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병장이 계속 혼자 가다가
내가 대답을 안 하니까 돌아본 거야."
"넌 뭐하고 있었는데?"
"폐가 쳐다보고 있었지."
"홍 병장 엄청 쫄았을 것 같은데?"
" 내가 눈 다 풀려서 폐가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홍 병장이 너 뭐하냐고 빨리 오라고 하는 거야."
" 그래서?"
" 그땐 그 폐가가 너무 기운이 세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치우고
겨우 소리를 냈어.
움직일 수가 없어요.......
이랬더니 홍 병장 바짝 쫄아 가지고
소리를 엄청 지르는 거야.
빨리 와! 빨리 오라고!
얼굴 시뻘게져 가지고."
귀남은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웃음이 터졌다.
" 화 많이 났겠는데?"
"그렇지. 전입 온지 하루밖에 안된 놈이
선임 놀리는 줄 알고 뚜껑 열렸겠지.
근데 난 몸이 안 움직이는데 어떻게 해."
"그래서? 계속 그렇게 서 있었어?"
"어 근데 이 새끼가 가까이 와서
내 몸을 풀어 줘야 되는데
오지도 않고 돌멩이를 던지는 거야."
"돌멩이?"
" 야 여기 봐.
이거 그때 홍 병장이 돌 던져서
이마 찢어 진 거잖아.
흉터 보이지?
나 참 어이가 없어 가지고."
귀남은 머리를 넘겨 이마를 보여줬다.
시간이 지났지만 확실히 흉터가 있었다.
" 야 피 많이 났겠는데?"
"진짜 아팠어.
나도 던지려고 하다가 간신히 참았다."
" 아니 미친놈이 돌멩이를 던져?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 이마에 돌 맞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그런데 갑자기 짜증이 확 나는 거야.
아니 처음 온 후임한테 돌을 던지는 선임이 어디 있어?
그래서 내가 본때를 보여줬지. "
" 본때? 설마 때렸어?"
" 아니."
" 너도 돌멩이 던 진거 아냐?"
" 미쳤냐? 안 던졌다니까.
전입 온지 하루 만에 어떻게 선임을 때릴 수 있겠어?"
" 어떻게 했는데?"
" 폐가로 안으로 들어갔어. "
" 뭐! 그 폐가 안으로?
완전 미친놈이라 생각했겠는데?
홍 병장 무서워 벌벌 떨고 난리 났을 것 같은데?"
" 사실은 그때 나도 빡쳐서 객기 부린 것도 있긴 한데
거기 기운이 장난 아니었다고."
" 그러면 그 기가 너를 끌어 들였던 거야?"
"반반이야.
그 기운이 나를 끌어들인 것도 있고
홍 병장 엿 먹이려고 한 것도 있고.
내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들어가는데
홍 병장 이 새끼 쫄아 가지고 뒤통수에 대고 욕을 엄청 하는 거야.
너 이 개새끼 거기 들어가면 너 죽는다. 근무 이탈이다.
탈영이야 이 새끼야.
총 쏴 버린다! 셋 셀 때 까지 튀어 와라. 하나! 둘!"
" 참나 겁도 많아요.
그냥 뒤통수 후려갈기고
끌고 오면 될 것을"
" 그러니까.
쫄아서는 한참 떨어 진데서 오지도 못하고
소리만 겁나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발 동동 구르면서."
" 그래서 들어갔어?"
" 어."
" 그때 뭐가 있었어?"
" 뭐 그냥 사람들이지."
" 우리 같은 사람들?"
" 뭐 그렇지. 거기 살았던 사람들.
사실 오랫동안 버려진 집에 가면
온갖 귀신들이 들어와 사는데
거긴 좀 특이했어.
희한하게 가족들만 살고 있는 거야."
" 가족들?"
" 어 그냥 평범한 가족들.
입구에 딱 들어서는데
먼저 보였던 게 아이들."
" 아이들?"
" 어. 그냥 보통의 아이들.
그런데 애들 얼굴이 좀 이상했어."
"얼굴? 어땠는데?"
" 일그러져 있었어. "
"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또?"
" 부모들."
" 그 아이들 부모들인가?"
" 아마도."
" 어떤 모습이었는데?"
"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혓바닥이 턱 끝까지 내려와 있었어."
" 야 어째 서늘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근데 홍 병장은 어떻게 된 거야?"
" 내가 얼마 동안 폐가에 앉아 있다가
괜찮아져서 나갔는데 사라졌어."
" 사라졌다고?
" 어. 그 새끼 도망갔어."
" 너 놔두고?"
" 어."
" 어떻게 갓 들어온 이등병을 버릴 수 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 아니 뭐 난 이등병이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왔던 길 따라서 돌아갔지."
"혼자서?"
" 그렇지 홍 병장 도망갔다니까.
내가 뭘 아냐 이등병인데."
" 소초로 다시 돌아 간 거야?"
" 일단 돌아가야지.
뭐 민간인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잖아."
" 와 진짜 스케일이 다르다. 넌.
진짜 사고를 쳐도 보통 사고를 치는 게 아냐."
"내가 좀 남다르긴 하지.
왔던 길로 돌아가는데
그 폐가 나오기 전에 3초소 있잖아."
" 그래 3초소."
" 거기에 노크 했지."
'노크를 했다고?
거기 안에 사람들 엄청 놀랐겠는데?"
" 어 안에서 우당탕탕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그러더니 수화를 대는 거야.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이러면서. "
" 그래서 대답했어?"
" 아니."
" 왜?"
" 수화를 까먹었어."
" 미치겠다. 진짜.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가 있냐?"
" 그래서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초소 문이 배꼼 열리더라.
그때 염재철 상병이었는데 안에 있다가 나 보더니
뒤로 자빠졌잖아. 하하."
" 얼마나 놀랬겠냐?
이등병 혼자 덩그러니 서 있으니."
"그러니까.
재철 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너 이 개새끼 뭐하는 거야? 이러더라.
그래서 홍진호 병장님이 없어졌다고 했지."
" 골 때린다. 진짜.
이등병이 갑자기 노크해서
근무 같이 나온 선임이 사라졌다고 했으니."
"근데 더 골 때리는 게
재철이 이 새끼가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홍진호 병장님 장난치지 마십쇼.
다 보입니다. 하하.
이러고 있는 거야."
" 당연히 안 믿지. "
" 재철이가 계속 홍진호 숨어 있는 줄 알고 막 찾더니
근무 중에 뭐하십니까?
이거 큰일 납니다. 또 이러더라고."
" 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 그래서 내가 이마를 보여줬지."
" 피 철철 나는 이마?"
" 내가 후레쉬로 이마 비추면서 보여줬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갑자기
홍병장이랑 싸웠냐고 하더라."
"미치겠다.
둘이 치고 받은 줄 알았구나?"
" 그래서 내가 홍병장님이 돌멩이 던졌다니까
뭔 개소리를 하냐고 안 믿는 거야 또. "
그렇게 욕하고 화만 내고 있다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느낀 거지."
" 혹시나 홍병장 탈영했을까 봐?"
" 전역 열흘 남은 사람이 무슨 탈영을 하겠냐.
재철이는 내가 홍병장을 어떻게 한 줄 알았던 거야."
" 뭐 싸우다가 총이라도 쏜 줄 알았던 건가?"
"뭐 그랬겠지.
재철이가 손 부들부들 떨면서 상황실로 연락하더라.
그때 말 더듬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재철이 걔가 덩치만 크지 엄청 착했어."
"암튼 상황실에 연락했더니
거기 홍병장이 있었던 거야."
"설마 부대로 복귀한 거야?"
" 어. 알고 봤더니 홍병장이 소대장 부르러 갔던 거야.
이등병 자살하려고 폐가로 들어갔다고."
" 미쳤다. 진짜."
"그래서 염재철 상병이
귀남이 자기 초소에 있다고
상황실에 말한 거지."
"골 때리게 됐네.
부사수는 남의 초소에 있고
사수는 소초로 복귀했고.
사수가 병장이고 부사수는
전입 온지 하루 된 이등병이고"
" 소대장도 진짜 많이 놀랐겠다."
" 좀 있다가 소대장이랑 홍병장이 멀리서 엄청 뛰어 오더라.
그때 홍병장 얼굴 진짜 완전 사색 되서 송장 같았는데.
소대장이 일단 내 총 뺏고 내 탄이랑 수류탄 있는지부터 확인하더라.
그리곤 너 이 새끼 폐가엔 왜 들어갔어? 이러는 거야."
"귀신이 불렀다고 말했어?"
"미쳤냐?
그걸 누가 믿어 주겠냐?
그냥 오줌 싸러 들어 간 거라고 했지."
" 이마에 피난 건 못 본거야?"
“ 그게 숨길 수가 없는 게 피가 철철 나서
얼굴이 완전 피 범벅이었어
후레쉬로 내 얼굴 비추더라.
얼굴에 피범벅 되어 있으니까.
깜짝 놀라서 뒷걸음 쳤어.
너 이거 왜이래? 누가 이랬어? 하면서 화내더라."
"난리 났네. 그래서 홍병장이 돌멩이 던졌다고 했어?"
" 아니.
홍병장 벌벌 떨면서 있는데
어떻게 돌멩이 던졌다고 말하냐.
전역 열흘 남은 사람 영창 보낼 순 없잖아.
폐가에 오줌 누러 들어갔다가
벽에 부딪쳤다고 둘러댔지."
"하여간 거짓말이 입에 붙었어."
" 어떻게 해 그럼? 홍진호 병장 오줌 싸기 직전이었는데."
" 그래서 어떻게 됐었지?"
" 나 다음날 바로 이마 꿰매고 복귀해서
군장 메고 연병장 반나절 돌고
홍병장 말년에 군기 교육대 2박3일 갔다 오고 끝났어.
미안했지. 말년인데 군기 교육대 보내고."
" 야 진짜 대박이다.
너도 참 생각보다 사고를
많이 치는 스타일이야."
" 뭐 이렇게 생겨 먹은걸.
당사자인 나는 오죽 피곤하겠냐."
" 근데 그 폐가엔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내가 전역하고 거길 다시 가본 적 있거든."
" 거길 다시 갔다고?
대체 왜?"
" 아니 뭐 폐가 구경 간 건 아니고
우리 방송국 처음 들어와서
고생 많이 했잖아."
" 고생 진짜 많이 했지.
밤낮없이 일했지."
"그래서 더 힘들고 고생했던 곳으로 가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군 생활 했던 거길 간 거지.
폐가는 겸사겸사 들린 것이고 "
" 폐가 안으로 들어갔어?"
" 내가 기웃기웃 거리고 있으니까
지나가던 주민이 거기서 뭐하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예전에 여기 근처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한번 와 본 거라고 했지. "
"그랬더니?"
"뭐 웬만하면 여기 머물지 말라고 하지.
그래서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그 안에서 3남매가 버너로 라면 끊이다가
부탄가스 폭발해서 죽었데.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일이 벌어진 일이래."
" 불쌍하다.
그래서 얼굴에 화상을 입은 모습이 보였구나?
그러면 부모는?"
" 자식들이 다 죽었는데 살 수 있겠냐?
한동안 굶다가 농약 먹고 자살했데."
" 참. 비극이다.
한이 맺혀서 떠나지 못하고 계속 거기서 사나보다."
"뭐 보통 내 눈에 보이는
귀신들은 그런 사연들을 갖고 있지"
" 안 무서워 너?"
" 어차피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 아니냐."
" 나라면 기절초풍 했을 거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냥 뭐 막걸리 뿌려 주고 좋은데 가시라고 했지."
" 어째 으스스하다. 무섭다 진짜."
"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서운 거 모르냐?"
" 죽은 자 들이 떠나지도 못하고 얼마나 억울하면
이승에 남아 있을까.
어째 좀 슬프다."
" 야 피곤해 죽겠다.
지금 사고 쳐 갇혀 있는데
갑자기 뭔 군대 얘기를 하고 앉았냐. "
"요즘 진짜 피곤 하긴 해.
우리가 스물한 살 이등병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 나무 밑에서 푹 한번 자고 싶다."
귀남은 동일의 말에 웃어 보였다.
새삼 공유할 추억이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 그때로 돌아간다면?
진짜 안 돌아가고 싶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절대로
그 나무 아래에서 안 잘 꺼다."
" 왜?"
" 그 나무는 엄청난 비밀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