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잠이 들기 시작한 건 낮에 잠을 자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얗고 멍한 어둠이 지속되다가 탁 끊어지면 밤이었다. 이전에는 꿈 때문에 밤은 지옥 같았다. 지옥에서는 동생이 늘 나타나서 나를 보며 울곤 했다. 여동생과 나는 두 살 차이가 난다. 고등학교 어느 날 집에 일찍 들어왔을 때 여동생이 방에서 울고 있었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손을 떨고 있었다. 여동생이 몸을 덜덜 뜨는데 안아주었다. 그런데 그 떨림이 마치 강도가 높은 지진 같아서 겁이 났다. 동생이 나를 보는 눈빛에 다른 건 소거되어 있었고 두려움과 분노 그것만 가득했다.
술이 들어가니 하기 싫은 말이라도 이렇게 짧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안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꼭 체한 것 같은데 참을 만 한, 술이 깨지는 않지만 견딜 만 한 정도였다. 구치소에 있다가 나왔을 때 여동생은 깨지 않는 잠이 들고 말았다.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 녀석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그 녀석은 졸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둘은 좁은 고시원 방이라는 공간에 쪼그리고 잠이 들어야 했다. 불편한 자세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편하지 않은 편한 잠이었다.
그 녀석 맥주가 들어가니 멀쩡하게 말을 쏟아냈다. 그 녀석은 이 도시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술을 마신 지금 이 순간은 나보다 더 멀쩡했다. 아니 누구보다 멀쩡한 인간이었다.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어서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멀쩡해지기 위해서 도시의 사름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들어갈 때 유통기한이 세 시간이 지난 도시락과 샌드위치와 삼각 김밥을 왕창 들고 오면서 다른 편의점에서 만 원에 맥주 4캔까지 샀다. 하천의 벤치에 앉아있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치고 도시락을 들어 보였다.
같이 먹자는 행동인데 그 녀석이 그러자고 했다. 그 녀석은 좁은 내 방에 4개의 도시락을 펼쳐 놓고 어디 회사의 도시락은 이게 문제며 어디 거는 나트륨이 과하다고 했고 어디 도시락은 돈가스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나는 맥주를 한 캔 그대로 털어 넣었다. 그러고 나면 목이 조여 오면서 죽을 것 같은데 쾌감이 뒤따랐다. 그 녀석은 의외로 말을 잘 했다. 꼭 글을 쓰는 사람이 내뱉는 언어 같았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했다. 놀랐다. 하루 종일 고시원에만 있는데 여자는 언제 만나고 다니는 걸까. 하지만 도시의 생활은 복잡하게 흘러간다. 내가 모르는 무엇이 많은 곳이 이 도시다. 내가 일하는 젖은 어둠이 흐르는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