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내가 바라던 것!
눈을 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온통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커다란 원목 가구, 긴 휘장이 쳐진 침대, 바닥에 깔린 카펫.
멀리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눈에 담았다.
폭신한 이불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잠옷, 하얗고 조그마한 손.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급하게 침대를 벗어나 방 한편에 있는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와중에도 몸이 가벼웠다.
한달음에 거울 앞까지 와서 숨을 골랐다.
막상 거울 앞에 서려니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꼭 감은 뒤, 작게 숨을 내쉬고 거울 앞에 정면으로 섰다. 그리고 조심히 눈을 떴다.
허리까지 굽이치는 금발, 맑고 아름다운 초록색 눈동자, 화장을 한 것 같지 않은데도 맑고 투명한 피부에 은은한 생기가 돌았다.
나이가 많아 봐야 16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다시 한 번 찬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모습을 살펴도, 거울 속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을 하던 27살의 내가 아니었다.
평범한 검정 머리와 고동색 눈동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던 내 피부는 지금, 말 그대로 백도자기 같았다.
이전 기억이 너무 흐릿했다. 눈을 뜨니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버렸다니! 그리고 난 거울 속에 있는 이 소녀를 알았다.
내가 몇 번이고 정독했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로멘 제국의 황녀.
로멘 프리지아였다.
기쁨으로 터져 나오려던 비명을 참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소리가 새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얼굴 가득 피어난 웃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방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상으로 달려갔다.
책상 위에는 지도를 비롯해 역사책과 경제학, 제왕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책도 놓여있었다.
난 지도 위에 있던 책을 치우고 지도를 봤다. 한글은 아니었지만, 글이 술술 읽혔다.
로멘.
그 두 글자를 지도에서 찾은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토록 꿈꾸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다.
소설로 주구장창 읽어오던 ‘빙의’를 하는 날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 침대로 몸을 던졌다.
폭신한 이불이 감겨오고, 침대가 크게 진동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내가 할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설레서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난, 이곳의 황제가 될 것이었다.
감히 나의 최애님을 고통스럽게 한 황태자를 밀어내고, 난 황좌에 앉을 것이었다.
여주와 남주라는 이름으로 최애님을 악녀라 말하며 처참히 죽게 만든 그들에게, 벌을 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