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확신을 할 순 없지만,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며칠을 푹 잔 느낌. 일어나 오늘을 확인했다. 분명 어제보다 하루가 지나 있었고, 그럼 지금은 분명 하루가 지난 ‘오늘’이다. 나는 이런 느낌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분명했다. 그러니까 난 너무 푹 잤던 거였다.
밖에서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방까지 전해진 맛있는 냄새에 배가 고팠다. 평범한 늘 똑같은 날인데, 그냥 기분이 유난히 그랬다.
나는 부모님과 지내고 있다. 나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난 부모님이 있고, 그들의 아들이다. 부모님은 늘 그 모습, 그대로다. 부모님의 나이도 잘 모르겠다. 항상 그 모습 그대로였기에 그렇게 궁금해 하지 않았다. 너무 무관심한 것 같기도 하지만, 다들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냥 나는 보통의 평범한 그들의 아들이다.
나는 방에서 나가 부모님의 모습을 봤다. 매일 보던 나의 부모님의 모습이다. 나의 부모님은 오늘도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주신다. 익숙한데, 설명할 수 없는 약간의 다름을 느꼈다면 오늘 아침 내가 너무 예민한 게 분명하다.
“잘 잤니?”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살가운 아들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그런 나를 늘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신다. 그래서 아마 나는 이 정도의 표현만 하는 것 같다. 나한테 좀 더 하라고 하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나도 굳이 더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도 일하러 나가니?”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의 무심한 행동에도 나의 부모님은 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살짝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힘든 일도 아닌데요.”
어색한 분위기가 나와 부모님의 주위에 가득했다. 아니 나 혼자 어색했다. 이상하게도 익숙하고 모든 것이 편한데 나만 어색하다. 그래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의 행동에 아까보다 더 환한 얼굴로 웃으셨다. 그런데, 그 웃음이 어딘가 모르게 슬픈 것 같기도 했다.
순전히 이 모든 건 나의 느낌이다. 내가 사는 이곳은 슬픔이라는 게 없다. 이상하겠지만, 그렇다. 여긴 모든 게 따뜻하고 평온한 곳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삶의 끝 그 어딘가이다. 어쩌면 삶을 넘은 그 어딘가 일수도 있겠다. 분명 사람으로서 사는 삶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나는 나를 보지 못하는 누군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내가 보호하는 그들을 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언제부터 이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나는 이 일을 당연하게 해오고 있다. 그리고 딱히 어려운 것도 없다. 나에게 맡겨진 누군가를 지켜보고,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은 막아주고, 사실 막아준다기 보다는 일의 방향을 바꿀 뿐이다.
그리고 나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은 구분 할 수가 없다. 어디까지가 의지인지, 우연인지. 그래서 크게 개입할 건 없다. 그러나 오직 ‘죽음’, 그리고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죽음에 대한 의지’에 개입하면 안 된다.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기에 그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난히 나의 일을 수행 할 수 있다. 다행인지 아직 그런 일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지 않길 바랄뿐이다.
나는 익숙하게 그날 나의 임무를 확인했다. 내가 보호해야 되는 사람의 그날의 일정들은 그날 아침에 확인 할 수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사건 같은 건 안 일어나는지 간략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일정들은 변수들을 다 담을 수 없기에 형식적일 뿐이다. 다만 내가 보호하는 사람이 변수들을 무난히 벗어난다면 오늘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잘 마칠 수 있을 거 라는 내용만 확인 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의 부모님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늘 그렇듯이 나의 부모님은 나의 뒷모습을 계속 보고 계실 거다. 그러나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매일 나서는 길인데, 어디 먼 길 떠나는 배웅처럼 바라보신다. 그래서 이 순간이 살짝 불편했다. 이럴 때는 모르는 척, 못 본척하는 게 내가 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집 앞 길을 벗어났다. 부모님에 대한 부담감과 의식으로 주위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길들이 내 주위에 펼쳐져 있었다. 따뜻한 햇살과 신선한 바람과 기분 좋은 향기가 주위에 넘쳐나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이 살짝 저려오는 게 느껴졌다. 매일 이 길을 지나면서도 왜 몰랐을까? 내가 이렇게도 무심했나? 괜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게 싫어서 나는 마음껏 주위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아, 너무 좋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정말 눈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드디어 문이 나왔다. 저 문을 열면 그곳이다. 내가 지금 가야할 곳.