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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첫사랑
작가 : 예빈
작품등록일 : 2019.10.11

 
-1-
작성일 : 19-10-11 18:27     조회 : 369     추천 : 0     분량 : 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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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빈 씨.”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도 편안하고 차분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도 홀로 선명한 선을 띈 채 서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 깔끔한 정장을 입고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저 상냥하고도 다정한 사람이.

 “도영 씨!”

  그리고는 나는 늘 그랬듯 그에게로 달려간다. 내 눈앞에 서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을 향해.

 

 

 - 1 -

 

 

  그를 처음 만났던 건, 어느 초겨울 오후였다. 의사라는 내 직업상 이 시기가 가장 바쁠 시기라서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병원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날은 평소보다 서류가 많았다는 점? 평소 같으면 차트 하나 들고 뛰어다녔을 텐데 그날따라 유독 나에게 들어오는 서류가 많아 결국 내 상체보다 높이 쌓인 서류들을 혼자서 다 들어야만 했다.

  높게 쌓인 서류탑은 내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 덕에 앞에 누가 오는지, 무엇이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기척이 느껴진다 싶으면 “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라고 일일이 말하고 다녀야만 했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망할 윤수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서류 폭탄이 날아왔을 때 옆에서 비웃으며 놀리던 동료가 생각이 나 열심히 씹어대던 찰나.

 “아!”

  모퉁이를 돌다 그만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너무 열심히 윤수아를 씹어댄 나머지 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정통으로 부딪혀 넘어지는 바람에 수많은 서류가 공중으로 날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눈처럼 내리자 왠지 모를 허무함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이걸 위해 열심히 옮겼나. 그리고 또 이내 생각했다. 이건 전부 윤수아 때문이야.

  괜히 애먼 동료 탓을 하며 아려오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나려 했는데, 누군가의 손이 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어찌나 갑작스럽던지 하마터면 놀라 다시 넘어질 뻔했지만 이내 놀란 새가슴을 진정시키고 손의 주인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무슨 사람 뒤에서 이렇게 밝은 빛이 나오고 그러지? 이런 걸 바로 후광이라고 하는 건가? 얼굴도 잘생겼는데 정갈하게 차려입은 정장, 깔끔하게 세운 머리. 게다가 은은하게 풍겨져 오는 향까지. 어느 만화책에서나 볼 것 같은 비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괜찮으세요?”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 사람을 쳐다보는 데에 시간을 썼으리라. 덕분에 정신이 든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를 향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고 말고요.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안 괜찮을 리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내가 이렇게 외모를 밝혔나 싶어 괜히 부끄러워졌다.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는 사람에게 “그 얼굴이면 다 용서돼!” 라고 말한 것이랑 다를 게 뭔가. 천하의 신혜빈이 이런 생각을….

  그런 내 생각을 모르는지 나를 일으킨 다음 계속해서 안절부절해하며 괜찮냐고 물어오는 사람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 보였다. 엉덩이가 좀 아프긴 하지만 그건 이 사람 잘못이 아니었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앞을 못 보고 가던 내 잘못이 아닌가? 아니면 나한테 이런 서류탑을 쌓아준 못된 병원장이라던가. 후자가 더 맞는 것 같네.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못 봐서 그만.”

 “아, 아니에요! 저도 앞을 못 봤는걸요..”

  이런 착한 사람을 봤나.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사과를 해오는 그를 향해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며 그를 위로했다. 그래도 여전히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를 보며 새삼 세상이 아직까지는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하며 이리저리 흩어져 버린 서류를 주웠다. 쌓여있던 탑의 높이만큼 많이도 흘린 서류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차마 그의 앞에서는 티를 낼 수 없었다. 만약 내가 한숨이라도 내쉬었다간, 안 그래도 착한 이 사람이 더 미안해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서류를 줍는데 갑자기 제법 두꺼운 서류뭉치가 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서류뭉치를 든 사람은 역시나 그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서류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던 것 같았는데 이 사람이 주워준 것일까. 그가 건넨 서류를 받아들며 고맙다는 인사를 위해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하던 기색이 조금 가시고 옅은 미소를 띤 그의 표정을 보자 뒤에 있던 후광이 더욱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뭐지, 이 사람. 천사인가.

  나도 모르게 헤벌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니 나의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볼을 긁적이는 그였다. 그러더니 이내 화제를 전환하려는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였다.

 “많이 무거워 보이는데, 도와드릴까요?”

 “괘,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아니, 도와주면 땡큐긴 한데…. 내가 잘못해서 넘어지기까지 했는데 도와달라고 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을 것 같아 거절하려 했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며 그는 내 서류탑 모두를 가져가 들었다. 깜짝 놀라 내가 조금 든다고 말했지만 연신 괜찮다는 그의 다정한 고집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이런 착한 고집, 물론 받는 입장에서는 좋다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기분이라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하지만 앞장을 서며 어디로 가야 하는 그의 질문에 나는 이런 생각을 지우고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내 개인 사무실에 도착하여 책상 위에 서류를 내려놓는 그를 향해 작은 보답으로 음료수를 건네었다. 그냥 보내기엔 너무 양심에 찔린 탓이었다.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 작은 성의라도 쥐여주고 보내야 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친절한 그의 모습을 보아 이런 것이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는 놀란 기색으로 내가 건넨 음료수를 받았다. 다소 냉적으로 생긴 얼굴에 비해 너무나도 순수한 행동에 제법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걸 감추며 나는 고마움을 표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별 것 아닌걸요.” 라고 대답했다. 이런 겸손할 줄도 아는 사람. 잘생긴 얼굴에 친절한 행동, 제법 귀여움까지 갖췄으면서 이젠 인성마저 완벽한 남자를 쳐다보며 나는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정말 없던 이상형까지 생기게 만들 사람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알아봤지만 너무나도 좋은 사람임이, 점점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그런 생각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갑자기 그가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내가 아주 깜짝 놀랄 만한 말을 건네면서.

 “고마우면 또 만나줄래요?”

  신이시여. 내 모솔 인생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에 치여살아 연애는 무슨, 교우관계도 좁아 친구도 많이 없었고 병원에 와서는 일에 치여살아 연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처음으로, 이것도 내가 호감 100%를 느끼고 있는 이 완벽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내 이전의 모솔 인생이 이 상황 하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될 지경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자 그는 입을 가리며 작게 웃더니 주머니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네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건네받아 확인하니 아주 깔끔하게 생긴 명함이었다.

 “제 명함입니다.”

  UNC사 회장 경호팀 소속 팀장 이도영.

  검은색 네모난 종이 위에 흰색으로 된 깔끔한 글씨로 써져있었다. 어리게 생겼는데 벌써 팀장이라니, 능력도 있는 모양이다. 내가 입을 떡 버리면서 그를 쳐다보자 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보면 볼 수 록 매력적인 사람, 내가 그를 얼마 보지는 않았지만 딱 그런 사람이었다.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능력 있고, 잘생겼는데 인성까지 좋으면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참을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있던 그는 내 손에 들린 명함 아래를 가리켰다. 그의 손을 따라 나도 고개를 내려보니 명함 아래 작은 글씨로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있었다.

 “언제든지 연락해요.”

  신혜빈 선생님.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띤 그는 옷매무새를 고치더니 이내 내게 인사를 남기며 사무실을 나섰다. 또 봐요. 그가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정했던 목소리와 아직도 아른거리는 뒷모습과 함께. 아마 뒤늦게 나를 보러 온 윤수아가 아니었다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멍하니 서있었을 지도 모른다.

 “신 쌤, 가만히 서서 뭐 해?”

  옮겨져있는 서류더미와 멍하게 서있는 나를 한 번씩 보던 윤수아가 내게 물었다. 그 말이 이제껏 나도 모르게 쌓여있었던 내 긴장을 한 번에 풀어버렸는지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갑자기 앉아버리는 나에 당황한 윤수아가 나에게 괜찮냐고 계속해서 물었지만 내 귀에 그게 온전히 들려올 리 없었다. 오히려 내가 넘어졌을 때 계속해서 괜찮냐고 물었던 이도영씨의 목소리로 오버랩되어 들릴 정도로 이미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

  계속해서 멍하니 있던 나는 제법 시간이 흘렀을 즘 생각이 정리됨을 느꼈다. 아, 내가 제대로 꽂혔구나. 제대로, 그 사람에게 빠졌구나. 그걸 느끼고 나자 세상이 좀 다르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왜,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핑크빛 세상을 만끽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옆에서 윤수아가 말을 걸어왔다.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는 내가 어디 아픈 줄 아는 게 틀림없었다. 그제야 윤수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아주 덤덤하지만, 윤수아에겐 파격적일 이야기를 꺼내었다.

 “윤 쌤.”

 “어, 왜.”

 “나, 사랑에 빠졌나 봐.”

 

 
작가의 말
 

 재미있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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