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한 가운데에는 자루가 놓여있었다. 멀찍이 앉은 사람들은 말없이 자루만 쳐다보았다. 사람들만 자루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자루도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자루에 페인트로 그린 붉은 눈동자가 사람들을 쳐다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자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자루를 관찰하는 듯 보였다. 마치 과학자나 임상실험 전문가처럼...
마침내 한 남자가 일어서 자루를 향해 다가가자 적막은 깨졌다. 그의 발소리가 자박자박 허공을 울렸다. 자루 앞에 멈춰선 남자가 꽁꽁 묶은 자루 입구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꿈틀 하는 움직임과 함께 자루는 바닥에 쓰러졌다. 안에 생물체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자루는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몸부림이었다. 꺼내달라는 몸부림, 살려달라는 몸부림.
차가운 표정으로 말없이 바라만 보던 남자는 태연하게 주위를 살폈다. 저만치 바닥에 나뒹구는 몽둥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사정없이 자루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안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붉은 눈동자의 주변까지 온통 붉게 물들이자 자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됐다.
남자는 자루를 움켜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자루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바닥에 긴 일직선을 그려 넣었다. 모두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만 봤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놀라지 않았다.
듬성듬성 아무렇게나 시멘트로 발라 놓은 벽 위로 작게 난 창문이 보였다. 쇠창살로 막아 놓은 창문이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의 달까지 가로막지는 못했다. 어느새 달이 기울고 다시 해가 떴다. 그리고 별과 달과 해의 반복적인 움직임... 시간이 흘렀다.
*
작게 난 쇠창살 창문 너머로 한낮의 태양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가까이 오는 트럭 한 대가 보였다. 한가로운 한 낮의 오후, 드문드문 수용소처럼 보이는 건물들 틈에 은사시 미루나무가 서있었다. 맴맴 매미소리, 사각사각 미루나무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트럭이 커다란 철제 대문 앞에 도착하자 조수가 내려 익숙하게 대문을 밀어제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사이로 트럭이 들어갔다. 대문에 걸린 간판에 이름이 쓰여 있었다. “영보사.” 깊은 산 속에 둥지를 튼 영보사 건물은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처럼 보였다.
건물 앞 넓은 마당에 트럭이 멈추고 기사가 내렸다. 대문을 열었던 조수가 달려와 건물 출입문을 열었다. 어두운 건물 내부에 한낮의 햇살이 연극무대의 핀 라이트처럼 스며들어 내부를 비추자 작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생산된 것으로 짐작되는 바구니, 인형, 파우치 따위의 잡다한 생활 공예품들이 잘 정돈된 채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그러나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인간이 사라진 공간을 대신 채운 것은 한없이 깊은 적막뿐이었다. 기사의 미간에 세로로 난 일자 주름이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렸다.
"뭐야 이거.”
포켓에서 수첩을 꺼내 살피던 조수가 말했다.
“납품일 오늘 맞아요.”
“근데 왜 코빼기도 안 보이냐고. 여기 아무도 없어요?”
기사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사라질 때 까지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저번 납품일도 빵구내고, 얘네들 요즘 왜 이러냐? 최기사 님 물건 그냥 실고 가요.”
“우리가 도둑놈이야? 수량 품목 확인하고 송장 받고!”
갑자기 조수가 코를 벌름거리더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저기요 최기사님.”
“왜.”
“뭐 타는 냄새 안 나요?
“냄새?”
킁킁 조수를 따라 코를 벌름거리던 기사가 우웩-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어으. 시궁창 냄새. 나 콧물 먹었어.”
“그놈의 축농증. 빨리 병원가요. 시궁창 똥냄새 달고 다니기 싫으면. 근데 이거 고기 타는 냄샌데?”
조수가 냄새를 따라갔다. 기사는 조수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내 2층에 두 사람이 막 올라섰을 때 냄새는 한 층 더 심하게 배어나왔다.
“분위기 골 때리네. 이건 뭐 교회도 아니고, 절도 아니고...”
기사 말대로 2층은 아래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집단생활을 했는지 숙소가 여럿 보이고 각각의 숙소 중앙에는 눈동자를 표시한 붉은 색 심벌이 붙어있었다. 더욱 깊어진 일자 세로 주름으로 기사는 혀를 찼다. 조수는 더욱 크게 킁킁거렸다.
“냄새가 더 심해졌어요. 고기냄새.”
두 사람은 호기심이 가득한 아기 고양이처럼 주위를 살피며 살금살금 걸어갔다. 대화가 끊기고 엄습한 우울한 적막에 소름이 끼쳐올 때 쯤 저 멀리 복도 끝에 자물쇠로 굳게 닫힌 두꺼운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 개 코가 여기라는 데요?”
정말 개만큼이나 초능력에 가까운 제 후각에 탄복하며 조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기사는 조수의 가공할 후각보다 왠지 기분 나쁜 이곳 분위기가 더 신경 쓰였다.
“문 잠겼는데? 야, 그냥 가자. 분위기도 더럽고, 기분은 더 더럽고.”
조수는 기사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기분 나쁜 적막과 묘한 분위기를 깨뜨리려고 작정했는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렸다.
“안에 아무도 없어요? 대영에서 물건 인수하러 왔어요. 문 안 열어?”
아무 대답이 없자 조수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득 분말 소화기가 눈에 띄었다. 수화기를 집어 든 조수가 달려가 자물쇠를 쾅쾅 내리쳤다.
“야. 뭐해.”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지. 오늘은 그냥 안가, 못 가. 고기 먹고 술 쳐 먹다 잠 퍼 자면 깨워야지. 내 말 맞잖아요.”
쾅쾅- 결국 자물쇠는 떨어져 나가고 조수는 문을 열었다. 순간 두 사람은 석고상처럼 얼어붙어 버리며 지금까지 느낀 위화감의 실체를 똑똑히 깨닫게 되었다.
전부 철제금속으로 만들어진 밀폐된 방안은 온통 까맣게 타버렸고 역시 타버린 수십 구의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린 참혹한 광경. 기사와 조수는 오금이 저려왔다. 까맣게 그을린 채 벽면에 새겨진 붉은 눈동자가 기사와 조수와 수많은 시체들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기사와 조수가 줄행랑을 치자 고통스럽게 뒤엉킨 사체들만 남게 되었다. 복도에 걸린 낡은 달력에 누군가 동그라미를 그린 날짜가 보였다. 27일. 달력은 1991년 4월의 페이지였다. 그러니까 달력은 1991년 4월 27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정신우는 무덤 앞에 우뚝 솟은 비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비석에는 ‘강영숙지묘’라는 문구와 함께 어느 젊은 여자의 생전 사진이 암각 되어 있었다. 오늘은 2019년 10월 7일. 어느 무더운 여름날 돌아가신 어머니의 20주기 제삿날. 잠시 생각하며 젊은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던 신우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과일을 놓고, 포를 놓고, 분주하게 성묘음식을 차렸다.
60대는 됐음직한 남자가 제초기로 무덤 주위를 깎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비처럼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음식이 다 차려지자 정신우는 남자를 불렀다.
“아버지 다 됐어요.”
“나도 다 돼간다.”
신우는 땀을 뻘뻘 흘리며 육체노동을 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그만 힘 빼요. 인사드리고 내가 할 테니까.”
“손에 익은 사람이 해야 빨라. 너 범인 잡을 줄이나 알지 이런 일은 젬병 아니냐.”
웃으며 대답하는 아버지의 날에 잡초가 부서지며 형체도 없이 사라져갔다. 비석에 새겨진 어머니 강영숙이 아들과 남편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글거리던 한낮의 태양이 조금은 수그러들었을 무렵에야 아버지와 아들은 무덤 앞에 마주 앉았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소주를 따라준다. 대견스러운 듯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원 샷하며 아들에게 술을 따라준다.
“간만에 아들이 따라주는 술맛 끝내주네. 꿀맛이야.”
“서울에 계시면 매일 따라드릴 수 있어요.”
“조강지처 놔두고 내가 가긴 어딜 가. 안 그래. 여보?”
“왜 그렇게 고집을 피워요. 홀아비 냄새 지겹지도 않으세요?”
“넌 홀아비 아니고? 둘이 같이 냄새 풍기면 동네방네 진동하겠네.”
“벌써 7년째 세요. 삼년상도 아니고, 이런 산 속에서 혼자 이러시면... 제 입장도 생각해주셔야죠.”
아버지는 잠시 아내의 생전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다. 여전히 젊은 모습 그대로 박제가 되어버린 아내가 그의 콧등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난 여기가 좋다. 네 어미와 오순도순 얘기도 나누고 작은 텃밭도 가꾸고... 여긴 세상 근심이 없어. 내가 원해서 자청한 일이니 그 얘긴 그만하자.”
아버지 정진홍은 더 이상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듯 아들 정신우의 잔에 술잔을 부딪쳤다. 무덤 앞에서 동시에 원 샷 하는 부자의 발아래 아까 깎여 나간 잡초가 바람에 실려 떠내려 왔다.
*
그날 밤, 이곳 폐 공장에는 두꺼운 가빠에 덮인 기계와 집기들이 어둠을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었다. 오래전에는 활기차게 가동됐을 공장이지만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한참은 됐을 법한 풍경이 돼 버렸다. 가빠 틈으로 삐죽 튀어 나온 기계의 모서리는 녹이 슬었고 모습을 가려준 가빠에도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어둠속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헤드라이트 같은 안광을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유유자적하며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고양이에게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이곳이야말로 고양이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안식처인 셈이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달랐다. 어디선가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고양이는 잔뜩 움츠린 채 가장 높은 집기 위로 폴짝 뛰어 올라가 먼지를 뒤집어 쓴 가빠에 몸을 내렸다. 멀리 보이는 뭔가를 집중해서 지켜보는 고양이의 동공이 호기심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음산하게 서 있는 한 남자와 재갈이 채워진 채 의자에 묶인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서 있는 남자는 감정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이지만 묶인 남자는 온통 공포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적막이 흘렀다. 작은 창문 너머로 밤하늘이 보였다.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하늘. 어둠이 엄습한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