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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 남녀의 향기
작가 : 청초
작품등록일 : 2019.10.1

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을 담은 로맨스 작품입니다.

 
「29장. 공부보다 사랑이 중요한 것일까요?」
작성일 : 19-10-01 05:35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1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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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장. 공부보다 사랑이 중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학생이라서 공부가 더 중요한 것일까요?”

 

 반 친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교실 전역에서 울려 퍼진다. 선생님께서는 출석부와 동시에 종이 한 장을 함께 들고 오셨다. 많은 친구들은 그 종이를 성적표라며, 어뜩하냐는 등의 호들갑을 떨고 있다. “야! 저 종이 성적표 아냐?" “맞는 것 같아;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나와서는 사람 불안하게 만들어.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두 학생이 있었다. 바로 효진이와 정혜였다. 정혜는 선생님으로부터 축하한다는 톡을 받았기에 알고 있어서 그렇다지만, 효진이는 정말 그 담이 큰 것 같았다. 아니면 이런 마음일지도 모른다. ‘정혜에게 기 싸움을 져서는 안 돼;’ 이 마음이 효진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일지도. 한편, 선생님께서는 천천히 말씀하셨다.

 “드디어 고대하던 성적표가 나왔다. 우리 반의 1등은… 조례 끝나고 확인해보아라. 뒤 게시판에 붙여둘 테니.” 그제야 효진이도, 정혜도, 아리도, 모든 친구들도 진정한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성적을 보고 기절이라도 해버릴까 봐, 항상 챙기고 다녔던지 우황청심환 한 알을 까서는 씹어 먹기까지 한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오늘의 조례사항을 전달하셨다. “오늘의 조례시간에 전달할 것은 2가지다. 첫 번째,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고, 반 32명 중 16등 아래로는 조용히 교무실로 찾아와라. 선생님에게 오면 마땅한 미션을 줄게. 그리고 두 번째, 3학년으로 올라갔을 때, 야간 자율학습을 다시 신청해야 한다. 제일 앞자리에 신청서를 놓아둘 테니까, 조례 끝나자마자 작성해서 1교시 시작하기 전에 반장이 걷어서 선생님에게로 올 수 있도록. 이상. 수업 잘 들어라.” 선생님이 반에서 나가시자, 반 친구들은 모두 게시판으로 모여들어 자신의 성적부터 확인을 한다.

 “우와…!! 이번 1등은 정혜네; 대단하다. 와~” “미친 거 아냐? 와… 다 1등급이야; 평균 등급도 1등급에 반에서도 1등, 전교에서도 1등이네; 어떻게 공부하면 저렇게 성적이 나올 수가 있지;” “명문대 갈 애 한명 늘었다; 와…” 친구들은 모두 정혜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래서 뭔가 불안함을 느낀 효진이는 그대로 게시판으로 달려가더니 성적을 쳐다본다. 정혜는 애써 쿨한 척을 하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다. 전교 1등은 정혜가 차지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효진이가 전교 2등일 줄 알았는데, 효진이는 전교 4등이었으며, 반에서는 3등이 되어버렸다. 크나큰 반전이었다. 그렇다면 반에서 2등은 누구일까. 과연 누구이기에 효진이를 이겼던 것일까. 그 2등의 주인공은 바로 반장을 맡고 있는 혜진이라는 친구였다. 혜진이도 1학년 때부터 항상 전교 5등 안에 들면서,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에이스였다. 이런 혜진이가 전교에서는 2등을 차지했다. 이렇듯, 정혜네 반은 전교 1등과 전교 2등, 그리고 전교 4등을 보유한 반이 되었다.

 전교 1등인 정혜의 평균성적은 [98.71점]으로, 전 과목에서 1, 2문제를 제외하고는 다 맞추면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전교 2등인 혜진의 평균성적은 [98.15점]으로 정말 소수점 자리로 1, 2등이 뒤바뀐다는 말이 현실로 드러날 만큼 팽팽한 경쟁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전교 4등인 효진이의 평균 성적은 [95.16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기까지 했다. 효진이는 충격에 휩싸였다. 시험 끝났다고 여행이나 다닐 군번이 아니라는 또 다른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효진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정혜는 다가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도, 또 달리 받아들이고 오해할까봐 쉽사리 다가가질 못했다. 그 반면, 아리는 반에서 8등으로 평균점수 [88.71점]을 받았다. 아리는 정혜가 부러웠다. 그리고 평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질투마저도 아리는 정혜를 보며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준혁이네 반으로 넘어가본다. 준혁이네 반에서도 조례시간에 뒤 게시판에 붙어있는 자신들의 기말고사 성적을 보며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준혁이네 반에서 1등은 정찬이라는 친구가 거머쥐었다. 전교에서는 3등이었다. 준혁이는 자신의 성적을 보면서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준혁이의 성적은 반에서 11등으로 평균점수는 [86.24점]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침에는 성적 공개로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어떤 친구는 울면서 화장실로 뛰어가는 친구도 있었고, 이 성적으로 어떻게 사냐고 하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친구도 있었으며, 언제나 나는 망하더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성적이 꼴찌를 맴돌아도 평온한 친구가 있었다. 성적을 보고나니 공부할 마음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며, 그날따라 모두들 1교시부터 4교시에 이르기까지 우울해있었다. 매 수업시간마다 과목 평균 점수보다도 성적이 저조했던 아이들의 매 맞는 현상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시험이 끝나고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실시되는 수업들은 학생들이 흥미가 없어 하는 것을 알았기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잘 수 있도록 허락해주거나 성적을 잘 못 받았다고 우울해 하는 학생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위로를 하며,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알려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 관례적으로 이어져왔다.

 그래서 아리네 반에서도, 준혁이네 반에서도 수업시간임에도 오늘만큼은 이야기꽃이 피워졌다. 그렇게 오전의 모든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지나 5교시에 이른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많이 피곤했던지 조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국어시간이었던 아리네 반에서는, 이번에 전교 1등을 했던 정혜의 공부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셨다. 정혜는 자신이 이렇게 친구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될 줄 꿈에도 몰랐던 일이라 당황했지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알겠지만, 내 이름은 정혜야. 나도 사실 이번에 전교 1등이라는 영광스러운 성적을 받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 그냥 주어진 내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1등을 하게 돼서 나도 정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야. 내가 공부하는 공부 방법이라는 건 따로 없었어. 그냥 열심히 외우고,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습이랑 복습 철저히 했고, 영어 같은 경우에도 단어를 외우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 그런 것처럼 암기과목은 다 외우지 못하면 잠도 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외운 거 그게 내가 선택한 방법이야.” 정혜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목이 메여오는지 10초 정도 뜸을 들였다. 정혜가 얼마나 노력을 했을 지를 생각하니 국어선생님께서도 마음이 아프셨는지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정혜는 숨을 고르더니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나도 많이 힘들었어. 새벽 1시에도… 새벽 2시에도 나는 불안해서 잘 수가 없었거든. 내가 정리한 요점정리를 안 보고도 막힘없이 입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차마 잠이 오질 않더라. 이번에 내가 1등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바로 그 절실함과 간절함이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해. 이제 우리는 곧 3학년이야. 고등학교 3학년은 다른 말로 수험생이라고 부르더라. 만나는 분들마다 ‘힘들지?’라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런 고마운 분들한테 우리가 보답하는 길은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해.… 우리 1년 남은 거 좀 더 최선을 다해서 다 같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정혜의 진심이 느껴졌던지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떤 친구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아리는 질투의 화신이 자신에게로 찾아온 듯, 기어코 정혜를 축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없이 친하기만 하던 아리와 정혜의 관계가 나빠지기라도 하려는 걸까. 웃음으로 가득하던 둘의 사이에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혜의 발표를 끝으로 5교시도 끝이 나고, 이제 6교시가 되었다. 아리네 반의 6교시는 수학 시간이었고, 세민이네 반의 6교시는 세계사 시간이었다. 정혜네 반으로 들어오신 수학선생님께서는, 수학 성적을 꺼내어 보시더니 정혜와 혜진, 그리고 효진이에게 일어서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셋은 동시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선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 주목! 정혜랑 혜진이랑 효진이에게 일어서라고 한 이유는, 수학 성적이 세 명 다 100점이라서 축하해주려고 일어나라고 했다. 모두들 셋을 위해 박수를 쳐주자~” 그러자 친구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연이어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정혜부터 혜진, 효진, 이 순서로 간단하게 100점 맞은 소감을 한번 말해보자. 친구들한테 100점 맞은 비법을 기꺼이 전수하는 것도 나눔의 미덕이라서 너희한테 꼭 복으로 돌아갈 거야.” 그래서 정혜부터 칠판 앞으로 나와 간단하게 발표를 시작한다. “음… 나는 공식을 최대한 많이 외우고 숫자를 대입시켜서 혼자 풀어보는 공부 방법을 택했어. 혼자 해보다 보니까 모르는 게 생기면 참고서를 뒤져서라도 알아내게 되더라고.… 그게 100점을 받은 이유인 것 같아.” 그리고 뒤를 이어 혜진이 차례가 되었다.

 “어… 안녕. 하하. 내가 100점을 받은 건 평소에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 학원에 다니면서, 선생님한테 많이 여쭤보기도 했고, 정혜랑 비슷하게 공식에 숫자를 대입시켜서 풀어보는 방법으로 공부했어.…; 그게 잘 맞아떨어진 케이스라고 생각해.” 쑥스러워하는 혜진이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발표를 잘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이제 마지막으로 효진이가 발표할 차례였다. 그런데 효진이는 생각 외의 발표를 했다. “내가 이번에 수학 100점을 받게 된 건… 사실 정혜 덕분이야.” 정혜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효진이를 바라보았다. 효진이는 다시금 발표를 이어 나갔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난 정혜를 유심히 지켜봤거든. 정혜가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는지,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보는지 등을 말이야. 그런데 정혜는 나를 라이벌로 생각한다고 했으면서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하니까 스스럼없이 알려주었어. 정혜가 예전에 국어와 문학을 이해하기 어려워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알려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며 웃으면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줬어. 그게 내가 100점을 받을 수 있었던 진정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어.”

 효진이도 발표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정혜는 효진이에게 고마웠다. 효진이 자존심이 워낙 강한지라 알려주는 것을 가슴 한편에는 기분 나쁘게 생각할 줄로만 알았는데,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께서는 수학 시험 문제들을 하나씩 오답풀이 형식으로 풀어 가시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수능시험에 모두 포함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수학 문제를 1문항부터 25문항까지 풀이해주시다 보니 시간은 점점 흘렀고, 그러다보니 6교시도 이로써 마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오늘부터 야간자율학습을 바로 시작했을 정혜이지만,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리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아리야~ 뭐해? 오늘은 우리 자율학습 하지 말고 집에 안 갈래? 별로 공부 안 하고 싶은 날이야.” 그러자 아리가 대답을 함으로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니… 나 공부할거야. 혼자 가.” 쌀쌀하게 느껴진다. “응?… 응. 알았어. 그럼 난 오늘 이만 가볼게. 공부 열심히 해~” “응." 이렇게 말하는 아리에게서 정혜는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혜는 다시 한 번 아리를 바라보지만, 아리를 굉장히 냉랭했다. 정혜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정혜를 부른다. 정혜는 뒤돌아보는데 세민이였다. 세민이도 자율학습을 하겠다고 신청했다고 해서, 자율학습을 할 줄로만 알았는데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여보야, 오늘부터 야자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자 세민이가 대답한다. “응~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오늘따라 하기 싫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거야. 여보네 반으로 갔는데, 여보가 안 보여서 아리한테 물어봤는데 집에 갔다고 그러더라고.” 그러자 정혜가 다시 말을 하며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아~ 그랬구나. 그럼 준혁이는? 준혁이랑 같이 집에 가야하는 거 아냐?” “아니~ 공부하겠데. 이번 성적 때문에 충격 많이 받았나봐. 그런데 여보야, 아리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일은 없었는데, 오늘 나도 야자하기가 싫어서 아리한테 같이 집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되게 차가웠어.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는데.” “그랬구나. 뭐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그나저나 여보야~ 이대로 바로 집으로 갈 거야?"

 “응~ 그러려고 했는데~ 왜에~~?” 정혜가 게슴츠레한 얼굴을 하고 쳐다본다. "나랑 데이트하면 안 될까?… 나 여보랑 데이트하고 싶은데~ 응?~“ “으이그~ 못 말려. 바로 집으로 가려 했는데~ 그럼 여보랑 데이트하고 집에 들어가야겠다.” 그러면서 정혜는 준혁이에게 팔짱을 끼며, 귀엽게 두 눈을 깜빡 깜빡거린다. “그럼 오늘은 나만 믿고 따라와~” 그러더니 바로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러더니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반지 놀이터라는 곳이었다. 반지 놀이터는 반지를 손으로 직접 만들 수도 있고, 커플용으로 만들어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줄 수도 있는 이색 데이트 장소다. 뭔가 특별한 데이트 장소가 필요했던 세민이가 검색을 통해 생각해둔 곳이었다. “우와~ 여보야~ 내가 여보한테 잘 어울리고, 커플용으로도 잘 어울리는 반지로 하나 만들어 줄게. 기다료봐~” “응! 나도 만들어줄게. 정혜라는 이름을 따서 'J. H'라고 새겨도 줄게~” “응~ 이뿌게 만들어 죠~ 여보야 나 기쁘게 해줘서 고마워 정말… 오늘따라 공부도 하기 싫었고, 왠지 모르게 기분도 별로 안 좋았는데… 여보 덕분에 기분 좋아졌어 나~” 세민이도, 정혜도 집중하기 시작한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만드는 것만 같다. 열심히 만든다. 정혜 자신도 만들다가 문득, 세민이를 바라본다. 무언가에 강하게 집중하는, 세민이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정혜에게는 세민이가 집중하는 모습마저 멋져 보이고, 귀여워 보인다. 그래서 한참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시선이 느껴지는지 세민이도 간혹 정혜를 바라보며, 부끄럽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만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다가 다 만들었는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는 정혜에게로 다가간다. “여보야~ 나 다 만들었지롱~ 짜잔~ 예뻐?” 은구슬이 반지 중간에 촘촘히 박혀있고, 그 안엔 [J. H♥S. M]이라는 글자가 예쁘게 새겨져 있었다. 처음 만들어본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예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혜는 반한 듯이 감탄한다. “우와~ 이거 정말 여보가 만든 거야? 와 진짜 잘 만든다. 설…마… 나 말고 다른 여자랑 와 본거 아니겠지?! 수상해… 너무 잘 만드는데?” “이그~ 아니야! 그만큼 정성스럽게 만든 거지. 여보가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 노력할거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고.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약속해! 다시는 다른 여자랑 와 보았냐니 그런 말 하지 않기로!" “알았어. 오~ 우리 여보 말도 잘하고, 이제 완전히 내꺼 다 됐네?~ 얼굴도 잘생겼고!~” “히히~ 고마워. 그나저나 여보도 만든 거 보여줘. 왠지 나보다 더 잘 만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정혜는 아직까지 다 완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아하하… 아니 아직 다 못 만들었어.… 지금 빨리 만들게~ 기다려줘. 미안해…" "괜찮아~ 천천히 만들어. 대신 천천히 만드는 것만큼 더 예쁘고 멋지게 만들어줘야 해~ 알았지?!" “응!! 진짜진짜 예쁘게 만들어줄게! 10분만 기다려~” 곧 정혜는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세민이가 정혜의 집중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너무 예뻐서 신기하게도 심장이 뛴다. ‘저렇게 예쁜 저 여자애가 내 여자 친구라니.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도 같이 한다. 그러다 10분이 지나간다. 정혜는 만든 반지를 뒤로 숨긴 채 세민이에게 살금살금 다가간다. 그리고는 세민이에게 말한다.

 “여보야~ 나 다 만들었지롱~” “응?! 벌써? 어떻게 만들었는데? 보여줘 봐~” “맨입으로? 안되지~ 나를 사랑한다는 증표를 보여줘~” “어떤 증표를 보여드리면 될까요? 여보님아~” “치… 그것도 몰라?! 뽀뽀~ 뽀뽀면 되는데?~” “아 정말? 여기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부끄러워~” 그래서 정혜가 삐치려 하자, 그대로 세민이는 정혜의 입술에 뽀뽀를 한다. 그러자 정혜는 약속대로 반지를 보여준다. 반지에는 다이아몬드와 비슷하게 생긴 보석들을 촘촘히 사랑표 모양으로 박은 후, 그 안에다가 한글로 [세민, 정혜]라고 새겨두었다. “오~ 예쁘다. 나보다 더 잘 만든 것 같은데~? 다른 것보다도 세민이랑 정혜라는 이름 부분이 되게 예쁘게 박혔어. 고마워~ 우리 서로 반지에 쓴 것처럼 사랑표에 흠이 가지 않게 사랑하자. 알았지?~” 그러자 정혜는 행복해하며 대답한다. “응~ 여보야~ 정말 우리 앞으로 오래오래 사랑하자~ 나 버리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내가 여보를 버리긴 왜 버려~ 그런 말 하지 마!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응… 사실 내가 왜 이러냐면… 자꾸만 불안하단 말이야. 치… 여보가 너무너무 잘생겨서 다른 여자애가 빼앗아 갈까봐 더 불안해… 나 어떡하지?” 그렇게 말하는 정혜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러면서 이렇게 답해준다.

 “이그~ 그런 생각을 왜 해~ 나 여기서 맹세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어. 난 여보 안 버려.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거야. 그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그 시간에 나만 바라봐주면 좋겠어. 알았지? 약속해! 이 자리에서 나한테 새끼손가락 걸어줘~ 그리고! 여보도 사랑의 증표 나한테 해주고!” 정혜는 감동을 받았는지, 안도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니, 세민이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세민이의 입술에 뽀뽀를 한다. 입술을 빨리 뗐던 세민이와 달리… 정혜는 오래토록 뽀뽀를 한다. 너무나 닭살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에, 반지 놀이터에서 또 다른 반지들을 만들고 있던 커플들의 따가운 눈총이 모두 세민이와 정혜에게로 향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둘은 계속해서 뽀뽀를 한다. 한편, 같은 시간에 아리와 준혁이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리는 정혜에게 차갑게 말했던 것이 미안해져가고 있었다. 시험 성적이 정혜보다 낮게 나온 것은 정혜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정혜보다 공부를 더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질투를 정혜에게 푸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을 생각한 끝에 정혜에게 미안함의 톡을 보낸다.

 [정혜야… 미안해. 아까 그렇게 말해서…]라고. 그러자 정혜에게서 답장이 날아왔다. [아니? 이유를 말해줘.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인 네게 나는 차가움을 느꼈어. 왜 그랬는지 말해줘.]라고. 보통 같으면 괜찮다고 날아왔을 텐데… 오히려 저렇게 답장이 오니까 아리는 정혜에게 더 미안해졌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답장을 보낸다. [사실… 나보다 성적이 잘 나온 네가 부러웠었어. 나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성적은 네가 한참 더 높게 나왔잖아. 그게 샘이 나서 그랬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그래서 사과하는 거야. 아까 차갑게 말한 부분에 대해서.] 몇 분 동안 답이 없다. 그러다가 10분쯤 지났을 때, 정혜에게서 답장이 날아온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미안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더라도 언제든 또 그런 일이 반복될 수가 있잖아. 그래. 아까 그렇게 말했던 거 나도 사과 받아줄게. 그나저나 공부는 잘 되가?] 아리는 읽자마자 답장을 보낸다.

 [아니… 나도 사실 오늘 집중이 잘 안 되네… 아까 정혜 네가 같이 가자했을 때는 나도 정혜 너처럼 성적이 높아지고 싶어서, 질투심에 잘 될 줄 알았는데… 집에 가고 싶네.]

 그러자 정혜가 이렇게 답장을 해온다. [그럼 지금 나 세민이랑 데이트 중인데, 준혁이도 어떻게든 꼬셔서 같이 더블 데이트하러 갈래? 갈려면 준혁이 지금부터 꼬셔봐. 그럼 이만. 꼬시면 말해. 데이트 방해되니까 이년아] 그래서 아리는 답을 읽고, 씨익 웃더니 곧바로 준혁이에게 톡을 보낸다. [자~기야~~ 공부 잘돼?] 그러자 준혁의 답장을 시작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아니? 지금 공부가 머릿속으로 안 들어와서 몰래 만화책 읽고 있는 중이였어. 자기는 잘돼가?] [아니? 나도 안돼서 지금 튈까 생각 중이야. 자기도 같이 튀자. 나 자기랑 데이트 하고 싶어. 어때?] [응…? 정말이야? 나야 Very thank you지. 그럼 우리 탈출해서 1층 좌측 입구에서 만나. 건투를 빌어, 자기야.] [응!! 조심해! 걸리지 않게~ 그럼 나 지금 바로 실행에 옮기겠도다!]

 아리와 준혁이는 감독하시는 선생님께서 잠시 교무실로 내려가 주시기만을 하늘을 보며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않는 선생님들이셨기에, 작전을 바꾼다. 앞으로 당분간 시험도 없었기 때문에 하루 정도야 가방은 학교에 놓아두고, 집으로 간다 한들 상관없었기 때문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고는 그대로 1층 좌측 입구를 향해 최대한 조용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층에서 만난 둘은, 신발을 신고, 담을 뛰어넘으려 담장으로 향한다. 담장 하나 뛰어넘는 거 정도야 어렵지 않았던 그들은, 체육 시간에 배운 것을 응용해서 도움닫기를 하고, 그대로 담을 띄어 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리고는 정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뜬금없는 전화에 놀란 채 전화를 받는 정혜는 먼저 물어본다.

 “아리야, 결국 성공했구나?” “응! 지금 어디야? 준혁이도 옆에 있어~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그래? 알았어. 지금은 반지놀이터라는 곳에 있는데, 곧 나갈 것 같으니까, 음… 스타벅스로 와~ 거기서 기다릴게.” 스타벅스는 동네에 하나뿐이라서 가장 찾기가 쉬운 가게였기 때문이다. “응! 알았어. 거기서 봐~” 아리와 준혁이는 전화를 끊더니, 바로 스타벅스를 향해 뛰어갔다.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도로 반대편에서 횡단보도로 건너오는 세민이랑 정혜의 모습을 발견한다. 순간, 아리는 정신이 아늑해졌다. 이유는, 준혁이랑 자신이 사고를 당했던 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녹색등에 정상적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났던 사고였기 때문에, 더욱 더 정신적 휴우 증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리는 건너오는 세민이랑 정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정혜야! 세민아! 조심해서 건너와!! 양 옆도 보면서!”라고. 다행히 무사히 건너오긴 했지만, 아리는 휴우 증이 남긴 정신적 상처를 아직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던지,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겨우 부축을 받아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들이 두 번째 데이트 장소로 결정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커플끼리 아이쇼핑을 해보고 싶었던 그들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결정한 장소였다.

 학생들이라 백화점에서 상품들을 구매하면서 풍족한 데이트를 즐길 수 없을지는 몰라도, 충분한 아이쇼핑 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백화점으로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화장품이나 가방 등을 판매하는 1층에서 의류코너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들은 대화를 시작했다. "자기야~ 평소에 사고 싶었던 옷 종류가 뭐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무슨 옷을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네. 내가…;" “모를 수도 있지 뭘~ 항상 치마나 바지를 입었던 것도 아니구~ 매일 입는 옷이 다른데~ 어떻게 알아~ 음~ 난 원피스 좋아해. 화사한 걸 좋아해서 색상은 노란 색 좋아하구~ 그럼 자기는? 나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야~” “난 뭐 항상 청바지에 티셔츠입고 운동화 신는 스타일을 제일 좋아하지 뭐~ 그리고 남자 옷은 종류가 화려하질 않아서 보통 셔츠 스타일, 티 스타일 두 가지로 많이 입어~ 세민이 쟤도 티셔츠에 청바지 아니면, 면바지 이런 식으로 입고 다니잖아 항상~” “뭐? 왜 갑자기 내 이름이 네 입에서 거론되는 거냐? 아 옷 스타일? 난 아무거나 입어도 내 얼굴이 잘생겨서 뭐~ 다 잘 어울려~” “지랄도 가지가지다. 잘생기긴 개뿔; 풀 뜯어먹는 황소같이 생겨가지고선.” 그러자 정혜도 끼어든다. “뭐?! 야! 준혁!! 우리 여보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뭐라고? 풀 뜯어먹는 황소?! 죽고 싶냐?! 어?!” “야 이년아! 그러는 너는! 어?! 내 남자 친구 왜 건드려?! 너야 말로 죽고 싶냐?!”

 역시 틈만 나면 틱틱거려대는 그들이다. 본격적인 아이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세민이는 다른 것은 사지 않더라도 예전에 정혜가 커플티를 선물해줬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커플 청바지를 답례로 선물할까 해서 매의 눈으로 고르고 있었다. 그러다 예쁜 색상의 청바지를 발견했다. 정혜의 허리사이즈가 26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세민이는, 부디 정혜가 기뻐하길 바라며, 몰래 구매했다. 그때 신상코트를 구경 중이던 정혜는, 너무 구경에 심취했던 나머지 세민이가 청바지 사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민이는 그래서 또 하나의 작은 이벤트를 해줄 수 있게도 된 것이다. 그리고는 정혜에게로 다가간다. 신상코트를 보고 있던 정혜는 세민이가 다가오자 그를 보며 윙크를 날려준다. 그렇다면, 준혁과 아리는 어디 있을까? 바로 뒤에 있다. 세민이가 청바지 사는 것을 보게 된 준혁은 정혜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세민이에게 톡을 보낸다.

 [또 이벤트 해주려고 그러냐? 난 네가 청바지 샀던 것을 알고 있다. 진실을 고백해라.] 그러자 세민이는 톡을 보더니 준혁이에게 곧장 답을 보낸다. [스토커 자식 어떻게 알았냐. 우리 여보한테는 비밀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아리한테도 비밀로 해주라. 아참! 꼬우면 너도 이참에 이벤트 한번 해주지 그러냐?] 세민이가 보낸 톡을 읽더니 갑자기 생각이 깊어지는 준혁이다. 그러고 보니 준혁이랑 아리는 서로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켜주기 위해 했었던 이벤트는 한번 씩 있었어도, 소소한 이벤트를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걸 준혁이도 이제야 인지를 했던지 갑작스레 자신의 여자 친구인 아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민이가 정혜한테 시계 선물을 했던 걸 아리도 들었을 텐데 말은 안 해도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왜 그걸 여태 생각하지 못했지…;’ 그래서 아리를 미안한 눈으로 한번 쳐다보더니 준혁이도 이벤트를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준혁이는 아리에게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자기야~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그러자 아리가 뭘 안다는 듯이 대답한다. “응? 난 아직은 없어~ 그런데 갑자기 왜~? 나 이벤트 해주려구 그러는 거야?~” 여자들의 촉은 대단하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아니~ 아직은 계획 없는데~? 자기가 하는 거 봐서~ 해줄까 말까 고민 중이야~” “칫~ 세민이는 정혜한테 상주에서 시계도 선물해주던데… 그래서 나 부러웠는데… 뭐 괜찮아~” 준혁이는 아리가 마치 자신의 생각을 꿰뚫기라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소름까지 돋는다. “아하하… 자기야~ 자기한테 가장 최고의 선물은 나잖아. 나한테 최고의 선물은 자기인데~ 아니야?~” 어떻게든 죄여오는 아리의 쇠사슬로부터 빠져나가보려고 하지만! 아리는 씩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맞긴 맞는데~ 나도… 학생이기 이전에 여자야. 그래서 그래…” 그 말을 듣고 준혁이는 심각해진다. 그렇다. 아리도 여자다. 그녀랑 사귄 그 시간 이후로 자신은 아리를 여자 친구라고만 생각했지, 예쁜 것들을 좋아하고, 가방도 좋아하고, 화장품도 좋아하고, 예쁜 옷 있으면 자신의 멋진 남자 친구에게 입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민이랑 정혜는 한번 헤어질 뻔했던 심각한 위기를 맞은 이후에도 서로를 더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헤어지자는 마음보다 더 컸던 지라 다시 불이 붙었음에도,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와 여자로 생각하고, 커플의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그랬기 때문에 커플티를 선물해줬던 정혜에게 커플 청바지를 선물하면서 자신들이 커플이라는, 그래서 이른바 '품절남, 품절녀‘라는 것도 만인에게 알리고 다니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준혁이는 아리에게 “나도 학생이기 이전에 여자야…”라는 말을 들은 이후, 아이쇼핑을 계속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그 말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메아리치듯이 맴돌았다. 그래서 멋지게 이벤트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얼마 후면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자신도, 아리도, 세민이도, 정혜도, 모두들 본격적으로 공부에만 전념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3일 내로 이벤트를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준혁이의 다짐은, 곧, 그들에게 한동안 가까우면서도 먼 것 같은 사이가 될 것 같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수험생의 운명일수도 있음이다. 이런 상황에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과연, 공부보다 사랑이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학생이기 때문에 공부가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라고. 쉬운 답일 것 같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그들에게마저 과연 이 질문이 바로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질문일까?

 곧, 그들은 쇼핑을 끝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준혁이가 배가 고프다며 저녁 먹으러 가자고 난리치는 바람에, 지하 1층에 있는 음식코너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던 것이다. 타고 내려가면서도 좀 참으면 될 것을… 배고프다고 난리다. "아! 배고파… 뱃속에 거지라도 들은 건가. 난 왜 이렇게 배가 계속 고프지;“ 그러자 세민이가 끼어든다. “… 키 크려는 가보지, 인마. 아 구경 잘하고 있었는데 분위기를 깨냐? 앞으로 데이트하기 이전에 뭐 좀 많이 먹고 데이트를 하던가 해야지 이거 원." 그러나 사실 준혁이는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리에게 너무나 미안했기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어서 더 이상은 쇼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배고프다는 것을 핑계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가게 되었던 것이고. 그런 준혁이의 마음을 알 리가 없던 세민이랑 정혜, 그리고 아리는 구경 잘하고 있었다며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하 1층에 도착한 그들은 롯데리아로 들어간다. 햄버거세트를 하나씩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주문을 한다.

 “와일드 쉬림프 버거 세트 하나랑요, 유러피언 치즈 버거 세트 하나, 야채라이스 불고기 버거 세트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정 버거 세트 하나, 이렇게 주문할게요.” 그리고 햄버거가 나오기 까지 기다리면서 준혁은 세민이에게 몰래 톡을 보냈다. [세민아, 아리 이벤트 하나 하려고 하는데, 그래서 아리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아는 정혜에게 뭘 좀 물어보려고 해. 전화번호 좀 알려주라.]라고. 그러자 세민이는 톡 내용을 읽더니, 준혁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오~ 이벤트를 하시겠다!? 알았다. 알려줄게. 정혜 번호는 010-9876-5432야. 좋은 이벤트 할 수 있길, 바래주마.] 세민이의 답장을 읽고, 준혁이는 세민이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낸다. 그때, 때마침 햄버거가 나왔다는 진동 벨이 울렸고, 준혁이가 받아와서 함께 맛있게 먹는다. 먹으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오늘의 데이트는 여기서 끝나려나 보다. 역시 그들은 커플이기도 하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이었다. 성인이었더라면, 술 한 잔 하면서라도 함께 시간을 더 보낼 텐데, 아직 통금시간이 9시로 정해져 있기까지 한 그들은 귀엽고 어린 학생들이었다. 햄버거를 다 먹고, 그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항상 걷던 길을 걷는다. 학교를 지나 나무 울타리를 지나고, 느티나무 숲 근처에 있는 아리네 집부터 가면서, 준혁, 정혜, 세민의 순서대로 집으로 돌아간다. 유난히 오늘따라 밝은 빛줄기가 오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준혁이는 집에 도착해서 씻고는 바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물론 정혜에게 전화를 걸면서 말이다. 정혜는 뜬금없는 준혁의 전화를 받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너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남자 친구한테 다 이를 거야.” 그러자 준혁이도 퉁명스레 대답하면서 오랜 전화통화를 하게 된다. “말하려면 말해. 네 남자 친구에게 물어보고 전화하는 건데, 이년아?” “아… 그랬어? 미안해~ 근데 무슨 일이야?” “음… 내가 아리한테 이벤트를 하나 해주고 싶은데… 사실은 어떤 이벤트를 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아서 훌륭한 친구인 너에게 질문을 통한 답을 전달받기 위해서 전화하게 되었어. 알려줘.” “그래? 예전에 아리가, 나한테 준혁이가 어떤 꽃 좋아하는지 물어봤었는데, 이번엔 네가 물어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러네. 일단, 내가 보기에는 아리가 꽃으로는 장미랑 백합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만약에 아리였다면, 예전에 아리가 이벤트 했었던 그 공원에서 다시금 고마움의 이벤트를 받고 싶어 할 것도 같아. 그리고 그 말고는 이 주변에 마땅히 이벤트를 해줄만한 아름다운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음… 그런가? 그럼 꽃 말고 뭐 화장품이라거나 갖고 싶어 하는 건 없었냐?” “뭐가 있었지? 아!! 향수! 향수 갖고 싶어 했었어. 아리가 너랑 데이트하던 날이면, 항상 나한테 전화가 왔었거든. 전화로 뭐라 그랬냐면, 너한테서는 항상 기분 좋아지는 향기가 난데. 그래서 나도 기회가 되면 그 준혁이 냄새나는 향수 갖고 싶어 라고 여러 번 말했었거든. 네가 자주 뿌리는 그 향수랑 똑같은 걸로 선물하면 될 것 같은데?”

 “엉? 아닌데;; 무슨 말이야. 나 향수 안 뿌리는데?; 뿌리지도 않는 향수를 무슨 수로…;;” “아 정말? 내가 아리한테 언뜻 들은 것 같긴 한데, 자기는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라는 향수 냄새가 좋다고 말했던 것 같아. 뭐 꼭 향수를 선물하라는 건 아니니까 그냥 참고해둬.” “아~ 그래. 고맙다~ 선물은 향수로 해야겠네. 그리고 야 정말 고맙다. 아리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좀 민망하기도 하네. 남자 친구라는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지는 못할망정 너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볼 정도니까… 참! 아리한테는 비밀로 해줘. 혹시라도 정보가 새어나갔다가는… 알지?” “참나… 어디 말할 곳도 없거든?! 이만 전화 끊으시고요~ 너 여자 친구님 이벤트나 잘 계획하세요!” “알았다. 고맙다. 이벤트 잘하게 되면, 세민이랑 너랑 불러서 밥 한번 살게! 그럼 이만 전화 끊는다.” 전화를 끊은 후로, 준혁이는 이벤트 계획 세우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준혁이도 세민이 못지않게 꼼꼼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그 공원을 관리하는 관리사무소를 검색해서 거기에 뜨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는 이렇게 통화한다. “안녕하세요. 제가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 혹시 전화 통화 가능하신가요? “아~ 네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예~전에 제 여자 친구가 그 공원에서 방송하는 방송용 마이크로 저한테 고백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 일 기억하시나요?” “아!! 네. 작년에 있었던 일 말씀하시는 거죠? 기억나죠. 직원들 반응도 얼마나 좋았는데요~ 그 후로 저희 공원에서 그런 이벤트 하시는 분들이 더 생겨서 따로 공원이벤트 전용 방송장비까지 구입해둔 상태인걸요?~ 그나저나 그 일은 왜 물어보시나요?”

 “사실은 이번에는 제가 그 이벤트를 해줄까 해서요. 가능한지 여부를 여쭤보고 싶어서 전화 드린 거예요.” “아 그래요? 가능하죠. 당연히~ 방송장비까지 구입해뒀다니까요~ 대신 사용료 2,000원 지불하셔야 되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예약해드릴게요. 괜찮으시겠어요?” “아~ 네! 예약해주세요. 내일 오후 7시에 제가 거기로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이벤트 되시기를 바라겠고, 일단 내일 저녁에 뵐게요!” “네~ 감사합니다!” 의외로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것 같아서 준혁이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그래서 이젠 번화가로 나가서 향수를 고르는 일과 집 앞 꽃가게에 가서 장미꽃을 사는 일, 그리고 편지를 쓰는 일까지 3가지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준혁이는 향수는 내일 학교에서 마치자마자 근처 가게로 가서 사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 앞 꽃가게로 먼저 가서는 장미꽃 100송이를 먼저 사서 집에다가 꽂아두었다. 그리고는 뒤를 이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 국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준혁이에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준혁이는 굉장히 집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갈 때마다 혹시라도 오타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어색한 문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오랜만에 해주는 이벤트인 만큼 최대한 정성스럽게 확인하면서 써내려갔던 것이다. 그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To.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 친구에게‥

 

 자기야~ 오랜만에 자기한테 편지를 써보는 것 같아.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또 기쁘기도 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 기억해? 그때, 우리는 중학생이었어. 지금은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있지만 말이야. 그거 알아? 내가 자기를 처음 봤을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어. 닭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눈이 예쁠 수가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거든.

 그랬던 우리가 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네. 요즘 들어, 시간이 굉장히 빠르다는 게 느껴져. 그런 만큼 더 소중하게 자기와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도 느껴지네. 사실 난 백화점 데이트를 하면서 자기가 나한테 했던 “맞긴 맞는데~ 나도… 학생이기 이전에 여자야. 그래서 그래…”라는 말이 머리에서 잊히지가 않았어. 자기한테 그동안 내가 남자 친구임에도 너무 소홀했다는 것을 그 말을 듣고 깨닫게 되기도 했고‥ 난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어.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던 나였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나, 이 편지지를 통해서 다시 자기한테 약속할게. 앞으로는 좀 더 사랑하고, 내가 자기를 여자로 생각하고 아껴준다는 것을 자기도 느낄 수 있게끔 행동하겠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더 예쁘게 사랑하자. 알았지?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수학능력시험이라는 큰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게 되었어. 그래서 지금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겠지만, 아니‥ 수능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한 번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이 마음 변치 말고, 꼭 서로 의지하면서 오래오래 사귀자. 그래줄 수 있지? 그렇게 믿을게. 편지가 너무 길어졌는데, 내가 적었던 이 모든 글귀들 중에서 내가 자기한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자기야 사랑해]라는 말이야. 자기야~ 고맙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그럼 이만 줄인다.

 

 FROM.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 친구 준혁이가.]

 

 이렇듯 편지에는 준혁이의 진심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했다. 이제 내일 가게에 들러 향수만 사면 모든 이벤트의 준비는 끝나게 된다. 그래서 준혁이는 생각에 잠겼다. ‘아리도 기뻐하겠지?’라는 생각을. 준혁이는 생각을 더 깊이 하는 듯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도 꽤나 진지하다. 지금 하늘에서는 붉은 석양이 아름다운 노을을 땅으로 비춰주고 있었다. 동쪽으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해는 어둠을 맞이하기가 싫은지, 더욱 시간을 끌며 버텨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자연의 순리는 어길 수 없었던지, 이내 세상은 어둡게 변해간다. 나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큼, 이러한 어둠이 지나, 새로운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비추는 내일이 왔을 때는, 준혁이가 계획하고 상상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로맨틱한 이벤트가 되기를 바라고, 아리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러한 하루가 되면서, 내일도 아름답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작가의 말
 

 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을 담은 로맨스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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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장. 꽃은 기분을 좋게 한다.」 2019 / 10 / 1 321 0 9926   
4 「4장. 서로를 향한 믿음이란 이런 것일까.」 2019 / 10 / 1 317 0 4591   
3 「3장, 그녀와의 첫 데이트는?」 2019 / 10 / 1 312 0 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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