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경찰서 승합차가 현재시각 살인사건이 의심되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여동 87번지 145.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승합차 안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곧 승합차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의 건물이 지나자 멀리 오피스텔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앞에 어느새 도착한 주경이 서 있었다. 달려오는 승합차를 바라보는 주경은 매우 태연했다. 주경을 발견한 오형사가 눈치 없이 물었다.
“과장님. 저기 애인 분 계시는 데요?”
“애인이라... 근데 저 여자가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애인 아니세요?”
신우가 이죽거리듯 말했다.
“동부지검 검사야. 수사 상황기록 보내 달라고 했던...”
결국 오형사는 분기탱천하고 만다.
“아니 뭐 저런 게 다 있어? 검사면 검사라고 당당히 밝힐 것이지.”
주경 앞으로 승합차가 도착하고 안에서 오형사, 봉형사와 함께 신우가 내렸다. 힐끔 주경을 째려보는 오형사의 눈빛에 독이 올랐다. 애써 무시하고 지나가는 신우에게 주경은 어떻게 알았는지 현장 상황까지 읊어준다.
“안에 직원은 없을 거예요. 부도가 나서 공사 중단된 건물이니까.”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퀵팩샷 팩스를 받아 분석해봤더니 배경에 있는 숲이 사진이더라구요. 건설현장에서 입간판 만들 때 쓰는 사진, 아시죠?”
“그래서요?”
“송파서 관할 구역 안에 해당 건설회사는 이 오피스텔 현장 밖에 없었어요.”
얄밉다는 듯 주경을 쏘아보던 신우가 명령을 내렸다.
“가자.”
권총을 꺼내 든 신우와 형사들이 오피스텔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건 이미 숨진 윤덕구의 사체였다. 벽에 부딪쳐 숨진 듯 벽면 가득 피가 튀어 있고 윤덕구의 전신은 으스러진 상태였다. 어느새 따라 들어온 주경이 또 한번 상황설명을 해준다.
“팩스 사진을 보면 윤회장 발목에 묶인 강철선이 어디로 연결 돼 있었어요. 범인은 그걸 이용한 겁니다. 동력을 이용한 반동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방법이죠. 단순히 결박할 목적이었다면 굳이 강철선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요.”
사체를 살피던 오형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이미 사반이 전신을 뒤덮은 것으로 보아 숨진 지 최소 2, 3일이 경과된 사체입니다. 1차사건 과 비슷한 패턴이에요."
이때 봉형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과장님. 여기 사체가 또 하나 있습니다.”
신우와 오형사가 봉형사 쪽으로 다가갔다. 집기 뒤에 처참하게 난도질된 김준철의 사체가 보였다.
“김준철이에요. 우리가 1차사건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입니다.”
김준철의 상의에 핀으로 박혀 고정된 a4용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살피던 신우가 이리 오라는 듯 주경을 쳐다봤다. 주경이 다가가 같이 살펴보는데 거기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은밀히 계략을 일삼는 자,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일어나 그를 칠 것이라.”
잠시 침묵이 흐르고 속삭이듯 주경이 물었다.
“정과장님도 아시죠?”
“알아요. 영보사 오계명 제2항... 연관성 확실해요.”
그때처럼 바로 옆 탁자위에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신우가 휴대폰을 열자 배경화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운전기사 설춘문의 사진으로 김준철처럼 A4용지를 들고 찍은 수감자 형태의 사진이었다. 설춘문의 A4 용지에 쓰인 글씨는 매우 선명했다.
‘설춘문은 왕국의 배신자다.’
가만히 글귀를 쳐다보던 신우가 심각하게 읊조렸다.
“메시지는 다음 피살자 예고 문자였어. 다음 살해 대상 이 사람이야.”
범인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설춘문의 주소지를 급습했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방 벽면에도 붉은 매직으로 그린 눈동자 심벌이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범행패턴, 다음 살해 대상에 대한 예고, 그리고 결말은 동일한 눈동자 심벌... 범인은 자기의 범행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 의도에 놀아나고 있고.”
신우는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다음은 검찰청과 송파경찰서에서 동시에 진행된 윤주경검사와 정신우과장의 사건 브리핑 내용이다. 1991년 화재를 가장한 영보사 집단 변사 사건부터 현재의 1,2차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관련 내용을 주경과 신우의 브리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때 오고 간 육성으로 기록했으므로 대화체를 사용했으며 검찰청, 송파경찰서를 굳이 따로 구분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주경
1991년 4월 27일 영보사라는 공예품 생산 업체에서 화재로 55명이 사망한 뒤 발 견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화재사건으로 생각했는데 수사를 하면 할 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우
영보사는 단순히 공예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단체였습니다.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지목한 한국 초기 기독교협회라는 종교단체가 있는데 영보사는 그곳에서 파생된 극렬단체입니다. 영보사라는 이름도 정식 명칭 “영혼을 보는 사람들”을 줄인 것이구요. 교주 장국천을 중심으로 200여명의 신도를 거느린 영보사는 그 중 열혈신도 60여명을 중심으로 시설을 갖추고 공예품 생산 공장을 운영하면서 집단 종교생활을 3년 동안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교주를 포함한 55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입니다. 사체 부검 결과 기도와 폐 속에서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것은 화재가 나기 전 전원 사망한 것을 의미합니다.
서장
그런데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주경
영보사가 생산한 공예품은 당시 최고 수준의 상품이었습니다.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까지 받고 물량은 없어서 못 팔정도였다고 합니다. 즉, 신도들이 전 재산을 바친 헌금과 공예품 수익금 등 막대한 현금이 교주 장국천의 계좌로 입금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가 정치자금 등 교단 운영을 위한 비용 명목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우
숨진 송영식의원과 윤덕구회장은 당시 영보사를 비호한 핵심인물로 지목된 사람입니다. 교주 장국천은 송영식의원을 소개해 주는 대가로 윤덕구 회장에게 후원금을 받았고 장국천은 다시 송영식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줬습니다. 하지만 물증 확보에 실패해 무혐의로 끝나고 말았죠. 또한 살해 후 자살한 김준철은 당시 송영식의원의 비서실장, 역시 다음 살해 대상으로 지목된 설춘문은 윤덕구회장의 보디가드로, 송의원과 윤회장의 지시를 받고 교주 장국천과의 비밀 거래를 직접 실행한 인물들입니다. 역시 물증확보에 실패해 훈방 조치 되었구요.
검사장
그럼 지창직은?
주경
지창직은 이탈한 신도들을 비밀리에 살해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검사장
살인을 해?
신우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영보사 사건을 수사하던 중 집단자살사건 이전부터 이탈한 신도를 살해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그 중 십 여 구의 암매장된 사체가 집단 자살사 건 이후 3년여에 걸쳐 발굴됐어요.
서장
그때 검거되지 않은 이유가 뭐지?
신우
윗선의 비호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송영식의원의 입김으로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단순 사이비 종교 단체의 집단 살인극으로 정리 마무리했고 그 과정에서 지창직의 살인혐의도 묻힌 거죠.
서장
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따지고 보면 영보사를 후원한 사람들인데 왜 배신자라는 이름으로 살해당했을까?
신우
당시 영보사 수사 기록을 보면 송의원, 윤회장 모두 영보사와의 연관성을 철저히 부인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현장에서 사망한 장국천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것입니다. 영보사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가 맞는 거죠.
서장
아무리 그래도, 20년도 더 지난 사건이 이제 와서 수면위로 떠오른 이유가 뭐야?
주경
범인의 목적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당시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를 제거할 필요가 있거나,
신우
살인을 할 만한 개인적 원한이 있는 자.
주경
이에 저는 정식으로 검경합수부 설치를 제안합니다.
검사장
검경합수부라.. 그건 좀 오버 아닌가? 민차장 의견은 어때.
차장검사
검사장님. 사회지도층 인사가 차례로 두 명이나 살해당했습니다. 정치권의 관심도 클 뿐 아니라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언론을 잘 활용하면 검찰의 이미지 제고에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검사장
조부장도 같은 의견인가?
부장검사
저는 저 친구 능력을 기대합니다. 그동안 윤검사가 해결한 미결 사건만 벌써 세 건이에요. 수사에 필요한 인재 수사에 참여해야죠.
검사장
그럼 그렇게 합시다. 하루라도 빨리 범인 검거하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주경
알겠습니다, 검사장님.
검사장
그럼 이상으로 회의 마칩시다.
*
어두운 방. 사라진 설춘문이 앉아있었다. 철커덩-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설춘문에게 다가왔다. 설춘문은 마치 인형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