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그들의 사랑도 이루어질까요?」
준혁과 아리는 이제 마치 결혼한 신혼부부처럼 아리따운 사랑을 해나갔다. 멋지게 이벤트에 성공한 아리는, '정혜가 좋은 정보를 줘서 할 수 있었던 일이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혜에게 톡을 보냈다. "정혜야~ 뭐해?"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칼 같은 답이 날라 왔다. "응? 나 그냥 TV보고 있었어. 아 맞다. 준혁이한테 선물 주려고 그러더니 선물은 줬어?"라고. 그래서 아리는 "응~! 너 덕분에 무사히 줬어~ 그래서 고맙다는 말 하려고 톡 보낸 거야."라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 그렇구나. 알았어. 그럼 좀 있다 학교에서 봐~"라고 답이 날라 왔다. 그래서 아리는 톡을 그만 두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번엔 자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 남자 친구와의 추억에서 벗어나질 못한 채 힘들어하는 정혜의 모습을 아리 자신은 알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개념을 넘어서서, 정혜를 행복하게 웃도록 해주고 싶었다.
아리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세민이랑 정혜를 이어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준혁에게 세민이랑 정혜를 이어주려 한다고 세민이 휴대폰 번호를 달라고 한 뒤에 정혜에게 그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기만 알려줘도 50%는 커플 될 확률을 먹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는 정혜에게 그동안 고마운 일도 많았고, 미안한일도 많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소가 닭 보듯이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내일부터 토, 일 이틀간은 학교에 가지 않았기에, 오늘 톡을 시작하게 하고, 내일과 일요일에 걸쳐 데이트를 하게 하는 스토리로 이어주면 되겠다는 그러한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을 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멀티로 가능하다니 그런 아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긴 남자 친구를 위해 공원 관리소까지 들어가 방송으로 이벤트를 해줬던 아리였기에 어떻게 보면 멀티 정도야 못할 일도 아니리라.
한편, 준혁은 아리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 삼아, 데이트삼아 걷고 있는 그 넓디넓은 공원에서, 그런 이벤트를 해준 것이 정말 고마웠던 것이다. 그래서 준혁은 좀 더 아리에게 잘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랑을 하는 커플들을 보면 한 쪽이 더 좋아하는 경우도 많고, 무뚝뚝한 남자와 사귈 경우, 애정 표현이 잘 없어서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준혁과 아리 커플은 그렇지 않다는 면으로만 봐도 둘은 천생연분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학교로 갈 시간이 되었다. 준혁은 항상 그래왔듯이, 집을 나서서 아리네 집 주변에 위치한 울타리에서 아리를 기다렸다. 아리도 준비를 끝마친 터라 오늘은 준혁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아리네 집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준혁은 순간 사라졌다. 아리는 보통 대문 앞에서 준혁이가 웃으며 반겨줬는데 오늘따라 안 보여서 '어떻게 된 일이지… 먼저 학교 갔나.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느티나무 숲 근처까지 걸어가며 준혁을 찾던 중, 누군가가 아리를 불렀다. "자기야~" 준혁이었다. 아리는 그곳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뭐야~ 놀랬잖아!" 귀 뒤쪽에 꽃 한 송이를 꽂은 채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 훈훈하게 잘 생겼다. 아리는 그런 준혁을 쳐다보고 있자니 가슴이 너무 '쿵쾅쿵쾅'거리고 설레서 미칠 것만 같았다.
준혁과 아리는 마치 공개적인 커플이라도 된 것처럼 서로를 향해 활짝 웃으며, 학교로 갔고, 정문을 통과한다. 준혁은 준혁의 반으로, 아리는 아리의 반으로 들어섰다. 아리가 반으로 들어서자마자 정혜가 반갑게 인사하며 아리를 맞이한다. 그런 정혜가 고마운 듯 아리는 정혜를 보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오늘도 일찍 와 있네. 어제는 진심으로 고마웠어." 그러자 정혜는 대답했다. "아냐. 무슨 꽃 좋아하는지만 알아서 너한테 알려준 것이 끝인데 뭘~" 그래서 아리는 정혜에게 귓속말로 답했다.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이젠 약속 지킬 차례잖아." 정혜는 그렇게 말하는 아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맙다는 듯 미소 띤 얼굴로 바뀌는 정혜다.
아리는 생각했다. '어떡하면 세민이랑 정혜를 이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직 휴대폰 번호도 모르는 상황에 더 깊은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이 드는 아리. 그래서 준혁에게 세민의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정혜에게 알려주겠노라 다짐한다. 그리고는 오늘은 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준혁이 자신의 반으로 자신을 보러와 주길 비는 아리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세민의 휴대폰 번호를 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에 준혁이를 보았지만, 아프지도 않았고, 생기발랄했기 때문에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창문너머로 쳐다보고 있는 준혁과 눈이 마주친 아리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어 매우 기쁘다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준혁에게로 달려간다. 준혁은 평소 아리에게 슬금슬금 다가가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아리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새삼 놀라운 듯 신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준혁에게 말을 거는 아리. "준혁아~~ 어쩐 일이야?" 준혁은 섹시한 표정을 지으며, 아리에게 대답한다. "내가 누구 보러 왔겠냐." 그 말을 들은 아리는 대답은 "정말이야?"라고 하지만, 표정에는 아주 좋아 죽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 아리가 귀여운지 누가 볼세라 눈치를 보더니 재빨리 볼에 키스를 한다. 순간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는 아리. 다행히 복도라 그런지 아무도 못 본 듯했다.
아리는 드디어 일명 "세민 & 정혜 이어주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준혁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야, 혹시 자기 친구 세민이 휴대폰 번호 좀 알려줄 수 있어?" 그랬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응? 세민이? 세민이 번호는 왜? 무슨 일 있어?" 그러자 아리는 "아냐. 무슨 일이 아니라 사실은 정혜가 세민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둘이 한번 이어줘 볼까 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정혜를 한번 쳐다보던 준혁은 아리에게 말했다. "알았어. 그런데 세민이도 나한테 그런 적 있어. 아리 친구 중에 정혜라는 여자애가 있는데 친해지고 싶다고. 어떻게 보면 둘이 이어주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러자 아리는 신기한 표정으로 준혁을 쳐다본다. 아리는 생각한다. '항상 정혜에게 고맙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갚아줘야겠어.'라고. 아직 아무런 계획도,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 정혜와 세민이 사귀기라도 한 것과 같은 사랑의 물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한편, 준혁과 아리가 비밀연애 한다는 것을 모르는 정혜는, 요즘 따라 더 친해 보이는 준혁과 아리를 지그시 바라본다. 아리가 자신에게 준혁이 생일에 꽃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던 것도 그렇고, 둘의 사이가 여간 의심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더는 알 길이 없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준혁과 아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마치 단둘이 드라마라도 촬영하듯 더욱 우정으로 둔갑한 사랑을 보이고 있었다. 아리는 계획을 짜기로 했다. 그리곤 준혁에게 "내가 세민이와 정혜를 이어주는 계획을 짤 테니까 혹시 수업도중에 아이디어 떠오르면 카톡으로 말해줘."라고 이야기했다. 준혁이도 이에 비장하다는 듯, "알았어. 꼭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아참 세민이 휴대폰 번호는 010-XXXX-XXXX야. 세민이한테는 우선 비밀로 할 테니까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인거다. 알겠지?"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아리는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이때, 마침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준혁과 아리는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헤어지기 싫다는 것 같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차피 점심시간에도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자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1교시가 시작되고, 아리는 수업에 집중해야 함에도, 정혜와 세민이를 어떻게 이어줄지 그 계획을 생각했다. 공책을 꺼내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써내려간다. [1. 나랑 준혁이랑 만날 때, 세민이랑 정혜도 불러서 같이 놀까? 그럼 자연스럽게 둘이 친해질 텐데. 2. 준혁이보고 말해서 세민이 휴대폰 빌려달라고 해서 세민이 폰으로 정혜 폰 번호 저장하고, 카톡 날려볼까. 그럼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둘이 대화를 하게 될 텐데.] 두 가지 계획을 세워봤다. 그런데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고, 무언가 하나 빠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리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데도 잘 떠오르질 않자, 준혁에게 톡을 보냈다. "자기야. 혹시 좋은 아이디어 떠오른 것은 없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날라 왔다. "응… 내 머리는 돌인가 봐."라고. 그래서 아리는 다시금 톡을 보냈다. "음… 내가 두 가지 계획을 세워봤는데, 두 번째 계획은 내가 생각해도 좀 그런 것 같아서 지우고, 첫 번째 계획을 말해줄게. 나랑 자기랑 만날 때, 세민이랑 정혜도 불러서 같이 놀까? 그럼 자연스럽게 둘이 친해질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일정 시간이 되면 빠져주기도 편할 테고. 어때? 자기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라고. 이번에는 준혁이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지 10분이 지나서야 답장이 날아왔다. "음… 생각해봤는데 좋은 것 같아. 그러면 내일이 토요일이니까 학교 안가잖아? 내일 애들 끼워서 놀이공원 가는 건 어때? 세민이랑 정혜도 이어줄 수 있고, 우리도 데이트 할 수 있잖아~"
좋은 계획이 세워진 것 같아 아리는 기쁘다. 그래서 바로 답장했다. "응. 그럼 내일 아침 일찍 가야겠다. 그치?"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음… 아침 9시쯤 출발하면 될 거야. 자기는 정혜한테 내일 시간되는지 물어봐봐. 나는 세민이한테 물어볼게!"라고. 아리는 정혜에게 조심스럽게 쪽지를 전달했다. [정혜야. 내일 시간되면 나랑 준혁이랑 놀이공원 가는데 너도 갈래? 세민이도 온다는데.] 아직 준혁이에게서 세민이의 가능 여부를 적은 톡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꼭 될 것이라 믿으며, 정혜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자 그랬던 것이다. 다행히 정혜는 쪽지를 받자마자 아리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OK"라는 표시를 보냈다. 이로써, 드디어 [정혜 & 세민 이어주기] 프로젝트의 첫 걸음마를 내딛은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세민이가 시간이 될지 안 될지에 대한 준혁의 답장뿐이었다. 5분 쯤 지났을까 드디어 그로부터 답장이 왔다. "세민이는 된데. 근데 나 세민이보고 정혜도 온다고 그랬어. 그래서 정혜가 안 되면 큰일 나. 정혜는 된데?"라고. 아리는 그 톡을 보며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답장을 보낸다. "정혜도 세민이 온다니까 시간 비워서라도 가겠데!"라고. 이제, 아리의 역할과 준혁의 역할은 끝났다. 세민과 정혜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관계를 가져나갈 것인지만 남은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아리는 벌써부터 정혜가 기뻐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고, 뿌듯할 뿐이다.
이렇게 1교시가 끝났다. 비록 수업에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아리는 기분이 좋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정혜는 아리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들뜬 얼굴로 물었다. "아리야, 내일 몇 시에 만나?" 아리는 그런 정혜가 귀여워보였고, "준혁이가 아침 9시까지 보자 그랬어. 세민이도 온다니까 예쁘게 하고 나와~"라고 대답했다. 정혜는 아리의 대답을 듣고, 생각만 해도 설렌다는 듯이 말했다. "응! 당연하지! 고마워 아리야~" 한편, 같은 시각 준혁도 정혜와 마찬가지로 준혁에게 이야기를 듣고 정말 고마워했다. 마음 같아서는 준혁이를 매점에 데려가, 빵이라도 사주고 싶은 세민이었지만 곧, 2교시인 체육이 시작될 터라 그러진 못했다. 준혁이네 반은 2교시부터 4교시까지 체육이다. 오늘은 배구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다. 서브 넣는 자세와 정확도, 공이 향하는 방향을 기준으로 수행평가가 치러졌다. 수행평가 점수가 매우 중요한 과목인 터라, 점수를 잘 받고자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이윽고, 반에서 번호가 11번이었던 준혁을 호명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준혁은 수행평가를 치렀다. 평소 운동신경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꾸준한 연습을 해왔기에 30점 만점에 30점을 받았다. 그러자 반 친구들에게서 "오…"하는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준혁의 기분도 매우 좋았고, 평소 같이 연습해준 세민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달했다.
한편, 아리네 반은 3~4교시가 음악이었다. 평소 취미로 피아노를 치던 아리에게 음악시간은, 단순히 수업시간만이 아니라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리네 반 친구들과 같이 음악실에 도착했을 때, 아리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박효신]의 "눈의 꽃"을 천천히 치기 시작했다. 모두들 아리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3교시가 시작되는 종소리가 울렸지만, 피아노 소리에 듣질 못했는지 계속 아리의 실력에 푹 빠져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음악 선생님도 마찬가지셨다. 선생님께서도 피아노를 전공으로 하셨지만, 학생이 벌써 이 정도로 친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선생님으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연주는 4, 5분 동안 계속 되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났을 때쯤 선생님께서도 정신이 드셨는지 음악실로 들어오셨다. 출석부로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음악 선생님께서는 아리에게로 다가가셨다. 그리고는 아리에게 물어보셨다.
"피아노 되게 잘 치더라. 혹시 대학 지원할 때 피아노를 전공으로 하려고 배운 거야?" 아리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집에서 취미삼아 치기 위해서 배우고 연습한 거예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아리에게 말씀하셨다. "아 그래? 그런데 선생님이 봤을 때는 아리가 충분히 소질이 있어보여서 그래. 나중에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자."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반 친구들은 아리를 쳐다보며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아리는 부끄러운 듯했다. 양쪽 볼이 빨개졌다. 그리곤 시작된 음악 수업. 아리는 선생님께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서였을까. 수업에 집중했다. 필기도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잘했다. 그렇게 수업은 진도를 나아갔고, 집중해서였는지 4교시까지도 금세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리는 준혁과 긴밀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준혁이네 반 앞으로 갔다. 체육시간인 것은 알았기 때문에 교실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무슨 이야기이기에 그럴까. 아마도 세민과 정혜를 이어주기 위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때 체육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올라오는 준혁과 세민. 준혁은 아리를 발견하고 웃으면서 뛰어간다. 세민이도 같이 가자며 함께 뛰어서 아리의 앞으로 다가온다. 아리는 준혁이에게 그대로 안겼다. 그리고 옆에 있던 세민이에게 말했다. "세민아. 내일 멋있게 입고 와. 정혜도 예쁘게 하고 오라 그랬어." 세민은 그 말을 해주는 아리에게 고마운 표정을 지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아리도 준혁도 세민도 배가 고팠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으러 급식소로 갔다. 아리가 4교시 마치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가는 것을 발견한 정혜도 뒤이어 급식소로 뛰어갔고, 아리의 바로 뒤에 줄을 설 수 있었다. 그래서 정혜를 발견한 아리는 정혜도 같이 먹자며 같은 줄에 앉았다. 정혜는 세민이랑 밥 먹는 것이 쑥스러운지 조용해졌고, 세민이도 부끄러워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리와 준혁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밥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다시 교실로 올라왔다. 물론, 매점에 들려 나란히 음료수 하나씩 들고 말이다. 넷은 아리네 반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는 점심시간을 보냈다. 수업시간은 안가도 쉬는 시간은 어쩜 그리 잘 가는 것인가. 점심시간도 이로써 순식간에 끝이 나고, 5교시를 준비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5~6교시는 3학년을 제외한 전교생을 상대로 꿈을 찾는 초청 강의가 진행되었다. 강의 주제는 [여러분들의 진정한 꿈은 무엇입니까?]였다. 스케치북 한 장씩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적어보기부터 진행했다. 이 초청강의의 목적은, 장차 수능을 칠 학생들이었기에 꿈을 적게 하고, 적은 것을 바탕으로 발표해보고, 선생님들께서도 그에 맞는 학과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뜻을 목적으로 둔 강의였다. 아리도, 준혁도, 정혜도, 세민도, 그리고 모든 친구들도 정성껏 꿈을 쓰기 시작했다. [변호사, 대통령, 육군 장교, 초등학교 선생님, 공무원, 대한적십자사 총재, 작가, 대학 교수 등] 많은 꿈들이 자기만의 스케치북에 고스란히 쓰여 갔다. '어떻게 꿈을 갖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까지 썼다.
그렇게 학생들이 열심히 자기의 꿈을 스케치북에 다 쓰고 나니, 뒤이어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2학년 전체 학생회장부터, 부회장, 1학년 전체 학생회장, 부회장까지 4명이 먼저 발표를 했다. 뒤이어, 강사는 "각 반에 두 명씩을 뽑아서 발표해보자."는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각 반에서는 제비뽑기, 가위 바위 보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두 명씩을 뽑았다. 아리네 반에서는 신기하게도 아리와 정혜가 뽑혔고, 준혁이네 반에서는 준혁이와 정후가 뽑혔다. 준혁이네 반에서는 국어를 잘하는 준혁과 발표를 잘하는 정후가 뽑혔지만, 정후가 "이번에는 너무 떨려서 발표를 못하겠어.…"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한명만 발표할 수도 있었지만, 준혁이가 세민이를 추천하는 바람에 세민이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뽑힌 각반의 두 학생들끼리도 가위 바위 보로 최종적으로 발표를 할 5명만을 추려냈다. "가위 바위 보!" 당첨자는 놀랍게도 세민이와 정혜를 포함한 다른 반 친구 3명이 더 뽑혔다. 강사는 뽑힌 5명에게 제비뽑기로 발표할 순서를 정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결과는 세민이가 첫 번째, 정혜가 두 번째 순서였다. 세민은 첫 번째 발표라 당황했는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도 남자답고 씩씩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자기 꿈과 이유에 대해 전교생 앞에서 멋지게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세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발표하게 되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뽑힌 만큼 최선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 꿈은, 이제껏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었지만, "공군 파일럿"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이 되어서, 전투기를 타고 멋지게 영공을 가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왜 이 꿈을 갖게 되었냐면, 초등학생 때 학교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을 쳐다보니 전투기 2대가 구름을 만들며 나란히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제게는 어찌나 멋있고, 부럽던지… 그래서 저는 제 꿈을 파일럿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발표를 끝마친 세민이의 모습은 벌써 그 꿈을 이룬 것과 같은 멋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발표를 끝마쳤기 때문에 마이크를 정혜에게 주려는 찰나에 그 모습을 발견한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가만히 보니까 재밌게도 남학생 3명, 여학생 2명이 뽑혀서 남녀, 남녀 순으로 서 있네요? 그렇다면, 마이크를 전해줄 때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전해주어야 할 사람의 이름과 함께 "마이크를 받아줘!"라고 고백이라도 하듯이 외치고, 설레는 표정으로 고백을 받듯 마이크를 받아주면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네요."라고 하며 강사는 웃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세민은 정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혜는 세민이 자기를 따뜻한 눈으로 쳐다보자 떨린다는 듯이 세민이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흔들렸다. 세민은 그런 정혜에게 부드럽게 속삭였다. "떨지 마. 정혜 네가 떨면 나는 더 떨린단 말이야."라고. 그러자 정혜는 대답했다. "응, 알았어. 부담 가지진 말아줘." 세민은 드디어 마이크를 감싸 쥐며, 정혜에게 고백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강사가 재미를 더하기 위해 짜낸 레크리에이션 방식이었지만, 세민이 입장에서는 평소 정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정말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떨릴 수밖에 없었다.) "정혜야! 내 마이크를 받아줘!"라고. 정혜는 심장이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쿵쾅쿵쾅' 뛰었지만, 꿋꿋이 참아내며 마이크를 잘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두 번째 발표자인 정혜가 발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정혜라고 해요. 먼저 제 꿈은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가에요. 왜냐하면요. 우리나라에 놀러온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잘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통역가가 되고 싶어요." 세민이보다 다소 빠르게 발표를 마친 정혜의 얼굴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많이 부끄러웠나 보다. 세민이는 정혜가 부끄러워할 때 "이때다!" 싶었던지 정혜에게 말을 했다. "정혜야, 많이 떨렸지? 이거 하나 먹어봐. 그러면 조금은 나아질 거야."라고. 그러면서 비타민 한 알을 건넨다. 별거 아니었지만 그런 세민의 자상한 모습에 왠지 모르게 또 한 번 심장이 뛰어지는 정혜다.
정혜도, 강사가 제시한 대로 마이크를 다음 사람에게 전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세민이는 그냥 진행방식일 뿐인데 자신은 왜 그렇게 정혜에게 마이크를 받는 그 친구가 싫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차례로 꿈에 대해 발표하고 이유에 대해 발표를 한다. 모두의 발표가 끝나고 난 이후가 되어서야 강사는 말했다. "발표를 했던 5명의 학생들만큼,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다들 좋은 꿈, 원하는 꿈과 그 이유를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은 적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고 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학생 여러분들! 꼭 실천해서 자기가 정한 꿈을 반드시 이루기를 바라며, 이로써 강의를 끝마치겠습니다." 이렇게 강의가 끝났다. 그러나 자신에게 비타민을 준 세민이만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정혜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혜는, 오늘따라 아리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은 채, 한없이 세민이만을 생각하는 듯했다. '내게 준 비타민의 의미가 뭘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 이유는 세민이에게 물어보지 않는 한, 그 답을 들을 수도, 알 수도 없기 때문에 해질녘이 되어서야 집으로 가는 정혜의 아름답고도 슬픈 발걸음만이 그녀의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대신 표현할 뿐이다.
한편, 세민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준혁과 같이 걸어간다. 준혁은 아리와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리랑 준혁, 그리고 자신까지도 같이 가야겠다고 하며 둘 사이를 방해하듯이 끼어든다. 이렇게 학교에서의 또 하루가 끝이 나지만, 준혁과 아리 커플과 같이 걸어가는 세민의 표정은 내일이 더욱 기대되고, 기다려진다는 듯 멋진 미소를 나타낸다. 앞으로 세민과 정혜. 둘의 사랑은 과연 아름답게 이루어질까?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비극적인 결말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