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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씨크릿서비스-밀사
작가 : 사오정
작품등록일 : 2019.10.2

전생의 기억을 끌고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몸에는 푸른 점이 새겨져 있다. 국가비밀탐사기관에서 푸른점의 표식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을 찾아 낸다. 그들은 씨크릿서비스( 일명 2s) 팀을 꾸리고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 대한제국시절 황제의 밀사들을 소환해낸다. 전생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보물을 찾으러가는 험난한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처절한 삶의 역사와 파노라마를 그린다.

 
스카우팅
작성일 : 19-10-07 00:09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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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살짝 끼는 듯한 슈트 차림에 케쥬얼 구두를 신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리듬을 타듯 경쾌하다. 걷는다기보다 스텝을 밟는다는 느낌이다. 남자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강 차리를 발견하고는 당장이라도 끌어안을 것처럼 좋아 죽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왔노라, 이겼노라, 두 팔을 벌려 환호를 외칠 지경이다. 경영은 자신이 대견한 것이다.

  어제 강 차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저 강 차리라고 하는데요.

  -강 차리 씨? 강 차리 씨라......

  경영이 강 차리를 모를 리가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강 차리, 사무실에 나가서도 온통 강 차리 얘기, 밥을 먹을 때도 강 차리, 잠들기 전에도 강 차리. 어떻게 하면 강 차리를 이곳에 데려올 것인가. 그 생각뿐인 경영이다. 그런데 왜 강 차리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튕기듯 기억이 가물가물한 척을 했는지는 경영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인간사에 흔히 있는 밀당이라고 해두자.

  -아.. <장예원>에서 일하시는 강 차리씨?

  <장예원>에서 일하지 않는 다른 강 차리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무슨 일이신가요?

  -한 번 만났으면 해서요.

  그래서 다음 날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새 차리는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성숙해진 느낌이다. 당연하다. 자신의 존재가 특별하다는 것, 그것도 아주 많이, 그것을 알아차리게 된 사람이 맨 정신으로 버티기는 힘든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에서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왜 다른가 등등 질문이 폭포처럼 터져 나올 터. 진공에 갇힌 것이다. 이제껏 살아온 삶과 작별해야 하는 블랙아웃, 버퍼링을 통과하여 재부팅을 기다리는 시점. 어찌 보면 황홀한 순간이라고 경영은 생각한다.

  커피 전문점 창가 자리에 앉은 경영과 차리, 누가 보면 소개팅을 하러 나온 커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둘은 말이 없다. 경영은 오늘 끝장을 보려 하고 차리는 진실을 알고자 한다.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말들의 숲을 건너 말을 골라내고 있다. 진동벨이 울려서 경영이 일어나 음료를 가지고 왔다.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차리가 입을 연다.

  -제 팔에 점이 있는 건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신체 검사 기록에서 저희가 찾아냈죠.

  -누가 저를? 말씀하시는 그 저희가 어디인가요?

  -국가 기관이라고 해두죠.

  -국가가 왜 그런 걸 하는 거죠?

  -국가란 게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죠.

  -오래 전이라면 그게 언제죠?

  -2007년이니까 십 년도 훨씬 지났네요.

  -그때부터 국가가 저를 조사를 했다고요?

  경영이 어깨를 들어 올려 긍정의 제스쳐를 한다. 차리는 놀라서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그런데 왜 지금 저를 찾아오신 거죠?

  -성인이 되기 전에는 접촉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전 벌써 한참 전에 성인이 되었는데.

  -강 차리 씨에 대한 확신이 최근에 끝났어요.

  -그럼 저를 계속 누군가가 따라다녔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고 해야겠죠?

  -누가요?

  -그건 차차 아시게 될 거에요.

  -그럼 윤 경영 씨도 저랑 같은 <그 사람>인가 뭔가... 그런 건가요?

  -네.

  -제가 전생을 기억한다는 게 확실한 건가요?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만약 그게 아니면요.

  -글세요, 아직 만약에 아닌 경우가 일어나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이걸 제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차리 씨. 제가 신을 믿으라고 전도를 하는 게 아니란 걸 아셔야 해요.

  경영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우리는 전생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것은 증명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으니까요. 인간이 죽으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다시 환생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시스템의 돌연변이 같은 거에요. 인간이 죽으면 육체와 느낌들은 사라지고 알맹이만 남게 되지요. 보통 <혼>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식>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몇 단계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레테의 강이라는 곳에 도달하는데 아주 극소수가 그 강에서 길을 헤매거나 혹은 에너지의 변이가 일어나지요. 사람이 엄마 배 속에서 열 달을 채운 후에 세상에 나오듯이 인간도 죽으면 그 영혼이 어느 정도의 기간을 걸쳐서 저 세상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우리는 그 기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너무 빨리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게 된 겁니다. 인간으로 치자면 팔삭둥이 같은 경우라고 이해하면 될 거에요. 그러는 과정에서 표식처럼 우리 몸에 푸른 점이 생성되는 겁니다.

 

  -좋아요. 전생을 기억한다고 쳐요. 저 같은 사람을 찾아내서 뭘 하려는 거죠? 국가가?

  -우리의 기억을 뒤져서 과거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겁니다. 기록되지 못한 채 숨겨진 역사를 정정하는 작업이죠.

  -제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요? 저는 알고 있는 게 없는데요.

  -이제 기억해내게 될 겁니다.

  -그럼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둬야 하는 건가요?

  -강제 사항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마 그만 두시고 싶어질 거에요.

  -전 요리사가 되고 싶은데요.

  -본인이 결정하실 문제에요.

  -제가 과거에 누구였는지 알 수 있다는 거죠?

  -궁금하죠?

  -......

  -그럼 어디를 가실까요?

  -어디를 가는데요?

  -강 차리 씨의 과거를 만나러 가야죠. 한 번 보자고요. 차리 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차리는 경영을 따라 일어났다. 무엇에 홀린 기분이다. 홀려도 제대로 홀린 것이다. 내가 나를 만나러 간다는 이 어의 없는 상황. 차리는 제 심장이 팔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심장이 뛰다 못해 뼈와 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널뛰는 심장에 손을 대어 어루만진다.

 

  윤 경영이 운전하는 차는 정동에 있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3층짜리 건물에 <국립 문헌 정보 연구원>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건물이 말해주고 있다. 적어도 사기는 아니다, 뭐가 있을 수 있다, 고. 현판이 주는 신뢰도 때문일까. 비장함 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차리는 국가가 일개 시민을 상대로 뻘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듭 되뇌인다.

  출입증을 내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경영,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려서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측정관>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문에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경영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어서 와, 이 분이신가? 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관장 박 태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반가워요. 박 태영이라고 해요. 강 차리 씨?

  -네. 강 차리입니다.

  (내 이름을 이미 알고 있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들이 일어난 거지?)

  -차 줄까?

  -아니요, 전 괜찮아요. 차리 씨 뭐 드실래요?

  -아니요.

  (내가 지금 차를 마실 기분이 아니다. 빨리 하라고, 빨리.)

  -강 차리 씨, 이제 저 방에 들어가셔서 편히 앉아요. 내가 여기서 말을 하면 저 안에서도 들리니까 제가 하라는 대로 하시면 돼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글세요. 사람마다 달라서.

  -제가 안 깨어나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걱정 마세요. 마취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에요. 꿈을 꾸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한 가지 주의할 게 있는데 그만하고 싶어지면 감추지 말고 말해야 해요.

  -말 안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차리 씨가 힘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강 차리 씨, 저도 해 봤잖아요.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보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돼요. 딱 그 느낌이더라고요.

  차리는 그래도 몇 번 얼굴을 봤다고 윤 경영의 말에 위안을 받는 것이다. 영화를 본다, 마음에 드는 말이다. 도대체 저 방 안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자, 그럼 들어가 볼까요?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차리는 박 태영 선생이 말한대로 문을 연다. 방에 덩그러니 소파가 하나 있고 옆에 작은 테이블이 있다. 한 손에 문고리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차리, 경영과 박 태영 선생이 눈으로 차리를 배웅한다. 경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 하고 외쳤다. 차리는 크게 숨을 고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소파에 앉는다. 흔히 볼수 있는 소파가 아니다. 소파에 몸이 감기는 듯 하달까. 이내 들리는 박 태영 선생의 목소리.

  -강 차리 씨, 옆에 테이블위에 물이 있죠? 우선 그걸 한 모금 마셔요. 그리고 의자 옆에 보면 해드셋 같은 게 있죠. 그걸 끼세요. 이제 조명등만 하나 켤 거에요. 혹시 졸음이 오면 잠을 자도 괜찮아요.

  조명등만 희미한 방, 차리의 눈에 스크린 화면이 펼쳐진다. 영상은 없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내가 누구였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는 건가.)

  그 때 <측정관>으로 누가 들어왔다. 김 치호 부장이다.

  -드디어 시작인가? 축하해. 윤 경영.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박 선생은 컴퓨터처럼 생긴 기계를 조작하고 있고 경영과 김 치호 부장은 그 옆에 서서 유리를 통해 차리가 있는 방을 보고 있다. 차리가 있는 방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는다. 김 치호가 팔짱을 끼고 서서 말을 한다.

  -대한제국 때 고종 황제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설마 고종은 아니겠죠?

  -그럼 게임 끝이지.

  -강 차리 씨, 지금 누구랑 같이 있나요? 사람들이 보이지 않나요?

  -잘 모르겠어요.

  박 선생이 차리에게 마시라고 한 물은 그냥 물이 아니다. 일종의 최면처럼 차리의 뇌를 이물질 없는 맑은 공간으로 세팅하게 하는 일종의 클리너 같은 약물이다. 기억의 심장으로 깊게 들어가게 하는 문을 열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박 선생이 컨트롤하는 기계는 차리가 머리에 낀 헤드셋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차리가 불러내는 전생의 기록이 스크린 화면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스크린 화면을 통해 차리의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리의 맞은 편 스크린에 영상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박 태영 선생이 다시 묻는다.

  -강 차리씨, 누구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요.

  차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제 그녀는 과거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그 시절, 대한제국 궁월의 전경

  -앗, 강 차리, 고종의 궁녀였네요. 수라간 나인.

  -이쪽에 와서까지 요리를 하고 있는거네.

  -불의 고리, 우리가 찾는 불의 고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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