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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첫사랑
작가 : 예빈
작품등록일 : 2019.10.11

 
-4-
작성일 : 19-10-11 18:38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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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한없이 다정하고 멋진 사람, 이도영. 그날은 그런 그에 대해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늘 다정하고 친절한 그 사람의 우선순위에는 그는 없었다. 늘 자신보다 나를, 또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그의 습관 중 하나가 된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기 싫다는 것에서 나온 의무와도 같았다. 애정결핍, 그에게서 그것을 본 순간이었다.

 

 

 - 4 -

 

 

  그렇게 그와 헤어진 후, 나는 그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껏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친절과 다정이 어쩌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서 나온 습관과도 같다면, 나는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고민이 많아졌다. 아직은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싫어졌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를 대하기가 조금 어려워진 것이다. 아주 조금.

  그런 시간들을 보낸 지도 벌써 일주일, 그날은 유독 응급 환자가 많아서 핸드폰 볼 시간조차 없는 하루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몰려드는 환자에 나는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수술하고를 반복했다. 앉을 시간은 커녕 숨돌릴 틈조차 쉽게 얻지 못할 만큼 바빴다. 그러니 자연스레 내 핸드폰에는 받지 못한 연락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나의 이런 바쁜 하루는 퇴근시간에 임박해서야 끝이 났다. 그제서야 겨우 자리에 앉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대충 둘러보며 퇴근할 준비를 했다. 빨리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 눕고 싶단 생각밖에 없었다. 따뜻한 물에 몸이나 담글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퇴근 준비를 하는데, 핸드폰 문자메시지 중 가장 위에 위치한 것을 보게 되었다. 꽤나 많은 문자가 와있었는데, 그것의 발신자는 당연히 도영 씨였다.

 도영 씨

 [ 혜빈 씨, 뭐 해요? ]

 [ 혹시 퇴근했으면 잠시 볼 수 있을까요? ] p.m 8:21

 [ 혜빈 씨? ]

 [ 퇴근 아직 안 했어요? ] p.m 9:02

 [ 많이 바쁜 가보네요. 피곤하겠다. ]

 [ 답장 기다릴게요. ] p.m 9:48

  이런. 일주일 간 그는 정말 바빴다. 오죽하면 매일 오던 연락이 드문드문하게 올 정도였다. 그런 그가 드디어 시간이 나서 나에게 보자는 연락을 한 것인데 하필이면 타이밍이 맞질 않아 내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가 대해지기 어려우면서도 내심 다시 보길 바랐다. 어쩌겠는가. 애정결핍이든 뭐든 도영씨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대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재빠르게 답장을 하기 위해 자판을 눌렀다. 내 답장을 내내 기다릴 그를 생각하니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 미안해요, 도영 씨ㅠㅠ ]

 [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바빠서 이제야 봤네요..ㅠ ]

 [ 저 지금 퇴근하는데, 어디세요? ] p.m. 10:10

  10시가 넘어가니까 집에 있을 건 당연한데, 혹시라도 잠시 볼 수 있을까 봐 어디인지 물어봤다. 그가 집에 있다고 대답하면 그의 집 근처에서라도 얼굴은 한번 보고 가고 싶었다. 아무리 피곤하지만 내 답장을 기다렸을 그를 생각하니 그런 건 전혀 중요치 않게 되었다. 항상 그가 날 보러 왔으니 이젠 내가 그를 보러 가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답장을 기다린 지 1분, 나는 도영 씨에게서 답장을 받고 나서 바로 겉옷과 짐을 챙겨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어째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가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것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남자, 이렇게 무모했었냐고!

 도영 씨

 [ 병원 앞이에요. ] p.m 10:11

 

 

 ***

 

 

  병원 로비도 아니고 병원 앞이라고 했다. 그럼 병원 밖이라는 건데….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다. 그가 병원 밖에서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영하 10도를 웃돌았다. 그 말은, 이 날씨에 오랜 시간 동안 밖에서 서있으면 감기에 걸리는 건 당연한 것이란 소리다. 이 미련한 곰탱이 같으니라고, 만나면 잔소리를 퍼부어주겠어.

  괜히 급해져서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 시야에 한 사람이 걸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말 똑같은 모습을 한 도영씨였다. 검은색 정장에 구두까지 갖춰 입은, 정말로 정석적인 사람이었다. 그게 다른 때였으면 정말 프로페셔널하고 멋있었을 텐데 오늘만큼은 원리·원칙주의자인 답답한 —그렇지만 잘생긴— 사람을 보일 뿐이었다.

 “도영 씨!”

  내가 크게 부르자 늘 그랬듯 그가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니, 기다릴 거면 안에서 기다리지 왜 이 추운 겨울날에 밖에서 기다린단 말이야? 이 와중에 잘생겨선 말이야. 진짜 치사해. 뒤집어진 내 속도 모르고 해맑은 그의 모습에 잠시 기가 찼지만 그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혜빈 씨.”

  내가 가까이 가자 내 이름을 부르면서 또 웃는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야. 나는 나를 부르는 그에게 대답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그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미안해요, 잠시만 무례한 짓 좀 할게요. 내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란 듯 몸을 뒤로 뺐지만 그것에 놓아줄 내가 아니었다. 더욱 그에게로 다가가 얼굴에 손을 올려 몸의 온도를 체크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의 얼굴은 매우 차가웠다.

  마치 손이 얼 것 같은 온도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대체 얼마나 이 추운 곳에서 서있었던 거야. 미련하게 행동하는 그에게 당장이라고 잔소리 폭탄을 날리고 싶지만, 이제껏 밖에 있었던 사람을 계속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임시로 내 목도리를 둘러준 다음 그를 끌고 무작정 제일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내 잔소리는 그가 몸을 녹인 다음의 문제였다.

 “언제부터 기다렸어요?”

 “얼마 안 기다렸어요.”

 “거짓말할 생각 말아요.”

  카페에 앉아 그의 몸이 녹길 기다렸다가 내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나의 이런 냉정한 모습은 처음 보는지,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물어오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그의 티 나는 거짓말에 얼굴이 더 굳어졌다. 안 그래도 거짓말 못하는 성격이면서 지금 누굴 속이겠다고. 내가 더 화가 났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우물쭈물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뱉으며 사실을 말했다.

 “… 혜빈씨한테 문자 처음 했을 때부터?”

  처음 문자 했을 때부터라고? 그럼 8시 30분쯤부터 나를 기다렸단 소리잖아. 이 남자가 진짜! 거의 2시간 정도를 이 추운 겨울날 밖에서 서있었단 사실에 나는 결국 간신히 붙잡고 있던 끈을 놓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미련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까지 하면 내 입장에선 미안해서 어떻게 하란 거야? 내가 아무리 도영 씨를 좋아한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단숨에 앞에 있던 커피를 들이켰다.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고 뜨거운 건지, 차가운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 화를 삭여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왜 그랬어요! 아무런 답장이 없으면 그냥 집에 갔어야죠!“

 “그렇지만….”

 “왜 미련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추운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요!”

  겨우 나 하나 보겠다고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서있었던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나에게 호감이 있고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좋아하려면 최소한 자기 몸 정돈 챙겨야지. 몸이 건강해야 좋아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럴 필요까진 없는 거잖아.

  속으로 오만 생각을 다하는데 그는 여전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단단히 화가 났단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었다.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언제 보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었던 그니까. 이렇게 티가 나는 변화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이건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그는 한동안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나에게 화를 삭일 시간이 필요하단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 이건 현명한 선택이야. 내가 화가 난 상태에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거든. 그러고 나서 내가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았을 즘,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혜빈 씨 보고 싶어서요.”

 “…….”

 “이렇게 기다리면 혜빈 씨 볼 수 있을까 해서, 그래서 기다렸어요.”

  야, 이건 반칙이지. 나는 어쩐지 처연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결국 화를 풀 수밖에 없었다. 저 표정을 보고 어떻게 안 풀 수가 있겠는가. 세상천지의 누가 와도 이 표정에 전부 넘어갈 것이다. 그만큼 강력한 표정이었다. 단 한 번에 내 화를 풀어버릴 만큼.

  화를 푸는 대신 나는 한 가지 확신을 했다. 도영 씨는 확실하게 애정결핍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래서 더더욱 남을 먼저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야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테니까. 얼마 전에 윤수아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현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어른들조차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고. 그만큼 애정이 각박한 사회니까. 도영 씨도 마찬가지겠지. 자신에겐 더 엄격하면서도, 남에겐 관대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의 옷차림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다음부터 답장 없으면 그냥 가요. 추운데 밖에 오래 있으면 감기 걸려요.”

 “저 그렇게 감기 쉽게 안 걸려요.”

 “그래도요. 걱정되잖아요.”

  걱정된다는 내 말에 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다정한 사람이란 말을 들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이 반응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다정하단 말이나, 걱정된다는 말을 들으면 보통 좋아하지 않나? 특히 애정결핍이라면 더욱더 그럴 텐데 왜 그는 이런 반응일까.

 “제가 걱정돼요?”

  그는 정말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내가 아무리 모솔 인생을 길게 살았어도 이건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당연히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이건 최소한 썸이라고 정의 내려진 우리 관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마저도 새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에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애초에 모솔이었던 내가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에게 이런 감정들을 설명할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설명의 기본은, 예시 들기지!

 “도영 씨라면 만약 제가 이런 날에 밖에서 도영 씨 기다리면 어떨 것 같아요?”

 “걱정되죠. 혜빈 씨 감기 걸리면 어쩌려….”

 “그래요. 바로 그 심정이에요, 저도.”

  그에게 들 예시로 나를 선택한 것은 아주 잘한 짓이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마음이 있는지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지금 내 심정을 아주 잘 설명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랄까?

  내 설명을 듣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주 가만히, 아주 진득이. 뭐, 뭐야. 왜 저런 표정으로 나를 본대? 물론 그의 시선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당황을 타야 했지만. 하지만 그 당황도 오래가진 않았다. 그가 아주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혜빈 씨는 신기해요.”

  신기하다-라.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한 것은 지금 그의 행동엔 악의가 하나도 없다. 나를 향한 호감도 그저 자신의 모자란 애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된 것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이런 그의 순수한 한마디가 유난히 씁쓸하게 다가왔다. 대체 뭐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저 당신 그 자체로, 당신의 미운 점과 모난 점까지 사랑받을 순 없었던 것일까?

  이제야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안 것 같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한 부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하지만 콩깍지일지 몰라도 그것마저 내겐 사랑스럽다. 그러니, 이제는 알 때가 왔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자기 자신을 감추고 사랑을 갈구하는지.

 

 
작가의 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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