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끝나가는 여행 속에서 더 타오르는…」
“사랑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아침이 밝았다. 다들 연이어 늦게까지 놀고 그러느라 모두 다 지쳐버렸다. 아침 일찍 일어난 준혁은, 모두를 깨우고, 이렇게 제안을 했다. "야. 우리 그냥 지금 올라갈까? 동네 가서 노는 게 낫지 않겠어? 여기는 어디엔가 함부로 갈 수도 없는데다가 바닷가에 가자는 생각이랑 고기를 먹자는 생각만으로 내려온 거니까 솔직히 더 있어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서… 다들 어떠냐?" 그러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응! 네 말도 틀린 말은 아니야~ 동네에 가서 놀면 우리가 어디에 무엇이 있고 그런 위치를 다 아니까 놀면 될 것 같기도 해~" 의견이 모아진 것 같았다. 모두들 지쳐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준혁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올라가자. 여행은 진짜 1박 2일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왜 다들 갑자기 올라가자는 반응이 온 것일까. 사실은 이러했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다. 아침에 준혁이가 TV를 틀어보니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준혁이는 태풍에 대한 기억이 안 좋은 기억뿐이었다.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적도 있었고, 태풍이 올 때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 어떤 날은 태풍이 온다는 뉴스를 보는 날이면 으레 악몽을 꾸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올라가고 싶다고 하기엔 겁쟁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명분을 다른 데에다가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 일찍 일어나던 정혜가 밤을 꼬박 샜던 까닭인지 너무나도 곤히 잠들어 있다. 밤새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모두 정혜를 생각해서 바로 터미널로 가지는 않고, 오후 2시에 있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들 펜션 안으로 들어가 오늘은 2시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했다. 태풍이 오고 있어서였는지 날은 으스스했고, 비 또한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준혁이는 하필 여행을 온 날 이럴게 뭐냐며 하늘을 원망했다. 천둥과 번개까지 쳤다. "우르르 쾅쾅!!!" 아리는 무서운지 자신에게로 다가와 안아달라고 했다. 이럴 때보면 아리도 영락없는 소녀였다. 그래서 포근히 안아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으이그~ 자기야 무서워 안 해도 돼~ 내가 있잖아." "흑흑… 나도 태풍 싫어. 어릴 때 태풍이 심하게 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몸이 들렸었거든… 바람 때문에… 그때부터 태풍만 온다고 그러면 어디 나가질 못하겠어."
"괜찮아, 괜찮아. 지금은 옆에 내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 나한테 의지해~ 나만 믿어." "진짜지?~ 우리 자기만 믿는당~"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치는 천둥소리에 아리는 겁을 먹었는지 그대로 준혁의 품에 얼굴을 쏙 넣는다. 그런데 정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반 기절한 상태로 계속 자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잔다고 보기에는 정혜의 얼굴에 너무 많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세민이는 그런 정혜가 걱정되었던지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다. 그런데 화들짝 놀랄 정도로 정혜의 이마에서는 고열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세민이는 소리를 치며 말한다. "야! 정혜 지금 열 아주 많이 나;; 병원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러자 준혁이도 심각해진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바로 병원으로 가야지!" 그런데 병원이 어디 있는지 타지라 알 수가 없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해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상황에서 이동하기엔 타 지역은 너무 헷갈릴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민이는 119에 전화를 했다.
"네. 119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제 여자 친구가요. 지금 열이 굉장히 많이 나요. 빨리 와서 제 여자 친구 좀 살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동할게요. 일단, 수건을 차가운 물에 적시셔서, 환자 분 이마에 좀 올려주세요. 열을 우선 낮추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전화 끊을게요. 아참! 저희 여기 주소를 몰라서 그런데 어떻게 오실 수 있나요?" "기본적으로 위치추적이 되기 때문에 충분히 갈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고, 일단 환자분의 열을 최대한 내리시는데 집중해주세요. 지금 119 구급대 출발했습니다. 10분 내로 도착할 것입니다." 이렇게 전화를 끊고, 모두들 정혜의 열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기를 5분… 10분… 지났다. 창밖으로는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한 듯했다. 그래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세민이는 구급대원들에게 말했다.
"여기에요! 여기! 여기에 제 여자 친구가 있어요!" 그러자 뛰어 올라간다. 그리고는 정혜가 있던 방에 도착하고, 그때까지도 열이 펄펄 끓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들것에 실어서 구급차로 데리고 갔다. 모두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터에, 세민이는 정혜를 혼자 태워 보낼 수 없었던지 바로 뛰어 내려가서 구급차에 올라탔다. 산소 호흡기를 하고 있는 정혜의 손을 꼭 잡았다. "여보야! 아프지 마. 진짜 아프지 마. 병원가면 꼭 바로 나아야 해!! 알았지?!" 세민이는 울부짖었다. 너무나도 세민이의 말이 애절했던지 구급대원들도 차마 떼어놓질 못했다. 구급차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위급환자를 이송 중이라는 신호음을 내며, 빗속을 질주했다. 곧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관계자들이 뛰어나와 정혜를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간호사들 중 한명이 울부짖으며 뒤따라 들어오려던 세민이를 막아서고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환자의 상태를 살핀 후에 정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을 때, 그 때부터 면회를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때마침, 준혁에게 전화가 왔다. 세민이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세민아! 정혜 괜찮아?! 좀 어떻다는데?" "아직 몰라… 지금 응급실로 들어갔는데, 정혜 상태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면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그 앞 의자에 앉아있어…" "세민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별일 없을 테니까…" "… 내가 너무 무심했어. 조금만 더 일찍 이마에 손을 대보기만 했더라도… 저리 되지는 않았을 텐데…" "야!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자책을 하냐.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 지금 우리도 병원으로 갈 테니까 병원 이름 말해봐. 택시타고 갈게." "괜찮아. 나중에 괜찮아지면 정혜 데리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갈게." "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냐.…;; 빨리 병원 이름 말 안하냐? -0-;;" "그래. 말해줄게. 이 병원 이름 달빛 병원이야." "그래?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바로 택시타고 갈게." "어… 천천히 와라. 괜찮으니까." 전화를 끊었다. 그때였다. 응급실에서 문이 열리고 정혜의 보호자를 찾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세민이는 바로 달려갔다.
"네! 제가 정혜 환자 남자 친구에요… 의사선생님, 정혜, 어떻게 된 거에요?" "정혜 양은 다행히 안정을 되찾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과로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1시간 정도 링거 투여가 있을 예정입니다. 투여가 끝나면, 다시 댁으로 환자 분을 데리고 돌아가셔도 되는데,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과로는 절대 안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담당 의사선생님께 설명을 듣는 내내… 세민이는 머릿속으로 단 한 가지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정혜야… 많이 힘들었나보네.'라는 생각이었다. 밤잠도 충분히 자지 않은 상황에서 요즘 계속된 공부를 해오던 정혜였다. 비타민이라도 챙겨먹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또 다시 자신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는 세민이었다. 의사선생님께서 설명을 끝내시고 돌아가신지 조금 되었을 때도, 세민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침 준혁이랑 아리, 효진이가 병원으로 뛰어 들어왔다. 세민이가 넋을 놓은 채 서 있는 모습을 본 준혁이는 그대로 세민이 앞으로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 "세민아! 왜 이러고 서 있냐. 자, 저기로 가서 좀 앉자. 괜찮아.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러나 세민이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 때문에… 표정이 차갑게 변해갔다. 그리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준혁아… 내가 정혜 남자 친구 맞는지 모르겠다.…" "왜! 너처럼 여자 친구한테 잘하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정혜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남자 친구로서 행동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야… 너 진짜 왜 그렇게 자책을 하는 건데? 설마 어제… 너희 둘만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 무슨 안 좋은 일 있었냐?…" "아냐. 그때는 사실 바닷가 근처에서 조그마한 이벤트 해줬었어. 내가 한 번도 진정으로 정혜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진심을 담아서 커플 시계 선물한 거… 그게 다야…"
"그럼 답 나왔네. 요즘 정혜 공부에만 빠져 산다던데…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거고… 그러다 보니까 갑자기 쓰러진 걸로 보이는데?… 네 잘못이 아니니까 내 앞에서 한번만 더 자책해라. 진짜 못나 보인다. 이 새끼야. 남자새끼가… 야 인마, 그리고 네가 못해줘서 그렇다고 정 생각이 들면, 앞으로 더 잘해주면 되는 거잖아. 너한테 여자 친구는 정혜일지 몰라도, 너 나한테도 가장 친한 친구라는 거 명심해라. 난 내 친구가 그렇게 의기소침해 있는 거 보기 싫으니까." "준혁아. 내가… 왜 이렇게 자책하는 줄 아냐?…" "그래, 들어나 보자. 왜 그러는데?" "정혜가 전에 바람피운 이유 알 것 같아서…" 준혁이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스러웠지만, 당황스러움을 숨기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게 무슨 말인데? 바람피운 이유를 알 것 같다니?…" "말 그대로야. 넌… 정혜가 단지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 들지?…" "그럼 뭐 다른 이유가 있냐? 좀 알아듣게 설명해봐." "정혜는… 공부할 땐, 누구보다 행복하게 집중 했었어… 난 그걸 느꼈어… 그런데 정혜는 자기가 예전에 바람 폈던 걸 내게 들켰던 그때 그 사건 이후로 항상 불안해했어.… 날 잃을까봐, 나도 바람피울까봐 말이야… 공부를 하다가도 정혜는 나한테서 연락이 없으면 항상 불안해했어. 난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보면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어. 그래서 정혜는 더 초조하고, 불안했던 거야. 그리고… 내가 어제 이벤트 했을 때, 그 모든 불안한 마음들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그게 한 번에 과로라는 스트레스가 되어 정혜 자신한테 찾아왔던 거야. 그래서 지금 저렇게 쓰러져있는 거고… 그래서 그게 내가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야…" 준혁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세민이가 저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는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준혁이는 세민이가 친구이지만, 이번 일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계기로 성장한다.
준혁이랑 세민이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서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같은 시각 효진이는 정혜 옆에서 간호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정혜가 갑자기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효진이는 급히 준혁이랑 세민이를 불렀다. 세민이가 더 빨리 달려갔다. 정혜는 그런 세민이를 보며 슬프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세민이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정혜는 세민이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세민이는 펑펑 울었다. 정혜는 힘들었지만 몸을 일으켜 세웠고, 세민이에게 그대로 안겼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태풍이 오고 있다던 날 그와 그녀는,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를 슬프게 안아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준혁이도, 아리도 효진이도 너무나 슬퍼 보이는 둘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민이가 그렇게 큰 소리로 펑펑 우는 모습은 준혁이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준혁이는 마음이 아려왔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이 서로를 안은 채, 뜨거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세민이는 정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정혜는 세민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눈물을 통해 서로에게 전달되는 듯했다. 얼마나 안겨있었던 것일까. 세민이의 눈에 흐르던 눈물이 다 말랐을 때쯤, 정혜가 세민이를 쳐다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세민이도 고개를 들어 정혜를 쳐다본다. 그리고 함박웃음을 짓던 순간, 정혜는 그대로 세민이에게 키스를 한다. 얼떨결에 키스를 받은 세민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정혜는 정말 뜨겁게 키스를 했다.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세민이에게 느껴진다. 세민의 두 손 중 한 손이 정혜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한참을 키스를 하던 둘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 순간, 세민이가 말했다.
"키스… 고마워. 여보야. 앞으로 나도 많이 해줄게!" 그러자 정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뭘~ 이 정도를 가지구~ # 오히려 내가 고마워. 여보야." "치이~ 고마운 거 알면, 좀 있다 나갔을 때 나 밥 사줘. 배고파." "알았어~ 그 정도야 뭐~ 그리고 나도 안 그래도 배고파서 밥 먹고 싶었어~ # 여보랑 같이 밥 먹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서 링거나 다 맞어~ 바보야~" "웅! 알았어~ 빨리 맞구, 밥 먹으러 가자." 30분 정도 남았다. 그래서 세민이는 링거를 다 맞을 때까지 아리의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세민이다. 정혜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 정도로 행복했다. 시간은 점차 흘러갔고, 링거를 맞는 30분은 금세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정혜가 병원에서 계산을 하고,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는, 신기할 정도로 날은 평온해져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또 다시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워진다. 둘과 준혁, 아리, 효진은 밥 먹으러 인근 국밥가게에 간다. 과로로 지쳐있는 정혜에게는 국이 필요하다. 국밥은 말 그대로 국과 밥을 섞어 먹는 것이고, 평소에도 돼지국밥을 좋아했던 정혜라 그녀를 생각해서 돼지국밥을 먹으러 갔던 것이다. 국밥 5그릇을 시키고, 다 함께 밥을 먹었다. 다행히 병원 근처에 바로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던 터라 시간에 쫓길 걱정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정혜는 배가 많이 고팠던 듯, 맛있게 먹었다. 부추도 넣고, 새우젓으로 간도 맞추고. 정혜가 잘 먹는 모습이 그저 보기가 좋았던 세민이는 그녀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지 화사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열심히 먹어서 그런지 입술 주변에 밥풀이 붙어 있는 그녀에게, 터치로 밥풀을 떼며 대화를 시작해나간다.
"여보야. 이건 내일 먹을껀가 봐" "엇! 나도 모르게 붙어 있었네~ 떼줘서 고마워~" "또!! 또! 고맙다 그러지?! 남자 친구가 밥풀 하나 떼준 건데 뭐가 고마워 바보야~" "치이~ 그래도 고맙다 모~" 준혁이랑 아리, 효진이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정혜와 세민이를 바라만 봤다. 꼭 멜로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이윽고, 국밥을 다 먹은 모두는 버스 터미널로 급히 뛰어간다. 병원에서 시간을 지체해버린 까닭에 벌써 오후 2시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모두는 버스에 오른다. 거창한 여행 계획에 비하면 조금은 허무하게 마무리 된 상주 여행이었지만,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다 풀렸기에, 모두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버스가 출발하고, 다시 그들 모두가, 사는 지역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이제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남은 데이트가 시작될 일만 남았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그들이 사는 지역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도 태풍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이, 버스의 양옆 창문들이 바람에 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 안에서 잠시 숙면을 취하려 했던 그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준혁은 아리와, 세민이는 정혜와 대화를 이어나간다.
“자기야… 무섭지?” “응; 근데 도착하면 왠지 집에 바로 가기는 싫어. 시험도 끝났는데 밤늦게까지 자기랑 놀고 싶어.” “아 정말? 그럼 애들 다 보내고 우리끼리 놀까?” “음~ 좋아. 그런데 세민이랑 정혜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분명, 우리를 보내버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민이가 정혜랑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여보야~ 나 여보랑 둘이서만 놀고 싶어~” “여보야~ 말소리 좀 낮춰~ 준혁이랑 아리가 들으면 섭섭해 할 것 같아.” 그러나 촉이 빠른 세민이는 준혁과 아리를 슬쩍 바라보더니 대화를 이어나간다. “준혁이랑 아리도 우리랑 똑같은 말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나 촉 되게 좋아." 세민이가 말을 마치고 다시 한 번 준혁과 아리를 쳐다보는 순간, 아리도 세민이랑 정혜가 나누는 대화를 염탐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눈을 서로 마주치고 당황했는지 웃음보가 터졌다. 두 커플은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커플끼리 놀게 되나 싶었는데, 잠자코 있던 효진이가 두 커플에게 말했다.
“야! 이것들은 틈만 나면 연애질이야?! 남자 친구 없는 사람 서러워서 어디 살겠어?! 도저히 더는 못 들어 주겠네. 내 님은 어디로 갔나~” 그러자 그들은 다시 시끌벅적하게 대화가 시작된다. “야! 효진아! 니가 우진이 들고 찼잖아 이년아… 우리가 없앴냐?” “그러게. 공부에 집중한다고 우진이 가슴에 상처 준 게 바로 네년임을 우리가 모를 줄 아느냐? 넌 할 말 없어 이년아.” 효진이가 그들을 째려본다. “나도 수능 끝날 때까지는 수능에 올인 하려고 그래서 그런 건데 너희들의 극한 닭살에 내가 짓이겨지려해서 그런다! 이것들아!!” 그때였다. 정혜가 그런 효진을 한심스럽게 쳐다보면서 장난으로 툭 말을 내뱉는다. “이년이 진짜 … 너한테는 사랑과 공부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뭘 선택할래? 내가 볼 때는 우진이는 사랑을 선택했어. 이년아;” 그런데, 그냥 장난으로 던진 이 말이, 효진이에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잠시 효진이는 말이 없어졌다. ‘사랑과 공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고?…’ 효진이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효진이는 오로지 자신이 설정한 장래희망을 위해 성적을 올리고,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베라에서 다시 만난 우진이를 어떻게 보면 다시 잡은 것도 효진이 자신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효진이는 공부를 이유삼아 우진이 가슴에 상처를 줬던 것이다.
효진이가 갑작스레 조용해지자, 준혁이도, 아리도, 세민이도, 정혜도 효진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런 시선도 느끼지 못한 채, 효진이는 무언가 계속 몰입하면서 생각했다. ‘정혜 말이… 장난으로 했던 정혜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네. 내가 과연 우진이랑 헤어지기 위해서 내세운 것이 사랑과 공부 중에 공부를 내세운 거일지도 몰라…’ 한참을 무언가 생각하던 효진이에게 정혜가 다시 말을 걸었다. “이년아; 장난이야 좀. 그냥 한 말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자 정혜는 아니라는 듯이 정혜와 대화를 다시 이어나갔다. “정혜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네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없는 것 같아. 넌 장난으로 한 말이라는 거 나 알아. 그걸 모를 정도로 나 바보 아닌 거 알잖아." "에효… 뭐가? 뭐가 하나도 틀린 말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한번 이야기나 해봐."
“응… 사랑과 공부 중에 뭘 선택할래? 라고 했었지? 그리고 네가 볼 때 우진이는 사랑을 선택했다고 그랬고. 그래서 문득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공부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말이야. 그런데 난 겉으로는 우진이를 놓았으면서도… 이제껏 너희 말고도 학교에서 사귄다는 친구들을 바라볼 때면 항상 우진이가 떠올랐거든. 그리고 공부도 이제껏 내가 해온 공부 양에서 더 했던 적은 없었거든?… 나는 사랑이랑 공부 중에 무엇을 선택한다고 할 만큼 자격이 못 돼. 공부를 핑계로, 우진이에게 상처를 준 것일 뿐인 것 같아.” “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내가 정말 공부랑 사랑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만큼 자격이 있고자 했다면, 그랬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진이를 손에서 놓지 말아야 했어. 그리고 정혜 너도 봐. 세민이랑 잘 사귀고 있으면서도… 공부도 열심히 해서, 반에서 10등~15등의 성적을 받았던 네가, 전교 2등에 그것도 모자라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었잖아. 난 사랑할 자격이 없는 비겁자야.” 효진,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가고 있는 듯했고, 왁자지껄하게 시작되었던 대화는 점차 정혜와 효진이 둘만의 진지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우진이랑 다시 사귀는 것은 어때? 난 그렇게 생각해. 연애를 한다고 해서 공부를 못한다는 건 핑계라고 말이야. 연애를 해서 공부를 못하는 커플이 있다면, 그건 연애한다고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할 때에도, 연애에만 치중을 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이 되어 지거든… 그리고 그걸 두고 주변에서는 [학교 다닐 때 연애하면 공부를 못하게 되는 지름길]이라고 많이들 이야기 해. 그런데 과연, 정말 그 말이 맞는 말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넌 지금도 잘해오고 있잖아. 하나만 물어보자. 너, 우진이랑 사귀었다고 해서 성적이 밑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던 적이 있었어?…” “아니… 똑같았어. 우진이랑 사귈 때에도 데이트 할 때는 데이트했고, 공부를 할 때는 공부에만 집중했었거든.” “그것 봐. 넌 네가 스스로 ‘난 우진이를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라고 말을 하고 있잖아. 자신감을 가져. 바보야. 머리는 똑똑한 게.”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마당에 내가 우진이를 다시 만날 자격이나 있는 걸까?…” “효진아. 자격 운운하면서 그리워만 하다가 나중에 정말 놓치면 그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아니… 자신 없어. 더 큰 상처 받을 것 같아.” “그럼 답은 정해져있는 거 아닐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우진이가 너 말고 더 좋은 여자 친구를 사귀기 전에 지금이라도 톡을 보내봐. 뭐라고 톡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면, 요즘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로 시작하면 되는 거야. 어렵게 생각하지 마. 이년아 좀.” 효진이는 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때 그런 효진이가 답답해 보였던지, 정혜는 효진이의 폰을 빼앗더니 톡으로 우진이에게 톡을 보내버린다. [우진아 잘 지내?]라고. 효진이는 당황스러움에 정혜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이년아!! 뭐하는 짓이야?! 왜 우진이한테 톡을 보내;; 집에 가서 보낼까 했었는데 죽고 싶어?” 그 말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닭살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준혁과 아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세민이까지 모두 효진이와 정혜에게로 시선이 집중했다. 그리고는 세민이가 대화에 끼어들면서, 준혁이랑 아리도 그 대화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왜! 또 무슨 일이야?! 왜 내 여자 친구한테 큰소리로 말해?! 엉?! 너야말로 죽고 싶은 게로구나?!"
“아니, 정혜 이게 우진이한테 갑자기 잘 지내냐고 톡을 보내버리잖아.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만약, 우진이가 읽씹하면 나 진짜 돌아버릴지도 몰라!” “아 거참 시끄럽네. 우리 자기랑 대화하는 거 안보이냐? 예쁜 목소리 안 들리게 큰소리로 떠들지 마. 이 매너 없는 것들아!” “야! 준혁이 너까지 그러기냐?! 다들 정혜 편만 들어라 정혜 편만… 나쁜 것들 같으니라고.” “내가 언제 정혜 편을 들었다고 그러냐?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거지 이년아 -,.-; 웃기고 있어;” 갑자기 효진이 폰에서 카톡 음이 울려 퍼진다. ‘카카오 토크~’ 그러자 정혜도, 효진이도 혹여 우진이에게 답장이 왔을까봐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효진이는 정혜랑 함께 조심스레 톡을 열어본다. 그런데… 우진이에게서 답장이 온 것이 아니었다. 그 톡은 바로 국사트리오에게서 날라 온 게임 추천 톡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혜는 깔깔 넘어가면서 말했다. “하하하! 게임 추천 톡… 아이고 배야. 효진이 톡이 어이없게 나를 웃게 만들 때도 다 있네.” 그때였다. 한 통의 톡이 더 날아왔다. 효진이는 또 게임 추천 톡이겠지 싶어 삭제하려는데… 아니었다. 우진이의 답 톡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날아왔다.
[어… 잘 지내지. 나야. 오랜만에 톡해주네. 고맙다.] 그래서 다시금 효진이랑 정혜는 더 있어 보이는(?) 톡을 답으로 보내기 위해 머리를 맞닿고 고민한다. 그런데 그 순간, 버스가 시외터미널에 도착한다. 그래서 모두들 짐을 들고 버스에서 내린다. 효진이는 우진이에게 톡을 있어 보이도록 보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정혜가 필요했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 정하고 있던 순간 이렇게 제안한다. “카페 안 갈래? 그동안 시험기간이라 카페 가본지도 오래된 것 같은데… 너희만 괜찮다면, 내가 오늘 커피 쏠게. 어때들?” [공짜 밝히면 대머리 된다]했거늘, 준혁이랑 아리, 세민이와 정혜는 모두 효진이가 그 제안을 거둘세라 좋다고 덥석 문다. “좋지! 아싸~ 커피 공짜로 마신다! 카페 분위기는 내가 싸고 괜찮은 곳 아니까 특별히 거기로 이끌고 가주도록 하지.” 준혁이의 말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준혁이를 따라 카페로 걸어간다. 태풍으로 인해 워낙 바람이 드셌지만, 다행히 비는 멈추었기 때문에 그래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한 카페로 모두들 들어간다. 입구부터 이국적인 분위기의 카페였고, 그 카페 이름은 “트와일라잇”이었다. 예상보다 가격도 훨씬 더 저렴했고, 학생들을 위한 최적의 카페인 것 같았다. 자리마다 커튼이 쳐져 있었기 때문에, 5명이 안기에는 다소 비좁아 보였고, 그래서 준혁과 아리는 따로 앉아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주었다(?). 아니다… 정혜가 꼭 필요했던 효진이었기에 세민이까지 준혁과 아리에게 꼽사리로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우진이에게 보낼 있어 보이는 톡을 위해 머리를 맞닿아 고민했다.
“아… 아니면, 지금 나오라고 해볼까? 톡으로 하는 것보다 그냥 오랜만에 한번 보자고 해봐도 좋을 것 같은데? 적어도 나라면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들뜨기까지 할 것 같아. 네가 우진이 입장이라면 말이야. 아직 너를 잊지 못했다면 더더욱.” “그럴까? 톡 보내서 만났는데 되게 어색하면 어떡하지; 막 아무 말도 없고 서로… 그런 거 아냐?” “그럴 리가 있겠냐.… 혹시 그럴 것 같으면 네가 말을 먼저 걸면 되잖아. 나도 세민이랑 사귀다 보니까 먼저 예쁘게 말하면 좋아할 때도 있더라는 걸 알게 됐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불러내자. 어때? 밑져야 본전이잖아.” “음! 알았어. 뭐라고 보내지?! 아 떨려…” “바보같이 떨기는. 세민이한테 파워 땡콩 한 대 때려주라고 해버릴까 보다. 콱” “헐… 그랬다간 나 카페에서 그대로 쓰러질 걸;” “일단 불러내기나 해 이년아.”
“알았어. -_- 기다려봐.” 심사숙고 하던 효진이는 우진이에게 답장을 보낸다. [갑자기 우진이 네가 떠올라서~ 지금 잠시 볼래? 여기 트와일라잇 카페인데, 여기로 와줄 수 있어?]라고. 그러자 칼 같이 답이 날아온다. [알았어. 나 거기 어딘지 알아. 씻고 바로 갈게. 기다려] 그래서 정혜도, 효진이도 기한다. 그런데… 정혜도 전교 1등을 할 만큼 똑똑한 아이였다. 그래서 기뻐해주는 그 이면에는 이런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우진이를 오게 만들어주면, 나도 우리 여보랑 따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겠지?’라는 마음을 말이다. 그 생각이 그대로 맞아지는 순간이었으니 정혜는 기쁜 마음이 더 컸던 것이리라. 효진이는 정혜에게 정말 고마워했다. “와… 나 지금 떨리는 거 봐. 정혜야 너 덕분에 내가 우진이를 한 번에 불러냈어.… 만약 다시 잘되면 앞으로 너한테 더 잘할게. 고마워 정혜야.” “그것 봐 이년아. 바로 불러내면 될 일을 가지고 뭘 그렇게 생각을 깊게 하고 있어; 고마워할 거 없어. 너희가 다시 잘 되어야 나도 네가 징징대는 꼴 더는 안 볼 거 아냐.” “아… 그러네? 아하하하, 알았어. 일단 우진이가 여기로 온다고 했으니까 만약 다시 잘 되면 진짜 고급진데 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고마워 친구야~ 알라뷰.”
“알라뷰는 얼어 죽을. 징그럽다 이년아. 우진이 오면, 대화나 잘해. 난 우리 여보야 보러갈 거야.” 한편, 준혁과 아리, 그리고 세민이는 셋이서 진실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진이가 카페에 오기로 한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진실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 질문은 세민이가 아리에게 할 차례다. “아리야! 너, 언제부터 준혁이 좋아한 거야?” “음…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던 때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아. 이건 아직 우리 자기한테 말 못한 건데… 내가 먼저 고백할 이벤트 계획도 짜고 있었던 적이 있었거든. 아직 모를걸? >_<” 준혁이는 놀라운 표정으로 아리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리에게 윙크를 날리는 준혁이. 아리도 자신이 말해놓고도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진다. 이제 아리가 답도 했으니, 아리가 세민이에게 물어볼 차례였다. 그런데 때마침 우진이가 카페로 들어선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에 준혁이랑 아리, 세민이는 그 모습을 쳐다보며 놀라워했다. 그런데 우진이가 효진이를 만나러 왔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어디로 가는지만 주시했다. 우진이는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더니 이내 웃으면서 효진이랑 정혜가 있는 칸으로 들어간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뭐지?’싶다.
더 놀라운 건 우진이가 들어가고 잠시 후 정혜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정혜는 셋이 있는 칸으로 들어가 세민이 옆에 앉았다. 드디어 진정한 커플들의 대화가 시작되게 된 것이다. 정혜가 말을 시작함으로서 대화가 이어졌다. “여보야~ 보고 싶어써!!” “우진이 왔던데? 무슨 일이야? 걔네 헤어졌다고 하지 않았어?”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효진이가 괴로워해서 내가 다시 부르라고 했거든. 다시 사귀고 싶은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톡을 보내라고 했더니 보내더라? 그리고 우진이가 알겠다고 하면서 바로 카페로 오겠다고 했고. 그래서 온 거야.” 정혜는 말하면서도 뿌듯해했다.
“오… 잘했어 여보야~ 역시 우리 여보는 못하는 게 없어. 공부도 잘해~ 이어주는 것도 잘해~ 그래서 너무 좋아.” 진심이 느껴지도록 세민이는 정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는 준혁이가 말했다. “나중에 결혼중매업자 같은 직업으로 선택하면 좋겠다. 완전 타고 났네. 타고 났어.” 옆에서 듣고만 있던 아리는 준혁이의 말을 듣고 빵 터졌는지 깔깔거리며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정혜가 맞받아친다. “그래. 그 길로 나아갈게. 인마. 아직 어떤 걸 장래희망으로 가져야 할지 답답했는데, 직업추천도 다 해주고, 내가 참 친구를 잘 뒀네, 잘 뒀어.” 반어법임을 준혁은 인지하지 못했는지 미안해하기는커녕, 뿌듯해하고 앉아있다. 오후 2시에 출발했던 버스가 시간 속을 달려 도착하고도 카페에서 일정 시간을 보냈던 지라 어느덧 시간은 오후 7시가 되어 있었다. 카페에서 그들은 1시간 이상을 있었던 것이다. 과연, 우진이랑 효진이는 어떤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을까. 정혜의 바람대로, 효진이 자신의 바람대로 다시 사귀기로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효진이와 우진이가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혜도 들을 수 없었다. 효진이가 비밀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효진이의 표정에 따라 알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표정마저 슬픔을 감추고 있지도 않았고, 억지웃음을 짓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함박웃음꽃을 피워대는 것도 아니었다. 평온했다.
정혜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몇 번을 캐물으려 하지만, 효진이는 주관이 뚜렷해서 그런지 한번 비밀이라고 말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시간이 흘러 스스로가 말하고자 하기 전까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정혜도 알기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포기해버린다. 잠시 잠잠해졌던 빗줄기마저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태풍도 이제 우리나라 근처에 도착했던지 비바람은 더욱 더 심해져 길가에 서있던 나무의 가지가 부러져버리는 등 재해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내일 학교도 가야하는 터라 이대로 계속 카페에 있을 수는 없었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에 이른다. 돌아가는 길도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센 비바람을 등지며, 두 눈마저 실눈으로 뜬 채 걸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이 집으로 도착했을 때, 그들의 옷에서는 빗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로써 그들의 ‘시험 끝!’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내일은 왠지 시험 결과가 공개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O. M. R카드는 컴퓨터에 넣고 동작만 시키면, 바로바로 성적이 매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월요일에 곧바로 성적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이 없을 일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학교에 가기가 두렵다. 그나마 성적을 알고 있는 정혜만이 자신이 전교 1등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혼자 기뻐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 되는 가보다. 시험을 못 쳐버린 준혁과 아리, 세민이는, 태풍이 학교도 하루 임시 휴교할 만큼 거세게 우리나라에 머물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속상한 밤이 되어버린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