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와 그녀」
정혜와 세민이는 병원으로 들어섰다. 바로 준혁이와 아리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뛰었다. 그때, 준혁이랑 아리는 자고 있었다. 피곤했던 듯,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정혜와 세민이가 병실로 들어갔을 때까지도, 준혁이랑 아리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정혜랑 세민이는 준혁이와 아리가 깨지 않도록 조심했다. 곤히 자고 있는 준혁이 모습을 친구로서 처음 보던 세민이는, 그 건강하고, 상냥하게 대하던 준혁의 모습에서 다친 채 병원에 입원해있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우정이 돈독하기에 친구로서의 진정한 눈물도 가능한 것이리라. 그래서 세민이는 그 모습을 정혜에게 들킬까봐, 얼굴을 가린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반면, 정혜는 아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큰 두 눈이 매력적인 아리였는데, 팔에 통 깁스를 한 채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때였다. 인기척을 느꼈던 것인지, 아리가 깨어났다. 정혜가 와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혜에게 말했다. "어? 정혜야. 왔네. 왔으면 깨우지 않고." 그러자 정혜가 말했다. "아니야. 곤히 잠들었는데 깨우기가 좀 그래서~"라고. 이번엔 준혁이가 깨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정혜가 와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혜에게 말을 걸었다. "정혜야. 왔네? 어우… 잠들었었다. 그나저나 혼자 온 거야?" 정혜가 대답했다. "아니? 세민이도 같이 왔는데, 화장실 간 거 같던데?"라고. 그러자 준혁이가 대답했다. "아~ 그래? 그럼 곧 오겠지 뭐."
준혁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양반은 못 되는 듯, 세민이가 등장한다. 그래서 준혁이가 세민이에게 말했다. "오랜만이다. 세민아. 잘 지냈냐?" 그러자 세민이 왈 "빨리 좀 나아라. 뭐냐 이게…"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준혁이가 대꾸한다. "야. 어깨뼈랑 다리뼈에 금가봐라. 빨리 낫겠는지." 그 말에 "웃기고 앉아 있네. 하나도 안 아파 보이는구먼."이라고 툴툴거리면서 대답하는 세민이다. 그들이 툴툴거리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웃겼던지, 정혜와 아리는 한없이 웃는다. 문득 시계를 쳐다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온다. 또 다시 병원에서 주는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까, 맛이 없을 것 같은지 준혁이는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래서 계략을 낸다. 전생에 태어났으면 전략가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처럼, 그들과 그녀들의 수준에서 신비로운 계략이 나온다. 준혁이의 계략이었다. 편의점에서 냉동식품을 사와서 돌려먹고, 라면 4개와 동원 참치 캔 2개를 사와서 밥으로 먹는다는 계략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들과 그녀들의 사이에선 획기적인 전략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인근 할인마트에 도착한 세민이와 정혜는 7,000원 씩 걷은 후 28,000원으로 최대한 많이, 그리고 양이 많은 음식들로 고르기 시작했다. 과자도 은근히 배가 부르기 때문에, 우선 라면 4개와 동원참치 캔 2개부터 골랐다. 그리고는 새우깡과 꽃게랑 등, 적은 값인데 많은 양이 들어있는 과자로 4봉지를 샀다. 사고 남은 돈으로는 편의점으로 옮겨가 냉동식품을 사기로 하고 말이다. 계산을 해보니, 아직 절반이 넘는 많은 돈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병원 주변에 있는 CU로 자리를 옮겨 왕만두와 치킨 1봉지를 고르고는 면요리를 하나 더 고르고, 싼값에 먹는다는 쿨피스 대용량 두통을 사서 기분 좋게 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못된 백수미 간호사를 피해 휴게실로 가서 전자레인지에 왕만두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데웠다. 맛있는 향이 휴게실 안을 뒤덮었다. 만두와 치킨에서 뿜겨져 나오는 향기는 배부른 사람도 더 먹고 싶게 만들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면 요리를 데우고, 뽀글이 라면만 익는다면 드디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왕만두를 직시하며 눈이 풀린 상태로 모두들 군침을 흘렸다. 한참 많이 먹을 때의 4명이었으니, 끓어오르는 식욕을 어찌 막을 수 있겠으랴. 모두들 젓가락을 치켜들고 라면만을 주시하던 그때, 위험한 침묵을 깨고 심각한 표정으로 준혁이가 말했다. "우리 오늘 이거 먹은 거, 죽을 때까지 비밀이다. 명심해야 할 것이야." 라면이 가장 맛있게 익는다는 4분이 지나는 순간, 동시에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저었다. 그리고는 동원참치 캔 1개를 2명이 반반씩 넣는 방법으로, 4명이 적당량을 넣은 후 다시 30초 정도 익혔다가 먹기 시작했다.
밖에는 비도 내리는 데다 배가 고픈 4명의 고교생 앞에 음식들은 순식간에 먹혀져 갔다. 특히나 왕만두를 좋아하던 준혁은, 그 뜨거운 만두를 그대로 입안에 넣었다가 입천장이 데여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던, 세민이 역시나 치킨을 먹다가 똑같은 상황이 된다. 그래도 맛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먹었다. 과자까지 뜯어서 먹었다. 그러다 4명 다 배가 너무 불러 새우깡이 남게 되자, 준혁은 백수미 간호사와의 동맹관계 형성을 위해 미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다들 너무 허겁지겁 먹었던지 배가 너무나도 불렀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며, 소화를 시켜야지.'라고 생각했던지 세민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여보야~~", "응? 왜 잘생긴 우리 여보야~?", "배 많이 부르지? 내가 배 안 부르게 해줄까?", "응! 어떻게 하면 되는데?", "나만 바라보면 돼." 그때 준혁이랑 아리가 끼어든다. "야. 너희 둘 여기가 너희 닭살떨라고 만든 휴게실이냐? 그치 자기야~", "웅! 저것 봐. 정혜 저것도 여우였어.", "그러게. 우리가 닭살 떤다고 생쇼를 할 땐 언제고… 쟈기야. 우리는 저러진 말자~", "응!! 병원에서 뭐하는 거야."… 똑같은 것들끼리 도토리 키 재기다.
세민이와 정혜는 썩소를 지으며, 둘의 닭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 지금 뭐하냐? 그치 여보야~", "그러게. 자기네들이 더 심하면서 괜히 우리한테 뭐라 그러고 있어. 그나저나 여보야~ 잘생긴 얼굴에 뭐 묻었쪄. 떼 줄게 일루와봐~", "앙? 정말? 알았쪄. 거기로 갈게. 여보얌." 도저히 더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애교가 남발할 때쯤, 병원 밥 차를 통해 저녁밥이 준혁과 아리의 병실로 도착하지만, 정작 준혁과 아리가 없었다. 그래서 밥 차를 이동하시는 아주머니께서는 간호사 실로 가셔서 말씀하셨다. “준혁이랑 아리 잠시 외출했어요? 지금 병실에 없네요?” 그래서 하필 그 자리에 있던 백수미 간호사는 “준혁환자랑 아리 환자는 제가 연락해볼게요. 다른 환자분들에게 이어서 식사 전달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준혁과 아리를 찾기 시작한다. 한참을 이곳저곳 뒤지던 찰나 휴게실 문을 딱 열었다. 파티라도 벌인 듯, 각종 음식 봉지가 나뒹굴었다. 백수미 간호사는 융통성이 없다. 보수적인 면도 강하고. 그래서인지 ‘성인도 아닌 학생 신분으로 키스를 해?’라는 고지식한 생각에 이어 ‘감히 환자가 병원 밥이 아닌 밖에서 사온 음식을 먹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또 다시 이렇게 말을 건네는 백수미 간호사. “아하하하. 감히 환자 신분으로 밖에서 파는 음식을 먹었구나. 너희… 식당에 말해야겠다.” 참 답이 없다. 준혁과 아리, 세민과 정혜는 그런 간호사를 쳐다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준혁이는 그런 간호사에게 말했다. “백수미 간호사 누나, 저번에는 저희가 키스하다 걸려서 충분히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어요. 그런데 이제는 병원 밥이 입맛에 안 맞아서, 처음으로 밖에서 냉동식품 두세 가지 사와서 라면이랑 같이 먹고, 과자 몇 봉지 사서 먹은 것뿐인데 이 정도도 이해 못해주세요?” 백수미 간호사는 까칠한 준혁이 반응에 많이 당황했다. 그래서 오히려 말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 아니… 나는 그냥 너희가 괜히 그런 음식 먹고 탈이라도 날까봐…” 그때였다. 준혁은 기회다 싶었던지 남았던 과자 한 봉지를 간호사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간호사 누나, 저랑 아리가 그때도 그런 일 있은 후 죄송하고 그래서 이렇게 과자로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좋아하실 만한 과자 한 봉지까지 사뒀는데…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렇다. 준혁이는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연에 백수미 간호사도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었다. 준혁이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저희 오늘 먹은 거 저희가 잘못한 일이니까 반성문을 쓰라면 반성문을 쓰고 그럴게요. 그런데 대신, 저희도 다시는 백수미 간호사 누나한테 저희 상태 확인 받고 싶지 않아요. 저희도 간호사실에 그렇게 말할게요.” 그러자 백수미 간호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냐 미안해. 난 그냥… 너희가 좀 더 빨리 낫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서 그랬던 거야. 과자 잘 먹을게. 그리고 앞으로는 많이 뭐라 안 그럴 테니까 너희도 마음 풀어. 그럼 난 다른 환자들 상태 확인하러 가봐야 할 시간이라 이만 가볼게.” 그렇게 말을 하고 과자를 들고는 휴게실 문을 나선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것처럼 초롱초롱하던 준혁의 표정은 간호사가 나가자마자 바로 웃음으로 바뀌었다. 아리는 그런 준혁이가 신기했다. 그래서 아리가 준혁이에게 말했다. “자기야~ 연기력 어떡하면 그렇게 늘 수 있어? 설마… 나 좋아한다는 것도 연기 아냐?!” 그러자 화들짝 놀란 준혁은 이렇게 대답한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그런 걸 의심하고 그래…” 그러자 새침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정말이지?!” 준혁이는 “응! 당연하지~ 에이 그런 걸로 연기 안 해~ 나한테는 우리 자기밖에 없는 걸?”이라고 말하고, 또 그 말에 감동을 받아버린 아리는 준혁을 그윽하게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마워. 우리 자기~ 나한테두 우리 자기뿐이야~ 사랑해.” 그러한 준혁과 아리의 모습을 보면서,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 세민이와 정혜.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던지, 세민이는 준혁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야. 여기가 너희 사랑방이냐?”라고. 그 말을 듣고 준혁이도, 아리도, 정혜도 다 함께 웃었다. 파란만장했던 저녁 식사가 끝이 났다. 넷은 다시 병실로 자리를 옮긴다. 정혜는 문득 시계를 바라본다. 오후 7시였다. 그래서 세민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보야~ 이제 저녁도 먹었으니까 준혁이랑 아리도 쉴 수 있게 우리 빠져줄까?” 그러자 세민이도 시계를 보더니 정혜에게 대답을 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됐네. 알았어.” 그리고는 준혁이랑 아리를 바라보며 세민이가 연이어 말했다. “준혁아, 아리야. 너희도 쉬어야 되니까 우리도 이만 가볼게. 며칠 내로 또 병문안 올 건데 우리도 이제 데이트하게 고이 보내주라. 알았지?” 그러자 준혁이는 말했다. “아! 그래. 오늘 와줘서 고맙다. 정혜야, 너한테도 고마워. 너희가 또 올 때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너희도 데이트 잘해!” 아리도 준혁이랑 생각이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병원에서 나오게 된 세민이랑 정혜.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배가 불러서인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세민이랑 정혜는 거리를 조용히 걸었다. 물론 팔짱을 낀 채로 말이다. 한참을 걸었다. 말없이 걸어도 서로는 서로의 진심이 느껴진다. 세민이는 정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정혜도 세민의 시선이 느껴졌던지 세민이를 쳐다보았다. 세민이는 정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야. 갑자기 나 여보한테 하고 싶은 말이 생겼어…” 그러자 정혜의 대답을 시작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응? 무슨 말 하려고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 “여보야, 여보는 아프지 마. 준혁이랑 아리가 다쳐서 마음이 요즘 되게 마음이 좋지 않아서… 괜히 불안해. 알겠지?”, “응… 너무 걱정하지 마. 준혁이도, 아리도 사고가 나서 다친 거잖아. 그리고 빨리 낫고 있는데 뭘…”, “그래. 걱정 안 할게. 그러니까 우리는 다치지 말자. 그리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특히나 준혁이랑 아리가 우리 이어줬잖아. 그런데 그런 준혁이랑 아리가 사고가 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서 그랬던 거야.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 배가 불러서 뭘 먹기는 좀 그렇고,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음… 난 여보랑 같이 있으면 어디라도 좋은데?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이 있어. 나 영화보고 싶어~”, “응? 영화는 시간 오래 걸리잖아. 벌써 7시 넘었는데? 적어도 8시 반까지는 돌아가려면 영화 보면 시간이 안 맞는데?”, “음~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공부하지 뭐~ 나 여보랑 같이 있고 싶어~ 그래서 그래.”, “으이그~ 알았어. 그럼 영화관으로 간다?”, “웅! 알았어.” 대화가 끝이 났다.
세민이는 정혜에게 고마웠다. 자신이랑 같이 있고 싶다는 정혜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오늘은 정혜에게 기쁨과 행복을 동시에 선물하고 싶었고, 무언가 정혜를 기쁘게 해줄만한 선물을 한가지 하고 싶었다.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목걸이나 반지는 사실 특별하다기 보다 커플을 인증하는 선물로, 세민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특별한 선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오늘 당장 주는 것보다 뭔가 정성을 더 담아서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민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보다. 무엇을 떠올린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세민이랑 정혜는 영화관에 도착했다. 시간을 확인한다. 그러나 7시 30분 이후의 영화 시간은 끝나는 시간도 오후 10시 30분 이런 식으로 애매하게 끝이 났다. 그래서 영화를 볼까말까 고민하던 세민이는 애매한 시간에 영화를 보는 것보다 길거리를 걸으며 소소한 데이트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번화가를 걷기 시작했다. 펜시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도 했고, 지하상가에 들어가 구경도 했다. 사람이 몰릴 시간이었고,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해, 그리고 데이트하기 위해 지하상가에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 사이로 세민이랑 정혜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정혜는 한 옷가게에 들어간다. 세민이는 ‘정혜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가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정혜는 자신의 옷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혜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커플 티셔츠였다. 커플 신발도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신발을 선물하는 것은 의미가 좋지 않았기에, 정혜는 신발을 선물해주고 싶지 않았다.
정혜는 세민이에게 말했다. “여보야~ 여기로 와봐~” 세민이가 다가왔다. 그때, 세민이 몸에 티셔츠를 대보더니 치수를 L로 선택하고는 예쁜 커플 티셔츠 2장을 샀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정혜는 세민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보야~ 나 선물주고 싶어서 커플티셔츠 산거지롱~” 그러면서 커플 티셔츠 한 장을 세민이에게 선물해주었다. 세민이는 감동을 받았다. 그 커플티셔츠에 담긴 의미가 예뻤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민이는 이제 꼭 정혜에게 뜻 깊은 선물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정혜에게 말했다. “고마워. 정말… 여보가 이럴 때마다 난 너무 행복한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남자 친구로서 여보한테 못해주는 것이 더 많아질까 봐… 속상해져.” 그러자 정혜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야~ 그렇게 생각하지 말랬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나는 이제 여보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그래서 옷을 봐도 네가 입었을 때가 떠올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 말이야. 항상 그랬어. 너랑 사귀기로 한 순간 이후부터. 그래서 난 선물하는 거야. 그럼 여보가 할 일은? 나 더 좋아해주고 아껴주면 되는 거야. 바보야~” 너무나도 감동스러운 말이었다. 그래서 세민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일지라도, 속은 여린 남자였다. 그래서 정혜는 세민이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여보 우는 거야? 이런 조그마한 일로 울면 어떡해. 앞으로 더 감동스러운 일 많을 텐데.”
그 말에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세민이다. 슬피 우는 세민이를 정혜는 자기 품으로 이끈다. 그리고는 꼭 안아준다. 세민이가 슬프면 정혜도 슬프다. 세민이도 다짐했듯, 정혜도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그걸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함에 정혜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 모든 일은 지하상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지하상가에서 둘은 오래토록 서로의 품에서 안겨 떨어지지 않았다. 한편,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효진이는 정혜가 늦게까지 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던지 정혜에게 톡을 날렸다. “정혜야. 어딘데?”라고. 그런데 정혜는 지금 남자 친구를 꼭 안아주고 있는데, 그 톡을 확인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효진이는 다시 폰을 끄고 공부에 집중했다. 만약 ‘나’라면 걱정에 전화라도 한통 해보고 그래도 받지 않으면 포기하고, 공부하던지 할 텐데 역시 1등에게는 한 번 이상의 자비는 없는가 보다.
오래도록 서로의 품에 안겨 있던 세민이와 정혜는, 20분이 지나서야 서로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서로를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부끄러워한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지하상가 위로 올라갔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 가방을 가져와야 집에 가서 공부할 과목이 생기는 정혜였던지라, 그런 정혜를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같이 학교로 갈 참이었던 모양이다. 세민이는 고마워서라도 혼자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하상가에서 다시 1층으로 올라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날은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잠시 후 도착이라는 문구와 함께 학교로 가는 버스가 적혀 있었다. 곧, 버스가 도착했고, 둘은 그 버스에 올라탔다. 밤이라 그런지, 도로가 막히지 않아 빠른 속도로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 정문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던 터라, 내리자마자 학교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두웠다.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제각기 다른 빛을 띠며, 다시 학교로 돌아온 세민이랑 정혜를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운동장마저 어둡게 변해버린 그곳에서도 길을 헤매지 않았던 이유는 곳곳에 세워져 있던 가로등 덕분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반으로 늦게 입장한 정혜를 보면서, 효진이는 정혜에게 물었다.
“너한테 톡 보냈었는데 확인 못했나 보네. 왜 이리 늦었는데? 걱정했잖아.” 그러자 정혜가 미안한 듯 대답했다. “응? 그랬었구나. 미안해. 아리한테 갔다가 세민이랑 데이트하다가 늦어버렸네. 많이 걱정했다면 사과할게.” 그러자 효진이가 말했다. “아냐. 괜찮아. 뭐. 대신 내일은 어디가지 말고 같이 공부하자.” 그래서 정혜도 대답했다. “응! 알았어. 오늘 못한거 내일 꼭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까 먼저 갈게. 효진이 너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 밤길 어두워서 더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더 위험해.” 그러자 걱정 말라는 듯 효진이가 말한다. “알았어. 내 걱정은 말고, 너나 집으로 조심해서 잘 가. 난 오늘 부모님께서 태우러 와 주신다고 하셔서 괜찮아.” 그 대화를 끝으로 다시 운동장으로 나간다. 세민이는 언제나 그랬듯 말없이 반겨주었다.
그대로 곧장 집으로 걸어가는 정혜와 세민이다. 정혜는 세민이가 옆에 있어서 그보다 안심될 수가 없었고, 세민이도 정혜가 옆에 있어서 포근한 마음으로 집까지 갈 수 있었다. 1분, 1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어두워져만 간다. 그래도 앞을 비춰주는 가로등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서 다행히 울타리를 지나고, 느티나무 숲속으로 걷다 보니 정혜네 집 앞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정혜는 세민이에게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집으로 가!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꼭 전화해.”라고 당부하면서, 세민이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봐주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난다.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그 일들을 정혜는 일기장에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모든 것이 추억이 될 것이니까 말이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사랑했던 하루하루도 결국 추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정혜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추억이 되는 만큼, 새롭게 펼쳐지는 하루하루도 행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세민이도 무사하게 집으로 도착하고, 정혜도 1시간 정도의 공부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눕는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까?’라고 생각하는 정혜다. 이제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부디 내일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세민이와 정혜가 되길 바란다. 점점 다가오는 시험일에 대비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