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이를 메워놓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미나리였다. 살포시 미소를 그려 넣으며 미나리는 말했다.
“내일이면 할머니도 오시니까 푸짐하게 밥 먹어요. 아마 꿩이랑 토끼랑 잔뜩 있을 것도 같고 하니까…현…오, 오라버니의 몸도 훨씬 좋아질 거예요.”
왠지 듣는 이마저도 부끄럽게 만드는 미나리의 발그레한 말투에 괜스레 현도 부끄러운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대도 그러네. 그리고 어색하면 무리할 필요 없어. 편한 데로 부르도록 해.”
“아니에요! 이게 편해요! 형제가 없어서…조금, 어색해서 그런 거지 나쁘지 않아요. 오라버니가, 이처럼 예쁜 오라버니가 생겨서 좋은 걸요?”
그러면서 헤죽 웃어 보이는 모양새가 참으로 보기 좋았다. 현은 너무도 편하고 부드러운 그 모습을 가슴 깊숙이 담았다.
일부러 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에 스며들었기에 담을 수 있었다. 물이 천에 닿아 천이 물기를 머금게 되는 것처럼.
저절로 현 자신도 모르게 부드럽게 웃음이 지어졌다. 뒤늦게 문득 웃고 있다는 걸 깨닫지만 그냥 두었다.
이제는 웃는 것을 웃게 두었다.
막는다고 어찌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이 ‘지금’이 된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막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웃으면 미나리의 웃음이 한층 더 보기에 좋아 막을 수 없게 된 것도 있지만.
“예쁘다고?”
“아! 그건. 오라버니에겐 안 좋겠지만…그렇지만…오라버니는 정말 예쁜 걸요. 여자인 제가 봐도 참 고와요.”
“뭐? 이런! 내가 보기엔 나리가 훨씬 곱고 예쁜 걸?”
“네? 말도 안돼요!”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가는 미나리의 모습이 귀여웠다.
현은 이제는 시원하게 나오는 오라버니란 소리에 더욱 짙게 웃으며 말했다.
“이젠 오라버니란 소리가 잘 나오네? 아까전만해도 어색해하더니.”
“아? 헤헤, 그러네요? 이게 다 오라버니 덕이에요. 오라버니가 오라버니라고 부르게 해주시니까. 그래서 그래요.”
‘사실은, 오라버니의 이름을 부르기에는 제 마음 한 곳이 너무도 세차게 떨려서. 이상하게 숨까지 턱 막히는 것처럼 숨쉬기가 곤란해져서 그래서 오라버니란 말 외에는 마땅히 부를게 없어요. 오라버니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오라버니의 이름과 같이 불러보고 싶지만 그게 안돼요. 서운해 하시는 건 아닐지…그런데 이상하죠? 왜 그럴까요, 왜 그러는 걸까요? 왜 제 마음 한 곳이 세차게 떨려오는 걸까요?’
“훗-그래? 이런 내가 나리에게 도움이 되서 좋은데? 아마도 곧 정말 일어나서 가벼운 운동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압아산 구경 좀 시켜줄래?”
“네! 그러려면 어서 빨리 할머니가 오셔야 할 텐데.”
“아, 그런데 네 할머니는 뭐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렇게 장기간 집을 비우시는 거야?”
“아! 할머니요? 우리 할머니는요, 약초꾼이세요. 또 뛰어난 사냥꾼이시기도 해요.”
“약초꾼에 사냥꾼?”
“네, 아주 뛰어나세요. 제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마을에서는 최고로 손꼽는 실력자래요. 저는 못 봐서 모르겠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종종 말씀해주시곤 하셨어요. 덫을 놓는 것에 있어선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덩치가 산만해도 할머니가 놓은 덫에 걸리면 꼼짝도 못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왠지 자랑스러움이 느껴지는 말투에서 현은 보기 좋게 다시 웃어보였다.
귀엽다.
참 귀여워.
“그래? 그러니까 나도 어서 네 할머니를 뵙고 싶다. 난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란 느낌이 어떤 건지 모르겠거든.”
‘뭐-그걸로 끝이 아닌 게 문제지만.’
미나리는 맑게 웃었다.
언뜻 현이 슬퍼 보인다고 보였던 건 착각이라 생각하며.
“아마 할머니도 오라버니를 보시면 참 좋아하실 거 에요.”
그런 둘의 대화를 멀뚱히 듣기만 하던 원씨가 조용히 찬물을 부었다. 어찌 보면 중요한 찬물을.
“그런데 내가 의아한 게 하나가 갑자기 생겼는데 말이다. 너희 둘은 대체 무슨 근거로 오라버니와 동생이란 것으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거냐? 서로 나이는 빼먹고 이름만 나눈 거냐? 내 알기로 나리 너는 19살 인걸로 아는데 말이다. 오라버니라면 이놈이 못해도 20살은 되어야 한다는 건데……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나?”
나리의 집은 오랜만에 침묵을 맞이할 수 있었다.
“……”
“……”
“그렇군. 이름만 나눴구먼.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오라버니, 동생하며 지내나 했다. 나 원, 희한한 것들.”
그러더니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리는 원씨였다.
남은 둘은 어색함을 온몸에 둘러서는 한참이나 그렇게 있어야 했다.
*.*.*
밤이 되어 어둠이 짙게 압아산을 집어삼켰다.
그보다 더한 어둠이 밑바닥에서 웅크리고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압아산을 들쑤시고 있는 이들의 움직임은 밤이 되자 제 무대인양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움직임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같은 이들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이들조차도 여러 방향에서 나오는 움직임을 보고는 무척 놀란 듯 일시에 그들 모두는 멈추었다.
그런 이들 중 하나인 어떤 높은 이에게 의뢰를 받은 내자아(內姿娥)는 자신의 일행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무슨 말인지를 아는 데에는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일행들로선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내자아를 향해 무언의 손짓을 보냈다.
내자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답변하고는 자신들이 멈추자 같이 멈춰서는 움직이지 않는 다른 낯선 이들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찾는가요? 혹여 ‘특별한 바람’을 찾는 건 아니겠지요?”
의외로 핵심이 단번에 나오자 숨 쉬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왠지 더욱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대답이라 생각했는지 내자아는 아무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마저 말했다.
“말들이 없으신 걸 보니 그런가 보군요. 헌데 그건 알고들 계시는지. 특별한 바람으로 가는 길 또한 이리 들켜버렸으니 그 길을 막고자 하는 이들 또한 있을 거란 것도.”
그러면서 내자아는 어느 순간 한 방향을 등져 낯선 이들의 길을 차단했다. 물론 내자아의 일행들도 같이.
그렇게 묘한 대치상황이 벌어졌고 그 상황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한발자국은커녕 말 한마디도 오가지 않으며 서로의 눈빛을 놓칠 새라 잠시도 눈빛들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