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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승려 포청천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18

저는 자연이 수려한 강릉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강릉을 사랑하며 살 것이기에 이곳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현제의 삶에서 과거의 삶에 도전하는 <승려포청전>은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 제 4회 대한민국 창작소설 공모대전에 출품하기로 한 장편소설은 처음부터 두렵고 두려운 작품었습니다. 모든 것이 선에서 이루어진 신의 세계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의 세계를 이야기로 전게되면서 그럴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역사적 인물 고려왕건의 일대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영웅의 실화입니다. 그럼에도 그 영웅의 사후 세계에 있음직한 죄를 다루게 되었고 그 영웅의 부인 29명에 대한 올곧지 못한 점을 찾아 세상에 이슈가 되었던 미투에 접목 시켰습니다.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왕건시대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반란을 안정시키는데 탁월한 엄변으로 변론하여 왕건죽음 49일 동안 그의 죄가 타당함을 밝혀 하늘세상의 옥황상제 품으로 올려 보내는 과정이 주목 할 만 한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불가에 입문하여 수 십 년 동안 의심을 풀기위한 목적으로 부처 가까이에 항상 있어야 한다는 이유가 일상속에 합께 하였습니다. 신의 세계를 평정하는 승려 일현은 불현듯 마음에서 일어나는 한 생각에 모든것을 초개 처럼 버리고 슬려의 길을 살면서 망자가 돤 왕건의 죄를 풀어가는데 반전과 반전의 기회를 적절하게 하여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 하였슴니다. 감사합니다.

 
2화
작성일 : 19-10-18 21:08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17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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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지루함은 청각이 사라난다. 들쥐가 지나가고, 썩은 냄새가 방안을 돌아 문틈으로 사라지는가 하면 무아의 세계를 방해하는 자도 없고 주지를 찾는다는 문 두드리는 사람이 없어 자유로웠다.

  썩은 냄새의 원인인가. 감정 이입도 되지 않았는데 몸에서 일어나는 욕정이 참으로 귀의하여 그 실체를 관여 하려다 은연중 부처의 부름이라 여기고 단걸음에 상원사에 달려갔던 생각이 나타난다. 3년 후 마음의 소리에 해인사로 자리를 옮겨 왔던 일도, 저잣거리에서 혹사한 다리를 물에 씻으려 우물가로 갔었던 일, 우물가에서 세 여인을 만나 이야기하다 해인사에 갗이 올라갔던 일이 무아의 속으로 들어온다.

  그때 세 여인에게 지어준 불, 법, 승, 의 이름은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었다. 해인사에 있으며 그녀들로 하여금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해인사 주지자리를 내려놓았다는 데 세 여인은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그 이후 스스럼없이 웃어 반기던 여인 얼굴은 경내에서 자주보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주지가 된 정법스님과 가깝게 지낼 것이다. 해인사 마당에서 일현스님을 만날 수 없다는 세 여인은 해인사 마당에 들어오면 주위를 두 리 번 거려야 했다.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 여인들 셋이서 공부하는 머릿속에 들어와 떠나지를 않는다.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공부하다보면 모든 것들이 공부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다. 허상에 시달려 고생하는 경우를 아는지라 무시하고 무시하였다. 그 환상을 벗어내기 위하여 얼굴에 땀방울이 흘렀다.

  그들이 사라지자, 주지를 넘겨준 정법스님 모습이 마음에 들어 왔다. 정법스님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 여인들이 나타나 그 사이에 정법스님이 있었다. 세 여인은 정법스님 무릎에 앉아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망측한 환상이란 말인가!’

  세 여인들은 차례로 정법스님과 정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어이없는 환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날 뻔하였다. 이것이 무엇이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환상이라고 화를 내었지만 심각한 건 그러한 광경을 접하는 일현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잠잠하게 살았던 육신의 발란이 시작 되었다. 정법과 정사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세 여인에게 불명을 주었던 불, 법, 승 중 불, 이름을 붙여준 여인이었다. 불 여인은 성격이 활발하고 집안이 행세께나 한다고 들었다. 승가의 일과 불사가 있을 때는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해인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대해 화를 내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앉음 새를 고처 앉았다. 정사의 장면이 각인이 된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관계없이 몸에서 열이 나고 견딜 수 없는 성욕이 그를 곤욕스럽게 하였다. 마음을 다잡아 앉음새를 고처앉아 보아도 가슴이 펄떡거리고 얼굴에 열이 나고 아랫도리가 팽창하여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문을 열고 나왔다. 누가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정말 괴이한 현상에 저녁을 먹었는지 점심을 먹었는지, 시간 개념을 잊고 있었다. 밖의 공기는 훈훈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바람이 이산 저산을 건너가는 소리도 들린다. 벌레 울음소리도 귓전에 요란스럽다. 화두를 챙겨 걸었다.

  ‘설마 정법스님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 다 허상이야. 하면서도 의심을 하게 되었다. 평소 일현의 마음에 들어오지도 못했던 가족이 떠오른다. 인연의 책임을 팽개치고 자식과 부인의 정을 무 자르듯 잘라 버렸던 자신의 행동에 죄의식이 느껴진다.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어찌 살았을까. 지난번 만났던 속가의 가족에게 눈길 한번을 주지 않았던 자신이 아닌가. 어머니 장례를 핑계로 살 부비고 살았던 부인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으니 매몰차기로 말하면 죽일 놈이 아니던가. 그리 무심하였던 몸인데 어쩌자고 이 욕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딸 수인이가 멀지 않은 거리 서라벌에 있다. 할머니를 잃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한 가족의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다스려 보았다.

  정법 스님은 어려서 불가에 귀의 했다고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절에 맡겨졌다고 했다. 적막 산속에 청, 소년기를 보낸 정법이 여인을 알았겠는가. 엄한 계율로 가르쳤던 희랑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당연지사 차례로 자기가 대를 이어 주지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걸 알았을 것인데 희랑선사가 정법의 법력이 약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유언으로 일현을 주지로 천명 하는 바람에 속으로 정법은 너무나 화가 나 중이고 뭐고 떠나고 싶었다. 여직 공부한 것에 억울하여 울분을 누르지 못하는 자신이 더 화가 났다. 그래도 의지하고 살았던 정을 생각하여 큰스님 다비식이 끝나면 떠나리라.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그 힘에 울분을 내리고 참았다. 선사의 다비식은 여러 날이 걸렸다.

  세여인은 희랑선사가 입적하고 다비식까지 절 안에 모든 책임을 도맡아 거들며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안채의 모든 일을 책임 의식으로 하게 된 것이 너무 고맙고 좋아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평생 한 번 만날 수 없을 큰일에 동참하는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언제부턴가 해인사 살림을 맡아 보아온 불, 여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집에서 언문을 깨우쳐 고려의 여성답게 대가 집 자손과 혼인하여 자식 낳고 허물없이 사는 넉넉한 집안의 여인이었다. 어쩐 일인지 딸만 났고 아들이 없어 점집에서 말하는 대로 부처의 원력으로 아들하나 점지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승가의 일을 도왔던 것이다. 해인사에 불사가 있을 때 마다 솔선하여 금전과 쌀을 아끼지 않고 도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마침 달거리도 끝난 상태라 가벼운 기분으로 큰일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모두가 부처님의 은혜라고 자청하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큰일을 치루고 있었다.

  희랑 선사의 다비식이 시작 되었다. 용머리를 풀어 날리는 검은 연기는 바람이 마음대로 불길을 이쪽저쪽으로 날려 하늘을 향해 오른다. 모여 섰던 많은 사람들이 선사의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염불소리로 산천을 울렸다. 불꽃이 밤이 이슥하도록 타 오르다가 수그러지고 있다. 시간이 오래된 관계로 모였던 사람들은 거의 마을로 내려가고 귀하게 걸음한 정계의 사람들도 일현과 정법에게 그동안 후덕을 치하 하며 떠났다. 마을사람 몇 그곳을 지킬 의무를 발휘하여 밤을 새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아직 타다 남은 불길을 관리하고 있었다.

  희랑선사는 신라가 망하고 새 고려가 탄생하는 혼란한 시기에 나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해인사에서 출타하지 않았다. 고려의 출현은 선사를 슬프게 하였다. 시절이 바뀌고 고려왕건의 시대가 정착되면서 난데없이 해인사를 찾아온 최치원의 아들 동희를 만나면서 불교의 인연을 느꼈었다.

  희랑선사가 입적할 때를 기다리며 뒷전에 물러앉아 있을 때 동희가 머리를 삭발하고 일현이라는 불명을 들고 나타났다. 그를 기다린 선사는 마음이 놓였다. 주지 자리를 노치 않고 지켜온 것도 그런 속의 까닥이었다. 그 이후 3년 만에 희랑선사는 입적하였다.

  그 오랜 세월동안 선승으로 살았던 희랑선사의 법음의 결과로 다비식에 참석한 귀빈들이 하나둘 만장을 들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울긋불긋한 만장의 수가 골을 외워 꼬리를 물고 돌아갈 때는 산천이 다 춤을 추었고 모인사람들 마음도 슬픔을 잊은 호화로운 광대들 놀이 같았다. 다비의 불꽃이 한풀 꺾이어 무아의 침묵 속에서 염불소리도 끝났다.

  무심마저 잃어버리고 서 있던 사람들은 옥음으로 새겨 가슴으로 들었던 희랑선사의 말씀을 기억하여 만장에 써 넣어 흔들고 흔들었다. 새벽 동쪽 하늘이 붉어질 무렵 한 사람이 들고 있던 만장을 불 속에 던졌다. 진리의 말씀은 선사와 함께 불속에 던 저져 자자들던 불꽃이 다시 활옷처럼 한 바탕 주위를 밝혀 일어나 날리더니 대나무 만장에 매달렸던 진리의 글 귀 한마디 한마디가 바람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희랑선사의 복음소리인 듯 불꽃을 피웠다.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아쉬운 듯 바라보던 정법스님의 얼굴에 불꽃이 반사 되면서 붉어진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희랑선사와 함께했던 지난 어린 시절을 상기하며 불꽃의 아름다움에 마냥 서 있었다. 잠시 잠깐 미운 마음을 가지고 해인사를 떠나리라 마음먹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음을 다스리고 보니 스승의 고마움과 떠나보내는 이별자리에 서있는 자신이 슬펐다. 아름답게 불꽃 속으로 사라지는 선사의 인생이 정법스님과 함께 하였다는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 이별의 서러움은 아쉽고 그리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참회 하였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지난 날 흔적을 더듬어 보았다. 어린 시절 부모를 떠나 스승님의 훈계를 받으며 배웠던 부처의 법을 그릇이 못되어 받지 못했음을 인정 하여야 했다. 일현 스님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스님 다비식 날 맹세 하였다. 가슴이 텅 빈 것같이 가볍다. 미웠던 마음을 벗어내니 갑자기 소피가 마려웠다. 정법스님은 눈물로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부비며 그들 속에서 빠져나와 해우소를 찾았다. 얼마를 참았는지도 모를 소피를 시원하게 보고 돌아섰다 .우물가로가 손을 씻었다. 안으로 보이는 희미한 불빛을 따라 가던 정법의 눈길이 멎은 곳에 뒷설거지를 혼자서 하고 있는 여인의 뒤태를 보았다. 모두가 다비식에 나와 있을 법 했는데 불, 여인이 혼자서 뒷정리를 하느라 그곳에 있었다. 평소에 불, 여인을 볼 때 정법스님은 시대를 앞서가는 여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 처리하는 솜씨가 남정네 보다 활달하여 절 내부에서도 그 여인이 절에 올라오는 날을 세며 기다릴 정도로 그녀가 절에 출현하는 날에는 조용하였던 절 내부가 활기에 차 있는 날이다. 그러한 불, 여인을 정법은 마음속으로 좋아했었다. 평소에는 서로 마주 처 지나가도 눈길 한번 주지 못했지만 가끔씩 그녀에 대한 마음을 감추어야 했었다.

  희미한 불빛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일현 과는 아무런 허물이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정법스님은 자기의 마음을 들킬까 그녀를 바로 처다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워 했었다. 그녀에게 속은 들키지 않았지만 안으로 흔들리는 속마음을 다잡는데 공부가 되었던 것 같았는데 이 깊은 밤에 그녀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모두가 다비식에 참석하여 선사의 마지막 길을 슬퍼하며 밤을 새울 것이다. 오직 불 여인이 그곳에 가지안고 뒷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라도 해야지, 하며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가슴이 방망이질 한다.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 자신이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불 여인은 다시는 승가의 마당에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친 걸음은 그녀 앞에 섰다. 주위는 어둡고 깊었다.

  “으 아~아”

  무심으로 일하던 불, 여인은 깜짝 놀랐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그림자에 소스라쳐 넘어지려던 몸을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느라 애를 섰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정법스님이 놀랐을까 더 걱정이 되어 웃으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여기와 좀 쉬세요, 힘드시죠?”

  서로 처다 보며 웃었다. 어둠속에 비추는 그녀의 하얀 이가 유난이 눈부시다. 주위 분위기도 갈아 앉은 적막한 산골에 이를 드러내 웃는 여인을 떨리는 가슴으로 처다 본다. 여인은 자리를 마련하느라 돌아섰다. 돌아선 여인의 태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에만 두었던 여인에 대한 그리움이 속구 친다. 망설이면 기회는 없다. 돌아서 있는 여인의 손을 잡았다. 어디서 그러한 용기나 일어났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래도록 참아왔던 여인에 대한 연정이 가슴에서 폭 팔 한다. 가슴에서 나는 소리가 천둥번개 같이 귀를 때린다. 여인이 들으면 안 되었다. 억지로 태연을 가장한 부드러움으로 그녀의 손을 끌고 어두운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갈 것인가, 머리로는 이미 정한 곳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그녀와 밀어를 나누어도 아무도 모르는 장소가 이미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손을 꼭 쥐고 걸었다. 여인은 평소에 정법을 믿었기에 그 순간도 아무런 생각도 의심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해인사 깊은 산 주위는 희랑선사와 오래도록 함께 지내왔던 주위의 모든 것 들이 다비식을 지켜보는 사람과 같이 신들도 구름처럼 모였으리라. 하늘 신, 허공 신, 나무 신, 땅 신, 삼신 신, 바람 신, 바위 신, 길 신, 여인을 탐내는 신, 사랑하고 싶은 신이 누구라 할 것 없이 신이란 신은 희랑선사의 법음을 들으려 그 자리를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정법의 마음에 신이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 불, 여인의 마음에도 그러 했으리라. 아무런 경계를 느끼지 못하게 압력의 힘이 작용 했으리라. 그들은 다비식이 끝나고 선사의 비석이 세워질 때의 시간까지 매일저녁 만났다.

  다비식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불 여인은 늘어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자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늘어진 불 여인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자리를 펴고 그녀를 편하게 하였다. 자고 있는 부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기다렸던 며칠이 아쉬워 그날 밤 그녀를 품었다. 여인은 꿈속에서 지나간 며칠 밤을 회상하며 남편인지 정법스님인지 가름하기 어려웠어도 예외 없이 남편은 며칠 만에 부인을 흡족하게 마음껏 안아 주었다. 그 이후 여인은 달거리가 없었고 3개월이 되자 태기가 있어 입덧이 심했다. 자식을 못 볼 나이려니 생각했었던 여인은 열 달 후 아들을 낳았다. 열 달 동안 여인은 배안의 씨앗을 낙태를 시켜 보려고 며칠을 굶어 보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보기도 하면서 못된 짓을 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남편의 열정에 동조하였던 밤을 생각한다면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라는 엉뚱한 마음을 주입시켜 새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지키기로 마음의 노력을 하였다.

  딸이든 아들이든 틀림없이 아비를 닮을 것인데 이 노릇을 어찌하나 싶어 얼굴이 바싹 말랐다. 태어난 아들은 다행히 어미를 닮아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잔치를 할 정도로 새끼를 꼬아 금줄을 달았다. 처마 밑에는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마지막 힘이 가해졌을 때 이미 아기 나오는 길은 세 딸로 하여 닥아 논길이 기에 배속의 아기는 쉽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켜보던 진정 어머니가,

  “야! 야!! 아들이다. 아들이야! 어미야, 너를 쏙 빼 닮았구나, 몇 번을 변하는 것이 아기라는데 아비를 안 담고 너를 닮아 다야!”

  하던 친정어머니의 말이 그녀로 하여금 시름을 걷어갔다. 함께 했던 법, 승, 두 여인의 의심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또 다른 그리움으로 그녀 얼굴 붉히는 일이다. 아무튼 귀한 아들을 얻은 집안은 며칠을 두고 사람들이 구경 하려 들고 날고 하였다.

  잘도 생겼네,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더니 아들을 낳았어. 시어머니의 그 말에 며느리 얼굴은 또 붉어졌다. 아기를 보고 있으려니 정법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배가 불러 오는 동안 그녀는 안절부절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이제 틀림없이 쫓겨 날 것이라고 친정부모 형제에게 얼굴에 똥칠을 하였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끊을 수 없는 것이 목숨이라, 그길로 해인사에 가는 발길을 뚝 끊어 버리고 집안일에 여염하였다. 정법을 1년 동안 못 보았다. 이제 가슴 조이던 일도 해결되다보니 엉뚱하게 그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총사 두 여인이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불, 여인의 아들을 보러 들렀다. 아기의 옷 한 가지씩 들고 와 귀한 집 귀한 자손이 새 끈 거리며 자고 있는 갓난아기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형님, 큰일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처다 보며 아기를 뚫어 져라 바라보았다. 형님을 쏘옥 빼 닮았네, 갓난아기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한 인물 하겠어요! 형님. 해인사에 열심히 다닌 복이지요. 이제 아기 키우려면 한동안 올라가지 못하겠네. 두 여인은 서로 처다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아기얼굴을 뚫어져라 관찰하였다.

  그들을 통해 정법의 안부를 듣고 싶어서다. “고마워, 와 줘서.” 못가는 대신 자네 둘이 열심히 다녀오라고 하면서 두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처다 볼 수가 없다. 아들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죄 지은 일을 생각하면 가시방석에 앉아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아기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정법의 아이라는 걸 알고 천정 벽력같은 이일을 어찌 할 것인가 고민하여 입덧이 심하지도 않았는데도 죄의 올가미에 걸려 제대로 먹지를 못했었다. 그동안 해인사에는 발길을 끊었지만 지금쯤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올라갔을 것이다. 정법은 소문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리움에 손끝이 저리다. 정법도 그러 할 것이다.

  정법은 그날 저녁에 자기가 행한 행동에 대해 반성보다도 자신에 대해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기쁨의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을 감추고 여인에 대한 신비함을 되새겨 보느라 억지로 입술을 물었다. 어둠속에서 여인의 살을 더듬던 그 기막힌 장면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하였다. 큰스님의 일을 책임지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빨리 또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를 용서 하세요. 오래전부터 당신을 좋아 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불 여인에게 내 뱉었던 소리를 되씹어본다. 꿈같은 밤이었다.

  불 여인은 영문도 모르고 정법 손에 이끌려 어딘지 당도한 곳은 바닥이 평평한 넓은 곳이었다. 달이 있었는지 숲속은 그늘이 지어져 있었지만 해인사 마당만 한 숲속 한 곳에는 둘레가 훤히 밝아 앉아 놀기에 좋은 곳으로 보였다. 정법은 일어나는 욕정을 참을 수 없어 이런 저런 절차에 기운을 소모할 시간이 없었다. 여인을 눕혔다. 사내의 힘에 뒤로 넘어진 여인은 무방비 상태였다.

  불, 여인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정법 손에 잡혀 가면서도 무심으로 생각하였다. 무슨 속마음을 털어 놓을 것이 있나보다. 그런 아니한 마음으로 그가 끄는 대로 따라 갔었다. 평소에 일현과 가까이 지냈지만 정법이 주지의 차례에서 밀려났을 때 정법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끌려가면서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났다. 가던 발길이 멈추는가. 했는데 정법이 무지막지하게 힘으로 다리에 촉을 걸어 불, 여인을 넘어 드렸다. 순간 버텨보려고 힘을 써 보았지만 이미 속살을 더듬는 손길에 뜨거움을 느꼈고 거칠어 옷이 라도 찢어 버릴 것 같은 불같은 행동에 평소의 모습이 아닌 정법에 놀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소리를 지른다고 듣는 이도 없으려니와 누구에라도 발각이 된다면 창피한 것은 자기라는 급박함 상황에서 머리가 잘 돌았다. 이상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아무런 저항의 힘을 가하지 않기로 무엇인가 가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법은 어려서 산에 들어와 중노릇 하느라 여자의 속살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산속에서만 살았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주어 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수능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밖에 몰랐던 여인이 갑자기 덤벼드는 사내의 힘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꿈속에서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이 순간을 그녀는 그리 생각하기로 마음을 내렸다. 그런다고 성욕에 굶주린 사내를 밀어낼 힘도 소리를 지른다고 뛰어올 사람도 없다는데 다른 방도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산천초목이 희랑선사의 마지막 길을 슬퍼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려는 시도에 적극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법은 한번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의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지 여인의 가슴을 또 한 번 헤쳤다. 여인의 체취를 음미하였다. 깊은 밤 날 새는 줄을 몰랐다.

  “좋아 했습니다.”

  애절하게 들리는 정법의 입에서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이 몸이 무엇이라고’ 여인은 안쓰러워 그러한 생각도 들었다. 오래오래 그녀의 품에서 떨어 질줄 몰랐다. 시간이 정지되었던 것은 아닌지. 흐느끼듯 정사의 몸짓은 애절하였다. 그리고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어둠은 또 하나의 나라로 분리되어 산천도 초목도 흔들림을 멈추고 그들에게만 고요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둘이는 고요의 정막 안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밤이슬이 새벽바람을 부추겨 밤을 새우려던 사람들을 하나 둘 잘 곳을 찾아 사라지게 한다. 법, 승 두 여인도 부엌에 딸려있는 방에 기어 들어와 누가 있는지 없는지 찾아볼 일도 없어서 감기는 눈을 아무데나 누이고 깊은 잠에 빠졌다.

  정법이 일어나 자리를 정리한다. 여인의 발가벗은 몸을 데리고 물내려가는 곳으로 갔다. 얼굴과 몸을 씻으려는 행동이다. 땀에 범벅이 된 육신을 씻었다. 아직도 열정이 다 풀리지 않아 여인을 끓어 안고 입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그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껏 참아 왔던 것이 억울하여 떨어 질줄 몰랐다. 새벽이슬이 촉촉이 내리는데 서로 기대고 앉아 일어 날 줄을 몰랐다.

  누가 있고 누가 없어졌는지 며칠 밤을 새다시피 분주하게 지냈던 터라 모두 눈이 감기어 아무데나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의 밀어는 며칠째 계속 되었다. 희랑선사의 입적이 불, 여인에게는 가문을 더럽힌 씻을 수 없는 죄업이 되었고, 정법스님의 행동은 미투 에 들러 갈 죄업의 사건을 가슴 깊숙이 지고 살아야하는 업보가 되었다. 그 업으로 인해 뱀이 되었다는 근거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정법스님은 뱀이 되었었다.

  “여기 주지는 누구시오!”

  일현이 뒤뜰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중에 해인사 마당에 들어선 군복 입은 병사가 소리를 질렀다. 행자가 얼른 나가 인사를 한다.

  “주지스님을 찾으십니까?”

  “그렀소. 명을 받고 대궐에서 온 사람이요. 주지스님께 안내하시오.”

  그 병사는 예의도 가추지 않고 왕의 명을 받들어야한다고 소리를 높혔다. 밖이 소란하여 정법스님이 문을 열고 병사를 맞이했다.

  “소승이 해인사 주지요만,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오.”

  그는 서슴없이 급한 서찰을 정법에게 보였다.

  “당신이 강원도 하슬라에서 아찬대감으로 계시던 동희 대감이요!”

  그제 서야 정법스님은 이해를 하고 행자에게 큰스님을 모셔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제가 아니라 여기에 큰 스님인 것 갔습니다.”

  행자의 급한 숨소리는 일현을 놀라게 하였다.

  “고려왕께서 큰스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고려왕이”

  일현은 병사가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 당당하던 병사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태왕 전하께 큰스님을 찾으십니다. 속히 차비를 하시고 저를 따라 가셔야 합니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옛날이 생각났다. 곧 중앙으로 올라오라고 하였던 왕건의 말이 금방 귓전에 울린다. 병사의 말을 듣고 보니 왕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무어라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아랫마을에 말을 두고 왔다며 그곳까지 급히 가기를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대강 옷 한 벌을 챙겨 승려 가방에 넣었다. 챙길 것도 가지고 갈 것도 없었다. 해인사는 왈칵 소란스럽다. 의지하였던 스님을 궁궐에서 데리러 왔으니 이제 영영 이별이 될 거라고 모두는 생각하고 있었다. 일현도 그런 마음이다. 모두의 전송을 받으며 해인사를 떠나려는데 평소 시봉을 들고 있던 행자가 갑자기 스님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기도 데려가라고 한다. 눈물을 훔치며 말하는 행자가 어느새 가방을 지고 있었다. 난감하여 병사의 눈을 보았다. 병사도 생각해보니 스님을 시봉할 사람이 옆에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며 함께 가자는 손짓을 하였다.

  모여 섰던 해인사 스님들이 무어라 토를 달 겨를도 말릴 수도 없는 행자와 일현을 동시에 이별하고 말았다. 그렇게 셋이서 바람 같이 산을 내려왔다. 병사도 말이 없고 일현도 한마디 말이 없다. 마을에 내려오니 기우는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을에 맡겨 두었던 말 한필에 행자와 일현이 타고 병사는 앞장을 섰다.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일심양면의 첫 발을 강원도 하슬라에 왕건의 책사로 갔던 것이 왕과 인연이 되었다. 왕건의 정치가 바람 잘 날 없는 시기에 크게 공헌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는 인연인가.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정계를 떠나 산속에 들어 온지가 벌써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그동안 왕건이 세운 고려가 번창하여 백성이 임금을 우러러보는 왕권이 형성 되어 있었다. 세상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일현은 아버지 최치원의 행각을 물려받아 부처의 자식으로서 도의 경지를 이루었고 이제 해인사를 떠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왕건의 부름에 엷은 비소를 지었다. 다시 또 해인사에 돌아 올 것인지 알 수 없는 길에 나섰다.

  말을 타 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함께 나선 행자의 다급한 행동이 생각할수록 웃음이 난다. 어찌 그런 행동을 했으며 겁 없이 따라나섰단 말인가. 낮선 곳에서 행자와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일현의 허리를 꼭 잡고 좋아하는 것을 보니 든든하기도 하였다. 말에 몸을 의지하여 지름길을 달리고 달렸다. 밤늦은 시간에 서라벌에 당도 하였다.

  며칠 전 딸 수인이가 마음속에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수인을 만나 볼 기회가 생긴 것이라 놀라고 있었다. 여기서 하루를 묵어야 하겠다며 병사는 가다려 보라고 말에서 내렸다. 병사는 말에서 내려 주막을 찾아볼 요랑d로 앞쪽으로 걸어갔다. 병사에게 수인에 대한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보냈던 집이 얼마 멀지않은 곳에 있다. 지금도 수인이가 집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일현을 기다리며 무역사업을 잘하고 있을 것이다. 말에서 내려 한참을 기다렸더니 병사가 마장과 하룻밤 자고 갈 주막을 정해놓고 그곳으로 안내했다. 말 먹이는 주막에서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스님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마장이 있는 집을 찾다보니 누추할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다 방 두 칸을 얻어 병사는 병사대로 일현은 행자와 함께 들었다. 주막의 밥상은 푸짐하였다. 저녁상을 물린 즉시 일러났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 두라는 말을 하고 일어났다. 스님을 처다 보다가 행자도 벌떡 일어났다. 따라 나서는 행자를 어쩌지 못하고 서 있었다.

  “저도 가렵니다. 이제 스님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렵니다.”

  금방 다녀온다고 하여도 막 무가 내어 신발을 신고 서있었다. 할 수 없이 행자를 데리고 수인의 무역회사에 들러볼 요량으로 서라벌 장터를 찾았다. 이미 장터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고 어둠이 깔려 있었다. 가족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러나 지나는 길목에 있는 수인이가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혼자 어찌 지내는지 한 번쯤 보아주는 것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인의 몸으로 천리 타향에 가족을 떠나 산다는 것이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한번 와 봤던 회사근처에서 발을 멈추고 살폈다. 안으로 불빛이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가갔다. 안으로는 문이 잠겨 있을 것 같아 인기척을 내어 문을 두드려 보았다. 안에서 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밖으로 나오는 그림자를 보니 사내가 문을 열고 인기척을 하였다.

  “이곳의 책임자를 찾아 왔는데 안에 게시오.”

  사내는 어둠 속에 서있는 일현을 살폈다. 언젠가 보았던 얼굴이라 얼른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베 온 적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 오십시요.”

  젊은 사내는 문을 열어 주었다. 사무실은 사내들만 몇이 앉아 있다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차림은 보통사람과 다른 관계로 금방 알아보는 데는 빨랐다. 갑자기 나타난 일현을 보고 수인을 만나러 온 것으로 알기에 자리를 안내하고 상도님은 퇴근을 하였다는 말을 하면서 금방 모셔오겠습니다. 하는 말을 남기고 문을 열고 나갔다. 말릴 시간도 없었다. 남아있는 그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대고 있었다. 행자는 의아했다. 상도라는 사람과 어떤 사이 길래 저 사람들이 저리 도 놀라는가. 차를 내온다. 물을 내온다. 저녁은 드셨느냐는 등 야단이다. 일현은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수인을 집으로 만나러 가도 되는데 직원의 빠른 행동에 그냥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내는 인력거를 불러 타고 집에 도착하였다. 수인은 잠옷을 갈아입고 오늘 있었던 장부를 들고 살펴보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에 귀를 세웠다 ‘이 밤에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가. 저 소리는’ 꽝꽝 문 두드리는 소리에 삽살개가 놀라 야단이다. 같이 사는 아이가 급히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젊은 사내는 마당을 질러 쏜살 같이 문 앞에 당도하여 빨리빨리 나오세요. 스님이! 숨이 턱에 닿아 내 뱉는 말이다.

  “ 뭐! 아버지가! 어디에?”

  “ 회사에 와 계십니다. 빨리요!”

  수인은 급한 마음에 옷을 입었는지 신발은 신었는지를 생각지 못하고 대문에 세워놓은 인력거에 앉았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오셨다고.’

  문을 열었다. 그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다.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섰다. 선득 아버지 하고 부르지 못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너무 외로워서 달려가 안기고 싶었는데 무언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망설임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속으로 불렀다.

  “이 밤에 어떻게“

  “한양 가는 길에 들렸지. 사업은 잘 되는가?”

  그저, 친한 사람에게 말하듯 웃으며 처다 보았다. 딸의 얼굴엔 그리움과 외로움이 있었다. 기쁨을 참는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기쁨의 행동을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이 오죽하랴.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것도 못하고 서있는 수인이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그 장면은 서있는 남정네 가슴도 그녀 못지않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우며 퇴근하는 것을 보고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

  행자는 영문도 모르고 지켜본 결과 분위기를 알 것 같았다. 큰스님의 속가 딸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부처의 제자가 되는 순간 그들의 마음은 부모형제의 연을 끊는 일이 첫 번째 수행이다. 그러듯 도반이라고 과거의 일에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것이 불가의 일이다.

  “그래, 혼인도 안하고 살 건가. 할머니도 안계신데 외롭지 않은가?”

  안으로의 애틋한 마음을 숨기며 자식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묻는다.

  “회사에 자주 들려주세요. 아~버, 스님께서 자주 들려주시면 힘이 될 것입니다.”

 수인은 가슴이 아팠다. 너무 외로웠던 탓에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가슴이 터질건만 같았다. 물을 마셨다. 그 마음을 읽은 일현의 가슴도 편하지는 안았다. 외로움에서 나온 그리움이라 혼인하여 가족이 있었다면 그러한 아픔은 없어질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여섯 살 적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최치원처럼 자기가 수인에게 대를 물려 아픔을 주는구나. 아버지를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할 때 수인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버지처럼 다정하지 못하였다. 나랏일을 보다보니 애들 교육은 부인이 알아서 하였기에 살가운 아버지 역할을 해 본적이 없었다.

  부녀지간에 서로 할 말이 없다. 시간이 지루하고 안타깝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앉아 있던 행자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침묵을 깨야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큰스님 따라 서라벌에 처음 왔는데 상도님을 뵈오니 놀랍습니다. 여인인 듯 사내인 듯 어떻게 보부 상도님이 되셨습니까? 놀랍습니다. 나라님이 부르시는 바람에 큰스님 모시려고 해인사에서 오는 길입니다. 산속에만 있던 중이 정신이 없습니다.”

  행자가 분위기 조정을 하였다. 고마웠다. 그저 빙긋이 웃고 있을 수밖에,

  수인은 옆에 사람이 있었는가도 몰랐던 탓에 미안하여 한마디 했다.

  “스님은 어쩌다 스님이 되셨어요.”

  셋이 한바탕 웃었다. 수인은 행자와 말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행자는 여인의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신기하여 서라벌에도 처음이지만 한양구경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수인의 나이가 된 행자도 절밥을 깨 먹었다. 일현 스님을 모시면서 자신의 입지가 놓아짐을 자부심으로 삼았다. 앞 뒤 안 가리고 따라온 것이 잘 되었다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좋아 했던가. 큰 스님의 과거를 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과거에 권세를 누리며 살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말문이 트인 수인이가 이제 웃으며 일현을 처다 본다.

  “강원도에 있는 어미와 오라비를 오라하여 함께 살지 혼자 외롭게 사는 건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곳의 사정도 있나 봅니다.”

  수인은 행자로 인해 말의 길을 찾았고 입이 부드러워 졌다. 자연스럽게 처다 보며 말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스님의 일을 도와주라고 하셨는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보라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이제는 보부상이 아니라 무역상을 하며 점포도 늘려 놓았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스님이 원하면 절도 지어줄 수 있다고, 여기서 자신과 가까이 살자고 했다.

  수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그런 것도 좋을 듯 하다며 웃었다. 해인사를 나올 때 해인사 발길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었다. 무역업을 운영해 간다는 수인이가 대견하였다. 혼인의 정연 기를 넘어 이제 완전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 영향으로 모든 사업기술을 전수 받았을 것이다. 마지막 떠나는 길에 혼자 남을 수인을 생각하여 자주 보러 오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말이 귀에 쟁쟁 하다. 낯선 땅에 여인의 몸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이 보통일인가. 딸의 얼굴을 처다 보았다. 수인의 말을 듣고 있던 행자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절을 지어준다는 말에도 묵묵 부담으로 웃기만 하는 큰스님이 안타까웠지만 스승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어서 마음대로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데 입을 다물었다. 고려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어찌될지 모르는 일, 어쩌면 대궐에서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임금이 부를 때는 큰 벼슬을 주려는 게지. 큰스님 모시고 자기도 대궐에 살지도 모른다는 기쁨에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일현은 아침 일찍 떠나야 하는 몸이라 일어나려고 하였다.

  내일 일찍 가야 하므로 주막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일어났다. 수인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 돌아오는 길에 며칠 묵어갈 것이니 걱정 말고 밤이 깊었는데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인은 하룻밤 쉬어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쉬어갈 수 없는 길을 구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제 걱정은 마세요. 인력거를 부르면 됩니다. 한양에서 돌아오실 때 꼭 묵어 가셔야 합니다.”

  간절한 부탁으로 일현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주막에 돌아와 눈을 감았다. 금방 잠들지 않는 것은 수인이가 눈에 밟혀서다.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나섰다. 병사가 서두르는 바람에 말을 달렸다. 병사의 귓전에 왕건의 말이 들린다. 쉬지 말고 다녀 오너라던 말, 말 꽁지가 일자로 달린다. 한양으로 향한 걸음이 빨랐기 때문이다. 곳곳이 물웅덩이가 패여 있어 몇 번씩 말과 함께 꼬꾸라질 뻔하였다. 얼마를 달렸는지 한양이 가까운 경기도 외각에 다다랐다. 아무리 달린다 해도 밤중이 넘어 대궐에 도착할 것 같아 주막을 찾아 쉬기로 달려온 길이 멀기도 하였다. 한양 땅이라는데 두 사람은 감회가 새롭다.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다.

  신라시대 서라벌 왕궁이 눈에 선하다. 한양의 왕궁도 그러 하겠지. 피로한 몸을 뉘었다. 고려왕은 얼마나 변했을까. 왕을 따라 나라를 세웠던 장수들이 부지기수로 많을 터인데 일현을 기억하여 부른 것은 무슨 연후란 말인가.

  아버지 최치원은 중국에서 배워온 학문을 신라 만대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순간에 억울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팔도를 유람 하였다. 이미 기울어진 신라왕실의 골품제를 타파하기위해 시무십여조를 왕에게 제수 하였지만 골품제의 권력은 넘지 못했다. 나는 왕을 만나면 무엇을 제수 할 것인가. 그 일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라벌 왕궁을 향해 애태웠던 아버지의 충심을 생각하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문살사이로 새벽이 환희 밝았다. 옆에 자고 있는 행자의 잠꼬대가 우습다. 뒤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힘을 주었던 행자의 악바리가 생각나서다. 잠꼬대를 하는 행자 다리를 툭 밀었다. 절밥을 먹은 몸이라 잠결은 빨랐다. 그냥 몸을 일으켰다. 눈을 부비며 정신을 차렸다.

  아이구 팔이야, 죽을힘으로 큰스님 허리를 잡았더니, 스님은 허리 안 아프십니까?

  팔이 떨어진다면서 어깨를 두 둘 인다.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한양 거리를 달린다. 북적이는 거리를 달리는 행자가 눈이 분주 하다. 한양의 거리는 서라벌 거리와 달랐다. 사람들 걸음과 품위가 달랐다. 높은 성이 보였다. 검은 지붕이 성 넘어 모여 있었다.

  눈이 둥그레 살펴보는 행자는 “큰스님 고맙습니다. 저를 데려와 주셔서” 일현의 허리를 조이며 하는 말이다. 스님을 모시다보니 나라님이 사시는 대궐도 볼 수 있다며 이랬다, 저랬다 호들갑이다. 높이 쌓아올린 담장 밑에서 말을 멈추었다. 인솔 하고 온 자가 큰소리로 말한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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