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을전체의 땅을 차지한 부자 선인이 있었다. 그는 부자였고 사람을 많이 부리고 살았지만 대를 이어갈 아들하나를 찾지 못하여 애를 태우다가 백방으로 방을 부처 수소문하기를 만석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그 아들을 찾아주는 자에게는 후한 상금을 주리라. 는 방을 부쳤다. 그러한 노력은 백방으로 소문이 닿았지만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선인은 나이가 들어감에 초조하여 다시 또 사람을 부려 아들을 찾았다. 아들의 처지를 설명하였다. 아들은 거지에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을 찾아오라는 소문에 아들이 있는 곳을 누가 알려주었다. 부자의 주인은 거지가 되어 있는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부자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려다 좋은 옷에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살림을 가르쳐 대를 이을 것에 기뻐하였지만 거지의 아들은 주인이 아버지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남의 집 울밑에서 잠을 자고 얻어먹으면서 거지의 행각을 하여온 아들은 반겨 주는 아버지가 믿기지 않아 먹을 것 입은 것을 모두 버리고 그 집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주인은 아들이 빨리 자기의 재산을 물려받아 곶 간에 있는 금, 은 보화를 관리하기를 바라는 다급한 마음에서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평생 거지로 살아왔던 아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를 교육도 없이 안겨준다고 하여 그 부를 관리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부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는 마음이 급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좋은 음식에 좋은 옷을 입혀도 행복한 줄을 모르고 불안한 마음에 모두 벗어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아들을 찾았는데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식이 안타까워 아버지는 새로운 계책을 세웠다. 아들이 자기 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많은 것을 보여주어 겁을 주어 아들이 무서워 도망 쳤다는 마음을 알았다. 다시 또 수소문하여 달아난 아들을 잡아드려 늘 하던 대로 마구간에서 잠을 재우고 물지게며 나무지게를 지게 하였고 똥을 푸고 마당을 쓸게 하여 아들이 하는 일이 안타까워도 기다려 주기로 하였다. 그런 일을 오래도록 하다 보니 그 아들도 일한 만큼 먹고 일한 만큼 잠도 자고 정직 하게 편한 생활을 하고 지냈다. 세월이 지나 집안일에 능숙하여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산관리를 시켰다. 아들은 재산관리를 정직하게 잘하였다. 그러다 차츰 농토 관리를 시켰다. 그러다 고깐 열쇠를 마꼈다. 사람부리는 법도 가르쳤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이제 이곳은 너의 집이고 너의 재산이고 사람들은 너의 사람들이다. 모두 너의 것이니 내가 없더라도 재산 관리를 잘 하도록 하여라.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곧 죽을 것이니 이집의 주인으로서 사람을 부리고 재산을 늘리는 것은 너의 마음에 달렸다. 하였다. 아들은 그제 서야 깨달아 거지로 살았던 과거를 생각하니 분하고 분하여 자신을 찾아준 아버지를 고마워하며 섬겼다.
거지로 살았던 지난날들에 대한 억울함을 무엇에 비할 데 없이 분하고 어리석었음을 알고 자신을 찾아 준 아버지는 부처였고 진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진리를 전하는 순서에 해당되는 방편설이다. 방편 설은 참 진리로 들어가는 통과 의례이다. 공부하는 사람에 게으름은 그만큼 거지의 행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권력으로 행복했다 해도 스스로 삶을 운전하였다는 근거가 없으므로 자신의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분명 운전대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진이 아니다. 진리를 배우는 자는 하루아침에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속아주고 아파주고 넘어지며 코가 깨지도록 경험에서 이루어져 알아지는 것이 방편 설을 거친 순서다. 그것을 모른다면 거지의 행각과 같음이라 부처님 방편설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다.
그 대목이 나에게 뼈아프게 해당되는 말이다. 거지의 행각은 속는 줄 모르고 사는 것이다. 아는 만큼 분심에 분심이 커지는 것이 보상받고 싶은 것이다. 삶이 버거워 질 때 쯤 극한 분심의 돌출을 경험하면서 선인의 말씀에 거짓이 아님을 체험을 통해 얻어진 참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선인의 생활이 누더기 옷 한 벌이면 만족하다는 것도 선인이 몸뚱이를 산속에 버려 짐승의 먹이로 던져버린 것도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았다.
몸에 독성이 다 빠져나가는 허무가 있었다. 몸을 지탱하여 살았던 사의 기운이 따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도 있었다. 감각은 매의 눈이 되어 안으로 겨양 하는 일상에서 그것이구나. 그것이야. 하였다.
불가에 입문할 때 쌀 한 말이면 계약을 맺었다. 그때 계약조건은 내게 유리하였다. 어떠한 일에 처했어도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 한 가지 조건뿐이었다. 그 조건만 이행한다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의 상태로는 누가 죽여준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삶의 전체 조건이 되어 살 때였기에 어떠한 조건이 붙는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그런 상태였다. 쉽다고 받아들었던 그 계약은 처절하였다. 그 약속을 지키려 33년이 갔다. 그러기에 나는 33세살의 나이를 먹었다. 찌들어 덕지덕지 때가 묻었던 아무것도 아니던 몸에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몸 속 구석구석 철 수세미로 닦아 냈다. 헐렁해진 뼈마디를 단단하게 조이고 초라하기만 했던 마음의 벽에 하얀 벽지에 거울을 장식하여 도둑이 들지 않도록 감시카메라에 집중 할 것이다. 내가 주인 인 집 한 채는 품위 있는 무한의 에너지가 마음대로 왕래하여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약속은 따르는 오기는 당연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의 물음의 부피를 잰다면 수미산을 쌓았다 해도 거짓은 아니리라. 의문은 다시 33천을 두루 다녀왔던 것이다. 보고 듣고 행했던 일들이 안으로 수미산처럼 커있는 것은 마음을 헤아려 보아도 여여 하여 웃는다. 마음속을 볼라치면 선인과 거지, 선인과 악의, 아니면 선인과 마신이 존재하려는 무한의 얼굴이다. 그러한 순간에도 선의 에너지가 놓아져 있으면 아름답다. 악의 마음이 강렬해 질 때 선의 마음으로 재생시키는 일은 마음에서 흔희 일어날 수 있는 강한 충동이다. 어떠한 충동이든 옳지 않은 것이라면 더 강한 선의 생각으로 무너뜨리는데 적극적 인 힘이 필요하다.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좋은 것이든 나뿐 것이든 도가 넘치면 해롭다. 적어도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걸러내는 지혜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어떠한 생각에 한번 매몰되어 고생하다보면 그 그릇에 따라 해결책은 늦음과 빠름의 차이는 있다.
언제부턴가 차츰 미움이 강도를 높아져 절정을 가하였을 때 나는 비로소 그 마음을 황 복 받는 일에 성공 하였다. 미워하지 않은 대가에 가담한 이후 제일 큰 사건이라 하겠다.
또한 무엇이든 풍족하여 먹는 즐거움을 최대의 행복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즐거움 뒤에 스트레스가 마음을 오그라들게 한다. 먹는 것이야 말로 행복의 조건이다. 그러나 먹는 것에 일관한다면 그 또한 가난한 삶이다. 먹는 것에도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와 종유가 있을 것이다. 먹는 것으로 삶의 에너지를 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괴로움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먹는 즐거움을 빼면 시체라고 한다.
먹는 걸 자랑하는 시대는 아니다. 못 먹어 굶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무작정 자신을 옹호하여 아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가를 고민 하여야 한다.
말로는 쉽다. 실천하기는 어렵다. 미움을 가슴에 담지 않는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속이라는 것에 그 약속이 허술한 것이 아닐 때에는 약속을 지키는 데 온 힘을 기울려야한다. 그 약속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포기하기는 어렵다.
나는 대궐 이곳 저 곳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 세 번째 재판은 어떤 것에 죄를 물을 것인가, 두 번째 재판에서 왕손을 낳은 십사명의 부인들 마음만 헤아려 보았었다. 자식 하나 없는 십 오명 부인들 마음은 아직 헤아리지 못했다. 자식이 없는 여인들은 무엇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대궐이 너무 넓다. 넓으면 무엇 하리, 혼자라는 외로움은 결국 왕이었던 망자를 평생 원망하며 살 수 밖에 없다. 망자의 죄가 중죄가 내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심하여야 했다.
대궐 여인들은 모두가 상복을 차려 입고 다녔다. 두 달여 동안 대궐 안은 모두가 우울하여 누구하나 이를 드러내 웃는 이가 없었다. 왕이 붕어하기 전 고려의 거리는 삶의 의욕이 강하게 백성들 까지 활기에 차 있었다. 그 얼마 전까지 나라가 안정이 되고 북방이 조용하여 나라가 부강해 지는 시점에 궁궐이나 거리에 여인들이나 서민들 가정마다 안전 된 생활에 활기에 차 있었다. 사람들 걸치고 다니는 옷 색감도 화려 했었다. 주인을 잃었다는 슬픔은 거리의 백성들도 상복을 입고 나라를 걱정하는 심정으로 다른 행동을 자제하며 왕건의 붕어를 슬퍼하였다.
세상이 모두 우울 속에 빠져있는 것도 망자와 무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음 재판에 어떠한 변론을 하여 망자의 죄를 덜어낼 수 있는지 생각하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부인 십 오명에 대한 거처였다. ‘저들을 모두 불가에 귀의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치! 무릎을 탁! 쳤다. 그리하면 되겠구나, 기발한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 번째 재판에 대한 막막함이 스르륵 풀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엄한 왕가의 부인이다. 이러한 일을 감히 그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그러나 그들이 대궐을 떠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안성맞춤이 아닌가. 외롭게 살다가 죽을 그녀들을 모두 불가에 귀의 시켜 진리를 탐구하게 한다면 허망하지 않고 외롭지 않아 망자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망자의 죄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은 쉬웠다. 어찌 여인의 마음을 더욱이 그 권력의 맛을 알고 있는 여인들을 교화 해결 한단 말인가. 그것이 문제 해결책이다. 여인이 승려가 된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어서 더구나 고려왕실의 여인들을 한 명도 아니고 십 오명이나 귀의 시킨다면 불가의 홍복이라 환영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고려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이일을 허락할 사람은 고려 2대왕 혜종뿐이다. 일현의 말을 혜종이 이해를 할 것인가, 세 번째 재판에 중요한 관권이다. 저녁 예불에 꼭 참석하는 혜종을 만나 이야기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재판의 무게가 덜어졌다. 대궐의 풍경을 뒤로하고 거처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 왔다. 행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궐에서 대사님 뵙기가 나라님 갔습니다.”
반가움에 하는 소리다. 입을 다물고 눈길한번 주지 않는 게 오래되다보니 행자를 잊고 살았다.
“그러게 말이다. 존재도 없는 것 갔구나.”
어리벙벙하게 대궐에 들어와 삼일 만에 왕과 이별했다. 책임을 떠맡고 일을 처리하는데 지금껏 잘해 왔지만 모든 일에 눈총이 곱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칠일마다 다가오는 재판의 시간이 마음을 조여 왔던 것이다. 다행이 세 번째의 재판도 변론할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 되었다.
재판도 중요하지만, 안동에 지을 터전도 중요하였다. 안동에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세 번째 제 날이 되기 전에 안동에 한번 다녀오자.”
“안동에요. “
“안동에다 큰 절을 지을 것이다.”
“예!”
가면서 대충 이야기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행자를 데리고 온 이상 끝까지 돌봐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이 많아졌는데 행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저녁 예불동안 시간이 좀 남았기에 목침을 베고 누웠다. 그동안 피로한 몸을 잠시라도 풀고 싶었던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이 끝나자 돌아서 두 손을 모아 왕손들에게 예의를 가추고 혜종임금을 보며 아뢰었다.
“전하, 시간을 좀 내어 주십시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으시오?”
“소승이 무리한 부탁을 해도 되는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괘념치 말고 말 해보시오”
임금은 다른 사람들을 손짓해 내어 보내고 단 둘이 마주 앉았다.
“감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태왕전하의 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아뢰옵니다.”
임금은 아바마마의 가는 길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거두절미 하고 이르라 하였다.
“고려의 홍복으로 태왕전하를 모신 왕비마가가 스물아홉 분이 아닙니까. 그 중 열다섯 마마는 왕손을 낳지 못하고 혼자가 되셨습니다.”
혜종이 들어보니 놀랍다. 혜종도 모르는 왕비에 대해 어찌 저리 잘 안단 말인가 조금 불쾌한 생각이 들어 쏘아보며. 호통이라도 치고 싶은 것을 속으로 참았다.
“과인이 모르는 일을 대사께서 어찌 그리 잘 아시오.”
마음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대꾸 하였다.
“항공 하오나 왕실의 가계도가 저기 성전에 기록으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물며 지엄하신 왕비마마의 이름까지 다 외우고 있습니다.”
일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리 화낼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음 말을 해 보시오.”
“열네 분 마마께서는 왕손을 두셨으니 성전에 엎드려 태왕전하께 자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열다섯 마마님은 자식이 없으니 불가에 귀의 하여 대대손손 왕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불가에 귀의하여 태왕전하의 왕생극락과 왕실의 안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신다면 그리 나쁠 것이 없을듯하여 전하께 아뢰게 되었습니다.”
왕은 무어라 할 말이 없어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전하께서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 분들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임금이라고 해서 아버지의 여인들을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일현의 말을 들으니 한마디도 잘못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기분은 안 좋았다. 아바마마께서 첩지해 놓은 작은 마마들의 일을 자식이 왕이라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아바마마에 대한 큰 불효 중에 불효라고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 하였다.
“전하께서 그 분들에게 교지만 내려 주신다면 그 분들도 마음을 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망자가 처해있는 하늘 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리만 된다면 또 한 번의 재판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들 망자의 이런 정황을 알 수 있으리오. 말을 한다고 믿을 사람은 불가 승려뿐이리라. 아무리 불교를 국교로 인정하여 모두가 진리를 배운다고 하지만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을 사람은 없다. 더구나 왕건이 어떤 사람인가, 고려가 우러러보는 영웅이 아니던가, 영웅이 죽어서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면 개도 웃을 일이다. 그나마 혜종임금은 태종이 인정한 일현의 말을 반박하는 것은 불효가 되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그리해 보겠다고 하였다.
대사의 말씀대로 그리 교지를 내릴 것이니 대사는 그 분들을 잘 설득하여 아바마마의 가는 길에 또 세세생생 고려의 안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부탁하오, 정말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요. 불가에 귀의하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될 마마님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소만 짐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해보겠소. 아바마마의 일을 무어라 자식이 말한다는 것은 불효이나, 그 많은 여인들을 불상이 여긴다면 왕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해 주어야지요. 여인의 한이 무섭다 하지 않았소. 그리하여 아버님을 원망하지 않고 고려를 위해 살아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소. 이 나라 임금으로서 면목 없는 일이 되었소. 그분들에게는 좋은 일이 될지도 모르겠고. 임금은 한숨을 쉬고 일어났다.
임금을 배웅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여인들은 보지 않아도 좋아할 것이다. 다른 남정네에게 재가도 할 수 없는 몸이 불가에 들어와 부처의 길을 간다면 좋아할 것이다. 커다란 일을 마무리 짓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에 있을까. 꿈에 부풀다. 하루속히 안동 땅으로 내려가 불교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속력을 내야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안동은 신라 경순왕 4년, (서기 930년) 이곳 병산에서 태조왕건과 후백제의 견훤 싸움에서 이 고을 성주 김선평(金宣平)과 고을 인물 권행(본래 김씨), 장길(일명 정필) 등이 왕건을 도와 크게 공을 세움으로써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켰으며, 그 후 영가 군으로 고쳤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다가 안동이 되었다.
마음이 다급하여 이튼 날 행자를 데리고 출타를 서둘렀다. 관에 말하여 말 한필을 빌려 타고 성문을 나섰다. 이미 왕건이 붕어하기 전에 혜종임금이 서찰을 보내 안동 관내에 전달되어 있을 것이다. 이틀의 시간을 두고 다녀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안동 관내에 도착하여 안동관아로 들어갔다. 밤이라 누구를 만나기는 뭐하여 그들의 안내를 받아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관의 최고 책임자를 만났다. 중앙정부의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대강 알렸다. 그동안 왕건의 파발을 받고 있었던 관의 책임자는 분주하게 안동주위를 물색하여 몇 군데 자리를 정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안동 관찰사 권행이 었다. 왕건이 집권하는 동안 최대한 환대를 받고 살았던 권행은 왕건의 죽음에 팔 하나를 잃어버린 심정으로 슬퍼하다가 일현을 만나니 반가웠다. 왕이 집권하는 동안 안동 고을의 최고 책임자로 세세생생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일현을 보자 왕건을 대하듯 반겨 주었다. 왕건이 떠난 지도 삼주기가 되었으니 가슴은 그리움으로 가득하였다. “내 들어서 알고 있소,” 태왕전하의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하였다는 것을 말이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왕건과 함께했던 일들이 그리워 밤잠을 설친다는 말도 하였다.
전하가 승하하기 직전에 쓰신 서찰과 혜종왕의 옥 쇠가 찍힌 서찰을 받는 순간 태왕전하가 그리 빨리 붕어하리라는 생각을 못하고 대궐을 향해 기쁨을 표했지요. 대궐의 부탁대로 이 또한 안동에서 대사의 꿈을 이행하게 되어 우리는 대대손손 자랑이 될 것이라 좋아하고 있소이다. 이미 한 시대를 마무리 하는가 믿었는데 다시 연장 대열에 서게 하여준 자에 대한 치하였다.
“태왕 49제가 끝나는 대로 여기로 내려와 공사를 시작하려하오,”
“대사께서 자리를 정해 준다면 모든 일은 관에서 할 일이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일현이 자리를 정해 준다면 역사는 염여 말라고 웃으며 손을 잡았다. 이른 시간에 대동하여 관아를 나와 관군이 보아 두었다는 세 곳을 차례로 보았다. 남쪽에 한군데, 서쪽에 한군데, 안동관아와 제일 가까운 곳에 한 곳이 있었다. 배울 수 있는 장소가 깊고 멀다면 배움의 터로 불편할 것이기에 누구나 불편 없이 학문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안동 관아와 가까운 곳을 정했다. 땅의 평수는 넓었다. 안동관아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안동관아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멀지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게 안동관부에서도 좋은 일이다. 이 소문은 곳 안동을 지나 이웃 고을까지 소문이 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배움의 터를 찾을 것이다. 그러한 앞일을 회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궐로 돌아 왔다.
세 번째 제는 아직 두 세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제 지낼 차비를 하였다. 혜종이 왕건 십 오명의 부인들에게 일일이 서찰을 보내 선택은 자유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절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니, 이번 세 번째 제에 대사에게 결정 여부를 알려 주라는 전갈을 후궁 십 오명에게 전달하였다. 자신들의 팔자가 이미 쪽이 났다는 것을 한으로 삼켰는데 임금으로부터 서찰을 받고 보니 밤을 새워 생각하였다. 밤을 새워 생각해 보아도 승려의 길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일 것 같아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억매여 살았던 몸이 자유로워진다면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것이다. 자기 개발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데 새로운 꿈이 생겼다.
철학을 아는 자는 운동 길에서나, 등산길에서 사탕껍질 하나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철학을 배우는 자는 무든 생각이 정의로워야 한다. 인간이기에 실수는 의례 살아있는 자들의 전례 품이라 하지만 실수에 대한 잘못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음에 인간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객관 회로에 들어가는 것이다.
살다 보면 친한 사람들이 관계를 이용한다. 그 문제엔 첫 번째가 돈에 있다. 상대편에서 이미 계획하고 접근하는데 무방비 상태의 방어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여야 객관회로가 된다. 그것으로 인해 병이 난다든가 과격한 행동을 행한다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각하는 것이고 그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하여 삶의 인내가 그 고, 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깊이와 낮음이 있을 뿐이다. 그 깊이를 중요시하는 것이 하늘 세상이다. 사탕껍질 하나 버리는 죄가 있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러나 분명 기록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재판의 일을 보아도 죄는 진만큼 무겁고 죄의 값이 분명 있기에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는 일이기에 살아서나 죽어서 자신을 비추어주는 것이 거울이다.
왕건은 안으로 투시력을 키우는 것 보다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만 보고 살았다. 삼국을 하나로 만드는 계획과 북방을 넓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일이며 백성이 세세생생 외세의 침략에서 고통 받지 않고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도록 백성을 생각하였기에 역사가들은 하나같이 영웅으로 추대하여 위대함을 말한다.
그러나 왕건의 후궁들은 역사가의 평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어느 면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자유로워야 한다. 역사속의 여인들은 후대 사람들이 그 후견이 되어 재조명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처음으로 행해지는 염라국에서 미투가 드러나 날카로운 시선을 중립에 근거하여 여인들의 인권을 대변해 변론하는 나는 평등사상이다.
현 사회에서 여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잘못된 남성의 성욕은 사회혼란의 원인이 된다는 구호를 외치며 여성의 권리를 푯말에 새겨 흔들었다.
뻣뻣한 광목 치마에 터진 손등을 닦으며 참았던 설움이 육백년 후 해소 되었다.
나는 전생에서 두 번의 남자였지만 작은 허물에도 안으로의 투시력으로 자만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다. 현생 전공이 여성교양 학이다. 여성은 그리 살면 안 된다고 배웠다. 혼자 밥을 먹어도 아무렇게 먹으면 안 된다고 하여 예쁜 그릇에 담아 우아하게 먹으라고 배웠다.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라고 배웠다. 세상은 그리 변하였다. 광목 치마에 손등을 닦는 그런 시대는 이제 없다.
저자는 이번 소설 속에서 하늘 일에 접근하여 미투에 가담 시킨 것은 하늘도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받아 드릴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남, 여가 다르지 않음에 있다. 기계 중독성에 길 드려진 여름 날씨가 에어컨이 없었다면 더위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 전기 아껴 쓰라는 홍보도 없다. 물 아껴 쓰라는 부담도 주지 않는다.
물귀신처럼 머리를 담갔던 여름바다가 이제 물의 온도를 재는 때를 만나 여름 찜통 속 밖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게 살아 있으나 마나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인지 그렇다.
이처럼 큰 사건을 글로 표현해 본다는 게 두렵고 의아하다. 세 번째 재판에서 지장보살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성전에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지옥중생이 되지 않도록 부처의 가르침을 설하시는 지장보살님을 어찌 감히 재판장의 증인으로 모실 수 있단 말인가. 망자와 인연을 맺은 왕실 여인들 십 오명에 대한 변론으로 그 죄를 감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 컸던 탓에 하는 생각이다.
‘걱정 말게, 내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니.’
그 순간 지장보살과의 마음 전달이 되었다. 이무슨 믿음인가, 기쁘고 기뻐서 눈물이 흘렀다. 부처님도 헤아려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였다. 염라법정에는 여인귀신 참석자들이 더 많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려의 여인인지 신라의 여인인지, 우아하고 화려한 대가 집 여인들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귀신도 있었다. 밖에서도 물물이 모여서서 이번 재판에 대한 호기심으로 구름처럼 신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일현 옆에 지장보살님이 겨셨다. 눈물이 났다.
“이곳에서 지장 부처님을 만나다니요, 꿈인지 싶습니다.”
어려움에 처했기에 도와주는 것이지. 재판이 어찌 될지는 몰라도 하늘의 일은 땅의 세상과 달라 누구나 법에 따라 공평 할 것이니, 속일 레야 속일 수 없는 것이 마음의 거울인데, 망자를 옹호 할 수 없는 것이 상대의 마음까지도 환희 비추어 보이는 거울이 있는 이상 진실이 얼마나 상대를 감복시키느냐에 달렸지. 그 정당성을 밟혀 주는 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변론이고, 아무리 죄가 무거워도 어떻게 변론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곧 불법의 위력이라고, 하셨다. 지장보살님은 서방국토에 들어오는 죽은 망자들을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밤 낯없이 죽어 사리분간을 못하고 갈팡지팡 헤매는 귀신들을 제도하느라 부처의 길을 마다하고 하나의 중생도 지옥 불에 떨어 지지 않을 때까지 중생을 위해 보살로 계시겠다는 원을 세워 귀신들을 제도하시는 분이다.
염라재판장이 판사들을 대동하여 자리에 앉았다. 망자인 왕건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두 사자들이 걸어 들어 왔다. 첫 재판에서 세 번째 재판인데도 망자는 법정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묵묵 부담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할 말이 없는 듯 보였다. 염라재판장은 검은 박쥐날개 옷을 입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세 번째 재판을 시작 한다는 신호로 꽝! 꽝! 꽝! 두 번째 재판을 다시 거론 하겠습니다. 염라국 변론 자가 지난번에 다 하지 못한 변론이 있다면 하기바랍니다. 왼쪽에 앉은 염라국 변론 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떤 여인의 앞으로 가 있었다. 염라재판장이 주시하자 옆의 여인과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지난번에 이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번 망자의 여인 이십 구명 중 십사 명에 얻어온 정보를 망자 변론 자는 모두인 것처럼 변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합니다. 어찌 이십 구명의 여인의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문제에 대한 반론을 제기 하겠습니다.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십 오명의 여인들이 왕손을 낳아 기른 십사명의 여인들과 마음이 같다는 변론을 해보시오. 염라변론인은 여인의 앞에서 떨어져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 쪽으로 향해 섰다.
자리에 앉아있던 방청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 돼! 그 여인들이 정말로 망자를 원망 안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어.’ 방청석에서 웅성거리자 재판장은 내려다보며 반론을 해 보라고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중들 앞으로 나아갔다.
“고려의 나라는 여인들도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고 남편이 제대로 못하면 이혼의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한 법이 있는 이상 어느 누구도 강제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 법입니다. 그것을 제가 변론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염라국 변론 자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망자의 여인이 이십 구명인데 거울 속에 비추이는 이십 구명의 여인 중에 십 오명은 자식하나 낳아 보지 못하고 오직 망자의 사랑만 갈망하다 망자와 이별 하였습니다. 과연 그 여인들이 망자의 잘못을 용서한다고 생각 하시오! 망자를 대변하는 변론인은 답변해 보시오.”
법정이 술렁거렸다. 여인들이 일어나 항의를 할 기세로 대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대의 변론 자가 상기되어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다. 일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돌았다. 이제 십 오명의 여인들에 대한 변론을 하면 되겠구나. 깊게 한숨을 삼켰다.
“십 오명 여인들은 이번 기회에 불가에 입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법정이 금방 조용해졌다.
“무슨 말이요. 그것이 가능하다고 어찌 믿는단 말이요.”
그러자 조용히 변론인의 옆에 앉아있던 지장보살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그들의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당신은 누구인데 여인들을 대신한다는 것이요.”
지장보살의 모습은 보통사람과 같았고 옷은 폭이 넓은 활옷을 걸쳤지만 단정한 키는 때에 따라 보는 눈에 따라 달라보였지만 염라법정에서의 모습은 보통 키에 온화한 모습이었다. 방청객 눈에는 지장보살을 볼 때 몸 전체에 광채가 서리는 것으로 보였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방청객 쪽을 보다가 염라왕법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보아도 자비로움이 몸에 배어 있어 법정 않은 잠시 황홀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염라재판장이 한마디 하였다.
“이분은 지장보살님이 시요.
참으로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이 법정이 그만큼 어려운 재판이 될 것임을 알고 도움의 말씀을 하시려고 걸음 하셨습니다. 큰 원을 세우고 밤낮없이 망자들을 위해 지옥중생이 되지 않도록 지옥과 천당의 갈림길에서 천지분간을 못하는 망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쉬지 않고 노력 하시느라 부처가 되지 않고 보살을 고집하신 지장보살님이 십니다. 그제 서야 법정에 모인 죽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시늉을 하였다. 법정에 앉아 있는 여인들의 눈이 빛났다. 지장보살의 이름은 들어 봤어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환희에 차 있었다. 염라국 변론인은 지장보살의 등장에 말문을 닫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대사의 말씀대로 십오 명의 여인들이 불가에 입문한 것은 사실이며 여인이 불가에 입문하여 부처의 길을 걷는 자가 적었는데 여기앉아 있는 변론인 대사가 그들의 마음을 불쌍히 여겨 불가에 입문하도록 도왔습니다. 그 여인들은 이제 부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선 여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허망함을 알고 불법에 귀의하기로 다짐한 불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변할 일은 없을 것이기에 그것을 증인으로 증인석에 나왔습니다. 염라 재판장님, 땅의 세상에서 그 여인들이 크나큰 일을 할 것입니다. 모두가 망자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불가의 앞날에 망자가 불법을 수호한 은덕이 아니겠습니까. 너그러이 보아 주십시오. 십오 명의 선 여인들은 다음 고려의 여인들을 대표하여 사회 질서와 여인들의 자존을 위하는 길에 앞장서서 고려를 혼탁하지 않은 국토로 만들 것입니다. 지장보살님이 방청객과 법정을 보며 설명하였다. 조용히 듣고 있던 염라국 변론 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재판장 쪽으로 나와 이의를 제의하였다.
“재판장님, 이들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변론인은 무슨 말이요, 지장보살님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법정 안이 한바탕 시끄러웠다. 재판을 지켜보던 여인들은 처음에는 염라국 편으로 망자를 벌주기를 소원하였는데 지장보살의 말을 듣고 이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지장보살의 말이 거짓이라고 하는 염라 변론인의 말에 소스라 처 놀라고 있었다.
“저자가 미쳤어, 거짓말이라니 어쩌려고.”
법정에 모인 귀신 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염라국 변론인을 쏘아보며 무슨 일이라도 행할 순간에 법정은 소란스러웠다. 법정을 평정하기위해 판사가 방망이를 내리쳤다. 꽝! 꽝! 꽝! 법정에서 소란은 금물이니 조용하라는 경고였다.
지장보살의 말이 거짓이라고 하는 변론인에 대해 나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할 순간에 염라 변론인이 일어나 “지장보살은 십오 명의 여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리하였는지 설명할 수 있으시오.” 하며 쏘아본다. 거울을 보니 십 오명의 여인들 중에는 다른 남정네와 정을 통한 여인도 몇 있었소. 그들이 과연 불가에 귀의 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 거요. 그들은 망자의 여인이기에 고려 왕비들이 아니요. 십 오명이 다 귀의 한다는 소리는 거짓이란 말이요. 그들은 분명 거짓말로 속이고 있을 것이요. 다른 사내에게 정을 통했던 여인들이 어찌 순고한 승려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장답할 수 있으시오. 의기양양하게 염라국 변론인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장보살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보이며 상대의 변론인에게 조용히 설명하였다.
염라변론인의 말도 인리는 있습니다. 어느 누가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요. 그러나 문서로 그리한다고 하였으니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다른 남정네와 다시 혼인 한다면 어찌 할 도리가 없지요. 그들이 새로운 삶을 찾는다 해도 이미 불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기에 거짓의 말이 될 수 없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방청객들은 지장보살이 출현하는 바람에 원한과 용서의 두 갈림길에서 편안한 마음이 되어 순간을 즐기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세 번째 재판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하는 방망이 소리가 꽝! 꽝! 꽝! 끝나자 재판장 안이 조용해졌다. 두 사자가 망자의 양쪽 팔을 잡고 법정을 떠나려는 순간 그들의 앞을 막으며 망자의 상태를 살폈다. 망자는 아무런 의혹도 희망도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힘드십니까?”
망자의 손을 잡고 물었다. 망자는 그냥 머리만 흔들어 보였다. 무슨 말이라도 물어 볼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일현을 밀치고 사자둘이 망자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장보살은 의연하게 자리를 뜨고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려고 얼른 따라나섰지만 어느 사이에 백옥구름을 타고 사라지고 있었다. 멀리사라지는 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고 합장 하였다.
안동의 세워질 건물이 들어설 자리에 터를 닦기로 하였다. 정해진 대로 제일 좋은 나무로 기둥을 세울 것이며 왕건의 생전에 마지막 엄명으로 내려졌다는 고마움에 태왕의 의지를 받들어 사병들에게 산에서 제일 잘생긴 나무로 도벌해 오도록 하는가 하면 터를 닦는데 인력을 집중시켰다. 곧 안동으로 내려올 일현대사를 생각하며 권행은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네 번째 제판 시간이 일주일이 남아있으므로 안동에 세워질 건물을 설계하였다. 그리고 그 이름을 자미원이라 하리라 생각했다. 하슬라에 어머니가 지어 두고 온 영빈관을 생각했다. 이십여 채의 방이 구십 구 칸인 임영관을 설계해 어머니가 그렸던 설계도를 생각 했다. 자미원은 그리 여러 채는 아니지만 기둥을 높이 세우고 넓은 공간을 두고 지어야 하는 것이 임영관 집들과는 달랐다. 수십 명이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설계를 해야 하고 집 몇 채를 지어야 하는 지에 설계의 초점을 맞추었다. 한번 다녀온 길이라 행자를 먼저 내려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금방 안동에 갈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행자를 먼저 내려 보내 자미원이 속히 완성 할 수 있도록 감독관이 있어야 했다.
설계도를 그려 줄 것이니 행자에게 안동에 먼저 내려가 새로 건축할 곳에 터 닦기를 감독하고 기둥의 둘래와 높이라든가 주춧돌의 크기라든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며 대궐을 둘러보고 눈에 익혀두었다가 자미원을 지을 본보기를 삼으라고 했다.
저가 뭘 안다고 저 혼자 먼저 가라 하느냐고 처다 본다.
“왜, 몰라 해인사 불사하는 걸 보았지 않은가.”
해인사보다 우람하게 고려의 위상을 안동에 세울 것이며 터를 닦는 것을 감독하다 보면 자연히 알아 질 것이니 겁먹지 말고 하루가 빠르게 지어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이제 우리 둘은 그곳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안동 백성에게 전해야 하고 어려서부터 학문으로 불법을 가르친다면 나라 다스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이것이 고려왕이 마지막으로 내게 준 부처님 선물일세. 부처님께서 우리 둘에게 이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어렵게 생각지 말고, 그런 건물을 산중이 아닌 고울 가까운 곳에 지어 인재 양성에 힘쓰라는 예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태왕전하의 왕비 십오 명이 불가에 귀의 하였으니 그들의 앞날을 우리 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큰 성과이니 명심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여인들이 기거 할 별당 채도 지어야 한다는 것을 고심해야했다.
마음이 급했다. 대궐이 안정되어야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다. 사십 구제가 끝이 난다 해도 여인들을 인솔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있었다. 우선 자미원이 지어 진다면 이곳에서 십 오명 여인들이 불법을 펴 익히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들의 안전한 귀의처가 되도록 노력 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미원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선 여인들이 맡아 교육 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