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두가 빠져나간 검경합수부에는 주경과 차형사만 남게 되었다. 주경은 냉철하게 다음 지시를 내린다.
“용광공영 주변 카메라 설치구역은?”
검색하던 차형사가 대답했다.
“지리상 5분 정도 나가면 국도가 나오는데 ◇◇교차로 지점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설치돼 있습니다.”
“길이 몇 개지?”
“공장 들어가는 진입로 하나뿐인데요.”
생각하던 주경은 수화기를 들어 신우에게 연락을 취했다. 주차장에서 차량에 막 나눠 타려던 신우가 주경의 전화를 받았다.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관할 CCTV관제센터와 공조해서 추적 들어갈 겁니다. 예상대로라면 범행을 끝낸 범인이 나올 수 있는 도로는 하나. 교차로로 나오는 대로 추적 가능해요.”
“알았습니다.”
신우는 휴대폰을 끊고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팀을 나눈다. 봉형사와 오형사는 나하고 같이 움직이고 나머지는 승합차로 움직여.”
형사들이 차에 오르고 곧 차량들이 출발했다. 이제 주경의 컨트롤이 이루어질 차례였다. 이미 차형사가 CCTV 관제센터와 통화 중이었다.
“지금부터 ◇◇교차로 CCTV영상 모든 차량 파악해서 실시간으로 보내주세요. 동부지검 검경 합수부입니다.”
연락을 받은 CCTV 관제센터 경관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상황 모니터에 수많은 지점의 CCTV 영상이 모자이크처럼 떠 있는데 그 중 ◇◇교차로 지점의 영상이 크게 확대됐다. 늦은 시각인지 차량 통행이 얼마 되지 않았다.
*
타이어에서 떨어진 흙이 길게 나 있고 승용차는 교차로에 다가갔다. 순간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사이드 미러에 달려오는 다른 차량이 보였다. 승용차는 교차로에 멈춰 섰다.
*
검경합수부 승합차와 승용차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양평 관할서에서도 차량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차량이 교차로에 멈춰 섰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트럭과 함께였다. CCTV 관제센터 대형 모니터에도 교차로의 트럭과 남자의 승용차가 동시에 찍혀 있었다. 이 사실을 차형사가 주경에게 보고했다.
“트럭 한 대와 승용차 한 대가 거의 동시에 나타났답니다. 용광공영과의 거리를 추산하면 해당차량일 확률이 높습니다.”
“두 대 중 뭐지?”
잠시 생각하던 차형사가 확신한 듯 말했다.
“먼저 일차선 도로에 나타난 건 트럭. 승용차는 나중에 이차선 도로로 진입했습니다. 용광 도로로 이어지는 단선 도로에서 나왔다고 가정할 때 현재 이차선 도로에 있는 차량이 해당차량일 확률이 높습니다. 짧은 구간에서 굳이 일차선까지 진입했다면 하남방면으로 가는 좌회전이 목적일 텐데 검사장을 서울에서 납치한 범인은 아마 서울로 돌아가는 직진 코스를 선택할 겁니다.”
주경이 단호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승용차 넘버 따고 계속 추격해.”
주경의 지시대로 CCTV 관제센터 대형 모니터에 남자의 승용차를 확대하자 차 넘버가 드러났다. ‘43우 4033.’ 이 사실은 차형사를 통해 신우등 형사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해당차량 회색 소나타. 43우 4033입니다.”
신우는 차형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차형사의 보고가 들려왔다.
“해당차량 빠른 속도로 팔당대교 쪽으로 달리는 중입니다.”
차형사의 보고대로 검경합수부 차량들이 팔당대교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저 멀리 언덕길 위로 서서히 헤드라이트 불빛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나타난 승용차가 검경합수부 승용차를 스쳐 지나 질주했다. 즉시 유턴하며 승용차를 추적하는 신우의 차량. 남자도 따라오는 검경합수부 승용차를 백미러로 발견했다. 이때 갓길에 숨어 있던 다른 검경합수부 승합차가 튀어나오며 도로를 막아버렸다.
끼이이익-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거칠게 운전대를 돌리는 남자. 그러나 남자의 승용차는 가드레일을 뚫고 도로를 빠져 나가며 언덕 아래로 떨어졌다. 쾅- 바닥에 부딪치며 튕겨나가 멈추는 승용차. 부서진 승용차 안에서 남자가 내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검경합수부 승용차에서 내리며 신우와 봉형사, 오형사가 쫒아가고 승합차에서도 형사들이 일제히 내려 달려갔다.
*
한편 용광공영 안에서는 여전히 팽- 소리와 함께 투구 머신기의 돌멩이가 날아가고 있었다.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검사장의 얼굴에 퍽- 부딪치며 돌멩이가 튕겨 나갔다.
검사장의 흐릿한 시야에 여자의 기괴한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여자의 환영이 사라지자 총을 겨눈 양평 관할서 형사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나타났다. 다시 팽- 소리와 함께 검사장의 얼굴에 돌멩이가 부딪쳤다.
검사장이 절명하며 스르르 미끌어듯 꼬꾸라지자 검사장 뒤에 이미 숨진 박상권의 모습이 드러났다. 박상권이 묶인 의자에 겹쳐 앉아 날아오는 돌멩이를 스스로 맞은 것이다. 양평서 형사들이 할 말을 잃고 숨진 두 사람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
신우와 형사들 모두 남자를 뒤 쫒아 달려갔다. 남자가 비좁게 난 길로 뛰어 올랐다. 맨 앞에서 달리던 신우가 먼저 길로 올라가고 봉형사, 오형사도 뒤따라 올라갔다. 남자를 쫒아 달리자 이번엔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신우가 두 갈래 길 중 다른 길로 향하고 봉형사와 오형사는 남자를 따라 달려갔다. 맹렬하게 내달리는 남자가 흠칫 멈춰 섰다. 길은 끊기고 단독주택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남자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단독주택 담을 넘어갔다. 뒤따라온 봉형사가 힘겹게 담을 넘어가 대문을 열어 오형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남자는 지붕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봉형사도 남자를 따라 지붕으로 올라가지만 어느새 지붕을 넘어간 남자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며 착지하는 순간 신우가 어둠 속에서 빠르게 달려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남자는 저만치 날아가 쓰러졌다. 신우가 품에서 권총을 꺼내려는데 먼저 권총을 꺼내 든 남자가 신우를 향해 겨눴다.
“거기까지! 더 움직이면 대가리 빵구난다.”
신우는 남자와 권총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38구경 리볼버? 너 뭐야. 경찰이야?”
어둠에 가려진 남자가 한 걸음 걸어 나오자 얼굴이 드러났다. 신우는 그의 얼굴이 낯익었다. 저 사람과는 인사를 나눈 기억도 있다. 맞다. 지창직을 만나러 강남경찰서에 갔을 때였다. 남자가 그때처럼 웃으며 말했다.
“강남서 심도균입니다. 정신우 과장님.”
“너.. 였어?”
“이제 별 수가 없네. 얼굴을 봤으니...”
도균이 건조한 눈빛으로 신우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잘 가라. 정신우.”
도균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탕- 총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지붕위에 올라간 봉형사의 총구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총을 맞은 도균이 쓰러졌다. 신우가 권총을 겨누며 도균을 향해 다가갔다. 잠시 상태를 살피는데 도균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솟아오르며 신우의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신우는 뒤로 나뒹굴고 도균은 도주했다.
신우가 다시 일어나 권총을 집어 들고 정조준 했다. 탕- 신우의 총구에서 날아가는 총알이 도균을 맞추자 도균은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
병원 모니터에 바이탈 신호가 흐르고 있고 도균은 눈을 감은 채 수술대에 누워있었다. 총알 제거 집도 수술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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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균은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 있었다. 하얀 환자복이 왠지 도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커튼이 내려진 창문 너머에서는 새소리와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고즈넉한 오후였다.
순간 번쩍 두 눈을 뜨는 도균. 그의 눈동자가 천장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확인한 듯 눈동자는 다시 천장에 멈췄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도균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것은 이상한 웃음이었다. 도저히 검거된 범인의 것으로볼 수 없는, 승리자의 웃음 같았다. 도균의 입가에 생긴 웃음이 더욱 크게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