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대체 어떤 얼굴이 진짜지?
“……! 너, 뭐 좋은 일 있냐?”
“…….”
이경의 말에도 경하는 아무 말 없었다.
그저 쓰레기통을 비우느라 정신없는 아줌마만 응시할 뿐.
‘역시 그녀인가? 대체, 어떤 얼굴이 진짜지?’
경하는 아줌마를 보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뭐야, 저 녀석? 두 번이나 싱겁게 웃게.’
웃는 것과는 거리가 먼 녀석이 저리 웃으니. 이경은 그가 무척 낯설었다.
그래도 화난 표정보단 낫다고 생각할 때쯤, 이경은 경하의 눈이 누군가를 쫓는 걸 느꼈다.
“너, 나 보러 온 거 아냐?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
이경은 자기 보러 와선 계속 딴 곳 쳐다보는 경하가 영 못마땅해 한소리 했다.
어딜 가나 주의를 끄는 외모인 데다 집안까지 좋아서 이경은 늘 황태자급 대접을 받았다.
항상 누군가에게 대접받아서일까.
그는 대접을 제대로 못 받으면 은근히 스트레스받았다.
그래도 늘 경하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기에 요즘은 그러려니 했더랬다.
근데, 오늘 이 녀석이 도가 지나쳤다.
예전엔 대화할 때 적어도 눈도 맞추고, 질문하면 대답하던 녀석이 병실에 들어와선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가 막혔다.
‘서경하! 저게 진짜. 하-!’
사람이 말을 하면 적어도 쳐다봐야 하는 거 아닌가.
경하가 처음 그의 질문에 대답 안 했을 땐, 못 들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네 번이나 물어도 대답 안 한다!
빠지직! 이경의 인내심이 뚝 끊어질 뻔했다.
평소 남들에겐 감정을 잘 숨기던 이경은 제 안의 분노를 삭이느라 있는 힘껏 말아 쥔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성격에 화내지 않은 게 대단했다.
사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도 화낼 만했으니까.
이경은 대체 녀석이 뭘 그렇게 쳐다보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절레절레했다.
‘아냐, 아닐 거야. 아무리 여자가 없기로 서니. 저런 다 늙어빠진 아줌마에게 관심이 있을 리가. 경하가 뭐가 아쉬워서!’
아줌마를 쳐다보는 눈길이 하도 여상스럽지 않아 이경은 경하가 그녀를 좋아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단 1초 만에 사라졌다.
아무리 어리게 봐야 오십 대로 보이는 아줌마를 경하가 좋아할 리가.
“야, 너는 오랜만에 와서 뭘 그렇게 봐?”
“…….”
경하의 묵묵부답에 이경은 화장실로 가는 아줌마를 쳐다봤다.
“……! 아줌마! 잠시만요.”
“……?”
이경의 갑작스런 부름에 화장실로 가던 아줌마가 걸음을 멈췄다.
“서경하! 너 아줌마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냐? 어서 얘기해. 그렇게 계속 쳐다보지 말고.”
“……!”
‘뭐, 나를 계속 쳐다봤어? 왜……?’
“…… 내가 무슨!”
경하와 아줌마는 이경의 뜬금없는 말에 놀라 눈이 커졌다.
“뭐하냐? 빨리 얘기 안 하고.”
“……내가 아줌마에게 할 얘기가 뭐가 있어! 아줌마, 죄송합니다. 볼일 보세요.”
“아,… 예. 그럼.”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꼭 할 말 있는 사람처럼. 게다가 실실 웃어놓곤.”
아줌마는 뒤돌아가려다 그녀도 모르게 그들 대화에 귀 기울였다.
‘……!! 내가 계속 쳐다봤다고, 그것도 웃으면서? 말도 안 돼!’
“…… 그런 거 아냐.”
잠시 당황한 경하는 말 같지 않은 소리라는 듯 심드렁했다.
“그런 거 아니긴!”
“너 심심하냐? 그렇게 심심하면, 지금 당장 퇴……. 음, 어쨌든, 아. 니. 라. 고. 했다!”
경하는 실없는 소리 하려면 당장 퇴원하라고 하려다 사람이 있어 참았다.
그러면서도 눈에 힘주어 아니라는 말을 강조했다.
‘……!’
“그래, 대충 넘어가자. 아줌마! 죄송해요! 얘가 아니라네요.”
이경은 저도 모르게 쭈그러드는 느낌에 뒷목이 확, 당겼다.
예전에도 그랬던 거 같다.
경하가 뭐라 하면 늘 그와 맞지 않았어도 그대로 따랐던 걸 보면.
왜 그랬는진 모르겠다.
지금도 사실 이경이 우위에 있어야 했는데, 말하다 보니 경하에게 눌려버렸다.
화장실로 방향을 튼 아줌마는 이경의 말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줌마는 그들의 대화로 멈췄던 일을 빨리 끝내려 청소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너, 내 담당 의사 맞냐? 내가 여기 입원한 게 벌써 4일짼데, 오늘에서야 얼굴 보이게.”
“……내가 그랬나?”
이번에도 넋 놓고 있던 경하는 그와 눈이 마주친 뒤에야 깨달았다.
그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음을.
‘아, 맞다. 다른 사람 앞에선, 이경이 아픈 척해야 하는 걸 내가 깜빡했네.’
“미안. 그동안 많이 바빴다. 그래, 몸은 좀 어때?”
“보시다시피. 견딜만해. 근데, 너, 밥은 먹었냐? 어떻게 의사가 환자보다 더 기운 없어 보여.”
“…… 내가 기운 없어 보인다고? 아, 그렇기도 하겠다. 아침부터 안 하던 뜀. 박. 질. 을 해서 말이지!”
경하는 친구와 말하면서 화장실에 있는 어떤 이를 더 신경 쓰는 듯했다.
마치 그녀가 듣길 바라는 듯 그의 목소리는 어째 뉘앙스가 묘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좀 더 크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을 천천히 하는 것도 같았다.
물론 그의 노력에도 안에 있던 아줌마는 전혀 반응이 없었지만.
“니가 병원에서 뜀박질을 다 했다고, 별일이네. 너 이제 전문의잖아. 좀 늦었다고 혼날 일도 없을 테고. 수술만 제때 하면야 문제없는 거 아냐?”
“그러게 말이다. 내가 오늘 미. 친. 짓. 하느라 수술실에 늦을 뻔했거든. 아침부터 그렇게 됐다. 나, 간다.”
‘미친 짓’이란 말에 강세를 주는 것도 덤이었다.
“왜 벌써 가게?”
“아, 배가 고파서 더는 못 있겠다.”
“너, 아직 식사도 안 했어?”
“응, 아직 아침도 못 먹었어. 종일 수술에 매달리느라.”
청소하던 아줌마가 다른 말엔 아무 반응 없다가, 아직 아침도 못 먹었다는 말에 멈칫했다.
‘아직 밥도 못 먹었어? 그러게 누구 도울 시간에 밥이나 먹지. 왜 그렇게 방해했데? 아, 고소한 냄새가 나네.’
생각은 고소하다면서 하는 행동은 꽤 마음에 안 드는 듯 바닥을 솔로 미는 손이 거칠었다.
이경도 그가 여태껏 굶었다는 말에 불쌍한지 잘생긴 미간을 좁혔다.
“너도 고생이 많다. 가자, 밥 먹으러.”
“…….”
“서경하! 뭐해? 안 가?”
“……어? 뭘?”
“밥 먹자니까!”
이경과 대화하는 중에도 경하는 계속 한 템포 늦게 대답했다.
뭔가를 쳐다보느라 눈치껏 대답했다고 할까.
“……아, 너, 식사 안 했어? 여기 VVIP 병실이라 음식이 호텔식으로 나올 텐데.”
“그래, 다른 곳보단 식사가 잘 나오는 편이지. 그건 인정. 근데, 그것도 계속 먹으니까 좀 물리더라. 그래서 조금 먹었더니 지금 배고프다.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어,… 어, 그래. 가자. 배가 고파서 지금은 돌도 씹어먹겠다.”
이경에게 대답하면서도 경하는 한 번씩 화장실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래?’
“야, 너 화장실에 볼일 있냐?”
“아니,… 볼일은 무슨.”
“근데, 왜 자꾸 화장실 쳐다봐?”
이경의 말에 화장실에 있던 아줌마의 얼굴엔 의아한 빛이 확연했다.
‘왜?’
당황한 경하가 정색하며 답했다.
“내가 언제!?”
‘내가 그렇게 화장실을 쳐다봤다고?’
“정말,… 아냐? 지금도 계속 쳐다보네. 화장실이 그렇게 급하면 빨리 들어가.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아… 냐. 그런 거.”
그의 눈치를 보던 이경은 기다란 다리로 터벅터벅 걸어가,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
정말 열심히 치웠다, 당분간 화장실 물청소를 안 해도 될 만큼.
그들 대화를 들으며 아줌마는 화장실 청소를 마무리했다.
이제 본격적인 일을 할 때였다.
구부렸던 허리를 펴 스트레칭한 그녀는 작은 도청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변기 뒤쪽으로 깊숙이 도청기를 밀어붙이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악, 깜짝이야!’
이경의 돌발 행동에 그녀가 비명 지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쪼그려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그녀의 당황한 표정을 들킬 뻔했다.
아줌마는 자연스레 일어나며 요란하게 춤추던 동공을 갈무리했다.
“……무슨 일?”
그녀는 일부러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였다.
“아줌마! 아직 멀었어요? 저 친구가 급한 거….”
“……!”
“아… 아닙니다. 친구가 장난쳤어요. 내가 자기 얘기 제대로 안 들어준다고.”
당황한 경하가 급히 이경의 입을 가리며 말을 가로챘다.
“……이제, 다… 했어요. 어서, 화장실, 쓰세요!”
‘……!’
아줌마는 경하를 힐끗 쳐다보곤 급히 청소 도구를 챙겨 나왔다.
마치 화장실에 볼일 있는 경하를 위한 것 같아 그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물론 그녀는 전혀 그런 배려 따윈 생각도 안 했다.
그저 그곳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 다른 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녀가 나오자 뒤따라 나온 이경과 경하.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고, 아줌마는 청소 도구를 갖다 두러 갔다.
“잠시만, 이경아! 간호사실에 가서 뭐 좀 부탁하고 올게.”
“그래, 나는 1층에서 기다린다.”
경하는 이경과 헤어진 뒤 급히 비상구로 달려갔다.
다다다
비상구 계단으로 온 경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에
인상을 구겼다.
“참 피곤하게 사네. 그나저나 내가 왜 신경을 써? 어차피 저 여자는 소율이 아닌데.”
경하는 아쉬운 듯 혼잣말하며 뒤돌아섰다.
어느덧 그의 눈엔 그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슬픔이 젖은 듯도 했다.
1층으로 내려온 아줌마 복장이 또다시 바뀌었다.
유일하게 같은 건 배낭. 흰색 배낭만 같았다.
어느새 여고생으로 변장한 그녀가 경하와 이경을 뒤쫓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을 쫓는 다른 무리가 있음을 확인한 그녀는 포기하고 딴 곳으로 갔다.
대체 그녀는 왜 이경의 주변을 서성일까?
그것도 병적으로 쫓는 그녀.
스토커도 이보다 더한 스토커는 없을 듯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VIP 병실에 온 경하가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너는 언제 퇴원하냐?”
“왜?”
“건강 검진 결과, 너는 아주 건강해. 병원에 있을 필요도 없고. 요즘 그 검사도, 네가 입원했다니까 아무런 조치도 안 하잖아. 이만 퇴원하지.”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안 돼. 공식적으로 과로가 누적돼서 입원한 건데. 너무 빨리 퇴원하면 꾀병이라며 대중의 질타를 받을 거다.”
“그걸 아는 놈이 이러고 있어! 그래서 얼마나 더 있게?”
“일주일만 더 있다가 퇴원할게. 근데, 너는 왜 자꾸 나를 쫓아내려 하냐?”
“그거야 뭐, 네가 워낙 유별을 떨고 있으니까 그러지. 심심하면 누구 찾는다며 경호원을 풀어서 뛰어다니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니. 다른 환자들이 불편해하잖아.”
이경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지 할 말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조심시킬게.”
“그래, 꼭 좀, 부탁하자.”
경하가 병실을 나가고, 혼자 남게 된 이경의 표정이 순간 돌변했다.
‘대체 어떻게 하길래, 요란만 떨고 있어? 이것들을 그냥!’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그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경은 노기를 억지로 누르며 검색 키를 신경질적으로 타다탁, 두드렸다.
그래도 화가 풀리 않아 무릎에 있던 노트북을 바닥에 세게 내팽개쳤다.
쿠당탕!
복도에 대기 중이던 경호원이 깜짝 놀라 병실로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바닥에 떨어진 노트북을 주워 올리며, 이경의 상태를 살피던 경호원이 물었다.
“이런, 어쩌죠? 나는 괜찮은데, 노트북이 저렇게 되었네요. 실수로 그만 노트북을 떨어뜨려서. 내가 괜히 불편하게 했습니다.”
얼른 표정을 바꾼 이경이 가증스레 얼굴 가득 미안함을 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