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김우현은 자신의 집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화이트보드 위에 여러 가지 사진들을 덕지덕지 붙여놓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진 않을까 의심될 정도로 한동안 많이 쓰지 않은 자신의 녹슨 두뇌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사진들에 찍혀있는 것들은 오늘 일어난 살인사건과 관계를 50% 이상 두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다. 좀 더 정확히는 사건이 일어난 빌라 2층에서 4층까지의 거주자들.
우현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있는 이번 사건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짚었다.
5층짜리 빌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피해자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찍힌 23시 30분 이후부터 1층의 고등학생이 등교하는 모습이 찍힌 오전 7시까지 1층과 5층에 설치된 cctv에 찍힌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2층부터 4층까지 살고 있는 사람 중에 개인, 혹은 집단이 범인이 된다.
오늘만 해도 대략 열 번은 반복했던 정리를 마친 뒤,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둔 종이 다발을 들어 하나씩 빼가면서 내용들을 확인했다. 상세한 부검 결론이 나기 전에 우현 스스로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들을 빼곡하게 적어둔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보며 천천히 무감정하게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사망 장소는 피해자의 자택이다. 흉부 부분에 하나가 아닌 자상들이 있는 것 같았으며 적으면 하나, 많으면 최대치의 자상들 전부가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흉기는 피해자의 동거인의 가방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에 묻어있는 다량의 혈흔은 피해자의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 신고자이자 첫 발견자이며 피해자의 동거인인 이임현이 범인인 것이 확실해 보였으나 그를 직접 데리고 나가 살피고 대화를 해본 결과, 그는 범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정확히는 아직 범인으로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2층에서 4층까지의 8개의 가정 중 범인이 존재한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 게 조금 더 효율적일 것이다…….”
종이들을 내려놓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라는 기계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보고 있는 맥주라는 이름의 기름을 한 모금 마셨다. 사건 발생 첫날이라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이 정도로 윤곽을 잡은 건 꽤나 큰 수확이라 생각하며 조금 안도하고 있는 도중에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을 알리는 진동이 허벅지를 흔들었다. 핸드폰을 꺼내 모니터를 확인해보니 상대는 우현 본인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인 자신의 후임 형사였다.
“여보세요?”
“접니다.”
“그래, 너다.”
우현의 시답잖은 말장난에 반응하지 않고 후배 형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부탁하신 정보들을 알아왔습니다. 지금 당장 들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우선 이임현과 면식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그에 관한 정보들을 물었습니다.”
“찾아냈다고? 그럴 정도로 주위 사람과 친분이 없어?”
“네. 현재 재학 중인 J대학교에는 친분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고 고등학교에서도 1학년 이후로는 인간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동창들을 찾아봤습니다만 하나 같이 평범한 친구로 인식하고 있더군요. 초등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창들 전부가?”
“적어도 그와 같은 반에서 있었던 사람들 중 그가 기억난다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어요. 그 후 가족들을 찾아갔습니다만, 가족들도 하나 같이 그저 평범한 아이로 인식하고 있었죠.”
“도를 넘은 평범함이라는 소리인가…….”
“그런 거겠죠. 아무튼 하나 확실한 건 그의 인간관계에선 크게 건질 게 없다는 겁니다.”
거기까지 듣고 하나의 의문이 든 우현은 자신의 후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는 어떻게 알고 지낸 거지?”
“예, 그것도 알아봤죠. 피해자는 이임현과 중학교 동창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중학교 3학년이고요. 이에 관해서도 그들의 동창들에게 물어봤더니 좀 신기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신기한 이야기?”
“피해자가 거의 일방적으로 이임현을 쫓아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피해자의 주위 인물들을 찾아 알리바이를 묻고 도로의 cctv와 차량들의 블랙박스를 확인해본 결과, 피해자의 주변인 중 범인은 없습니다.”
이건 또 새로운 정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우현은 손을 움직여 방금 알아낸 사실들을 재빠르게 메모하면서 자신의 후임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어, 후배.”
“시키셨으니 했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또 여태까지처럼 누군가를 조수처럼 쓰실 생각인가요?”
“맞아. 그리고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데 그러는 편이 사건이 해결될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해.”
우현의 대답에 대해 후배는 작은 한숨을 수화기에 불어 전달시켰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후배에게 우현은 말했다.
“그렇게까지 한숨 안 쉬어도 돼. 여태까지 그래왔다는 건 자네도 알잖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의 다른 사람들이 눈을 감아주니 괜찮다고는 해도 그것에 대한 페널티가 승진 제한이라니요.”
“난 결혼 안 할 거라 괜찮아.”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건 아시잖습니까!”
그렇다. 우현은 서의 다른 사람들에게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민간인에게 흘려 수사를 돕게 했다는 사실을 들킨 전적이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이 결국 우현의 선택을 받은 민간인의 활약으로 해결되었고 언론에 노출되지는 않았기에 그 당시에는 그의 동료들이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후에 지속적으로 민간인에게 정보를 흘려 사건을 해결하려 했고 결국엔 다시 동료들에게 들켜버렸다. 그에 관해 우현이 속한 관할 경찰서의 사람들은 그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것이 방금 전에 후배의 입에서 흘러나온 승진 제한이었다. 승진 제한과 민간인 접촉 금지라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우현은 결국 승진 제한을 택한 것이다.
“후배. 아니, 하주영. 경찰의 의무는 승진이 아니야. 범인을 잡는 거지. 그걸 위해서라면 승진 정도는 버릴 수 있어.”
“…….”
한동안의 침묵을 핸드폰 사이에 두고 둘은 겉으로 보이는 평화의 시간을 가졌다. 실제로 그들의 마음속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주영은 우현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틀림이 없음엔 분명하나, 그것을 왜 하필 선배가 짊어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이것이 선배 스스로가 선택한 길임을 알기에 깊게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 일종의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우현은 주영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후배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전부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형사라는 직업을 목표로 잡기 전에도 텔레비전을 보며 ‘어째서 사람들에게 사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려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우현이었고, 왜 알려주지 않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에도 ‘소수의 사람에겐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그였다. 심지어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나쁘지도 않았고 오히려 좋게 나왔으니 그만둘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걱정해주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우현 자신만의 스타일인 것이다.
주영은 한순간에 확 차오른 감정을 애써 어느 정도 정리한 뒤에 다시 원래의 차분한 목소리로 우현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선배님을 뭐라고 저장했는지 아세요?”
“유능한 선배님?”
“현실적이지 못 한 선배님입니다.”
그 대답을 듣고 우현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주영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고 표정도 짓지 않았다. 자신의 말에 섞여있는 의미를 모르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주영이 하고 있자니 우현이 아까 전에 터진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시간이 흐르면 해가 뜨지.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면 해가 지고 달이 떠. 그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진리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해와 달은 공존할 수 없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해가 있어야 달이 있고 달이 있어야 해가 있다는 소리야. 그리고 해는 아침과 낮을, 달은 저녁과 밤을 담당해. 모든 게 다 그런 거야. 늘 모두가 해를 담당할 수도, 아침과 낮에 활동할 수도 없어. 누군가는 달과 저녁, 밤을 맡아야 하는 거야. 이것 또한 영원히 반복되는 진리지.”
“그게 선배여야만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없긴 왜 없어? 이유야 있지.”
“예?”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잖아.”
주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우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반박할 말은 그녀의 머릿속에 잔뜩 떠오른 상태였다. 해와 달이 공존할 수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전혀 공존할 수 없어 보이지만, 유이(有二)하게 공존하는 때가 있다. 그 시간대는 바로 초저녁과 새벽인데 이것에 대해 말해볼까 하는 고민에 의해 그녀는 침묵을 지키게 된 것이다. 결론은 얼마 가지 않아 말하지 말자는 방향으로 나왔다. 이런 간단한 모순이랄까, 반박이 가능한 소재를 자신의 선배가 눈치를 못 챌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진리가 아닌 진리를 들이밀 정도로 자신의 상사가 지키려고 하는 그의 무언가를 건드리지 않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영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우현은 태연한 목소리로 자신의 후임에게 말했다.
“아무튼 괜찮아. 알겠지?”
“……네.”
“그래. 밤이 깊다, 조심히 들어가. 다음에 연락할게.”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그 즉시 우현은 자신의 후배를 통해 새롭게 알아낸 사실들을 원래 깔려있는 사실들 위에 덮기 시작했다. 아무리 늦어도 내일 저녁이면 수사본부가 세워질 것이고 모든 것의 시작은 그 때부터라고 다짐하며 우현은 남아있는 맥주를 목으로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