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슬퍼하지 마… 우리는 끝이 아니야.」
“반장아! 마치자. 모두들 점심 맛있게 먹어라.” 선생님의 말씀이 교실에 울려 펴지는 지금은 4교시가 마친 점심시간이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리와 정혜는 준혁이랑 세민이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가고, 밥을 먹고 나서는 잠시 쉬다가 5교시를 준비하니까 말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수업에 집중한다. 아리네 반은 국사 시간, 준혁이네 반은 영어 시간이다. 아리네 반에서는 늘 그렇듯, 효진이와 정혜, 국사트리오만이 국사 시간을 버텨나갔다. 그러나 오늘 선생님께서는 특별한 숙제를 내주셨다. “혹시 여기서 장래희망이 국사 선생님인 애들 있으면 손들어봐~” 그러자 국사트리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의 특별한 숙제는 국사트리오에게만 내셨기 때문에 특별한 숙제라 불렸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번 주 토요일까지 경주에 가서 신라의 문화들 중에서 두 곳을 가본 뒤에 그 느낀 점을 적어서 선생님한테 일요일까지 제출할 수 있도록!” 내일은 학교 사정상 4교시만 하고 마치는 날이라 하루 자율학습을 빼주겠다는 뜻도 같이 포함되어 있는 말씀이셨다. 그래서 국사트리오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네! 최대한 많이 느껴보고 적어서 제출하겠습니다. 선생님.”
국사트리오에게도 경주는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1순위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었더라면 불만을 터뜨릴 법도 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느끼고, 신라의 역사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돌아오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5교시 수업도 그 ‘특별한 숙제’와 함께 끝이 난다. 정혜는 어제, 준혁이로부터 아리에 대한 이벤트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아리는 야간자율학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꼭 자신이 준혁이에게 선물이라도 받는 것처럼 왠지 모르게 설렌다. 이래서 상상은 자유라고 하는 말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리에게 준혁이가 데이트하자는 이야기를 아직 꺼내지 않았나보다. 아리는 오히려 정혜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 “정혜야~ 오늘 야자하고 갈 거지? 하고 같이 집에 갈래?” 정혜는 당혹스러웠다. 준혁이가 설마 깜짝 데이트를 하려고 아직 말하지 않은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응…? 응… 알았어. 그런데 오늘은 약속 없어?” 아리를 떠보기 위해 정혜는 위 질문을 날렸다. “아니? 아직 별 약속 없는데?”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에, 준혁이에게서 톡 한통이 왔다. [자기야~ 오늘 나 자기랑 데이트할거야. 그러니 마치고 자기반에 꼼짝 말고 있어!]라고. 상남자도 아닌데 상남자인 마냥 강하게 밀어붙이는 준혁의 톡 내용을 보며 아리는 씩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답장을 날린다. [난 오늘~ 야자하고 가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하지 마?~] 그러자 바로 칼 같이 답이 온다. [안 돼~! 오늘 자기랑 하고 싶은 게 있단 말이야~] 참… 이렇게 톡으로 희희낙락거릴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전교 1등은 아니더라도 10등 안에는 들었을 텐데…
그래서 아리는 답을 날렸다. [응! 그럼 6교시 마치면 ~ 우리 반으로 날아와~ 나 그럼 자기 기다린다?~ 그럼 이만 뿅] 그리고는 정혜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이 표정을 지어보이던 아리는 다시 대화를 나눈다.
“오늘 약속이… 생겨버렸네. 어쩌지… 오늘 준혁이가 꼭 봐야겠다고 보자 그러는데? 내일부터 같이 야자하면서 공부하면 안 될까? 내일부터는 하루도 안 빠지고 수능 날까지 공부만 할 것을 약속할게.” “으이그~ 알았어! 내일부터는 그럼 수능 칠 때까지 너랑 나랑 하루 빠져야 할 때마다 5,000원 벌금 걸자. 그 돈으로 수능 끝나고 나서 맛있는 거 사먹으러 가면 되잖아.” “아하하하…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응! 우리에게는 수능시험까지 1년이라는 시간 밖에 남지 않았어. 그래서 이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망치고 말거야. 알았지?! 어서 사인해~” 각서까지 써서 들이밀더니, 아리가 굳은 표정으로 사인을 하자, 장래희망이 변호사인 반 친구에게 그 각서를 수능시험 날까지 보관해줄 것을 부탁하기까지 한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6교시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은 물리 시간이다. 점차 가면 갈수록 물리라는 과목은 어려움을 더해만 갔다. 국어나 사회에 더욱 열의를 보이는 문과 친구들은 물리라는 과목을 공부할 때 오로지 성적을 1점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리도 물리에는 관심이 없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반면, 정혜는 과목에 흥미가 있든, 없든 졸지 않고 또 다시 모범생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6교시가 끝났기 직전에는 정혜와 효진이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선생님의 목소리에 수면제라도 탄 듯이, 졸아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던지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이 5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반장에게 말씀하신다. “반장아! 너도 자니?! 일어나라. 인사하고 마치자!” 그러자 반장인 혜진이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더니,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대망의 물리 시간이 끝이 났다. 사실 그러한 현상은 준혁이네 반도 마찬가지였다. 준혁이네 반은 수학 시간이었는데 나날이 어려워져만 가는 고통에 아이들은 모두 인상을 쓴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니 말이다. 겨울이라 학교에서는 따뜻한 난방 시스템까지 가동을 시켜주니 솔직히, 지루할법한 과목에서는 안 졸고 버티기란 힘들긴 했다. 이제 수업을 마쳤으니 곧 준혁이가 자신에게 날아오듯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리는, 자리에 앉아 교양 있는 척 포즈를 취하며 그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준혁이는 아리네 반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아리에게로 점점 다가간다.
아리는 우연히 발견한 척 연기를 펼치더니 준혁이랑 대화를 하면서 반에서 운동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어제는 학교에 가방을 두고 갔지만, 오늘은 그런 실수 따위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듯이, 가방을 둘러메고 걸어 나갔다. 가면서 정혜에게 가보겠다는 윙크도 날린다. “자기야~ 나, 자기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이긍… 우리 자기 나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참았어욤?” 닭살스러움이 정말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만 같다. “겨우 참았지~ 그나저나 오늘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 있어~ 6시 50분쯤에 내가 자기네 집 앞으로 갈게~” “응? 6시 50분에? 지금 바로 어디 안 가구?” “응! 오늘은 그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왠지 그런 느낌이 드네.” “에이~ 뭐야~ 난 바로 데이트할 줄 알고 머리도 좀 더 예쁘게 거울 보면서 다듬었는데… 치~” “나중에 정말 실망하게 안할 테니까 오늘은 일단 내 말 듣고 집으로 가 있어요!~ 우리 자기님. 알았죠?” “칫~ 알았어! 실망하게 하기만 해봐! 데이트 코스 오늘은 자기가 다 짜! 재미없으면 나 바로 삐질 거야~ 지금 나 집에 가 있을게~ 아… 집에 가면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더 예쁘게 보이고 싶어지는데~” 궁시렁궁시렁 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리를 보며, 그 모습마저 귀여운지 오빠미소를 짓더니 이내 어디론가로 뛰어간다.
준혁이가 들린 곳은 향수를 파는 가게였다. 어젯밤, 편지와 장비꽃다발은 준비해둔 터라 향수만 사서 예쁘게 포장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준혁이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혹시, [람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라는 향수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그러자 종업원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샘플도 있는데 저희가 냄새 맡아보실 수 있도록 뿌려드리겠습니다. 고객님.” 살짝 뿌려주는 향수의 향기를 맡아보니 굉장히 은은하고,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준혁이도 만족했던지 종업원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아~ 향기 정말 좋네요. 이걸로 주세요. 여자 친구한테 선물로 주려고 하는데, 예쁘게 포장 해주실 수 있나요? 부탁드려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부탁이라뇨. 저희 매장에서는 고객님들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포장까지 예쁘게 해드리고 있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포장까지 다 해서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종업원도 상당히 친절했기 때문에, 준혁이는 오늘 기분 좋게 이벤트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약 5분 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깔끔하게 포장이 된 채로 등장했다. 그리고는 종업원이 향수를 조심스럽게 준혁이에게 건네준다. 준혁이는 계산을 하고, 종업원의 친절함에 감동을 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아주 친절하시네요. 덕분에 향수 냄새도 맡아보고,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여자 친구한테 이벤트도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친절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역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현재 시간은 5시였다. 그래서 준혁이는 여유롭게 집으로 향했다. 이제 이벤트를 어떤 식으로 해줄 것인가에 대한 계획만 실행으로 옮기면 되는 상황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아리는, 간만에 아주 예쁘게 꾸미고 있었다. 준혁이에게 한 순간도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아리의 지배적인 생각이 스스로를 꾸미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 스타일도 웨이브를 넣고, 화장도 하고, 립스틱도 가장 잘 어울린다는 연 분홍색으로 발랐다. 그리고 옷 역시나 가장 좋아하는 옷인 노란 원피스로 입고, 6시 50분에 준혁이가 오면 신고 나갈 예쁜 구두까지 준비해서 닦아 두기까지 했다. 초롱초롱한 큰 두 눈이 매력적인 아리였는데 화장까지 하고 머리 스타일까지 꾸미니 정말 더 예뻐졌다. 이래서 여자는 화장을 하나 보다. 아리도, 준혁이도 준비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도 흘러갔다. 시계가 6시 35분을 가리켰을 때, 준혁이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머리에도 왁스를 바른 체 꾸민 모습으로 아리네 집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벤트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떨리기도 했지만, 준혁이의 마음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그래서 느티나무 숲 앞을 지나며, 푸르른 잎들도 슬쩍슬쩍 쳐다보면서 걸어간다.
준혁이가 샀던 장미꽃다발과 편지는 이미 공원 앞에 자신만 아는 장소에 가져다 두었기 때문에, 더욱 깜짝 이벤트가 성공될 가능성이 높아져만 갔다. 준혁이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모습 정리를 끝마친 아리 역시나 대문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대문을 열고 나온 아리와 준혁이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반하게 되었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고, 서로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기조차 부끄러워 할 정도로 멋지고 예쁘게 차려입고 꾸며있었다. 그래도 준혁이는 이벤트 장소로 아리를 데리고 가야 했기 때문에, 아리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와… 정말 예뻐. 아… 또 가슴 콩닥콩닥 뛴단 말야. 쳐다보지도 못 하겠어. 예뻐서…” “아잉~ 그러지 마~ 더 부끄러워진단 말야~ 자기도 진짜진짜 멋진데 뭐~" “정말? 고마워~ 나름 신경 쓴다고 신경을 썼는데, 안 좋아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이그~ 그런 생각하지 마~ 누가 봐도 멋질 걸? 다른 여자가 쳐다볼까봐 그게 더 걱정될 정도야~” “칫~ 멋지다 해줘서 고마워. 이제 공원 다 왔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냥 걸어갈 때보다 더 빠르면서도, 상쾌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시간은, 7시 5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준혁이는 눈치를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나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 벤치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줘~” 그러자 아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벤치로 가서 앉았다. 그래서 준혁은 화장실을 찾는 척하면서 관리사무실로 뛰어올라갔다. 5분 정도 늦었기에 이벤트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며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랬더니 어제 전화를 받았던 그 직원이 5분만 더 늦었으면, 이벤트 못하게 하려고 했다며, 마음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이벤트를 시작하라고 하셨다. 준혁이는 더욱 가슴이 떨렸다. 그래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관리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아리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준혁이가 걱정되는 듯, 화장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아리가 걱정하지 않도록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이 시작되자, 공원에 흐르던 노랫소리는 자연스레 멈추었다. 아리도, 사람들도 노래가 멈추자 의아한 듯 관리사무실 쪽을 바라본다. 그때였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자기야 들려? 나 준혁이야.” 아리는 놀랐는지 방송이 흘러나오는 기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준혁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리야. 지금만큼은 너에게 ‘자기’라는 애칭 대신 이름을 부를게. 우리가 처음 사귀던 날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생각해. 그중에서 예전에 네가 나한테 튤립을 선물했던 때 기억나? 그 튤립을 선물 받았던 곳이 바로 이 공원이었잖아…” 아리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준혁이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나 그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넌 모를 거야. 그때 난 정말 심장이 얼어붙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처음 느꼈을 정도로 행복했었어. 난 그때 느꼈거든. 너랑 사귀길 잘했다고.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만 같다고.… 그리고 그 마음은 하루하루 사귀면서 ‘같다’에서 ‘행복하다’로 바뀌었어. 그만큼 넌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야. 나 이때까지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 아리는 펑펑 울고 있었다. 구슬픈 눈물이 마치 공원 옆에 있는 호수마저 가득 채울 만큼 많이, 그리고 뜨겁게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준혁이도 잠시 감정에 휩싸였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이렇게 오늘 이벤트를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여느 때나 항상 내게 사랑스러움으로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너에게 고마워서이고, 두 번째는 이제 우리에게 수능 시험까지 1년이라는 가장 중요한 시간만이 남아 있잖아. 그래서 1년 동안 톡과 전화로는 연락을 해도… 수능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공부에 집중하자는 이유에서야.… 나도 정말 이렇게 마음을 먹기까지 여러 날이 필요했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결단코 이런 생각을 결심으로 바꾸기까지 정말 어려웠다는 거…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리야. 우리는 절대로 헤어지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울지 마~ 나 여기서 지금 너 다 보인다?~ 오늘같이 행복하고 좋은 날… 너 울리려고 이벤트하려 했던 게 아닌데… 네가 울면… 내가 너무 마음 아파지잖아. 굳게 결심했었는데… 그 마음이 흐트러지려고 하잖아. 그러니 울지 말고 오늘 즐겁게 보내자. 그럼 방송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자기야 사랑해”
아리는 준혁이가 사랑한다고 한 말을 듣고, 또 다시 펑펑 울었다. 준혁이의 계획은 그랬다. 준혁이의 본심이야 언제든 아리랑 데이트하고 싶고, 시험 끝나고 놀러갔던 부산과 상주처럼 펜션을 잡아가며, 추억을 쌓고 싶지만, 자신의 인생의 진로를 결정짓게 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시험이며, 자신으로 하여금 아리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뜻 깊은 이벤트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다 아리가 말했던 “맞긴 맞는데~ 나도… 학생이기 이전에 여자야. 그래서 그래…”라는 말 한마디가 준혁의 가슴을 너무나도 아프게 했기에 그녀에게 여러 가지 뜻을 담은 이벤트를 준비하게 했던 것이다. 아리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준혁은 자신이 가서 안아줘야겠다고 생각했던지, 그대로 아리에게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자신만의 장소에 들려 꽃다발과 편지를 챙겼다. 그러나 아리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인지, 준혁이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준혁이는 아리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달콤한 목소리로 아리를 부른다. “자기야~”라고. 그러자 그제야 아리는 얼굴을 들어 준혁을 쳐다본다. 많은 감동을 받은 듯했고, 더불어 슬프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준혁은 조용히 아리랑 대화를 나눈다.
“자기야~ 울지 마~ 오늘같이 행복한 날에 왜 울고 그래~” 그러면서 들고 있던 장미꽃다발을 아리에게 건넨다. 아리는 천천히 그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흑… 그리고 나도 사랑해. 나 오늘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 아리는 훌쩍거렸다. “이정도로 뭘~ 그리고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수능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매일매일 볼 텐데 뭐가~ 잊지 못할 추억이라는 말은 헤어지려 할 때 쓰는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말 쓰지 마…” 이렇게 말하는 준혁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점점 고이고 있었다. 그러나 준혁이는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처럼 값진 날… 사랑하는 여자 친구 아리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준비했던 선물을 꺼내어 편지와 함께 아리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선물까지 준비했어?… 난 정말 복 받은 여자인가 봐. 방송 이벤트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선물까지 주는 남자 친구를 둬서.” 준혁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아리를 살포시 끌어안는다. 그러면서 아리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공부… 열심히 할 수 있지?… 꼭 좋은 성적 받아서 나 기분 좋게 해줘야 해! 나도 그럴게.” 아리도 준혁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귓속말로 이렇게 말한다. “응… 꼭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받을게. 자기도 꼭! 열심히 해서 우리 같은 대학에 보란 듯이 합격하자! 알았지? 나랑 약속해~” 그렇게 말하는 아리도, 그 말을 듣는 준혁이도 둘 다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준혁이가 대답한다. “응… 우리 꼭 같은 대학에 합격해서 좋아하는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가자. 그러려면 나도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약속할게!” 아리의 손가락에 깍지를 낀 채로 말이다. 준혁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리가 받은 감동은 더욱 더 컸다. 그야말로 대 성공이 된 것이다.
꼬옥 서로를 껴안은 채로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다. 꼭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연리지 나무처럼 그들은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날은 점점 어두워져만 가는데, 그들이 서 있는 그곳은 사랑의 불빛으로 가득 메워져 한없이 밝은 것만 같다. [끝이 곧, 시작이요, 시작이 곧 끝을 향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앞으로의 1년은, 실연당한 연인처럼 느껴질지는 몰라도, 결코 그 느낌이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소원하는 대로 또, 바라는 대로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ː
ː
ː
ː
계절이 바뀐다.…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싱그러운 봄이 찾아오며,
그들은 3학년이 된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시간에 따라 계절도 또 다시 바뀐다.
쉼 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필기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진다. 수능시험일이 정해졌다.
[2015년 11월 12일]… 덩달아 학생들의 한숨소리도
너무나도 슬프게 땅을 울린다. 흐르던 시간은 …
수능을 하루 앞둔 11월 11일에서 점차 속도를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