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세민이는 푹 자고 일어났다. 놀이공원에서 정혜에게 고백도 하고, 정혜와 같이 놀이기구 한번 타기 위해 오래 기다리기도 하면서,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단잠을 잤는지 세민의 표정은 맑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세민이가 자기 전, 마지막으로 정혜에게 답장을 해주고 그 후 잔다고 폰을 보지 못했던 것을 인지했다. 그러고는 폰을 봤더니 정혜에게서 아니나 다를까, 5통의 카톡이 와 있었다. "여보야~ 자?"부터, "자나보네?"에 이르기까지 1분에 한통씩 보내놓았던 것. 그래서 그 카톡을 읽자마자 세민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응! 자다가 일어났어. 나…" 그런데 보내도 1, 2분 동안 답장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정혜도 피곤해서 자고 있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한편, 준혁과 아리는 그렇게도 서로가 좋은 것인지, 계속 카톡으로 대화하면서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아리와 준혁이 나눈 톡 내용은 이러했다. 준혁이 먼저 카톡을 시작했는데, "자기야~ 오늘 어땠어?"라고 시작했다. 대화는 릴레이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오늘 재미있었지. 특히 세민이랑 정혜가 잘 이어진 것 같아서 기분 좋아. 자기는 어땠어?", "나도 마찬가지지 뭐~ 세민이가 한 번씩 툴툴거리기는 해도, 자기 여자한테는 따뜻하게 잘해줄 스타일이야. 왠지 오래갈 것 같기도 한데?", "아… 그렇구나. 세민이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리고 나한테는 자기가 제일 중요해서 자기만 보여", "정말? 내가 고백 안했으면 어떡할 뻔 했어~ 나도 우리 자기밖에 안 보여.", "고마워! 진짜지? 나 이거 스크린 샷 찍어놓고, 평생 간직할거다?", "응! 간직해. 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냐? 아… 생각만 해도 예뻐 죽겠다. 사랑해 자기야.", "응! 나도 사랑해~ 나 잠시만 치킨 시켜놔서 치킨 좀 먹고 올게! 조금 있다 톡해" 이렇게 잠시 준혁과 아리의 톡은, 멈춘 상태가 되었다. 준혁은 왠지 치킨에게 자신이 밀린 것 같아 분하기도 했지만, 치킨을 정말 좋아하는 아리였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준혁은 치킨을 좋아하지 않았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군대에 갔다가 전역을 한 시점으로부터 느끼한 것을 못 먹게 되었다. 그 말로만 전해 듣던, "군대에서 체질이 바뀌어 오는 사람도 있데."의 전형적인 케이스가 준혁이었던 것이다. 준혁은 밥을 좋아하는 토종 한국인 스타일이지만, 특이하게 빵도 함께 좋아하는 신기한 스타일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러한 준혁이었기에 치킨에게 자신의 여자 친구인 아리의 관심을 빼앗긴 것만 같아 속상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리는 치킨을 먹으러 떠나고, 준혁의 '아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메아리치듯 들려갈 때쯤, 저 너머에서는 정혜가 잠에서 깨어났다. 한없이 세민이의 답장만을 기다렸는데, 답장을 해주지 않은 세민이에게 잔뜩 삐쳐 있었다. 그래서 폰을 찾아 세민이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던 찰나였다. 세민이에게 톡이 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새 기분이 풀어진 듯 반짝거리는 눈으로 세민이에게 온 톡을 읽는다. "응! 자다가 일어났어. 나…"라고 와 있었다. 부리나케 답을 한다. "아~ 그랬구나. 나도 잠 들어버렸네… 미안해♥" 세민이는 폰을 보고 있었나 보다.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응. 괜찮아. 피곤하다 보면 잠 들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뭐."라고. 그래서 정혜는 할 말이 있다는 듯 답장을 보낸다. "여보야~♥ 저기… 나 부탁이 있는데…" 그러자 답이 온다. "응? 부탁? 무슨 부탁인데?"라고. "지금… 볼 수 있어? 보고 싶어서 그래♥"라고 칼 같은 답장을 보낸 정혜의 톡을 보며 시계를 확인한다. 밤 9시였다. 그래도 세민이도 정혜가 보고 싶었던지 빨리 갈등을 끝내고 답장을 했다. "응! 여보야가 아리네 집 근처에 사니까, 내가 아리네 집 앞에 있는 울타리 앞으로 갈게. 9시 20분까지 앞으로 나와." 정혜는 뛸 듯이 기뻤다.
정혜는 세수도 다시 했다. 그리고는 머리 스타일도 다시 정리하고, 옷도 갖고 있는 트레이닝복들 중에서 최대한 예쁜 트레이닝복으로 입었다. 그렇게 꾸미면서도 세민이를 잠시라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는 정혜였다. 부리나케 준비를 하다 보니 예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고, 세민이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뛰어갔다. 세민이도 최대한 멋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머리 스타일도 깔끔하게 만지고는 약속 장소로 뛰어갔다. 비록 세민이가 남자들 중에서도 애교가 없는 무뚝뚝한 스타일이지만, 준혁이가 말했던 것처럼 자기 여자 친구에게만은 그 누구보다 잘해주고 보석처럼 아껴줄 스타일이기에 그런 그녀를 만나러 뛰어가는 세민의 모습은 무척 가벼워보였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9시 15분쯤 도착한 세민이는 정혜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정혜도 도착했다. 세민이랑 마주보고 선 정혜는 또 다시 그의 자태에 심장이 뛰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다. 세민이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사귄지 몇 시간 안됐지만, 어쩜 이렇게도 귀엽고, 보고 싶을 수가 있는 것인지 이제껏 학교를 다니면서 정혜보다 얼굴이 더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애도 보았지만, 크게 요동치지 않던 자신인데, 이번에는 정혜에게 푹 빠진 모양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둘은 마주보고 선채로 앞으로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는 앞에 섰을 때,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었다. 준혁과 아리의 닭살 같은 애정과 달랐다. 세민과 정혜는 말수는 적었지만, 듬직함으로 애정을 대신했다. 그러다 세민이가 정혜에게 했던 말 한마디가 정혜의 가슴 속 심금을 울렸는데, 그 말은 다름 아닌 "보고 싶었어."라는 한마디 말이었다. 정혜는 그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속에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았기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혜가 흘리는 이 눈물은 사랑의 눈물인 것이다. 정혜가 눈물을 흘리자,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세민은, 그녀의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었다. 진심은 정말 통하나보다. 정혜의 눈물을 닦아주는 세민의 눈에서도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것은 예쁜 눈에서 눈물대신 웃음을 보여 달라는 뜻이기도 했음을 나타냈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던 세민과 정혜는 15분쯤 지나고, 하늘에 수놓아져 있는 맑은 별들을 바라보며 그 수를 "하나… 둘…" 소리 내어 헤아린다.
밤하늘에 떠있는 맑은 별들은 마치 자기네들의 수를 헤아려주는 세민과 정혜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듯 더 맑은 빛을 나타낸다. 한없이 별을 쳐다보던 정혜는 바로 옆이 아리네 집이라는 것을 다시금 인지하고, 아리네 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리는 뭘 하고 있을까.'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아리가 창문너머로 우리를 쳐다보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뜻이었을까. 그것은 정혜만이 알 뿐이다. 그러나 그 시각, 아리는 맛있게 치킨을 먹고, 뒷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자신의 집 앞 울타리에서, 세민이랑 정혜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데이트를 즐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뒷정리까지 말끔히 끝낸 아리는 그제야 준혁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자기야~ 오래 기다렸지? 다 먹고 왔어♥" 그러자 준혁에게서 칼 같은 답장이 온다. "맛있게… 먹었어?…" 그렇게 답하는 준혁에게선 무언가 냉랭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리는 눈치를 채고 준혁에게 애교로 용서를 구한다.
"자기야~ 미안해… 나 치킨 너무너무 먹고 싶어서 먹고 왔어. 용서해주면 안 될까? 아잉~ 자기야~" 참 남자란 동물은 희한하다. 애교 한번 부렸다고 금세 또 화가 풀렸기 때문이다. 준혁은 대답했다. "앞으로 치킨, 나 둘 중에서 선택해. 치킨이야? 아니면 나야?" 그 질문에 아리는 대답했다. "응? 나야 당연히 우리 자기밖에 없지~"라고. 혹시라도 치킨을 선택하면 어찌 하냐며 홀로 걱정하던 준혁은 또 금세 걱정이 풀리고, 아리에게 대답했다. "고마워! 앞으로 한번만 더 그래봐! 용서 안 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