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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천년왕국
작가 : 다비
작품등록일 : 2019.10.2

28년 전 사라진 종교단체 '영보사' 그리고 2019년 현재 시작되는 영보사 관련 연쇄살인사건.
오래 전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움직이고 오래 전 사라진 믿음이 다시 나타나 끔찍한 음모를 꾸민다.
그들에게 영원한 천년왕국의 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chapter 8. 영보사
작성일 : 19-10-02 23:46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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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홍은 나지막이 영보사에 관한 기억을 말하기 시작했다.

 

 “영보사. 영혼을 보는 사람... 그것은 우리 모두 영혼을 볼 수 있는 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영보사의 마당에서는 여자들이 모여 식사준비를 했다. 대형 냄비에 부글부글 찌개가 끓었고 얼기설기 나무를 짜 만든 커다란 식탁에 반찬과 밥이 늘어서 있었다. 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수저와 젓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영보사 사람 모두가 식탁에 모여 앉았다. 중앙에 앉은 교주 장국천을 중심으로 남녀신도는 물론 아이들도 있었다. 장국천이 두 손을 모으면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과거를 생각하며 정진홍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때 영보사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믿음으로 단결된 형제들의 천년왕국. 오랜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장국천 총목을 중심으로 세 명의 운영위원 박상권 부총목과 진전숙 상목, 지영미 신도... 그리고 여러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 살아생전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영보사의 강당에서 신도들은 장국천의 설교를 들었다. 그 중에는 우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장총목은 서울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던 부목사였는데 어느 날 하나님의 명을 받아 대안집단을 만들었다고 해요. 추악한 세상에 몸담고 있는 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대안은 초기 기독교로 돌아가는 것. 순수했던 그때처럼 신도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혼과 천국을 보는 특별한 선민이 될 수 있다.”

 

 신도들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통성 기도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 소리는 커져만 갔다.

 칠판에 자세히 기록된 공예품 디자인과 만드는 법 등을 신도들은 열심히 배웠다. 기술자의 강의에도 열심이었다. 이따금 폭소도 터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강의로 듣고 배운 내용들은 곧 실천에 옮겨졌다. 신도들은 공장에서 공예품을 만들었으며 장국천과 운영위원들은 신도들을 독려했다.

 

 “모든 것이 안에서 이루어졌어요. 생계에 필요한 경제활동도...”

 

 여신도 한 명이 교실의 아이들에게 정규과목을 가르쳤다.

 

 “아이들의 교육도...”

 

 강당에 설치된 대형 TV에서는 종교 영화가 나왔다.

 

 “문화생활도...”

 

 공장 및 숙소가 있는 건물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죄를 심판하는 형벌도...”

 

 건물 안에는 방이 있는데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대충 지어놓은 방의 한 가운데에는 천칭저울이 놓여 있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율법은 잔혹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수조에 둥둥 뜬 여신도의 시신이 발견됐다. 손목의 잘린 동맥에서 나온 피로 수조는 온통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사라진 신도 한명이 발견됐어요. 평소에도 집단생활을 버거워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발견된 건 심판의 방이었죠.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책망으로 자살했다는데 모를 일입니다. 자살한 건지, 죽인 건지... 그리고 그 여자는 단순 실종으로 처리됐어요.”

 

 이야기를 듣던 주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 실종처리가 가능했다면 역시 뒷배경이 있었다는 뜻이네요.”

 

 신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거기 있던 사람들은 뭐죠?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문제 삼지 않다니...”

 “그땐 다 미쳤으니까. 그들도, 나도, 모두...

 

 괴로운 듯 눈을 감은 정진홍의 주름이 깊어졌다. 신우는 아버지에게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아버진 어떻게 거길 빠져 나왔어요? 한 번도 말해 준 적 없으시잖아요.”

 

 여전히 두려운 듯 정진홍은 무겁게 대답했다.

 

 “오계명 중 가장 무서운 교리가 있어.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떠나려 한 자는 처절한 심판을 받았어.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천신만고 끝에 그 지옥 같은 곳을 빠져 나온 뒤에도 난 삼년간이나 행려들 틈에 숨어있어야 했다. 네 어미가 나를 포기했다면 나는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거야. 나를 만나고 네 어민 몇 달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그건 삼년 동안 나를 찾아다닌 대가였지.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허약해진 네 어민 정작 오랜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가버렸어.”

 

 결국 정진홍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정진홍은 투박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게 내가 네 어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야. 가족들 팽개치고 사이비 종교에 미쳐 날뛴 죄... 난 그 죗값을 평생 받을 작정이다.”

 

 주경이 정진홍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때 찾아 온 사람들은 요?”

 “예배시간에 국회의원과 기업 회장이라는 사람을 소개해 준 적 있습니다. 그리고 법조계에 종사한다는 분이 한 명 있었어요.”

 “법조계요?”

 

 신우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그 사람 이름이나 인상착의 기억나는 거 없어요?”

 “글쎄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신우와 주경은 착잡한 심경으로 그저 진홍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새 찾아 온 어둠이 주위를 삼키고 있었다.

 

  *

 

 정진홍의 외딴집을 나온 신우의 승용차가 어두운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신우는 넋두리처럼 아버지가 겪은 고초에 대해 설명했다.

 

 “아버지 삼년 만에 돌아오신 뒤에도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셨어요. 대인 공포증에 우울증, 게다가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수고했어요. 그리고 미안해요. 그런 개인사가 얽혀있을 줄은 몰랐어요.”

 

 승용차는 산길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진 국도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차창 너머로 갓길에 정차중인 검은색 승용차가 보였다. 신우의 승용차가 스쳐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검은색 승용차가 출발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신우는 점점 가까이 따라붙는 검은색 승용차를 백미러로 유심히 살폈다.

 검은색 승용차는 추월하려는지 더욱 속도를 높여 옆으로 따라 붙았다. 그리고 갑자기 신우의 승용차를 들이 받았다. 옆으로 튕겨 나간 신우의 승용차가 가드레일과 부딪치며 스파크가 튀었다. 다급하게 운전대를 돌려보지만 승용차는 점점 벼랑 끝으로 향하며 아득한 낭떠러지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신우는 필사적으로 운전대를 돌려 산길에 서 있는 공사 중 표지판을 들은 받은 뒤에야 가까스로 도로에 진입했다.

 그러나 마치 자살 테러 차량처럼 검은색 승용차는 다시 달려들었다. 신우는 기다렸다는 듯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운전대를 돌려 들이받았고 이번에는 검은색 승용차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신우의 승용차는 도망치듯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튕겨나갔던 검은색 승용차도 속도를 올리며 미친듯이 따라붙었다. 연신 백미러로 살피는 신우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래. 너도 우릴 미행하고 있었어. 잘 왔어. 진심으로 환영한다.”

 “미행이 아닐 수도 있어요. 만약 아버님이 타깃이라면요?”

 

 걱정스런 주경의 말에 신우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관할서에 경계요청 했습니다. 곧 인력이 배치될 거예요.”

 

 검은색 승용차가 점점 가까이 오는 걸 주시하며 주경은 건조한 말투로 내뱉었다.

 

 “영보사 연관 세력이거나, 저 인간이 범인이거나. 후자면 이야기는 쉬워지죠.”

 

 그건 신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판사판 해 보자는 심정이 됐다.

 

 “그럼 제대로 가 봅시다. 숨길게 쉬시고, 벨트 확인하시고!”

 

 신우가 다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신우의 차가 급정거하자 따라붙던 검은색 승용차가 부딪치며 옆으로 튕겨가 산길 난간대를 들이받았다. 그러나 가까스로 운전대를 꺾어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간 검은색 승용차는 순식간에 신우의 승용차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석 남자가 신우를 쳐다봤다. 신우도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어두운 차 안의 남자는 실루엣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때 급커브 길에서 트럭 한대가 튀어 나왔다. 그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검은색 승용차로 쏟아지며 차 안의 남자를 보여줬다. 남자는 다름 아닌 설춘문, 다음 살해대상으로 예고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신우가 놀랄 틈도 없이 달려 온 트럭은 설춘문의 승용차와 정면충돌했다. 그 순간까지도 전혀 표정 변화 없이 신우를 응시하던 설춘문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검은색 승용차는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허공을 날아가 반대편 난간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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