쟁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김선평과 권 행, 장정필이 안동의 호족들은 견훤을 버리고 왕건을 도와 승리로 이끌었다. 왕건은 가장 선두에 있었던 김선평과 권 행, 그리고 장정필 3공에게 벼슬을 내렸다.
왕건은 또 세 장수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뜻을 전했다. 의로운 명성이 크게 떨쳐 왕업이 이루어 졌으니, 어명으로 말하노니 그대들은 들을 지어다.
“김, 권, 장 씨 성은 지금부터 한 형제의 의로 명하노니 대대손손 자손은 서로 혼인을 금하여야 할 것이며 한 형제임을 천명하니 길이 명심하여 명예를 지킬 것을 명하노라.” 하였다. 그 어명은 천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태조 왕건이 일찍 붕어한 사실에 슬퍼하여 왕건의 죄업에 대해 염라국 염라왕과 일전을 벌렸다. 그 결과 왕실과 안동은 새롭게 의로운 사이가 되었다. 미리 계획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일현의 지혜로 맺어진 사실에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로 인해 권행의 권력이 대대손손 이어갈 계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혜종임금이 선왕에 대한 효심이 남달라 안동에 대한 태조의 마지막 사업에 크게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미 나이 들어 전 계에서 물러날 날이 지났음에도 다시 연결 끊이 되어준 왕실과의 인연은 아직 끝이 나지 않은 다시 회춘하여 권세를 누리게 되었고, 새로운 사업에 마음을 두면서 다시 권력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