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
사내의 눈엔 초점이 하나도 없었다.
피범벅이 된 손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망설이던 사내는 무릎을 굽혀 앉은 경찰의 질문에 힘겹게 대답하는 듯했다.
눈이 마주친 사내는 소율을 보더니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경하 씨! 미안하지만, 소율이 좀 부탁해! 여긴 상황이 좀, 소율이 보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갔으리라 생각한 이가 소율의 앞을 막아섰다.
갑자기 막아선 키 큰 사내의 행동에 소율은 당황해서 그를 올려다봤다.
경하였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안쪽에 있던 사내의 말에 소율을 지키려는 듯했다.
그제야 좀 전에 봤던 어떤 상황이 소율의 머리에서 정리되었다.
그래, 경하에게 말했던 이는 아빠였다.
그리고…… 아빠가 앉아 있던 그 앞에 있던 피 묻은 그것은 분명 피해자의 것이었다.
두려움에 손이 떨렸다.
그저 아빠를 찾겠다는 마음에 미처 보지 못했던 그것이, 사람의 그것이라 생각하니.
온몸에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머리에서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소율은 그대로 쓰러졌다.
소율이 의식을 막 차렸을 때, 뉴스에서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로얄 호텔에서 여성 바이올리니스트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오늘 오후 3시 30분경 SG 그룹의 아들 김모 씨의 생일 파티가 끝난 뒤, 행사를 정리하던 직원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SG그룹의 모 과장이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뉴스를 접한 소율은 깜짝 놀랐다.
‘현장에 있던 SG 그룹의 모 과장이라면, 아빠?’
환자복을 입고 있던 소율은 팔에 꽂힌 링거 줄을 급히 뽑아내곤 그대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소율이 있던 병실로 온 경하는 있어야 할 그녀가 없어 당황했다.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환자 병상에 있던 메모지를 확인했다.
<아저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 인사도 못 하고 가요. 병원비는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갚겠습니다.
이소율 올림>
‘전엔 미친놈이라더니, 이젠 아저씨? 그나저나 많이 힘들겠네. 어쩌냐, 이소율!’
메모지를 읽은 경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율을 만난 지 겨우 몇 시간 밖에 안 되었건만, 그녀의 최악의 상황을 봐서 그럴까?
계속 마음이 쓰였더랬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법정에서 이 과장을 3시 이후로 만난 사람이라 진술하기 위해 갔을 때였다.
진술하면서도 경하는 수시로 소율을 살폈다.
‘괜찮나? 얼굴이 많이 창백한데.’
그녀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저 나이에 저런 침착함은 어디서 왔는지.
형이 확정되던 순간, 소율은 그대로 법정을 나가버렸다.
뒤따라 나온 경하는 복도 끝 구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소녀를 봤다.
천천히 다가가던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소율이 안타까웠다.
침착한 게 아니었다. 그저 참고 있었을 뿐.
하긴 어찌 침착할 수 있을까? 아빠가 그리되었는데.
경하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저리 우는 모습에 말하고 싶었다.
참지 말라고. 그리 말하고 싶은데, 말하자니 뭐했다.
그래서 못 본 척 뒤돌아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가던 그는 다음 계단을 내려가려다 다시 올라갔다.
다다다!
복도 끝으로 온 경하는 여직 숨죽여 우는 그녀가 속상했다.
“참지 마.”
“…….”
“참지 말라고!”
소율은 하늘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달래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얼른 눈물을 거칠게 훔쳤다.
그리곤 시선을 바닥으로 둔 채 경하를 지나쳐 딴 곳으로 가려 했다.
그녀가 막 그를 지나칠 때쯤, 커다란 손이 소율의 손목을 잡았다.
“참지 마! 너, 그러다 병 생겨. 울고 싶을 땐, 우는 거야. 나이도 어리면서 어른인 척 굴지 말고. 혹시 어깨가 필요하면 그 어깨, 빌려줄 수도 있어.”
“……!”
소율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곤 커다란 손을 제 손에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경하는 소율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저씨가, 왜 어깨를 빌려줘요?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이 손, 놓죠.”
목소리가 잠긴 그녀는 방금까지 운 적 없던 것처럼 건조하게 말했다.
“내 말은, 아, 아니다. 병원비는 안 갚아도 돼. 어차피 한 번은 도왔어야 하잖아. 그때 그 코, 때문이라도.”
“……. 그건, 갚….”
“아니, 안 갚아도 돼. 혹여라도 나중에 그 코, 탈이라도 나면. 괜히 문제 만들기 싫으니까. 퉁친 걸로 하자. 됐다. 나, 간다.”
경하는 까칠해진 소율의 손에 손수건을 건네주곤 뒤돌아섰다.
그녀식으로 말하길 잘 한 것 같다.
친절하게 말했으면 소율은 분명 또 거절했을 터였다.
법정에서의 만남을 끝으로 소율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이 과장에 대한 건 기억에서 잊혀 갔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강한 인상을 줬던 소녀에 대한 건, 그 후로도 가끔 생각났다.
머리가 맑아지는 향과 빠져드는 눈빛이.
*
그로부터 8년 뒤, 출근하던 경하는 인상을 팍 구겼다.
대체 무슨 일일까?
가빈 종합 병원 입구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장비를 체크 하며 기다리던 이들은 오지 않는 이를 애타게 기다렸다.
“왜 이렇게 안 와, 정보가 잘못된 거 아냐?”
답답함에 담배를 피우려던 기자는 병원임을 자각하곤 다시 집어넣었다.
그때 기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곧이어 검은 차 행렬이 병원 입구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 차라 기자들은 급히 차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네, 이제 막 SG 그룹, 김이경 씨 차량으로 예상되는 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김이경 씨는 내일 SG 그룹 뇌물수수 관련 참고인 조사가 예정되었으나, 오늘 갑자기 가빈 종합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리포터의 멘트와 함께 긴장되는 취재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차량 문이 열리고 다수의 경호원이 기자들을 막았다.
잠시 뒤 한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며 이경이 내렸다.
유명 모델의 런웨이가 연상되는 듯한 그의 외모와 슈트발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김이경 씨! 내일 참고인 조사가 예정되었는데, 병원엔 무슨 일입니까?”
“…….”
“이경 씨! 말씀해주시죠!”
“…….”
기자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며 이경을 막아서자 경호원들이 강하게 저지했다.
이경의 걸음에 맞춰 다수의 사람이 그를 에워싸고 함께 이동하는 형국이 되었다.
“혹시 뇌물수수와 직접 연관돼서 입원하시는 건 아닙니까!?”
“……!”
이경은 기자들 질문 공세를 무시한 채 그대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이 집요하게 이경을 따라붙었으나 그들은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기자들이 못다 한 취재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경호원들이 막았다.
“여긴 병원입니다. 더는 취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취재한 게 없습니다! 정보 좀 주시죠.”
“저희는 아는 게 없습니다.”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으려 경호원들과 몸싸움도 불사했건만. 얻은 게 없어 다들 죽을상이었다.
“아, 정말 갑갑하게 구네. SG그룹만 아니면 진짜. 아! 이 짓도 못하겠다.”
“자기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어째 한마디를 안 해!”
병원 입구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도 어느 것 하나 알아낸 게 없던 기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며 돌아갔다.
VVIP 병실.
경하는 팔짱을 낀 채 입원한 이경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너는 아무 증상도 없는데 병원엔 왜 왔냐?”
“증상이 없기는. 마음이 아프다. 쓸데없는 소문 때문에.”
“소문이 이유 없이 나냐? 너, 기자들 말대로 뇌물수수에 직접 연관돼서 도망왔지.”
“하, 말하는 꼴 봐라. 너 기자나 하지 왜 의사했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뇌물 주는데! 그 검사가 괜히 유명세 타고 싶어서 나를 들쑤시지. 그 성질 사나운 검사 때문에 내가, 이 나이에 심장이 다 아프다. 윽!”
경하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이경이 답답한 듯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부러 아픈 티를 팍팍 냈으나 돌아오는 말은 여전히 차가웠다.
“검사가 할 일 없냐? 유명해지려고 SG 그룹 후계자를 건들게.”
“그러니까 웃기지. 갑자기 공문서 보내곤 참고인 조사한다며 나오라니. 이게 말이 되냐?”
“그럼, 그냥 참고인 조사받으면 되지. 뭘 그래? 피의자로 부른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귀찮으니까 그렇지.”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환자 노릇하는 게 더 힘들겠다.”
“야, 조사받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데. 이참에 여기서 잠이나 실컷 자고 가야겠다. 건강 검진도 받고.”
“조사받는 게 뭐가 힘들어서.”
“모르면 가만히 있어.”
‘조사 들어가면…. 아, 이게 다 그 녀석이, 일을 그따위로 처리해서.’
경하는 미간을 찡그리는 이경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 찔리는 게 있나? 아니면, 조사받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알았어. 특별한 게 나올 것도 없겠지만, 건강 검진하는 것도 좋겠지. 너는 의사 필요 없으니까, 혼자서 검사받아. 결과는 내가 천천히 볼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경하가 마지못해 허락하려니 말이 절로 딱딱했다.
“야, 그래도 명색이 환잔데, 담당 의사가 누군지는 정해야지.”
“이미 정해졌잖아. 나 아니면, 누가 하냐? 너 같은 나이롱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맡기기도 부끄럽다.”
“너도 참,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지.”
경하는 이경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안 했다. 그저 옅은 웃음만 흘릴 뿐.
“아, 혹시 기자나 다른 사람이 물으면, 당분간 요양이 꼭 필요하다 해라. 나는 여기서 일할 거니까. 그 정돈, 해 줄 수 있지?”
“그러던지. 근데 나 바쁘니까 자주 올 수 없다. 시간 나면 아주 가끔 올 거야. 너무 서운해하진 마라.”
못마땅한 듯 건성으로 대답하는 경하의 태도에 이경은 욱하는 성질이 나올 뻔했다.
‘저 성질머리하고는! 하여튼 저게, 아는 집안만 아니면, 내가 상대도 안 하는데. 내 주변에 저 녀석만, 내게 저런 식이지.’
“그래라. 대신 퇴원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다.”
경하의 불퉁한 태도에도 그답지 않게 대충 넘어갔다.
“여기가 놀이터냐?”
“어차피 상관없잖아. 비는 병실 내가 쓰면, 병원에 더 좋은 거 아냐? VVIP 하루 병실료가 얼만데. 게다가 너희 병원은 더 많이 받잖아.”
“그래, 맞는 말이다. 너처럼 돈 많은 애는 이런 곳에라도 실컷 써야지. 경제가 팍팍, 돌아가지. 안 그래?”
“그 녀석! 참!”
경하의 반복된 불손한 태도에 이경의 눈빛이 사나워졌다가
이내 부드러워졌다.
삐비비 삐비비
호출 신호를 받은 경하가 아무 말 없이 나가려다 뒤돌아섰다.
“이경아! 너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서 뛰어다니진 마라. 환자 노릇 제대로 하려거든. 나, 간다.”
병실에서 나온 경하는 저를 보는 눈빛에 다소 불편했다.
경호원들은 그저 저들 일 할 뿐인데도, 당하는 입장은 괜히 몸이 움츠러든달까.
예리하게 사람을 훑어보는 그들 습관 때문이리라.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허투루 보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참! 별나게 군다. 경호원이 왜 이렇게 많아? 하긴 저 녀석, 예전부터 그랬지.’
이경과의 첫 만남이 생각난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걸었다.
*
다수의 경호원이 지키고 있는 병실 앞, 환자복을 입은 노인이 다리를 절며 걸어갔다.
잠시 뒤, 조금 전에 지나갔던 노인이 코너를 돌아 다시 오고 있었다.
그녀가 그러길 몇 분이 지났을까.
경호원들은 그녀가 단순히 산책하는 거라 여겼다.
처음 그녀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봤건만.
어느 순간 그들은 그녀와 눈인사를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녀가 그곳을 한 서른 바퀴 돌았을까?
경호원들은 그녀가 지나가도 거리낌 없이 저들끼리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든 노인이 귀가 어두운 건 당연할 터.
그들은 그녀 존재를 배제하곤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얘기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 앞을 지나가던 할머니는 다리가 아픈지 잠시 한 자리에 서서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경호원들 근처에 있자 경호원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여기 계시면 안 돼요.”
그의 말에도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주무르라 경호원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할머니! 여기 계시면….”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는 경호원이 그녀 어깨에 손을 올리자 깜짝 놀란 눈으로 소리쳤다.
“엄마야! 니 뭐꼬?”
그녀 반응에 당황한 경호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으? 뭐라꼬?”
말이 안 들리는지 할머니는 귀까지 후비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할머니!! 여기! 있으면 안 돼요!!”
경호원이 하는 말을 안에 있던 이경이 들을 정도였으나 할머니는 전혀 안 들리는 듯했다.
앞에 있던 사내의 입 모양을 유심이 들여다보던 할머니는 온갖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니가 암만 그케도, 안 들린다! 보청기를 저 두고 와서. 에고, 다리야!”
경호원은 할머니의 말에 포기하고 그대로 가버렸다.
병실 앞에 있던 경호원들도 그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은 탓에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하긴 안 들린다는데 달리 뭐랄까.
방금까지만 해도 할머니를 의식해서 조심하던 이들이 이젠 꽤 자유롭게 소문을 언급했다.
“그 소문이 사실일까? 정치가에게 뇌물을 줬다는 게.”
“글쎄.”
“그나저나 쇼핑몰에서 밀어주던 쇼호스트는 갑자기 왜 안 나온대?”
“뭐,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데?”
“내 동생이 거기 물건 담당이거든. 방송 하루 전에 사라져서 연락도 안 된다고 난리 났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그렇게 잘나가던 쇼호스트가 왜 그래? 책임감도 없이.”
“그러게 말야.”
옆에서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곤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