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뭐야 뱀인가?
당황하지 말자. 그냥 물뱀 같은데……
내가 이 시간에 씻는 게 잘못이지.
얘네들이 무슨 잘못이야……."
귀남은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아 이거 물컹하네. 진짜 뱀이네.
저. 뱀아…
내가 아까 산에서 니 친구 살모사도 살려줬거든.
그러니까. 내려가…… "
귀남은 개울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뱀이 내려 올 수 있도록 했다.
" 자. 그래……. 내려가라……. 아오."
시간이 지나자 등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 아씨 뭐야! 놀래라!"
그것은 뱀이 아니었다.
산에서 떠밀려 내려온 나뭇가지였다.
" 십년감수했네.
분명 뭔가 물컹했는데
내가 뭐에 홀렸나?"
귀남은 대충 씻고 물 밖으로 나갔다.
"뭔가 이상해. 빨리 나가자……."
허겁지겁 몸을 닦고 옷을 입고 집으로 올라갔다.
" 물 차갑지 않던?"
" 네. 뭐 괜찮았어요.
주무세요."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리를 탈탈 털며 방으로 향했다.
" 근데 귀남아 목욕하는데 뭐 본거 없니?"
" 네? 본거요? 뭐…… 없어요."
"그래? 얼른자."
" 저 혹시…….
제 몸에 뭐가 보이세요?"
" 아니. 얼른 자렴."
정옥은 왜인지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귀남은 방으로 들어와 따뜻한 이불 밑으로 들어갔다.
" 아이고 춥다."
벌러덩 누워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 하루가 길다 진짜…….
늦었으니 내일 연락해도 되겠지?
어차피 지금 정신없이 바빠서 내려오지도 못 할 것 같은데
뭐 꼭 동일이가 내려올 필요가 있나
형도 여기에 살고 삼촌들도 있는데…….
아. 방 따뜻하다…….
불 꺼야 하는데……. "
귀남은 내려오는 눈꺼풀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서방님……
서방님……
일어나 보셔요……."
귀남은 눈을 뜨지 않았다.
"서방님……. 저랑 놀아요.
얼른 일어나셔요."
귀남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고
머리가 쭈뼛거렸다.
" 아. 좀 자려고 하면 이러네.
그냥 무시하자."
귀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서방님. 이러실 거예요?
저를 좀 보세요…….
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답니다."
" 저……. 죄송한데 독신주의자에요.
여자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아니 뭐 그렇다고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귀남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불안에 누군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차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러시지 마세요."
" 서방님. 가만히 계셔요.
하룻밤만 자고 갈게요."
" 아니 그래도 이건…… 아으……."
귀남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온 몸이 통나무처럼
단단해졌다.
귀남은 정신을 차렸다.
" 그래도 귀신이랑 이건 아니지."
귀남은 있는 힘을 다해서
몸을 움직였다.
이불을 걷어차고 그 안에 있던 처녀 귀신의
어께를 들어 올렸다.
" 야. 이거 너무 예쁘신데?
그래도 이러지 마세요."
처녀 귀신은 귀남의 양쪽 뺨을 후려갈기더니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제야 귀남은 잠에서 깨어났다.
" 아……. 이거 이러다 죽겠다.
낮이건 밤이건 귀신들 때문에……."
날이 밝았다.
귀남은 일어나자마자 동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동일아. 나야."
" 어."
" 어디니?"
" 나 출근 중이지. 운전 중."
" 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말고
확실한 건 아니니까 너희 형이랑 삼촌이랑
상의해서 알려줘."
" 알겠어. 무슨 일인데?"
" 어제 너희 어머니 산소에 갔다 왔거든. "
" 어. 산소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 뭐 그냥 가장자리에 멧돼지들이
몸 비빈 것 같아. 흙이 좀 떨어져 나갔더라고.
그래서 내가 다른데서 흙 파서 다 덮어 놨어."
" 아 그래. 고맙다.
거기 막걸리 뿌리면 안 된다고 해도 꼭 뿌려서는…….
그럼 뭐 별거 없네?"
" 어. 그런데 어제 우리 어머니랑 같이 올라갔거든.
근데……. 문제가 좀 있데……."
" 무. 무슨 문제?"
" 확실하진 않은데 어머니 말로는…….
너희 어머니 지금 물속에 있는 것 같데."
" 물속?!"
" 어. 관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
" 그걸 밖에서 어떻게 알아?"
" 그러니까…….
어머니가 확인을 한번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 어. 그래. 형이랑 상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 그래. 근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서둘러야 한데.
빨리 상의 하고 알려줘.
아니면 너희 형 우리 집으로 와서
어머니랑 상의 해보라고 전해 줘."
" 아 그래야겠다.
근데 우리 형 그런 거 좀 싫어하잖아."
" 어?"
" 우리 형이 공무원 아니냐.
공부만 해서……
고지식해서 그런 거 잘 안 믿잖냐."
" 그래. 그럼 알아서 해. "
" 너 기분 나쁘지?"
" 당연히 기분 나쁘지!
우리 어머니가 뭐 굿을 하라고 했냐?
이장을 하라고 했냐!
어제 인마 내가 너희 어머니 산소 올라간다고
살모사한테 물릴 뻔 했던 것도 모르면서!!!"
" 살모사?"
" 됐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나랑 무슨 상관있냐?
하긴 꿈이 뭐 대수냐.
내가 현실적이지 못했다. "
" 화 풀어라.
상의하고 전화 바로 할께."
귀남은 전화를 끊고 화가 났다.
" 그래. 알아서 해라."
하긴, 무덤 근처만 보고 그 안에
물이 가득하다는 걸 어떻게 알아."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셨다.
" 어머니 동일이 통화했는데
이장하는 건 안 될 것 같다고 하네요.
꿈에도 더는 안 나오신데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 그…… 그래?
이게 시간이 지나면 더 힘들어 지는데……."
" 무슨 소리에요?"
" 시신이 더 훼손되면 옮길 때 아무래도……
포크레인으로 무덤을 파낸다고 해도
결국 관을 분리하고 시신을 꺼내는 일은
사람들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부정이 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관으로 옮긴다고 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 일단 형이랑 삼촌들이랑 상의해 본데요.
이 근처에 계시니까 아마 와 보시지 않을까요?"
" 그래. 기다려 보자."
귀남과 정옥은 밥도 먹지 못하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동일에게서 연락이 왔다.
" 야.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해.
밥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는데."
" 미안하다. 근데……
그거 안 되겠다.
다들 무슨 무덤에 물이 차냐고…… "
" 알겠다. 일해라."
" 왜냐고 안 물어봐?"
" 친 아들들이 싫다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말리겠냐?
그래 맞아. 다 미신이야.
우리 어머니가 틀리신 걸 거야.
사실 돌아가셔서 이미 땅에 묻히셨는데
돌아가신 분이 뭘 느낄 수 있겠냐?
비가 많이 오면 무덤 속에 물이 좀 들어갈 수 있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마를 테고……
다음 달이면 12월인데 그 물이 얼어서
추우시겠지. 하지만 다 헛소리야.
어차피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까!!! "
"……."
" 너 기억 안나겠지?
겨울에 내가 너희 집 놀러 가면 어머니 맨날
아궁이에 앞에 앉아 있으셨어.
어떻게든 자식들 안 춥게 하려고!!
돌아가시면 끝이라고?
웃기지마!
다 지켜보고 계신다!"
끊는다……."
귀남은 화가 치밀었다.
정옥은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자식 놈들이 확인이라도 해보자는 말이 나와야 정상이지.
자식새끼 키워 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
귀남은 화를 억 누르지 못하고
씩씩 거리며 마루에 앉았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왔다.
" 귀남아. "
동석이었다.
동네에 살고 있는 동일의 형이었다.
" 어머니 계시냐?"
" ……."
귀남은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다.
" 얘기 들었다. 어머니랑 상의하러 왔어."
" 올라가세요. 어머니 안에 계세요."
" 어 동석이 왔냐? 들어와라."
" 네. 아주머니."
정옥의 신당으로 동석이 들어갔다.
귀남은 마루에 앉아 듣고 있었다.
" 저 아주머니…….
이장을 해야 하는 문제인가요?"
" 정확한 건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한번
꺼내서 새 옷으로 입혀서 새 관에
넣어야 할 것 같다."
" 확신하세요?"
"……."
" 저 그게……
뭐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떨지 모르지만
이게 무덤에 물이 있다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고요.
사실 땅속에 물이 좀 차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 마를 것 같기도 하구요."
" 동석아……
네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이게 동일이 꿈에도 나오고
나도 어제 올라가 보니 느낌이 좋지 않더라."
" 사실 그게 현실적이지도 않고……
제가 공무원이다 보니 이런 걸 믿고
이장을 하려는 게 마을에 소문이 날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사실 그 터가 선대 어르신부터
다 모시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인데
설마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 ……."
듣고 있던 귀남이 신당 문을 열었다.
" 알겠어요. 형님.
그렇게 하세요."
" 미안하다."
" 아니 대체 저희한테 미안할 것이 뭐가 있어요?
동일이도 형님도 저희한테 미안해하지 마세요. "
동석은 정옥에게 인사를 하고 신발을 신었다.
" 형님 그런데요.
제가 불효자라 드릴 말씀은 아닌데요.
정말 이러시는 거 아닙니다."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에 물이 차서
떨고 있으니 꺼내라니……
이걸 믿으라는 거냐?!"
귀남이 갑자기 몸을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것 같았다.
" 형님!!!
제가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
" 귀남아!! 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