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우현은 사건이 일어난 빌라의 사람들을 찾아가 알리바이를 조사할 계획을 가지고 빌라에 와있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리며 빌라의 전체적인 구조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위에서 바라본다면 ‘ㅜ’모양의 건물이다. 밑으로 삐져나온 ‘ㅣ’ 모양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맨 밑 부분엔 빌라의 출입문이 존재하고 각 층으로 향하는 계단들이 위로 쭉 늘어져있으며 각 층마다 창문이 하나씩 달려있다. 그 이외의 부분인 ‘ㅡ’ 모양에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각 층의 A, B, C호가 존재하며 건물 외벽에 하나씩 창문이 달려있다. 건물의 뒤편에는 일종의 뒷마당 같은 곳이 존재하는데 그곳엔 빌라의 주인과 4층의 꽃 집 주인인 이윤군이 같이 키우는 식물들이 풀밭을 형성하고 있다.
머릿속에 그려본 건물의 구조를 저장해두고 우현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어디부터 들를지 생각하다가 맨 오른쪽으로 가 20C호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초인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두드려 안에 있는 사람을 불러냈다. ‘초인종을 눌렀을 때 나오는 소리는 보통 가볍고 밝은 톤인데 지금부터 자신이 할 일은 그렇게 가볍고 밝은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오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낳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아는지 우현이 이런 방식으로 불러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늦게, 혹은 천천히 문을 열어줬다.
위와 같은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우현이 잠자코 기다리고 있자, 이윽고 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한 사람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20C호에 살고 있는 지희영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고 눈동자만 굴려 우현을 위아래로 훑은 뒤에 입을 열어 질문했다. 질문함과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고 그와 함께 어깨를 조금 넘기는 머리칼이 한 차례 흔들렸다.
“누구…… 세요?”
“형사인 김우현이라고 합니다.”
우현이 자기소개를 하자 그제야 희영은 아아, 라고 이해했다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사람은 자신의 옆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은 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현은 수첩과 펜을 빠르게 꺼내들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최소한의 관심이 있다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건 매우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밤 23시 정도부터 오늘 아침 7시 정도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물론 희영이 그녀의 집에 쭉 있었다는 사실을 우현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범인이거나 범인과 관련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형사라고 밝힌 자신의 앞에서 거짓말을 할 확률이 높다, 이런 가설에 입각해 질문을 했건만 우현에게 돌아온 대답은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었다.
“집에 있었는데요.”
약간의 허탈함을 느꼈지만 힘을 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 네. 그럼 혹시 그 시간대에 무슨 소리는 못 들으셨나요?”
“소리요? 글쎄요. 제가 헤드셋을 낀 상태로 있어서 그런 건 잘…….”
“헤드셋을 끼고 뭘 하셨나요?”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냐는 뜻을 담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희영은 마지 못해 대답했다.
“게임을 좀 했는데요.”
그 대답을 듣고 우현은 현재 자신의 심정과는 다른 미소를 지어보였다. 수첩을 주머니에 넣으며 희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몸을 돌려 다른 집으로 가기 위해 걸어 나가는데 뒤에서 희영이 조금 큰 소리로 우현을 향해 외쳤다.
“게임을 다른 사람들이랑 디스코드를 이용해서 같이 했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저는 범인이 아니에요!”
우현은 뒤를 돌아 이번엔 아까와 달리 자신의 심정을 담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녀에게서 임현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면 둘이 어울려 함께 수사하는 모습이 불현 듯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우현은 옆집으로 향했다.
우현은 20B호의 문을 두드렸다. 학생 둘이 같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서류에서 확인했던 사실을 다시 되새기면서 조금 기다리자 문이 활짝 열렸다. 방금 전에 들렸던 20C호의 집주인과는 사뭇 다르다, 라고 우현은 생각했다.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 아닌 문을 두드릴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이 조심스럽고 늦게 문을 열어준다는 자신의 생각에 해당하지 않는 소수의 케이스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어준 이를 바라봤다.
“누구세요?”
문 앞에 서있는 것은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현이 찾는 이도 아니었고 서류에 있던 얼굴도 아니었다.
“혹시 성함이 서이호, 맞나요?”
그가 이 집에 살고 있는 일원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최대한 수상한 인상을 줄이기 위해 우현은 일부러 이렇게 질문했고 당연히 그의 앞에 있는 남자는 부정을 해왔다.
“아닙니다.”
“네? 그럼 누구신지…….”
얼빠진 소리를 일부러 만들어 흘리는 우현에게 남자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대답했다.
“당신이 찾는 서이호라는 사람의 후배인데요, 선배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네……. 그러셨군요.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혹시 집 안에 서이호라는 분이 있으신가요?”
이호의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살짝 옆으로 비켰다. 그러자 집 안에 앉아있는 여섯 명의 사람이 우현의 눈에 들어왔다. 둥근 테이블 위에 어떠한 종이들을 흩날려둔 채 세 명은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고 두 명은 악기를 만지고 있었다. 아무도 들고 있지 않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컵의 주인은 이 문을 열어준 주인공의 것이겠지? 그럼 여섯 명이나 있었다는 건가? 이런 의문들을 가지고 우현은 종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악보였다. 아아, 그런가, 하며 우현이 혼자 이해를 하고 있자니 그의 발목에서 털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려 바라보자 고양이 몇 마리가 우현을 올려다보며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상체를 숙여 쓰다듬으려 했지만 곧바로 충동을 억누르고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우현은 말을 꺼냈다.
“……뭔가 많군요. 죄송합니다, 서이호라는 분이랑 이지민이라는 분이 있으시죠?”
그러자 올라오는 두 개의 손.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요. 20A호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질문입니다.”
손을 올린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남은 네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뉴스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가 보도되었다지만 그것은 대략적인 정보였고 그렇기에 이호와 지민을 제외한 남은 이들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라던가 그런 것을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고 우현은 생각했다.
이호와 지민은 문을 열어준 자신들의 후배와 선수 교체를 하는 것처럼 하이파이브를 하며 문 앞으로 갔다. 그런 그들을 한 차례 돌아보며 우현은 말했다.
“여기선 좀 그러니 밖으로 잠깐만…… 문 밖이어도 됩니다.”
둘은 서로를 한 번 마주보더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동시에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그들 나름대로의 대화법인가? 갑작스럽게 떠오른 질문을 머리 한 구석에 욱여넣고 우현은 문을 닫았다. 그리곤 수첩을 꺼낸 뒤, 둘에게 동시에 아까 희영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제 밤 23시부터 오늘 아침 7시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셨나요?”
우현의 질문에 이호가 먼저 대답했다.
“집에서 지민이랑 함께 있었습니다.”
그 대답이 맞는가에 대한 의미를 담아 우현이 지민에게 눈짓을 했더니 그녀는 왜 이리 당연한 걸 질문하는 건가, 하는 의미를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 고개를 끄덕인 뒤 우현은 연이어 질문했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 시간대에 있었나요?”
“예전엔 저 중에 한 명과 더해서 세 명이 같이 살았지만 지금은 둘이서만 살아서요. 다른 사람은 그 시간대에 없었습니다.”
그런가,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싶은 것을 꾹 참은 뒤, 우현은 둘에게 공적인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시간대에 이상한 소리 같은 건 못 들었나요?”
그의 질문에 둘은 아까처럼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뒤이어 이번엔 지민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 땐 노래를 듣고 있었거든요.”
“노래만으로 다른 어떤 것도 안 들리나요?”
“크게 틀기도 했고 악기도 조금 쳤었습니다. 어느 정도 방음 장치를 해두기도 했었으니까 괜찮겠거니 싶었거든요.”
“방음 장치요?”
“네, 돈 좀 들여서 작은 방에 설치했어요.”
그렇다면 그들은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고, 그들이 내는 소리를 다른 누군가가 들을 수도 없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만약 그 방음이 되어있는 방에서 살해 행각이 벌어졌다면? 우현은 이 가설을 당장 검증해보기로 했다.
“방음이 되어있는 방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이면 보통은 보여주기 마련이건만, 이 두 남녀는 보통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우현은 생각했다. 이호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고 지민은 찌푸린 표정으로 스스로의 모든 감정을 설명했다. 그들의 우현을 향한 비언어적 표현을 언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우리는 보여주고 싶지 않고, 보여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호가 입을 열었다.
“형사님, 저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만,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뒤이어 지민도 가세했다.
“저희가 누군가를 죽였는지 아닌지 내기라도 하실래요?”
이 둘을 번갈아 본 우현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임현도 그렇고 희영도 그렇고 이 둘도 그렇고……. 이 빌라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예전보다 카리스마가 떨어진 것일까? 형사의 부탁이나 요구, 의심을 정면에서 반박하다니. 이런 생각과 동시에 우현은 아쉽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알리바이 조사라는 명목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다면 훨씬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흘러나온 웃음을 입가에 유지하며 우현은 둘에게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이 왜 범인이 아닌지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그러자 지민이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저희에겐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우현은 생각했다. 어제 들은 피해자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 속에 이 둘이 끼어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이호의 보충 설명.
“만약 저희 집에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 사체를 어떻게 20A호의 안까지 옮기죠?”
그 즉시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순식간에 우현을 덮쳤다.
그렇다. 임현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헤치기만 했기에 중요시하지 않았지만 만약 임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면 어떻게 20A호에 들어왔으며 어떻게 나갔는지가 설명이 되어야 한다. 설령 범인이 외부에서 피해자를 죽이고 사체를 옮긴 것이라고 가정해도 옮겨올 적에 생길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지만 피해 현장 근처엔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조심스레 옮긴다고 해도 많은 양의 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된 몸뚱이다. 범인에게 업혔던 끌려왔던 피가 떨어져야 당연하건만 피를 닦은 흔적도, 피가 떨어진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범인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즉, 이 둘이 지적한 포인트는 이 사건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장 먼저 파헤쳐야 할 포인트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 임현과 의논해보자고 생각하며 수첩에 빠르게 이호와 지민이 말한 것을 적은 뒤 덮었다. 둘에게 짧은 감사를 표한 우현은 20B호에서 등을 돌리고 3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