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에 도전하시려고 오신 건가요?”
내가 접수처에 도착하자, 접수처에 앉은 여성 NPC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걸었다.
“아니면, 관람을 하시기 위해서 오신 건가요?”
미소를 지으면서 빠르게 내 옷차림을 확인한 NPC가 신속히 뒷말을 덧붙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콜로세움 NPC 시실레아.
NQ에서부터, 이 세계에서까지 변함없이 콜로세움을 감독하고 맡아온 NPC였기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근육 돼지들이 넘쳐나는 콜로세움에서 유일한 꽃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NQ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90회차 이후로는 콜로세움 도전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꽤나 오랜만에 만나는 NPC이기도 했다.
“참가자로 왔습니다.”
“……처음 오신 모양이신데, 콜로세움에 대해서 설명해드릴까요?”
참가자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이,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다시금 친절한 영업용 미소를 띠고 나에게 물었다.
당연한 일이리라.
지금의 내 꼴은 영락없는 거지꼴이었으니, 콜로세움에서 몇 년이나 근무한 그녀라 한들,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하지만 콜로세움의 규정상, 참가제한이 없기 때문에 그녀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괜한 오지랖을 부린들, 그걸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 콜로세움에서 사망자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괜찮습니다. 바로 검투사증을 만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예, 그럼 여기에 이름과 직업을…… 아니, 그냥 이름만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금 내 옷차림으로 왔다가 떠나갔다.
직업을 적으라고 했더니, ‘거지’라고 당당하게 적으면 그녀 또한 곤란할 테니 아마 그녀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려는 터이리라.
그런 시실레아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나는 받아든 종이에 당당하게 내 이름을 기입했다.
그리고 시실레아에게 내밀자, 그녀는 ‘유정혁’이라는 나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작업에 들어갔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작업은 5분 채 안 되는 빠른 시간에 끝났고, 그녀는 내 쪽으로 하나의 카드를 내밀었다.
“네, 여기 검투사증입니다. 콜로세움 인근의 상가를 이용할 때, 할인과 대여가 가능하니, 분실 시 곧장 이곳으로 돌아와서 재발급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검투사증]
<이름: 유정혁>
<등급: 미정>
<직업: 미공개>
그녀에게서 검투사증을 받아든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제국 소속이 아닌 사람이, 제국의 시민권을 얻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검투사가 되면 합법적으로 제국에 머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투사의 좋은 점은 직업을 적는 곳에 있었다.
보통,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직업까지 깐깐하게 확인한다.
허나, 검투사증에 한해서, 직업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면 미공개로 하여도 상관이 없었다.
“그럼 바로 20분 후에, 등급 심사가 있을 예정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실레아가 아주 미세하게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아마 걱정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그녀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남성이라지만, 이토록 걱정되는 옷차림을 한 이는 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빌고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내가 검투사증만 받고 나가는 길을 택하길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바로 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탈의실로 이동하셔서, 검투사님께 맞는 장비를 입고, 대기실로 가서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그녀는 탄식이 섞인 한숨을 흘렸지만, 마지막까지도 접수원의 역할을 해냈다.
나는 장하다는 듯이 자상한 미소를 지은 후, 이내 탈의실로 향했다.
“아, 탈의실의 위치는…… 응?”
그녀는 미처 자기가 탈의실과 대기실의 위치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불러 세우려고 하지만, 이미 나는 두 곳에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곧장, 탈의실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이제야 겨우 이 걸레짝 같은 옷을 벗어던질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
NPC 시실레아.
본래는 NQ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세계에서의 그녀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그저 흔한 여인이었다.
평범하게 제도에서 자라왔고, 성년이 되자 일자리를 구하던 중 그녀는 콜로세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대로 접수원이 되었다.
처음 시실레아가 접수원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콜로세움에 방문하는 무수한 근육질의 사내와, 무서운 사람들.
간혹,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인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금 설명한 것과 같은 근육 돼지들이었다.
그녀가 접수원이 된지는 어연 5년이 다 되어갔고, 이제는 조금이지만 그들에게 익숙해졌다고 그녀 스스로는 자부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 콜로세움에서 죽었는지, 그녀는 이제 셀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녀에게도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녀는 매 번, 콜로세움을 방문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이곳에서 버틸지 예상했다.
그리고 위험하다 싶을 때는 과감하게 그 사람을 말렸다.
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흘려들었고, 그대로 콜로세움으로 직행하고는 이내 싸늘한 주검으로 끌려나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그녀는 더 이상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죽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동정심과 안쓰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 날도 비슷했다.
주변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근육덩어리들 사이에서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매 번 시체가 발생하는 콜로세움이니 만큼, 서류작업의 양 또한 하루가 쉬지 않고 늘어났다.
그러나 시실레아가 투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투정하고 싶은 건, 이런 서류작업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실, 자기의 목숨을 함부로 여기는 작자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중, 그녀가 콜로세움 내부가 소란스러워진 것을 안 건, 전날의 마지막 서류를 끝낸 이후였다.
“거지잖아.”
그녀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은 콜로세움의 유명인이었다.
상급 검투사, 볼카스.
여러 근육 돼지들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고, 콜로세움에서 몇 번이나 생환한 인물이니 만큼, 그녀도 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무뢰한이란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매 번, 새로이 콜로세움에 도전해오는 이들만 보면, 저렇게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이었다.
‘강하지만 꼴불견인 사내.’
시실레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볼카스에게 걸렸으니, 이번 신입 검투사의 미래도 뻔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마 5분 채 걸리지 않고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리라.
그리 생각하며, 그녀가 오늘자 서류에 시선을 돌릴 때였다.
“지나가게 비켜주세요.”
여린 목소리.
허나, 근육 남성들의 마초적인 목소리보다는 훨씬 매력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볼카스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매력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시실레아는 곧장,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어느새 신입 검투사라고 여긴 이가 눈앞에 와있었다.
“콜로세움에 도전하시려고 오신 건가요?”
시실레아는 당황하지 않고 곧장,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몇 백, 몇 천 번을 반복해서 꺼낸 말인 만큼, 자동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신입 검투사로 보이는 남성에게로 향했다.
완전히 찢어지다 못해, 걸레짝이라고 불러도 모자를 천 옷.
색이 벗겨지다 못해, 구린내를 풍기는 가죽 바지.
그리고 평범하다 못해, 너무도 평범한 외적 근육.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질 뻔했다.
그러나 시실레아는 초보 접수원이 아니었고, 겨우 표정관리를 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보기에 그는 어떠한 무언가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골목길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거지에 가까웠다.
적어도 참가자로 온 것은 아니리라.
시실레아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