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신우의 승용차가 정지했다. 멀리 트럭도 멈춰 섰다. 빠르게 차에서 내려 달려간 신우와 주경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검은색 승용차가 뒤집어진 채 부서져 있었다.
신우는 아래로 달려갔고 주경은 뒤따라갔다. 검은색 승용차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런데 순간 신우가 우뚝 발걸음을 멈추며 주경을 가로막았다.
“잠깐.”
“왜 그래요?”
“지금까지 일어난 살인 패턴...”
“네?”
이 위화감의 정체는 뭐지? 신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메시지... 설춘문은 왕국의 배신자다... 그런데.. 아직 죽이지 않고 굳이 여기로 보냈다...”
어디선가 째깍째깍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검은색 승용차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신우와 주 경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한편 검은색 승용차 운전석의 설춘문. 그의 가슴에 핀으로 박혀 고정된 a4 용지에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운전대 아래 설치된 시한폭탄에서 시계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우가 소리를 질렀다.
“설춘문은 지금 살해당하고 있어. 엎드려요-”
쓰러지듯 엎드리는 신우과 주경. 동시에 멈추는 시계소리. 폭발하는 검은색 승용차. 설춘문은 승용차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날아가 버렸다. 신우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한 신우가 빠르게 휴대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잠시 후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전혀 낯선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드디어 놈이 정체를 드러냈다. 신우의 맥박이 빨라졌다.
“알아. 영보사 오계명. 너냐?”
“대단해. 아직 말을 하고 있다니.”
“살았나, 죽었나, 확인전화 한 모양인데 안 죽어. 너 잡기 전에는.”
“좋았어, 그 자신감. 기대하지.”
휴대폰이 끊겼다. 신우는 끊긴 휴대폰을 한동안 바라봤다. 주경도 말없이 신우만 주시할 뿐이었다.
*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남자가 손에 든 휴대폰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히죽 웃음이 번졌다. 곧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남자는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 아무도 없는 복도에 그의 발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
신우와 주경은 정차된 승용차 쪽으로 다시 올라 왔다. 그런데 저 멀리 다른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왔다. 신우와 주경은 다시 긴장하며 유심히 쳐다봤다. 다행히 패트롤카였다. 멈춰 선 패트롤카에서 두 명의 경찰이 내렸다. 경찰들은 부서진 난간 대와 자동차 파편, 멀리 보이는 화염이 황당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난리야. 당신들은 또 뭐고.”
신우가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서울송파서 형사과장 정신우다. 이분은 동부지검 윤주경 검사시고.”
“아, 경계요청하신 검경합수부.
갑자기 공손해진 경찰들이 거수경례했다.
“저희들 지금 말씀하신 곳으로 임무수행 하러 가는 길인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날파리는 벌써 지나갔지.”
아직도 치솟는 화염을 보며 주경이 말하자 경찰은 눈만 껌뻑거렸다.
“날파리... 요?”
이때 신우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처음엔 긴장하지만 번호를 확인한 신우는 주저 없이 휴대폰을 받았다.
“아버지 아무 일 없으시죠?”
“여긴 별 탈 없다. 그것보다 신우야, 지금 테레비 볼 수 있니? 8시 뉴스.”
“TV요?”
신우는 급히 승용차의 네비게이션 DMB 영상을 켰다. 8시 뉴스에 검사장이 나와 기자들에게 검경합수부에 관한 브리핑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정진홍도 그 뉴스를 보는 중이었다. 정진홍의 눈빛이 떨렸다. 정진홍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야. 그때 보다 나이는 들었지만 틀림이 없다.”
“아버지, 그 사람이 누구란 말씀이세요?”
잠시 말을 멈추고 검사장을 주시하던 정진홍이 입을 열었다.
“그때 왔다는 법조계 사람. 맞아, 검사라고 그랬어. 이제 생각이 나.”
놀란 신우도 잠시 말을 멈췄다.
"알았어요. 끊을게요. 아버지.”
휴대폰을 닫는 신우가 굳은 표정으로 주경을 응시했다. 주경이 뭔가 심상치 않은 신우를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가까운 데 있었어요. 아주 가까운데.”
“네?”
어리둥절하던 주경이 문득 뉴스 화면을 봤다. 이제야 감이 오는 모양이다.
"혹시... 마검사장?”
신우가 빠르게 차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서둘러요. 이번엔 놓치지 않습니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멀어져 가는 신우의 승용차를 경찰들이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
그곳은 강남의 고급 호텔이었다. 검사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방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인터폰이 울렸다. 인터폰 영상을 확인하자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신우와 통화했던 그 남자였다. 검사장이 인터폰에 얼굴을 묻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넨가.”
“네. 형님.”
검사장이 문을 열었다. 열리는 문틈으로 보이는 그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입가에 번지는 잔혹한 웃음은 가릴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방에 마주 앉았다. 이따금 들리는 창문의 풍경 소리가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검사장이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끄며 말했다.
“오늘 부로 검경 합수부 설치가 결정됐어.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네. 사건이 너무 커졌고 명분이 없어. 이미 위에서 지시받은 사항이라.”
남자가 서늘한 눈빛으로 검사장을 주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지극히 냉정한 톤이었다.
“이 시간에 저를 부른 이유를 알고 싶은데요, 형님.”
“자네 몰라서 그런 소리 하나?”
남자의 입가에 이죽거리는 웃음이 번졌다.
“제가 알긴 뭘 알겠습니까.”
가만히 남자를 쳐다보던 검사장이 의중을 알려달라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대가를 원 해? 돈?”
“되도록 증거가 남지 않는 쪽으로. 아무래도 현찰이 깔끔하겠죠.”
“좋아. 그리 할 테니, 나 좀 도와 줘. 내 이름이 드러나도 자네가 알리바이만 만들어 주면 난 무사할 수 있어.”
남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제 생각엔 다른 쪽으로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
“다른 쪽?”
“드러나기 전에 덮는 방법도 있습니다.”
“덮어?
생각하던 검사장의 동공이 커졌다.
“자네 혹시... 수사관들 죽이자는 그런 소리야?”
“뭐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아쉬운 쪽은 형님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이루셨잖아요.”
다시 남자의 입가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
*
어느새 활짝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창문 커튼이 부드럽게 나부꼈다. 검사장은 방금 전과는 달리 소파에 앉아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불어 온 바람에 출입문에 걸린 금속풍경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남자는 어둠 속에 서서 검사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부탁할 사람은 납니다, 형님. 이젠 그만 사라져 주셔야죠.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검사장의 귓가에서 점점 풍경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공포에 물들어 갔다. 순간 검사장의 목덜미에서 기괴하게 뒤틀린 손가락이 스르르 기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